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죄를 자백하는 것은 번역이 과하게 된 것이다.
자기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주님 앞에 자기의 지은 죄를 단순히 시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이 책망하시는 죄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시켜서 하는 것이고 주님의 허락하심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과 죄를 자백하는 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성령을 거역하는 죄이 빠진 것이다. 
남의 죄를 간섭하는 것도 하나님을 거스리는 악한 죄에 빠진 것이다. 

자기의 죄를 시인하는 것은 그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희생하신 주를 시인하는 것이다. 
죄를 시인하지 않는 것은 죄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는 주님께 용서를 받을 죄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죄를 사하신 주님의 은혜를 필요 없는 것으로 여기며 하나님이 보내신 그 아들과 그의 사역 전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서 그것은 성경 육십육권의 진리가 자기에게는 필요하지 않고 무효하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이다. 

회개가 없는 것은 교회가 아니다. 
회개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곧 하나님의 백성들도 날마다 죄를 짓기 때문이다.
날마다 죄를 짓는 것이 일상인것과 같이 죄를 씻김을 받는 회개는 일상이 된다. 
솔로몬은 이스라엘백성들을 지칭하면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징계를 받지 않는 사람이 없음을 이렇게 말씀했다. 

(왕상 8:46)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원근을 물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죄가 없으면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니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날마다 짓는 죄를 속죄해야 항상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는 생황을 사는 거룩한 사람들에 의해 마귀를 대적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도 고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고 날마다 지은 죄를 사함받지 못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사십년을 방황을 하다가 거기에 다 엎드러져 죽었다.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방황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회개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며 회개가 없는 교회생활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이다. 
그들은 회개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이 없는 교회생활 곧 광야생활읗 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를 다니면서 날마다 회개하지 않고 지은 죄를 속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없는 교회생활을 하면서 교회와 세상의 경계가 없는 생활에 빠져서 세상에서도 자기에게 당한 문제를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날마다 유리하며 방황하는 생활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광야의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은 그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에 버림을 받은 것은 영혼이 아니라 육체이었다. 
그들은 일생동안 육체의 생활을 하나님이 없는 교회생활을 하면서 교회와 상관이 없는 세상살이를 하다가 죽음으로 일생을 버림받은 것이다. 

그들이 회개하기를 싫어하고 죄를 가지고 하나님앞에 나아 오지 않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은혜를 저버리고
우상을 만들고  하루에 삼천명이 죽임을 당했으며 미디안여자들과 간음을 하고 바알브올에게 절함으로 하루에 일만사천명이 죽임을 당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그들이 우상을 섬긴 것은 하나님앞에서 죄용서받는 규례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회개가 없는 교회는 예배가 우상에게 절함같고 찬송도 인위적이고 사람을 위로하는 노래로 바꾸어 부르고 기도도 자기의 욕심과 하고 싶은 정욕을 채워 달라고 하는 이방인들의 기도가 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듣기를 싫어하고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 회개가 없어서 하나님이 받으실수 없는 가인의 제사를 드리는 종교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 있는 요한 일서의 말씀을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맞게 바군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시인하지 아니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며 모든 불의를 깨끗하게 하지 아니하실터이요"

구원을 받고도 하나님의 속죄를 해주시는 사랑을 거절한 사람에게 임하는 진노는 광야의 사십년의 진노에서 더 지나쳐 지나간 수천년동안 쉬지 않고 임했음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성령이 책망하실 때에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앞에 나아와 자기가 죄은 죄를 시인하고 용서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강한 죄첵(Deep Conviction)이 우리에게 임하도록 날마다 간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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