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볼수 있는 피

 

코로나는 예수를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걸리는 병이예요

예 장로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교회안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걸려요

그렇지요 우리 교인들 가운데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있어요

그것은 그 사람이 거듭나지 못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교인은 물론이고 목사도 장로도 성령을 받지 못하고 구원받은 사람인가 아닌가를 구분하기가 어려웠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교회 안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와같은 상황에서 교회는 구원을 말하지 않게 된지가 오래되고 회심이라는 말이나 회개 그리고 거듭남 또는 성령을 받는다는 언어들조차도 사라지고 돈과 물질과 먹고 사는 가치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차지하게 되었으며 영혼을 사랑하는 목사들도 사라지고 여기 저기서 교회를 해서 생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또 하나의 직업군으로서 종교적인 경영자들로 온통 가득한 교회가 되어 버렸다. 

일반 교인들은 물론이고 목사도 성경을 모르고 기도도 할 필요가 없는 종교생활에 빠져 들어 간지가 오래 되었다. 예배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는 것이어야 함에도 옛날 구약시대의 유대인들과 같이 하나님께 보이려고 드리는 예배가 되어서 하나님께 그것이 짐이 된지가 오래 되었다.

 

(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찬양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면서 자기 위안을 일삼는 복음성가를 부르고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정욕을 채우고자 하는 염원만을 늘어 놓고 또 설교를 한다고 하면서 인간의 생각이나 사회적인 가치관과 사적인 감정까지 강단에서 쏟아 놓음으로 하나님을 교회안에서 쫓아낸 것같은 가증한 예배를 드린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

이사야의 말씀과 같이 오늘날도 그런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 아무 유익이 없는 예배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실수 없는 예배이며 교회 마당만 밟고 가는 헛된 것들이다. 그들이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며 월삭(매월 첫날)과 안식일과 큰 집회를 하는 것도 하나님께 가증한 일이며 부흥회라고 하면서 교인들의 돈을 뜯어 내는 악을 함께 행하는 것을 하나님이 견디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를 싫어하신다고 했다.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짐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을 곤비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손을 펴고 찬송해도 눈을 가리우고 기도할지라도 듣지 아니하시겠다고 했다. 그이유는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는 소돔의 관원들이요 하나님의 법은 아랑곳하지도 않는 고모라의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그들은 더 이상 이스라엘이 아니었다

이사야의 이 말씀은 오늘날의 교회의 형편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만큼 교회가 타락하고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버린바 된 것이다. 그것은 비단 한국교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세계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도 없고 믿음도 없으며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간 종교단체들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의인하나인 롯이 소돔의 멸망을 막지 못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 교회는 죄악세상에 포위된 성읍과 같이 포도원의 망대와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겨우 남아 있는 처지가 되었다.

오히려 롯의 소돔보다 더 악한 것은 세상의 악을 금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기들도 세상보다 더 악한 짓을 일삼기를 매일같이 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글로벌한(전세계적인) 교회의 모습이다. 그것은 므낫세 시대의 이스라엘과 같아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일 때인 것이다.

 

(15: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네게로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였노니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염증이 났음이로다

 

이와같이 바이러스 염병은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시고 인내하시다가 비로소 멸망의 손을 펴서 무수한 사람들의 영혼을 죽이시는 열심으로 나타난 것이다.

출애굽기에 처음으로 등장한 전염병 바이러스도 하나님의 심판으로 임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굽의 압제에 고통을 당하면서 부르짖을 때에 그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이 되어 모세를 보내어 열 번의 무서운 재앙의 심판을 애굽에 행하심으로 이스라엘을 구별하여 건지신 것과 같이 오늘날도 의인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이 되어 이 무서운 바이러스 염벙으로 전세계를 치시는 일을 하시기 시작하신 것이다.

중세시대에도 극도로 타락하여 교회라고 말을 할수 없게 되도록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이 인간을 압제하고 세상보다 더 악을 행하는 가톨릭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로 임한 바이러스의 재앙이 있었다. 그것은 삼백년동안을 유럽을 초토화시키며 1억명이 넘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심으로 심판하신 것이다.

