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시험을 못이기는 교회

 

“교회가 교회가 아닙니다.”

“목사가 목사가 아니예요.”

 

꼭 일년전에 지방에 집회를 갔을 때에 기차역에서 교회까지 나를 태워가시던 어느 교회목사님의 절규와같은 말이다. 사실 이런 말을 듣게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이와같은 말을 우리는 들어야만 했다. 왜 이와같은 말을 해야하고 들어야하는가? 주님의 일군은 신학교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일군은 주님이 만드시는 것이다. 주님이 교회를 통해서 그의 신실한 일군들을 통해서 그들을 본받음으로 주님을 본받게하시는 영적인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목회를 하든 선교를 하든 교회를 개척을 하든 교회안에서 누구를 가르치는 일을 하든 아니면 길에서 전도를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이 그사람을 쓰시는가의 문제이다. 주님이 쓰시지 않는 사람이 주님의 일을 할 수 없다. 주님이 부르시지 않은 사람, 주님이 양육하지 않은 사람, 주님이 세우시지 않은 사람이 주님의 일군으로 쓰임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사람이 목사라도 그것은 안되는 일이요 신학을하고 전도사가 되고 박사학위를 받아도 주님이 쓰시는 사람과는 병개의 문제인 것이다. 물론 그것이 사회적이고 통상적인 범주내에서 어느정도 안전장치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완전한 안전장치는 안되는 것이며 완전한 장치가 된다고 아무도 주장하거나 확신시킬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는 무엇인가. 주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는 주님이 당하신 세가지 시험을 이겼느냐의 문제이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중에 이시험조차 받지도 통과하지도 못하고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세가지 시험을 확실하게 통과한 사람을 주님이 쓰시는 것이다. 주님도 이땅에 계실 때에 시험을 받으시고 이기심으로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주님의 일군들에게 본을 보여 주신 것이다.

 

주님이 당하신 이세가지 시험은 주의 일을 하는 모든 종들이 넘어야할 시험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지나간 모든 세대에 이시험을 이기지 못하여 쓰임받지 못하고 주께 버림을 받은 일군들이 많다는 것이다.

 

먼저 첫 번쩨 시험이 무엇인가?

첫 번째 당하신 시험은 사역의 동기의 시험이다.

