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은 그의 아내에게 여자(이솨)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그러나 죄를 짓고 나서 하와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이솨는 여자 또는 아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이름은 아담의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의 결정체이다.


(창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 2: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그러나 뼈중의 뼈요 살중에 살인 아내가 뱀의 꼬임에 빠져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아담도 먹음으로 죄를 지었다.


그래서 즉시 영적으로 죽고 하나님나라를 상실하였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당일에 지체없이 아담을 찾아와서 그에게 복음을 전하여 준다.


“날이 서늘할 때에”에서 날은 the day 곧 그날을 말한다.

아담이 죄를 지은 당일에라는 뜻이다.


교회는 영적인 구급차(앰블런스)이다.

아담이 죄로 생명을 잃자마자 하나님은 지체없이 찾아 오신 것이다.

그것이 모든 죄인들을 급히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것이 아담에게 즉시 교회를 주심으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서늘할 때에는 번역이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바람이 부는 것을 말하는 “루아흐”라는 단어인데

“루아흐”는 하나님의 신을 말하는 단어이다.

창1장2절에서 여호와의 신은 수면을 운행하시니라에서 “신”이 루아흐이다.

그러므로 8절은 이렇게 번역이 되어야 옳다.


“그날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신의 음성을 듣고”라고 해야한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다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사야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를 예언하실 때에 여호와의 신도 루아흐이다


(사 61:1) 주 여호와의 신(루아흐)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에스겔이 골짜기의 해골 떼에게 생기를 대언할 때에 “생기”도 루아흐이다.

하나님의 신이 그들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신약에서 성령이 임하여 복음을 전한다.

신약에서의 성령은 헬라어로 “푸뉴마”로서 히브리어와 같이 공기 바람등의 뜻을 가진 단어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영생을 잃어버린 인간 곧 죄로 인하여 생기(루아흐)가 떠남으로 죽은 인간을 즉시 찾아 오셔서 복음을 전하여 주시고 아담과 여자의 후손의 언약을 하심으로 아담의 교회를 세우신다.


그리고 아담의 아내인 이솨와 변론하시고 죄로 말미암은 결과와 아픔 곧 저주를 말씀하신다. 그리고 아담에게도 그렇게 하신다. 그러면서 이솨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서로 원수가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의 영적인 전쟁에서 여자의 후손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함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실 것을 언약하신다.


이언약이 아담의 교회를 세우는 언약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 끝나고 아담은 이솨에게 하와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하와라는 이름의 뜻은 “그는 모든 산자의 어미가 됨이더라”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번역의 오류이다.

 

하와라는 이름의 뜻은 “생명을 주는자”라는 뜻이다.

그것은 육신에 생명을 주는 자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안에서 자기가 낳는 모든 자녀들에게 영생을 주는 어미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영적인 것이며 타당하다.

 

여기서 아마 아담이 하나님의 신이 전하여 주신 복음을 믿지 않았다면 그가 하나님앞에서 말한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준자” 또는 “나로 죄를 짓게한자”든지 아니면 “사망을 가져온 자” 또는 “저주를 불러 온자”라는 뜻의 이름을 지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아내의 이름을 하와 곧 “생명을 주는자”라고 지어준 것은 하나님이 전하여주신 죄사함을 받아서 다시 사는 생명의 복음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이 세워주신 아담의 교회의 비밀이다.


하와는 죄를 짓고 당장에 구원을 받았다.

그녀는 살은 것도 없고 변한 것도 없는 겨우 구원만을 받은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죄인을 구원하시는 복음을 믿는 아담의 믿음의 눈에는 그녀가 “생명을 주는 자”로 보여진 것이다.

우리도 연약하고 보잘것 없고 장점이 없으며 실수가 많도 죄가 많아도 아담과 같이 복음의 눈으로 모든 사람을 볼수 잇는 이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교회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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