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하는 감사

 

감사의 계절이다.

교회마다 추수감사절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말로 다할수 없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 하는 것이요 은혜를 아는 사람이 하는 것이며 그은혜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감사는 잘하면 좋은 것이지만 잘못하면 역효과를 보기도 한다.

감사도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를 해야할 때가 있는 것이다.

억지로하는 감사나 부득이한 감사를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는다.

인색함으로 하는 감사도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이를 사랑하신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어느교회에서 이번감사주일에는 서리집사이상은 10만원이상씩 감사헌금을 하라고 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물론 이와같은 일은 요즈음 비단 어느 한정된 교회만의 일이 아니다.

어떤 교회는 감사헌금의 목표액을 제시하면서 지난해보다 몇%씩을 증액하여 드릴 것을 종용하기도 한다.

공공연히 추수감사헌금을 할 것을 종용하기도 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강제성을 띠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와같은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하는 것이며 교인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것이지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감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와같은 일이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즐겁게 드려야할 감사를 억지로 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죄를 짓게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또 그와같은 강요와 압력에 노출이 된 사람들은 그다음부터는 무슨 헌금을 해도 사람의 눈치를 보고 인색함으로 하고 해야할만큼만 하고 자기의 체면과 교회에서의 위치 때문에 헌금을 하는 악한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추수감사헌금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이땅에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에 잘못된 부흥사들이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교인들의 헌금을 쥐어짜는 온갖술수와 속임수를 통해서 교인들이 하나님께 순수함과 감사함으로 헌금을 할수 있는 믿음을 짓밟아 놓은지가 오래 되었다. 어떤 이는 무리하게 헌금을 작정을 시키면서 손을 들게 하거나 일어서게 하는등 하나님앞에서가 아니라 사람들앞에서 헌금을 하도록 악한짓을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이는 개인적으로 교인들을 불러 헌금을 강요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던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은 거지도 아니고 가난뱅이도 아니다.

하나님은 깡패도 아니고 강도도 아니다.

그러나 그와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치 거지인양 강도인양 교인들에게 빼앗긴것같은 감정을 심어주는 악한 일을 한 것이다.

 

하나님에게나 사람에게나 감사는 받은것만큼 하는 것이다.

받은 사랑에 보답함으로 하는 것이 감사이다.

그러므로 감사는 강제성을 띠면 절대로 감사가 아닌 것이다.

중심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감사요 감사예물인 것이다.

 

아브라함이 창세기 18장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대접한 것을 통해서 감사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배워야한다.

 

먼저 감사는 하나님을 알아보는 사람만이 할수 있는 것이다.

감사할 상대인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감사를 할 수가 없다.

교회에서나 길에서나 집에서나 직장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알아보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감사를 할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감사는 해야할 때가 있다. 그리고 감사할수 있는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아브라함을 지나쳐 가려고 했던것과 같이 감사할수 있는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언제나 하나님이 감사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지나쳐 가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감사를 받으시도록 간구해야만 감사를 드릴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감사는 받으시는 하나님이 허락하여야만 드릴수 있는 것이다. 사람을 대접하는 것도 상대방의 허락을 받아야만 할수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대로 드릴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아브라함이 간청을 해도 하나님이 지나쳐 가시면 감사를 할수도 대접을 할수도 없었던 것이 아브라함의 경우이었다. 그와같이 하나님이 감사를 드릴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으시면 감사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허락하심을 받았어도 감사는 급히 드려야 하는 것이다. 즉각적인 감사가 필요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급히 들어가 사라에게 떡을 만들게 하고 기름지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하나님을 대접했다.

그리고 감사는 하나님을 쾌활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임을 아브라함은 알았다. 사람에게하는 감사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기분나쁘게 하는 감사는 차라리 아니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사는 믿음을 자라게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감사를 했을 때에 하나님은 그가 약속하신 아들의 약속을 다시금 확신을 시켜 주신다. 기한에 돌아오면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신다.

주께 받은 은혜에 감사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신다. 그러므로 믿음이 자라고 성장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감사를 하는 것이다. 받은바 은혜에 감사를 할 때에 하나님은 믿음을 더하여 주시고 은혜를 주시며 그은혜에 또 감사를 할 때에 하나님은 은혜와 믿음을 더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자라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아픔은 감사를 할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감사를 아니하거나 감사를 할줄을 모르거나 감사할 기회를 놓치거나 아니면 억지로 감사를 하는 것 곧 사람이 시켜서 하는 감사와 인색함이나 부득이 함으로 하는 감사를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것이다.

만일 당신의 믿음이 잘 자라지 않는다면 감사를 소홀히하거나 잘못한 것을 기억해 내야하고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감사하는 것만큼 은혜를 아는 것이요 받은바 은혜를 믿음으로 받은 사람만이 감사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중대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감사를 해도 안되고 잘못된 감사를 시키는 것은 더더욱 악한 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를 사람이 시켜서 해도 안되고 사람의 강요에 의해서 해도 안되고 사람의 눈치 때문에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그의 주신바 은혜를 짓밟는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알아보고 그에게 간천하여 감사를 받으시기를 허락하심을 받고 급히 감사를 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감사를 하고 감사하는것만큼 주님이 믿음을 더하여 주시는 축복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한다.

오늘날 교회안에 잘못된 인위적인 감사들이 다 자취를 감추고 받은바 은혜에 순수한 믿음으로 감사하는 은혜가 다시금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멘.

(*.8.21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