주님의 일을 하는 동기가 돈이되고 먹을 것이 되어서는 아니된다는 말이다.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마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주님이 당하신 첫 번째의 시험은 식생활의 문제이다. 식생활의 문제 곧 “무엇을 먹고살것인가?”의 시험은 사역자들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시험이다. 이시험을 이기지 못하면 주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다. 신학을 하고 아니했든 신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든 아버지가 목사이며 몇 대째 목사의 집안에서 자랐든이 문제가 되는 것이아니다. 내가 주께 부름을 받은 소명이 막고사는 문제속에 파묻히느냐 아니면 먹고 사는 문제를 뛰어 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어떤이들은 정년퇴직을 하고 할 일이 없이 신학을 하여 목사가 되는 일도 있다. 어떤이는 하던 사엄이 망하였거나 직장에서 정리해고된 후에 살길을 찾기 위해 목사가 되어 교회를 개척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이는 노후의 보장으로 기도원원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이는 남편이 죽고 과부가 되어 힘든일은 하지 못하겠고 하여 신학교를 가서 전도사가 되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들의 외형적인 이런 일들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아니되겠지만 그들중에는 상당수가 소명이 없이 먹고살기 위한 생계의 수단으로서 사역자의 길로 들어서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멸시하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요 발람의 아들 발락의 길을 좇는 자들이어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어떤 괴악한 사람들은 임의로 신학교를 차려 놓고 먹고 살기 위해 신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아무나 붙잡고 당신이 사명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어리석고 황당한 일을 벌이는 자들이 한국교회안에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남편죽은 과부를 신학을 시키는 사람들이나 교회를 다닌지 몇 년안되는 사람을 꼬드겨서 신학교에 들여 보내는 사람들 그러다 못해 목사직을 돈을 받고 거래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아는 목사중에서 젊은 날에 무위도식하는 것을 보지 못한 어느 기도원 원장이 신학교 원서를 가지고 강요하다시피하여 신학교를 보내어 목사가 된 사람도 있다. 물론 그의 목회가 목회답지 못한 것은 뻔한 결과요 그결과를 안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주님을 기쁘시게하는 목회가 오히려 자녀들에게 피해의식을 심어주고 자식들에게조차도 인정받지 못하고 거추장스러운 교회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주님의 일이 아닐 것이다. 주님의 일에는 열매가 있고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 일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님안에 거하는 생활을 수반하는 것이요 기도하는대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는 목회여야하는 것이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주님안에 거하는 생활도 없고 기도응답도 없는 도우심도 없는 목회는 열매도 없고 아버지께 영광이 되지도 못하고 주의 제자가 되지도 못한 것이다.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자들에게는 천부께서 입을 것과 먹을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했는데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을 가르치는 주의 일군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해결이 안된다면 그것은 그가 주의 일군이 아니든지 아니면 주님의 일군으로 양욱받지 못하고 자라지 못하였든지 아니면 주의 일을 불순종하고 잘못하고 있든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교회는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분리된 죄인들이 주주가운데 살고 있을 때에 그죄인들을 구원함으로 죄의 결과로 찾아온 저주를 해결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땀을 흘려야 먹고사는 인생의 저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와같은 믿음을 가르치는 교회가 재정난에 허덕이고 주의 종들이 기본생활이 안된다는 것은 백성들이 교회가 믿음에서 크게 빗나간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볼 때에 백성들의 믿음이 약하여지면 레위인들이 먹고 살길이 막혀 하나님의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전을 떠나 돈을 벌러 간 일이 일어난다. 오늘날도 이와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은 우리가 보고 듣는 바이다.

 

그럼에도 믿음은 개인적이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가운데에서도 엘리야는 그릿시냇가에서 까마귀가 아침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가져다가 먹게하였으며 사르밧과부에게 가서 지면에 다시 비가 내릴 때까지 여러날을 먹게 하셨다.

 

나는 91년에 17년동안 다니던 직장을 목회자세미나를 위해서 그만두었다. 그후로 주님이 개인적인 소용이면 그소용대로 주의 일에 필요한 것이면 그필요한대로 다 풍족하게 채워 주셨다. 누구에게 손을 벌린 적도 없으며 돈을 벌거나 얻기 위해 머리를 슨적도 없고 마음을 기울인적도 없으며 흔히 하는 헌금강요를 하거나 교인들을 협박한 적도 없으며 오직 믿음으로 구한 일에 하나님이 영광가운데서 쓸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셨다. 그리고 먹을 것과 입을 것 나와 나의 식구들이 쓰는 비용 곧 개인적인 소용에는 사람에게 말한 적도 없고 기도한적도 없고 염려하거나 근심을 한적이 단 한번도 없이 살았다. 그러나 부족함이 없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나는 믿었으며 하나님은 그의 말씀대로 신실하게 그렇게 하셨다.

 

주님이 두 번째 당하신 시험은 사역의 방법의 시험이다.

그것은 오히려 주님을 시험하는 악한 일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시험한다. 이는 악한것중에 악한 것이다.

 

