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보시는 의인과 죄인


하나님이 보시는 의인과 죄인은 날때부터 죄인으로 태어 난 차별이 없는 똑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의인은 구원받은 죄인이고

죄인은 구원을 받지 못한 자연인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죄인은 죄를 지어도 용서받을수 없는 사람이다. 

그이유는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죄 하나라도 용서받을수 없다.  


그러나 의인은 죄를 지어도 용서해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과 같이 간음죄와 살인죄를 지은 흉악한 죄와 파렴치한 죄를 지어도 의인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죄를 씻어 주시는 사랑을 받아서 죄없이 함을 받는 것이다.  

아무리 크고 더러운 죄도 그리스도의 피를 이길 수 없다.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죄를 눈보다도 더 희게 하는 능력이 있다. 



사람이 보는 의인과 죄인


사람이 보는 의인과 죄인의 차이는

죄인은 죄를 지은 사람이고 의인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은 다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안 짓는 사람은 없다.

죄인은 죄인을 지은 죄를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한다. 

자기 죄를 용서 받지 못한 죄인은 다른 죄인의 죄를 용서할 수도 없다. 

그래서 서로 상대방의 죄를 정죄하고 공격함으로 그것을 자기의 의로 삼는다.  

그러므로 죄인은 죄를 짓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죄인이고 들키지 않으면 의로운 사람으로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피차에 보이는 상대의 죄를 자기 기준으로 공격하면서 정죄하고 미워하고 원수를 맺고 원한을 품는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죄를 짓지 않는 자기는 의인인 줄로 착각을 하고 살고 있다. 


율법주의자들이 보는 의인과 죄인


율법주의자들이 보는 의인과 죄인도 사람들이 보는 그것과 같다. 

사람앞에서 죄가 보이지 않으면 의인이고 사람에게 죄가 보이면 죄인이다.

그래서 율법주의자들은 외식을 한다. 

그리고 남의 죄를 정죄함으로 자기를 의인척하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앞에서는 자기의 불의를 감추지 못한다. 

 

가인과 같은 율법주의자는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속죄생활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거절을 당한다. 

속죄를 하지 않은 결과 죄가 문앞에 엎드렸다가 끌고 가기 때문에 또 다른 죄를 짓는다. 

그것이 속죄하는 의인인 그의 아우 아벨을 죽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자손손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서 그의 자녀들을 불행하게 하는 아버지가 된다.


함과 같은 율법주의자는 남의 죄를 보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사람이다. 


장막안의 아버지의 수치를 장막 밖으로까지 가지고 나가서 형들에게 퍼뜨린 것이다. 

그의 말을 들은 두 형인 셈과 야벳은 속죄생활의 은혜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말을 들은 즉시 자기들이 할일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천을 두 귀퉁이를 잡고 뒷걸음질쳐서 아버지의 장막으로 들어 갔다. 

아버지의 수치를 보지 않기 위해서 이었다.  

이와같이 율법주의자는 남의 죄를 퍼드리지만 의인은 남의 허물을 덮어준다. 

왜냐하면 의인은 날마다 속죄생활을 함으로 하나님이 자기 죄를 덮어주시는 은혜를 항상 받고 살기 때문이다. 


결국 함은 그의 막내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게 하는 율법주의자의 징계를 받았다. 

가나안은 함의 막내아들로 팔레스타인에 거하며 오늘날까지도 정처없이 유리하고 죽임을 당하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저주를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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