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본문 : 요일 5:16-18

 

(요일 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요일 5: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요일 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1, 들어가는 말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죄의 문제이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에게도 가장 큰 문제는 죄의 문제이다. 그래서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 악에서 건져 달라고 기도하라고 했다.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짓는 것을 말하며 악에서 건져 달라는 기도는 계속해서 악에 머물러 있지 않고 거기서 떠나가게 해달라는 기도인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매장마다 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자의 후손의 언약을 믿고 구원을 받은 아담에게도 가죽으로 옷을 해 입힘으로 믿고 나서의 죄를 사함받는 제사를 가르쳐 주셨다. 애굽에서 유월절 어린양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해방된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넌지 사흘만에 마라에서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다고 물맛 때문에 원망을 한다. 그로부터 한 달도 되지 못하여 신광야에서 고기가 먹고 싶다고 떡이 없다고 원망을 한다. 그리고 애굽에서 나온지 넉달이 채 되지 못하여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자기들을 구속하신 하나님을 배반한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그들을 멸하시지 아니하시고 그들에게 죄를 깨닫는 율법을 주시고 죄 사함을 받는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성막을 짓게 하시고 거기서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는 제사의 예법을 가르쳐 주신다. 성도는 죄가 없어야지만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는 거룩해야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 수 있다. 그것은 죄를 안짓는 거룩함이 아니라 날마다 일상에서 지은 죄를 사함 받는 거룩함이다 하나님의 자녀와 세상죄인이 다른 것은 하나님의 자녀는 날마다 죄사함을 받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자녀가 아닌 세상의 죄인들은 지은 죄를 하나라도 용서받을수 없고 그대로 심판을 받고 영원히 버림을 받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들에게 가장 혼란스러운 문제가 예수를 믿은 후에 죄를 짓고 그 죄를 어떻게 해야 하는 줄 모르기 때문에 마귀의 속임수에 빠져서 죄책감에 빠져서 살고 그뿐 아니라 남의 죄를 정죄하는 율법주의에 빠짐으로 그 죄를 씻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모독하는 일을 부지불식간에 행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고 했는데 이 말씀대로라면 어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난자가 아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걸려 넘어지고 마귀에게 속아 넘어 가는 것이다. 그것은 율법주의적인 발상으로부터 나온 번역이며 잘못된 번역이다. 이것런 것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혼란가운데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이 율법주의자들인 주석가들이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는 작은 죄이며 사망에 이르는 죄는 큰 죄를 말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살인죄나 간음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이고 거짓말한 죄나 도적질한 죄나 시기와 질투와 비방한 죄등 비교적 가벼운 죄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작은 죄들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해석하기가 어려우니까 아예 난해구절이라고 제쳐두고 소홀히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된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아니 풀리는 구절은 성경에 단한구절도 없다.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주님은 그 말씀을 아니 주셨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육으로 풀고 인간의 생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자세히 살펴봄으로 주님이 말씀하신 뜻을 바로 알아서 믿음으로 마귀의 모든 속임수를 간파하고 이기고 자유하는 은혜를 받고자 한다.

 

 

2. 사망(다나토스)

 

이 말씀에서 사망은 율법주의적인 주석가들의 해석과 같이 육신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죄는 육을 죽이는 것이라기 보다는 죄는 영혼을 죽이는 것이다.

 

(18: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18: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율법주의자들이 말하는 대로 죄에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와 사망에 이르는 죄 두 가지 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사람이 두 가지 사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의인이 짓는 죄는 사망에 이르지 않고 죄인이 지은 죄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라는 말이다. 의인은 죄를 지어도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죄인은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가 없다. 의인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지은 죄를 용서받아서 사망에 이르지 않지만 죄인은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용서를 받을 수도 없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는 죄가 되는 것이다.

 

 

3.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함

 

(요일 5:18)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나님께로서 난자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를 말한다. 여기서 중대한 번역의 실수가 발견이 되는데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는 말씀에서 범죄치의 하말타노가 현재 능동태이기 때문에 범죄치 아니하려고 하는으로 해석해야 한다. “아노라에이도인데 부정사완료로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범죄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니라라고 번역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의인은 죄를 안지으려고 하다가 연약해서 죄를 짓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구원받지 못한 죄인은 죄를 지으려고 애를 쓰고 사모하다가 죄를 짓는 것이다. 같은 죄를 지어도 죄를 안 지으려는 의인과 죄를 지으려는 죄인은 이와 같이 극과 극이며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의인은 죄를 안지으려고 하다가 죄를 짓지만 그 죄를 하나님이 용서해주시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된다. 그러나 죄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죄를 지으려고 애를 써서 죄를 짓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죄라도 그것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는 것이다. 의인은 죄를 지어도 용서를 받지만 죄인은 죄인이기 때문에 선을 행해도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의인은 죄를 짓고 그 죄를 지은 자기 자신이 아파서 어쩔 줄 몰라한다. 왜냐하면 죄를 안지으려고 하다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인은 죄를 지어도 죄를 아쉬워 하는 마음은 있어도 죄를 지은 자기를 아파하는 아픔은 없다.