(마 4: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마 4: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주님의 일은 주님이 하시는 것이요 주님의 때에 주님의 능력과 권능으로 주님의 방법으로 하는 것이지 세상의 방법이나 세상수단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일은 하나님중심으로 하는 것이지 사람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시험을 이기지 못하면 여러 가지 사람의 유혹에 빠지고 인위적인 수단과 방법을 구하고 그렇게 주의 일을 함으로 영혼들을 죽게하고 파멸가운데로 몰아가며 교회는 해도 목회는 할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신은 힘쓰고 애를 쓰나 주님은 손을 놓고 계시는 결과가 되고만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목회의 수단과 방법으로 채용하는 악한 일을 하였으며 지금도 그일이 얼마나 악한 일이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인지 알지 못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 전도는 교회를 부흥시키고 교인을 늘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 전도는 나같은 죄인을 죄악에서 구원해주신 놀라운 은혜를 받고 나와같이 죄에 매여 저주가운데 살며 심판을 받기로 작정된 흑암의 삶을 사는 죄인들에게 이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전도가 목회자의 교인욕심을 채우는 수단이 되어서도 아니되며 교회욕심을 채우는 방법이 되어서도 아니되는 것이다. 내가 주님의 쓰시는 종이 되고 주님의 도구가 되어야하는데 전도를 도구로하여 자기가 주체가 되어 목회를 하는 것은 우리의 주와 왕이 되신 주님을 멸시하는 일이다. 주님은 전도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먼저 나를 그의 기뻐하시는 종으로 삼고자 하신다. 그리고 나를 기쁘게 쓰심으로 열매를 맺는 것을 기뻐하시는 주님이시다. 주님의 일에 주객이 전도가 되어 내가 주인이 되고 내가 전도를 이방법 저방법 알아보고 전도를 교회를 크게하는 방법과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이와같이 악한 일이다.

한국교회가 신학생을 다량으로 배출하고 교회개척이 활발해지면서 또 도시개발과 맞물려서 전도를 하려하는 이들로 예수전도협회의 세미나에 많은 목사들이 참여하는 일들이 일어났었다. 그들은 전도를 하기 위해 전도도 예수전도협회도 이용을 하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전도를 가르치기 보다는 그들이 먼저 하나님의 일군으로 준비되는 것이 급한 것임을 가르치시고 회개와 죄의 자백을 통한 거룩함의 회복을 일깨워 주셨다. 어떤이들은 이진리를 굳게 잡아 놓치지 않고 주님과함께 사는 것을 배운이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자기들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리를 떠나 하나님의 일을 자기 개인의 경영의 방법으로 하려는 어리석은 시험에 빠져 들어 갔다.

이와같은 읻르은 말로는 교회를 부흥시키고 주의 일을 잘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하나님의 교회를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하나님까지도 자기들의 목회욕구를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을 하는 무서운자리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순종해야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는 않고 공부꺼리로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도구로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 신학을 도구로 써먹는 사람들도 있다. 성경공부를 도구로 쓰는 이들, 말씀을 가지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킴으로 교인들을 혹하게 하는 사람들, 주의 신실한 제자를 만들어 주지 못하면서 제자훈련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것으로 다른 교인들을 자기 교회로 불러 들여 대형교회를 하는 이들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사람들이다. 방언을 가지고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 은사를 가지고 도구로 이용을 해먹는 사람들, 교인들을 쓰러 뜨림으로 자기가 무슨 능력이 있는 것처럼 교인들에게 보이려는 행태들, 그리고 기도해서 병자 하나고치면 무슨 복권에 당첨이나 되듯이 교회가 부흥할것이라고 요행을 바라는 이들, 귀신들린 사람이 교회에 나오면 복덩어리가 들어 왔다고 그를 고치면 교회가 당장에 부흥될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그 귀신 들린자에게 매달리다가 그사람이 죽어서 황당한 일을 당한 사람도 있다. 땅을 사서 교회부터 빚을 내어 짓고 교회로 교인들이 몰려 오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은 그리스도우ㅢ 복음의 능력을 예배당건물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악한 일이다. 이와같은 이들이 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들이다.

