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 "이스라엘의 절기속에 있는 메시야"(Messiah in the feast of Israel)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샘 나들러(Sam Nadler)라는 미국의 회심한 유대인 목사가 쓴 책이다.

그는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대인의 명절에 대하여 몰랐던 많은 것들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많이 받는 것은 이분의 글을 읽을 때에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분과 같이 거듭나서 성령을 받은 사람이 쓴 책을 읽는 것은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기 때문에 항상 은혜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가면서 저자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가지는 한계가 분명히 있었고

또한 저자가 목사이기 때문에 가지는 종교적인 한계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대목도 있었다.


이를테면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 드린 구약의 제사를 말하면서 요한 일서 1장의 죄를 자백하는 것을 연결시키는데

제사도 행사로 드리는 것이고 죄를 자백하는 것도 행사로 말하는 것이었다.

구약의 제사는 행위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생활이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이스라엘은 온전한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의 율법을 떠나고 규례와 법도를 떠난 사람들은

제사를 하나의 종교적인 의식과 행위로 전락을 시키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방법으로 이용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다.


오늘날도 죄를 자백하는 것은 행위도 아니고 죄용서 받는 방법도 아니다.

이전에 목회자훈련 제직훈련과 여러 모양의 집회에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내가 전하는 죄자백의 은혜를 하나의 행위로 여기고 그것으로 하나님께 죄용서 받는 방법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은혜를 받지 못할 뿐아니라 그 진리를 대적하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던 것이다.


주님안에 거하는 사람은 죄를 깨닫는 것이나 회개하는 것이나 죄를 자백하는 것이 행해야 하는 의무가 아니다.

그것은 생활이다.

주안에 거하는 생활을 사는 사람은 거룩하신 주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죄가 깨달아지는 것도 저절로 깨달아지고 죄를 아파하는 것이나 회개하는 것이나 죄를 시인하고 자백하는 것도 저절로 되는 것이다.


제사나 죄자백이나 그것을 해야하나 안해야하나 하는 것을 따지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고 하나님이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제사나 죄자백을 자기의 죄를 없이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도 없고 십자가도 없고 사랑도 없으며 하나님과의 사이에 인격이 없는 종교의식만을 자기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죄를 지으면 죄자백을 하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는 글을 읽으면서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부분이 빠져 있기때문이다. 그러면서 아 이분이 구원받고 성령은 받은 분이 분명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활 믿음으로 살고 말씀으로 살며 주를 따라가는 경건생활이 부족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분은 무교절을 지키며 무교병을 먹는 부분에 있어서 세상과의 단절과 거룩하게 됨을 잘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초실절에 있어서 많은 신학자들과 주석가들이 예외없이 공통된 것과 같이 첫열매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것은 구약의 제라의 믿음 곧 후손의 믿음에 관한 개념이 불분명함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결정적인 것은 본인이 믿음의 열매를 맺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안에 거하는 사람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저절로 과실을 맺음과 같이 열매를 맺는 것이다.

첫열매는 종자씨를 말한다.

종자씨는 심어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종자씨라고 심었는데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은 가짜 종자씨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아브라함은 아들을 낳아야 자기가 구원을 받을수 있었다.

그것이 후손의 믿음이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지 못하면 그가 하나님께 받은 언약은 가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

첫열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 분명한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기시를 나무는 열매로 보아서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마 7: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눅 6: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눅 6: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천국백성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것이 열매를 맺는 것이다.


(마 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열매가 없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오순절까지는 은혜를 많이 받았다. 물론 아직 읽지 않은 부분에서도 많은 은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팔절에 가서는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팔절인 7월 1일부터 속죄일인 10일까지는 자기자신을 엄숙히 면밀하게 살펴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기간이라고 했다가 오늘날 유대인들이 그날을 새해 설날로 여기고 서로 축복하고 즐겁게 보낸다는 말을 했다가  느닷없이 나팔을 재림의 나팔로 연결을 하여 휴거니 대환란이니 하면서 성경을 오해하는 말을 연발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를 들면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날을 예언한 예레미야의 말씀을 대환난의 날이라고 말한 것이다.


