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아, 예.."
겸연쩍게 웃는 목사님에게
"아니 장로가 할렐루야를 하면 목사님이 아멘을 하던지 할렐루야를 하던지 해야지 '아, 예..'가 뭡니까?"
"아, 예.."
"예배당에서 축구응원한다고 '대~한민국'하다가 이제는 할렐루야도 잊어버렸는가 보지요?"
"......"

나라전체가 축구공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월드컵에 열광을 하는 것도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 지만 그보다 더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교회가 그와 같은 세상즐거움에 편승해서 일구어 내는 여러 가지 악하고 추한 모습들이다.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당, 저들이 건축을 하면서 강단에서 그렇게 수없이 표방했던 하나님의 말씀인'내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야할 그곳에서 빨간 티샤스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세밀히 살피고 기도하여야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축구선수들의 동작 하나 하나에 열광을 하면서 주님이 주신 기쁨을 기뻐하고 주님을 잘 따르지 못하는 것을 애통하면서 기도해야할 예배당에서 운동경기에 이기고 지는 것으로 탄식하고 울기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주님이 이땅에 그의 피로 사신 교회가 세워진지 이천년이 지난지금 교회안에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일어나고 있다. 어떤 목사는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대신 축구이야기를 하는가하면, 어떤 정신나간 장로는 축구경기를 이기게 해달라고 대중기도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새벽기도에 안나오는 교인들을 모아서 새벽에 축구를 이기게 해달라고 응원을 하고 어떤 교회는 아예 철야를 하면서 여러경기를 구경하기도 한다고 한다. 멀리갈 것도 없이 1980년대에 각교회마다 철야기도를 밤을 새워가면서 눈물로 하던 때만을 비교해도 이는 크게 하나님앞에 방자히 행하고 있는 것임을 우리는 알수가 있다. 어떤 목사라는 사람은 결승에 올라간다고 예언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어떤 주술가는 4강에 올라간다고 예언을 했다고도 한다. 이쯤되면 그런 목사나 주술가나 다를바가 무엇인가? 주술가가 무엇인가 미친사람아닌가? 귀신들린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물론 그 목사의 말에 응원단의 이름을 붉은 악마에서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항변을 할지 모른다. 그런 것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아니한가 ? 느브갓네살도 술사들이 때가 변하기를 기다리고 조건부적인 예언을 하는 것에 진노하고 있지 아니한가?
"너희가 만일 이 꿈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를 처치할 법이 오직 하나이니 이는 너희가 거짓말과 망령된 말을 내 앞에서 꾸며 말하여 때가 변하기를 기다리려 함이니라 이제 그 꿈을 내게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해석도 보일 줄을 내가 알리라"(단 2:9)

이땅에 복음에 깨어 있는 사람이 그리 없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교회의 현실에 깨어 있고 자기의 영혼에 깨어 있는자가 그렇게 없다는 말인가?
누가 소경인가 누가 귀먹어리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가?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소경이겠느냐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쁨으로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 하셨으나 이 백성이 도적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 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장래사를 삼가 듣겠느냐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백성들이 그 길로 행치 아니하며 그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으로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매 그 사방으로 불붙듯 하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사 42:18-25)

에스라의 시대와 같이 방백들과 두목들이 이 죄에 더 으뜸이 되는 일들을 우리가 지금 보고 있지 아니한가?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지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의 피를 흘린 이 땅의 교회에 이같이 합당치 않은 일들을 벌이고도 영적인 문둥병에 걸려 영적인 아픔도 없고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로마병정들과 같이 주님의 존전에서 주님의 피로사신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주님의 속옷을 축구공으로 제비뽑는 듯한 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볼때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같은 분노를 금할수 없음은 어인 일일까?

언제 이렇게 이 땅의 교회가 축구로 세상과 하나가 되었으며 응원으로 세상과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구하는 교회가 되었다는 말인가?