이렇게 이구절의 번역을 바로 잡을 때에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와 사망의 이르는 죄에 대한 의문이 저절로 풀리는 것이다.

 

 

4.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요일 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요일 5: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이 말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짓는 것은 형제이지만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는 사람을 가리켜서는 형제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짓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믿는 사람의 형제가 된다. 하나님의 자녀이며 믿는 이들의 형제인 구원받은 의인이 짓는 죄는 아버지께 용서받을 수 있는 죄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이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의인은 영생을 얻은 자요 심판이 이미 지나간 사람이요 벌써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운 자이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는 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영생을 얻었고의 얻었고에 해당하는 에코는 현재시제이며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는의 이르지엘코마이인데 이것도 현재시제로 표현되고 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의 옮겼느니라메타바이노인데 부정사완료시제로 지금까지 진행되고 완료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의인은 심판도 사망도 이미 지나간 것을 믿는 사람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사망도 심판도 다 담당하시고 이루신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짓기 때문에 주님은 그의 가르치신 기도에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실 때에 시험에 들어서 죄를 짓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라고 명하셨던 것이다.(26:41; 14:38; 22:40,46) 그러나 그들은 이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를 버리고 다 도망을 간 것이다.(26:56; 14:50)

요한은 믿는 형제들이 죄를 지을 때에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보거든 그 형제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에게 생명을 주시겠다고 말씀했다. 여기서 생명은 예수를 믿을 때에 받는 영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생명은 단번에 영원히 받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말하는 조에가 여기서는 생명력이 충만한 상태를 말하기도 하고 활력이 있는또는 활력을 가진 상태를 말하는 단어로서 기왕에 주신 생명에 활력을 불어넣어 생명력이 충만케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죄를 짓게 되면 생명력이 위축이 되고 성령이 소멸하지만 죄 사함을 받으면 다시 생명력이 살아나고 영적인 활력이 넘치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와같은 일이 실제로 베드로에게 나타난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주님은 베드로가 죄를 지을 것을 미리 아시고 미리 용서해 주시고 미리 할 일을 맡기셨다.

 

(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22:33)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22:34)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주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주를 세 번이나 부인을 하고 저주까지 하였으나 주님은 그의 죄를 미리 용서해 주셨고 또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돌이킨후에 네형제들을 굳게 하라고 미리 할 일도 맡겨 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충성된 종으로 성령충만함으로 쓰임을 받는다.

이것이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범하는 것이고 그를 위하여 주님이 기도하셨을 때에 그가 죄용서함을 받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영적인 활력을 다시 회복시켜 주셔서 쓰임을 받게 된 생명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5. 사망에 이르는 죄

 

16절에서 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고 말함으로 사망에 이르는 죄를 위하여는 기도할 필요가 없고 기도해도 소용이 없음을 말한다. 베드로와는 달리 가룟유다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은 사람이었다. 주님은 그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임을 미리 말씀하셨다.

 

(6: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6: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잡히시던날 밤에도 주님은 그를 지목하여 자기를 팔자라고 말씀하셨다.

 

(26:21) 저희가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리고 주님은 가룟유다의 결국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주님은 그가 죄를 지을 것은 말씀하셨지만 용서나 돌이키는 것이나 맡기실 일에 대하여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다. 그는 주를 다랐으나 예수를 믿지 않음으로 버림을 받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미리 말씀하신대로 그는 예수를 은 삼십에 팔았고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고 용서받지 못했기 때문에 영원히 버림을 받는 길을 간 것이다. 그는 다른 제자들과 삼년 반 동안 항상 주와 함께 다녔지만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은 용서를 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아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더 좋을 뻔한 사람이 된 것이다.

 

 

6. 맺는 말

 

우리는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즉시 그를 위하여 기도함으로 마귀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고 주님의 용서하심의 사랑을 즉각적으로 회복함으로 영혼의 자유함을 얻고 베드로와 같이 주님께 귀히 쓰임을 받는 은혜를 받.


(레 6:7)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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