오늘에 이 재앙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만이 아신다. 하나님이 그의 분노의 포도주를 다 마신후에야 끝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중국에서 시작이 되었지만 교회의 존재가 희미해질정도로 사회적으로 크게 타락한 서구사회가 주 타켓이 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팔백만 귀신을 섬기는 일본에도 그리고 교회가 갈데까지 다간 우리나라도 타켓이 되고 있다. 문명이 발달한 만큼 죄가 꼭대기까지 넘친 죄악이 관영한 나라들이 우선적인 하나님의 목표물이 되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동성연애도 양성평등도 인권도 노동자권리도 다 그런 것들을 앞세워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위하여 발악을 하고 있는 죄인들을 하나님이 살육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죄악상을 구경만 할 수밖에 없을 뿐더러 그들과 함께 타락하여 소돔에서 살고 있는 교회와 종교인들을 하나님이 그의 불같은 진노로 대적하시고 죽이시는 일을 하시고 계신 것이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온세상 사람들이 염병으로 다 죽어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병에 걸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는 교회를 다니느냐 아니 다니느냐로 구별이 되기에는 교회가 너무나 더러워졌다.

교회를 다니는 것을 예수 믿는다고 말할 수 없다. 교회가 죄인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원은 사람이 노력해서 얻는 대가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이 구원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 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사 찾아 오시는 것이다. 평생을 교회를 다니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어도 하나님이 찾아 오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 그것은 어쩔수 없는 사실이다. 어떤 허망한 사람들은 자기 부모가 예수를 믿는다고 모태 신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부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라 에서도 믿는 부모인 이삭과 리브가의 아들이었으나 그부모의 믿음이 그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은 그의 평생에 하나님은 그를 찾아오신 적이 없었다. 그는 이삭의 장자이었지만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 오히려 흠도 많고 허물도 많은 둘째 아들 야곱은 하나님이 찾아 오셨다. 그것도 73세에 집에서 쫓겨나 삼촌의 집으로 도망갈 때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만나주심으로 그를 구원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찾아 오심으로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가 성립이 된 것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구원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과 개인적인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에 들어가지 못하면 교회를 평생 다녀도 에서와 같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한 번 두 번 버림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영원히 버림을 받아 지옥형벌에 들어가는 것이다.

교회가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이 에서의 족속과 야곱의 족속이 구별이 어렵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이 바이러스를 보내사 지금 그의 백성이 아닌자들 속에서 그의 백성들을 갈라 내시는 것이다.

 

(고후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고후 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고후 6: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고후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교회안에도 멍에를 같이 하지 못할 믿지 않는 자들이 많이 있다. 교회안에도 불법이 성하고 어두움이 가득한다. 교회안에도 그리스도로 교제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아니 교회안에서 그리스도를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면 오히려 미움을 당하고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목사같은 경우는 쫓겨나기도 하는 그런 더러운 환경의 교회도 많이 있다.

 

장로님 강단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더니 학교 교장선생인 어느 교인이 예배를 마치고 나가면서 목사인 나에게 쌍욕을 하고 나간 적이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고백이다. 또 많은 분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장로님이 하신 말씀이 복음이고 맞는 말씀인데 교회에서 강단에서 말하기가 어렵다고 말한 분이 여러 분이다. 얼마전에 어떤 목사님이 같은 말을 하기에 꼭 강단에서 전하려고 하지 말고 개인적인 자리에서 일대 일로 그 말씀으로 영혼을 전도하는 일이 더 중요함을 말해 준 적도 있었다. 몇몇 목사님들은 말하기를 새로운 교회로 부임해 가서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수 있는 귀를 열어 주는데에 공히 십년이 걸렸다는 고백을 하는 것을 들은 적도 많이 있었다. 이것이 말세의 징조중의 하나이다.

 

(딤후 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 4: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여기서 바른 교훈휘기아이노 디다스칼리아이다. 휘기아이노는 현재분사이다. 곧 항상 바른 것을 말한다. 교훈은 가르침이나 또는 복음을 말한다. “바른 복음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안에 많이 나타날 것을 예언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은 강단에서 거의 사라진지가 오래 되었다. 교인들이 그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상 이야기나 사는 이야기 웃기는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하고 거짓말이라도 좋은 말을 해주고 복받는다고 하면 좋아하는 세상사람들이 교회안에 가득히 들어 차 있는 것이다. 강단에서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울면서 설교를 하면 목사가 맨날 울기만한다고 핀잔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인들이 오래전부터 많이 있다.