심지어는 전도를 한다고 하여 길에서 사탕을 나누어 주고 휴지를 나누어 주며 이쑤시개를 나누어 주는 이들, 아예 교회에서 휴지를 다량으로 구매하여 선심용으로 뿌리는 일들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다. 년전에 골방에서 주님이 그와같은 일을 지적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얘 어떤 이들이 복음이 아니라 선심을 쓰듯이 휴지를 나누어 주는데 나의 복음과 나의 사랑이 휴지만도 못하고 이쑤시개만도 못하냐?” 말씀을 전할 때에 이말을 했더니 듣는 이가운데 어떤 권사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울은적이 있다. 나중에 그가 그와같이 전도라고 했었다며 마귀에게 속은 것이 너무나 분하고 억울하고 주님께 아픔을 드린 것이 나무나 아파서 울었다고 한다.

마귀가 주님을 성전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뛰어 내려도 천사가 발을 돌에 부딪히지 않게하는 기적이 일어나면 일을 하는 것이 쉬울것이라고 유혹을 했던것과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일을 쉽게하는 방법을 찾아서 많은 이들이 헤메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쉽게 하는 길을 찾는 것은 악한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쉽게 쓰시도록 나를 준비하고 나를 드리는 헌신하는 일을 구하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시험은 사역의 결과이다. 사역의 목적이라고도 할수 있다.

사역의 목적이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다.

주의 일을 함으로 돈을 벌고 부를 쌓는 것이나 남들의 위에서 요동하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자하는 것이 사역의 목적이 되는 사람들은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오직 그만을 섬기는 자가 아니라 마귀에게 절하고 굴복된 마귀에게 경배하는 자요 마귀를 섬기는 자들이다.

마귀에게 절한다는 것은 마귀가 가르치고 제시한 세상의 물질가치관에 굴복이 된 사람을 말하는 것이요 마귀가 정해 놓은 그물질가치관과 세속의 가치관을 따라 사는 것은 마귀를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영적인 가치관으로만 섬길수 있기 때문이다.

 

(마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마 4: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 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어떤 이는 가난한 나라에가서 선교생활을 하면서 본국의 교회들이 부쳐준 선교비를 착복하여 분당에 빌딩을 샀다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는 오랜 부흥사생활에서 돈을 모으고 물질을 사랑하는 가치관에 빠져서 은퇴를 하면서 수십억을 교회에 요구하여 받아갔다는데 교회를 개척했을 때와 은퇴할 때의 재물의 가치가 늘어난 것을 토대로 하여 퇴직금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는 세상적인 가치관으로부터 온 것이지 영적인 가치관으로부터 온것이아니다. 그사람은 미국에가서 자녀들과 잘 살고 있다고 했다. 어떤이는 은퇴를 하기전에도 자녀들을 위하여 미국에 슈퍼마켓을 사서 노후생활을 준비했다는 사람도 있다. 어떤 교회에서 집회를 할 때에 은퇴를 몇 년을 앞두고 있는 담임목사가 나에게 직접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나는 그동안 베풀고만 살았는데 이제 아무것도 없이 은퇴를 하려니까 젊은 목사들 까지도 나를 업신여깁니다. 앞으로 몇 년간 나도 부지런히 돈을 모을 겁니다.” 그런가하면 적지 않은 목사들이 은퇴후에 노후보장을 위해 교회돈으로 기도원을 짓고 들어가 앉아 있거나 아니면 능력도 안되는 자기자식을 후임으로 앉히기 위해 온갖 악한 일을 다저지르며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담임목사때에 과분한 대접을 받다가 한순간에 은퇴해서 수입이 현격히 줄어진 삶을 살려니 그것이 고통이고 막막하여 그런짓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육신의 생활이 목표이며 늙은이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교회를 이용하고 하나님을 이용하는 마귀적이고 아주 악한 일이다. 그와같은 일은 세상에서도 없는 일이고 세상에서도 용납이 안되는 일인데 교회안에서 은혜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다. 부흥회를 하면서 돈을 긁어가는 부흥사들이나 목회를 해서 개인재산을 축적한 이들이 다 한가지로 마귀에게 절한 사람들이다. 마귀를 섬긴 사람들이다. 은퇴를 하고도 자리에 돈에 싸움에 연루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귀에게 절을 한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교회성장이라는 이름하여 교회를 크게하려는 것도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임에 틀림이 없는 것은 하나님은 한 영혼이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신다. 어느교회가 큰교회가 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남의 교회교인들까지 탐욕적으로 끌어와서 자기교회를 크게하여 대형교회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세상가치에 빠진 결과인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교회를 크게 해주겠다는 마귀의 속임수에 빠져 그의 가치관에 예속이 되어 그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는 일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영적인 교회이지 대형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가? 그렇다고 작은 교회가 영적인 교회는 아닌 것이다. 내말은 크냐 작으냐가 문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영적이냐 육적이며 세상적이냐가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대형교회를 추구하지 않고 영적인 교회를 추구했는데 교회가 커진다면 문제가 없으나 작은 교회인데도 하나님의 나라는 안중에도 없고 교회만을 크게하려는 이들은 잘못된 이들이라는 말이다.

