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

 

 

본문 : 6:14,15

 

(6: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6: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1, 들어가는 말

 

죄는 마음의 병이요 영혼의 병이다. 병원에서 몸의 병을 신중히 치료하듯이 가정과 교회는 사람의 죄를 신중히 다루고 고쳐 주는 곳이다. 죄가 고침을 받지 못하면 가정도 사랑이 없어 병들고 자녀들이 망하며 교회도 교회가 아닌 세상이 되는 것이다. 병은 바르게 진단이 되어야 하고 정확한 처방이 있어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죄는 회개를 해야 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율법을 주셔서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함으로 죄를 용서해주시고 죄로 말미암아 멀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신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죄인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것은 자신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하나님께 용서받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죄인이 되었을 때에 서로 약점을 공격함으로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해 입음으로 자기의 죄를 공격하는 상대방에게 죄를 감추려고 했던 일은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 가운데 오늘날도 있는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죄를 용서하시는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에는 물론이요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도 죄를 가지고 서로 정죄하고 공격함으로 싸우며 전쟁을 벌이고 있다.

죄인들이 서로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신 용서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사랑을 믿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나의 죄를 사해주신 용서를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하신 용서를 믿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고 세상의 어떤 죄도 용서하지 못할 죄가 없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죄 용서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누구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 간 것이요 이미 하나님이 용서하신 사람의 죄를 자신이 붙들고 용서하지 않음으로 주님이 자신의 죄를 사하신 용서를 믿는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의 사랑을 갉아 먹음으로 점점 예수 믿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괴물과 같은 심령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 율법주의자들의 정체이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상고함으로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보아 더 이상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음으로 가정과 교회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키는 은혜를 받기 원한다.

 

 

2. 용서가 불가능한 죄인

 

죄인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용서하심의 사랑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죄인인 자기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고 정죄하고 고소하며 심판하는 자리에 올라간다. 우리 조상 아담이 죄를 지을 때부터 죄인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서 다른 사람의 죄를 심판하는 것이다. 마귀는 이렇게 속임을 베풀고 사람은 그 속임수에 빠졌다.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러므로 죄인의 특성은 자기 죄를 보지 못하고 남의 죄를 보고 판단하고 정죄하며 그것을 자신이 고치려는 시도를 감히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한다.

 

(19: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예수님은 남의 죄를 잘 보고 자기 죄를 보는 눈이 어두운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책망하셨다.

 

(9: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그리고 죄인이 죄인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것의 무서운 결국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15:14)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그러므로 죄인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혹시 남의 죄를 용서한다고 해도 자신의 죄를 용서받지 못했기 때문에 용서할 자격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용서를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용서를 받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3. 용서하지 못하는 율법주의자

 

자기 죄를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자기의 죄를 보지 못하고 남의 죄만 보이기 때문에 누구의 죄든 용서할 수 없는 자리에 들어 간 것이다. 교회 안에서 자기 죄를 보지 못하고 형제의 죄를 문제 삼아서 비판하는 것에 대하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7: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7: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7: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율법주의자는 외식하는 사람이다. 율법주의자는 마음보다는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율법주의자들은 자녀들에게도 마음에도 없는 행위를 강요함으로 자녀들의 삶을 망치는 무식한 일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주의자들은 용서를 하는 것도 마움에도 없이 겉으로만 하는 외식하는 용서를 한다. 겉으로만 용서하는 것은 용서가 아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의 죄도 하나님께 용서를 받지 못한다.

 

(18: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4. 율법주의자가 되는 이유

 

구원을 받고도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지 못하면 율법주의자가 된다. 죄인은 에수를 믿을 때에 구원을 받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는 것이다. 주를 따르는 제자는 주님을 배우는 것이며 그것은 주님의 거룩함을 배우는 것이다. 거룩하신 주님과 같이 거룩해져야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레위기로 속죄의 제사를 가르쳐 주시고 이렇게 명령하신 것이다.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나님과 같은 거룩함으로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 하나님은 레위기의 속죄를 명하신 것이다. 구원받은 죄인이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 날마다 짓는 죄를 그 때 그 때 씻어서 거룩하게 해야 주를 따라가는 것이다. 죄를 지은 사실은 예수의 피로 씻김을 받고 죄를 짓는 인격은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해져야 거룩하신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다. 그것이 지은 죄는 피로 씻고 고장 난 인격은 말씀으로 씻는 것이다. 그것을 성경은 맑은 물로 씻는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36: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나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주님은 삼년반 동안 자기를 따른 제자들의 죄를 책망하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그래서 안식일을 어겼다고 정죄하는 유대인들에게 당신의 제자들이 죄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12: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12: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그리고 삼년반 동안 말씀으로 그의 제자들을 거룩하게 하신 후에 집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15:4a)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율법주의자가 된 사람들은 주안에 거하는 생활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속죄하지 못하고 속죄하는 거룩함이 없기 때문에 주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고 죄인들과 같이 힘들고 곤고한 생활을 영위한다. 그들은 율법주의자들이 되어 주님 안에 거하지 못하는 것은 말씀으로 깨끗함을 받지 못하여 거룩함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날마다 짓는 죄를 속죄하지 못하고 말씀으로 죽은 행실을 씻어 거룩하게 하지 못하면 주안에 거할수 없는 율법주의자가 된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도 속죄생활을 배우지 못하면 율법주의자가 죄는 것이다.

속죄생활을 하는 사람은 날마다 자기 죄를 보기도 바쁘고 자기가 지은 죄를 씻기도 바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죄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날마다 자기 죄를 용서받는 생활을 살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도 용서한다. 남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죄도 용서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서로 허물과 죄를 용서할 것을 명하신 것이다.

 

(13:12)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사도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서로 죄를 용서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임을 이렇게 말씀한다.

 

(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날마다 속죄생활하는 사람은 주님께 용서받는 사랑으로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다.

 

 

5. 속죄생활을 하지 않는 것


(10: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의 성도들이 불행하게 된 것은 속죄생활을 하라는 명령에 불순종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신약교회를 향하여 속죄생활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발로 밟는 것이며 자기를 거룩하게 한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죄를 씻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속죄생활을 아니하는 것은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고 말씀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중한 형벌을 받을 것을 말씀했다.

 

(10: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이어서 그는 속죄생활을 안하는 것은 주님의 원수가 되는 일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의 유대인들은 수백년동안 속죄생활을 하지 않은 율법주의자들이었기 때문에 주님을 알아 보지도 못하고 미워하고 배척했다.

 

(8:48)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13:26)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13: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13: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13:29)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어린양의 원수가 되어 스스로 멸망길을 찾아 간 것이다. 주님은 살아 생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23: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말씀대로 어린양의 원수를 그들에게 갚으셨다.

 

(10: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10: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으나 속죄생활을 하지 않는 율법주의자들이었다.

 

 

6. 맺는 말

 

우리가 이 세상에 죄인으로 온 것도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과 같이 구원을 받고도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속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했기 때문에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주님을 대적하는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에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과 같이 주님이 용서하신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못함으로 오늘날도 스스로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길을 가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무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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