이러한 교회와 교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진멸하시고 도륙하시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 구원받지도 못하고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자기에게나 위안이 되는 예배를 드리고 그런 것들을 조장하고 생계를 이어가고 돈을 모으는 거짓선지자들의 정수리를 치시는 것이다. 그래서 말라기 선지자의 말과 같이 교회의 문을 닫는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그런 사람들에게는 백신도 소용이 없고 치료약도 소용이 없다. 마스크나 거리두기도 소용이 없다. 하나님의 심판의 사자가 정확하게 그들을 찾아 가시는 것이다.

애굽에서도 그랬던 것과 같이 어린양의 피가 없으면 하나님의 심판의 사자가 그 집에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피로써 구별이 되기 때문이다.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지금도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를 믿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재앙이 이 심판이 피하여 가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그 사람이 믿는 피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실수 있는 피가 있어야 한다. 믿고 구원을 받은 예수의 피가 그의 영혼에 묻어서 보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의 사자가 그것을 보고 그 집을 넘어 가는 것이다. 그것은 한 사람만 피가 있어도 나머지 가족들이 안전한 것이다. 바울이 빌립보 간수에게 주예수를 믿으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한 말을 기억하자.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가구단위로 가족대로 그날 밤에 양을 잡아서 그 피를 자기들 집의 좌우 문설주와 문위의 인방에 바른 것이다.

 

(12:21)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12:22)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12:23)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그리고 하나님은 그 밤에 피없는 애굽사람의 집을 쳐서 심판하신 것이다.

    

(출 11:4)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출 11:5)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지라
(출 11:6)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
(출 11:7)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않으리니 여호와가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135:8) 저가 애굽의 처음 난 자를 사람부터 짐승까지 치셨도다

(135:9) 애굽이여 여호와께서 너의 중에 징조와 기사를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복에게 임하게 하셨도다

 

(136:10)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날 밤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사람이냐 애굽사람이냐를 구분 하신 것이 아니다. 피가 있느냐 없느냐를 구분하신 것이다. 그날 밤에 애굽사람들도 피를 믿은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으며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중다한 잡족들도 애굽에서 종노릇하던데서 해방이 되었는데 그들도 그날 밤에 피를 믿는 믿음으로 이스라엘과 같은 믿음으로 행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다.

 

(12:37)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12:38) 중다한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생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그러므로 오늘날도 가톨릭이냐 개신교냐의 문제가 아니라 피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장로교나 감리교나 성결교나 침례교의 문제가 아니다. 곧 교단의 문제가 아니다. 큰교회도 피가 없으면 버림을 받는 것이고 지하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유명한 목사도 공부를 많이한 목사도 신학자도 피가 없으면 버림을 받고 그에 속한 교인들도 다 버림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가 있으면 이 재앙과 그 사람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91:3)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91:4)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91:5)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91:6)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91:7)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91:8)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91: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91: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91: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 곧 그의 피의 증거안에 거하는 사람은 이 재앙이 피하여 지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이저주의 심판을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리스도안에 있어야 한다. 그의 피의 증거안에 거하여야 한다. 그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 만나는 것이다. 구원받은 피의 증거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안에 있고 한사람도 집 문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모세는 명령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 모세는 다단과 아비람을 하나님이 염병으로 심판을 하실 때에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은 아무것도 만지지 말아서 같이 멸망하는 것을 면하라고 말씀한다.

 

(16:26) 모세가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은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 그들의 모든 죄 중에서 너희도 멸망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매

 

교회안에서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조심해야한다. 이번 일은 하나님이 그들을 거룩한 무리에서 갈라 내시고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안에서나 밖에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을 부득이 접촉을 해야 할 때에는 마스크를 쓰고 손소독제를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씻어야 한다. 그들과 같이 밥을 먹는 일은 극히 위험한 일이므로 피해야 한다.

세상의 기준으로 만들은 사회적인 거리두기를 기본적으로 실천을 해야하는 것은 우리는 그것들 보다 높은 기준인 하나님의 보혈적인 구별가운데 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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