이 모든 것들중에 더 참기가 어려운 것은 응원단 이름을 붉은 악마로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아서 탈락을 했다고 강단에서 설교하는 소아병적인 사람들의 모습이다.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인가?
그렇다면 월드컵축구에서 여러번 우승한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는 응원단의 이름이 '하얀천사'라도 된다는 말인가?

세상은 힘의 논리가 지배되는 곳이다. 실력이 없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은 믿음도 아니다. 믿음이 있으면 실력도 주시는 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다. 대적하는 자들과 경쟁자들을 이길수 있는 지혜와 총명도 주시는 하나님이시지 멍청한 사람이 교회만 다닌다고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자녀들이나 자신의 이름을 잘짓고 바꾸었기 대문에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것은 이름이 운명을 좌우한다는 미신을 믿는 작명소에서나 하는 말이다. 교회가 교회사중에 가장 타락 했을 때에 군대를 일으켜 성지를 회복한다고 '십자군'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그결국은 어떠 했는가 지리멸렬하는 패배로 이어지지 아니하였는가? 앞서 말한 사람들처럼 이름이 중요하다면 십자군이라는 이름만 가지고도 승승장구해야 했을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런분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세상사람들이 응원단의 이름을 무엇이라 짓든지 말할 것이 못된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것임을 성경은 밝히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단지 저들은 저들의 길을 가는 것이다. 세상은 세상길로 가는 것이다. 저들은 그렇게 정욕을 좇아서 멸망길로 가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를 세우신 것이 세상사람들의 일에 참견이나 하라고 하신 것인가 다만 복음을 전케 하신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죄에 빠진 저들을 구원해내라는 것이 하나님의 지상명령이 아닌가 말이다. 세상이 이름을 붉은 악마로 하든지 푸른 악마로 하든지 검은 악마로 하든지 붉은 사탄으로 하든지 그것은 세상이고 결국 세상은 세상이라는 말이다. 교회는 저들의 이름이나 명칭에 일희 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을 죄와 저주로 부터 구원을 해주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기 위해 이땅에 오늘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밖에 나가서 전도해 보았는가? 불신자들이 붉은 악마의 이름을 바꾸라는 교회에 얼마나 반감을 가지고 어떤이는 입에 거품을 물고 전도자를 대적하는지 알기나 알고 있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지 않아도 처처에 가정마다 직장마다 사회속에서의 교인들의 부도덕한 일들과 목회자들의 부정한 일들을 들어서 손가락질을 받고 비난을 받는 것이 전도의 현장인이다. 개중에는 감정적인 것도 있고 사실이 아닌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저들이 꾸며서 말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불평임을 확인을 할수 있을 진대 세상이 응원단의 이름을 어떻게 짓는 아주 사소한 일에 교회가 상관해서 그로인해 복음이 가로막히는 장애물을 제공할껏 까지는 없지 않는가 하는 말이다.  

어떤이들은 항변을 할 것이다 그것이 어찌 남의 이름이냐고? 교회도 응원을 해야 하는데 남의 이름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항변을 할 것이다. 그런 논리대로 라면  우리가 사는 지명들도 불교이름이나 용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다 바꾸어야 할 것이다. '구룡산'도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 왜? 나라가 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룡동' '쌍룡동' '불당동'이나 '보문동' '용봉동' '보은' '불국사' 등등 불교냄새가 나고 귀신냄새가 나는 이름들은 다 바꾸지 않으면 큰일 날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모든 지명들중에 귀신적이고 마귀적인 것들 미신적이고 불교적인 것들을 모조리 바꾸자고 해야 할것이다. 예수를 믿는 이들이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언제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과 하나가 되었다는 말인가 말이다? 언제 세상과 그렇게도 일치감을 느낄 정도로 세상과 가까워졌다는 말인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는데 어느새 이 세대를 본받는 교회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는 말씀이나 '위엣것을 찾으라'는 말씀이 이제는 무색하게 되지 않았는가? 오랜세월동안 교회가 세상을 가까이한 결과가 이것이다.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이제는 세상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세상의 눈치를 보고 있는 교회가 된 것은 그 이전에 교인들의 눈치를 보는 일들이 교회안에서 있었으며 교인들중에 들어와 있는 육신적이요 세상적인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이제는 세상의 눈치까지 보다가 급기야는 세상일에 콩놔라 팥놔라 간섭까지 하는 교회가 되었다는 말인가?

