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났던 장로님들 중에 생전에 잊을 수 없는 귀한 분들이 몇 분 있다. 물론 내가 만나보지 못한 분들 가운데는 그보다 훨씬 더 많으리라고 생각을 한다. 교회마다 초청이 되어 전도 간증을 하다가 1984년에 처음으로 전도부흥회 강사로 초청을 받아 갔다. 흑석동에 있는 장로교회이었는데 3일동안 말씀을 전하기로 하고 첫날 저녁에 충격적인 은혜가 임해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교회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목사님이 교인들과 인사를 하시느라 어느 장로님에게 나를 먼저 목사님 방으로 인도해줄 것을 부탁 했다. 예배당에서 목사님의 방까지는 비탈길을 올라가야만 했는데 연세가 칠십칠 세이신 그 장로님은 숨이 가빠하시면서 나를 목사님 방으로 데리고 가셨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분은 숨을 몰아쉬시면서 전형적인 서울 말씨로 성급하게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야, 믿음 좋다. 도대체 몇살이우?”

예, 저 서른셋입니다.

아, 우리 주님 나이구만!

 

그러시고 그분은 내 손을 붙잡고 막 흐느끼시면서 우셨다. 그분은 주님을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이것 보오. 내 나이 칠십이 되니까 세상 욕심이 다 없어 지더라구요. 그런데 어떻게 이 젊은 나이에 모든 것 다 버리고 그렇게 사시우?”

 

나는 내 영혼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던 해인 1974년 스물세 살 때부터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세상 문학책들과 영화와 세상문화를 멀리하고 성경책 한권만 읽으면서 살았다. 세상의 친구들도 다 잊어버리고 선교사님들과 교회와 직장에서 오직 성령을 받은 형제들과 주님의 사랑을 나누고 살았다. 그분은 그렇게 사는 내 생활에 큰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그분은 지금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품에서 영원안식을 누리고 계실 것이다. 나도 빨리 세상을 떠나서 주와 함께 영원히 거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그런 분들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또 한 분 잊을 수 없는 장로님이 있다. 서울의 신설동 어느 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때이다. 그교회는 규모가 작아서 장로님이 한분만 있었는데 그분은 말하는 것이나 풍기는 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어린아이 같으신 분이었다. 그분은 어느 큰 그룹의 빌딩을 관리하는 회사의 사장이었는데 직원들이 인기투표를 하면 항상 일등을 한다고 했다. 그 때는 한참 노동조합운동이 일어나서 회사마다 난리가 날 때이었는데 그 회사직원들은 그 장로님을 사랑해서 일부러 자기들이 합심해서 노동조합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그분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질문을 하자 그분은 날마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에게 잘해줄까 밖에는 생각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분은 볼 때마다 항상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

또 한분이 기억이 나는 것은 내가 다니던 교회에 주일이면 같이 전도를 나가던 노 장로님이 계셨다. 그분도 연세가 일흔일곱이셨는데 항상 당신은 칠칠이 사십구세라고 아직은 젊다고 말씀하시고 다니셨다. 주일 예배후에 전도를 하기 위해 청년들과 가파른 공원길을 함께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분이 너무 숨이 차 하시길래 안스러운 나머지 내가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힘드시죠? 장로님!

아니야. 전도를 안 하는게 더 힘든 거야.

 

사람이 전도를 하는 믿음으로 사는 것은 쉬운 것이고 전도를 아니 하는 믿음으로 사는 것은 인생을 사는 것 자체가 힘들게 사는 것이라는 말씀이셨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전도하시면서 젊은 사람들이 가는 곳은 팔도강산 어디라도 함께 가셔서 전도했다. 그분은 늘 말씀하시기를 성경은 하늘나라를 보는 창문이고 텔레비전은 세상을 보는 창문이라고 하시면서 아내 된 권사님이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보고 계시는 것을 가장 안타까워하셨다.

이런 분들과 같이 참으로 소중한 장로님들 많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되는 장로님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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