그결과 교회안에 생명도 없는 교인들로 가득히 채우는 일외에 무슨 일이 유익하겠는가? 지금 당신이 있는 교회안에 마귀와 싸워서 이길수 있는 믿음 곧 영적인 전력을 갖춘 교인이 몇이나 되는가? 이는 참으로 무서운 질문이 아닐수 없다.

 

목사라는 직분을 이용하여 저질러지는 많은 악한 일들 횡령과 간음과 온갖술수와 속임수와 시기와 쟁투 그리고 당을 짓는 일들이 다 마귀에게 절하는 어리석은 짓들이다.

 

높아지려고 하고 높임을 받으려고 하는 일들과 사람들앞에 유명해지기를 원하는 것들이 다 마귀에게 절하는 세속적인 가치관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노회장이다 총회장이다 무슨 선교단체나 기독교단체의 장을 하려고 선거운동을 하고 돈을 쓰고 쓴돈을 회수하는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주님도 크고자하는 자는 작은 자가 되라고 섬김을 받고자 하는 자는 남을 섬기는 자가 되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5-28)

 

인도에 갔더니 그가난한 나라에서 총회장을 하기 위해 선거운동으로 4억을 쓴다고 한다. 그리고 총회장이 되어서는 그이상의 돈을 다시 회수한다고 한다. 감독을 하려고 하고 총감독을 하려고 주님이 피로 값주고 산 교회 순교자들이 피흘려지킨 교회를 어지럽히고 혼란가운데 빠지게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와같은 사람들은 세상 가치관 곧 마귀의 가치관에 굴복된 사람들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라 마귀를 섬기는 사람들이다.

우리중에 함께 다니던 사람들중에 이제는 함께 하지 못하는 이들은 다른 것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주님의 이세가지 시험은 주님을 사랑하여 주의 길을 가고자 하는 주님의 일군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마귀가 날마다 주고 있는 시험이다. 이시험을 이긴 사람들이 있어 주님을 섬기는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주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을 남달리 사랑하여 주님을 섬기는 길로 가고자 하여 길을 출발하였으나 중도에 세상가치관들이 들어와서 주님을 섬기기보다는 마귀를 섬기고 마귀의 육적이고 세상적인 가치관에 굴복이 되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주변에 눈만 돌리면 보일정도로 많이 있다. 누구든지 붙잡고 이와같은 사실들을 한두가지 들어보라고 하면 불신자들가운데서도 말을 하지 못할 사람은 한사람도 없이 말을 할정도로 교회가 악해지고 교회의 일군들이 악해진 것이 오늘날의 영적인 현실이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아 구원함을 얻고 남은 여생 주의 일을 하다가 주님을 기쁘시게하는 삶을 살아야할 사람들이다. 아무쪼록 주님이 가신 길과 같이 주님이 시험을 당하시고 이기신 것과 같이 이모든 시험에서 날마다 이김으로 영적이고 충성된 사역자가 되어 이전에 우리보다 먼저간 믿음의 선배들과 같은 길을 감으로 주님을 기쁘시게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군이 되은 은혜를 받자.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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