많은 교인들이, 목사라는 사람들도 회개를 싫어하고 노골적으로 전도를 대적하고 훼방하는 일들이 교회안에서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눈치를 보면서 세상사람들에게 아름답게 보여지는 교회가 되고 싶어하고 이렇게 세상쪽에 서 있는 교회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인 것이다. 세상에서 존재하고 세상의 환심을 사고 세상에서 살아남고 세상에서 대접을 받으며 세상과 일치되는 교회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이 볼때에 종교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전도는 미련한 것이며 종교인중에 종교인인 유대인들에게와 같이 꺼리끼는 것이다. 회개를 싫어하는 것도 선한 행실과 착한 행실로 교회를 아름답게 보이게 해야하는데 죄의 사실들을 토해내면 세상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준다고 회개를 못하게 하는 일들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고 주님의 보혈을 쓸데 없는 것으로 만드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성경에서 말하는 착한 행실은 이 세상의 도덕적인 행위가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성품으로부터 나오는 행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전도보다는 무슨 표적이나 나타나서 교회가 부흥이 되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가 높임을 받기 보다는 교회가  그리고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이 높임을 받고 세상죄인들로부터 대접을 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회는 가장 교회다워야 세상사람들에게도 칭송을 받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고 세상에 가까이 갈수록 세상은 더 완악하고 교만해지며 대적하는 일들이 성경에도 무수히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실은 교회안에 있는 붉은 악마를 잡아 내야 한다. 회개를 반대하고 전도를 훼방하는 붉은 악마가 교회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고 교리를 더럽히며 노골적인 죄로 하나님의 이름을 동네중에 이세상에서 더럽히고 있는자들, 주님이 그의 피로 정결케 하신 그의 몸된 교회를 죄로 더럽히는 이들, 피로 값주고 산 영혼들을 죄를 이기지 못하게 함으로 도탄에 빠지게 하는 이들, 스스로 말을 바꾸고 말과 행실이 맞지 않는 인격밖에 안되는 이들, 교회헌법을 어기는데에 앞장서고 불의를 행하기 위해 무리를 지어 행하고 의인들을 죽이고 동역자들을 괴롭히는 그래서 주님이 피로사신 교회를 그윽히 허는 자들이 교회안에 있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자기의 사욕거리로 바꾸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교회안에서 온갖불의를 일삼는 자들이 교회안에 있다. 이제는 그들을 색출해 내야 한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설교하고 목회하는 자들을 교회를 이로 삼으려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목회자가 빈교회를 향하여 헐떡거리며 탐욕으로 삼킬듯이 악을 행하는 자들을 찾아내야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앞에 회개하여 돌이키면 그들에게 다행한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버림과 불행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회로 교회답게 하지 못하고 교회로 세상을 따라가게 하는 하나님의 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잡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더 이상 그와같은 자들을 조정하는 마귀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가 속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제 교회는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세상의 빛으로 소금으로 세상을 이기고 정복하는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세상을 함께해야할 대상으로서의 세상이 아니라 정복해야할 대상 이기고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다시 설정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거룩함으로 자기를 지키고 정결케하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거룩한 부흥을 구하고 간구해야 한다.
우리가 하려고 애를 써도 그와같은 일이 호락호락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님이 은혜를 주셔야 한다 그러므로 은혜를 주시도록 간구해야 한다. 이제부터 그렇게 살아야 한다. '너희는 그들중에 나와 따로 있고'라는 하나님 우리아버지의 말씀과 같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사는 은혜가 우리모두에게 각사람에게 임해야 한다.

주여 이 땅의 교회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은혜를 주옵소서 아멘 아멘.

(*.49.38.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