(렘 30:7)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 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그리고 전천년주의자들이 말하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주님의 예언의 말씀을 재림이전의 대환란으로 인용을 한 것이다.


(마 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마 24: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그리고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중세 가톨릭을 말씀하는 것을 역시 대환난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살후 2: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살후 2: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심지어는 다니엘이 말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주의 재림이전에 대환난때에 나타나는 적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것이다.


(단 8:25) 그가 꾀를 베풀어 제 손으로 궤휼을 이루고 마음에 스스로 큰 체하며 또 평화한 때에 많은 무리를 멸하며 또 스스로 서서 만왕의 왕을 대적할 것이나 그가 사람의 손을 말미암지 않고 깨어지리라


여기까지 읽으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전천년주의자들의 왜곡된 종말론이 온 세상에 편만하게 퍼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얼마전에 필리핀의 자매와 통화할 때에 빌게이츠가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거짓말에 미혹된 것도 생각이 났다.

그리고 마귀의 궤계에 몸서리가 쳐져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주님은 지나간 오백여년동안 마귀의 거짓말에 온 교회가 다 속아 넘어가는 것을 보시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하는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탄식이 새어 나왔다.


"이 일을 어찌할꼬"


그동안 사역을 하면서 세계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이 놀라면서 이 복음을 처음 듣는다는 말을 할 때에도 사실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필리핀의 목사가 말씀을 듣고 주님하고 산다는 말씀은 평생 처음 듣는다고 말할 때에도 그냥 그런줄 알았습니다.

이전에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옛날에 어렸을 때에 1950년대나 1960년대에 듣던 말씀이라고 할 때에도 그냥 그렇게 예사스럽게 생각을 하고 넘어간 적도 많이 있었다.

우리를 떠나갔다가 돌아온 어느 목사님이 "전세계 어디를 다녀도 이런 복음은 없습니다"라는 말을 할 때에도 과연 그렇겠는가? 하고 그냥 넘기기도 했습니다.

협회에서 같이 동역을 하던 목사님이 영국에 가서 살게 되었을 때에 그가 말하기를 외국에 나와 보니까 예수전도협회의 사역이 너무나 귀한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을 할 때에도 왜 그런 말을 하는 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분명해지는 것은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단체도 더이상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전에 훈련을 받은 어느 목사님이 교회로 돌아가서 강단에서 날마다 울면서 설교도 못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팬데믹의 시대입니다.

바이러스를 몰아내려고 백신을 개발했지만 변이바이러스에 무력할 수 있다는 전망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복음을 전할 수 없는 무슬림세계나 불교나 힌두교의 장벽과 공산주의의 장벽이 철벽과 같았지만 이제는 바이러스라는 벽에 아무데도 못가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언제 일상으로 돌아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주님이 저에게 주신 응답은 전세계에 영어로 또 할 수 있으면 다국어로 이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쳐 거짓에 속아 있는 사람들을 깨우치는 일을 급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선은 우리말과 영어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가 갈 수 없어도 다 와서 들을 수는 있습니다.

독립서버를 갖춘 인터넷방송국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무때나 어디서든지 누구나 들어와서, 동영상으로 설교하고 성경공부를 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방송이 필요합니다.


유지와 운영을 위하여 광고를 하는 기독교방송과 같이 순수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세상의 누룩이 없는 오직 말씀만 듣고 볼 수 있는 방송국을 시작할 것입니다.


이는 아마도 주님이 다시오시기 전에 왜곡된 종말론을 청소하시고 교회를 사람의 소유로 하던 모든 악한자들을 심판하시고

전세계에 흩어진 영혼들을 그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불러 모으시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지만 주님이 다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필요에 주님이 채우시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저보다도 주님이 더 급하십니다.


 (사 60:9) 곧 섬들이 나를 앙망하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이르되 원방에서 네 자손과 그 은금을 아울러 싣고 와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드리려 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드리려 하는 자들이라 이는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사 60:10)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는 나의 은혜로 너를 긍휼히 여겼은즉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 왕들이 너를 봉사할 것이며


이말씀대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시행하심을 믿습니다.

많은 기도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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