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방황하는 생활을 살았던 것은 교회 때문이다. 그는 부르심을 받아 구원함을 받은 의인이었으나 아직 교회생활을 할 수 있는 믿음이 되지 못하여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환경을 이기지 못해서 애굽으로 간다. 애굽왕 바로에게 죽임을 당할까 무서워서 눈을 뜨고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긴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를 빠져 나오지만 방황은 계속된다. 바로가 준 재물로 거부가 된다. 그러나 교회생활이 안 되는 그에게는 재물이 문제가 되어 조카 롯을 잃어버린다. 롯은 의인이지만 교회생활을 기다리지 못하고 세상으로 떠남으로 가정이 해체되고 패가망신(敗家亡身)을 한다. 아직 교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아브라함에게는 슬픈 일도 있고 기쁜일도 있는 불안정한 생활이 계속된다. 하나님은 조카에게 배신을 당하고 슬퍼하는 아브라함을 찾아 오셔서 그가 의롭다함으로 구원받은 것을 확증해 주신다. 그러나 그는 이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지 못하여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를 찾아오시고 그에게 교회를 주시는 것이다. 그것이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할례교회이다. 하나님이 교회를 주셨지만 그는 아직도 교회생활에 익숙하지 못함으로 흔들리는 믿음으로 산다. 18장에서 하나님은 또 아브라함을 다시 찾아 오셔서 그에게 두 번이나 임신기한이 차면 아들을 가지게 될 것임을 확인해 주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임신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아직 방황을 한다. 19장에서 소돔이 멸망하고 20장에서는 아비멜렉에게 죽는 것이 무서워서 사라를 빼앗긴다. 그리고 21장에서 드디어 하나님의 약속대로 100살에 이삭을 낳는다. 그러나 이삭이 젖을 떼던 날에 대연을 베풀었는데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함으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 낸다. 그러나 아비멜렉이 되어 가는 일을 보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심을 보고 그의 군대장관 비골과 함께 찾아 와서 머리를 조아려 화친의 맹세를 청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아브라함이 그들의 눈에 강하게 보인 것이다. 그리고 2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고 명령하신다. 번제물은 속죄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다. 단 한사람도 예외없이 모든 학자들이 이 말씀을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친 사실에만 방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는지 아니바치는지를 시험한 것이라고 하며 이삭을 바친 것이 큰 믿음이고 그로 인하여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틀린 말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번제를 드림으로 속죄를 하는지 아니하는지를 시험한 것이다.

아브라함도 최근에 모든 일이 잘되는 가운데 교만해져서 죄를 지었을 것이다. 솔로몬의 말대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없다. 교회는 죄를 지으면 속히 사함을 받는 곳이다. 그래야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번제물로 드릴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서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하신다. 준비하셨던 뒤에 있는 한 숫양을 주셔서 대신 번제를 드리게 하신다. “뒤에 있는 수양은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12절에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에서 내게라는 말은 없다.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이삭을 드린 것을 중시하는 것이다. 16절은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이라고 바로 번역하고 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는 말씀은 지은죄를 용서받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죄를 짓고도 깨닫지 못하고 속죄를 받아야한다는 부담도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며 그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이다.


아브라함은 속죄하는 교회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 일후로는 다시는 방황하는 삶을 살지 않았고 하나님의 친구가 된 것이다.

 

(2:23)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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