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이표가 없는 인생, 그러나

 

일전에 어느지방에서 집회를 할 때의 일이다. 다른 도시에 사는 아는분이 그집회에 참석을 해서 은혜를 받았는데 그도시의 어느 대학병원에 자신의 시부님이 입원해 있다면서 집회중에 심방을 해서 기도를 해줄 것을 요청을 받았다.

 

낮집회를 마치고 식사후에 병원을 향해 가면서 그분이 자기 시부님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시작했다.

그분은 올해 연세가 칠십사세인 분으로서 일제시대 때에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당신이 태어나고 살았던 도시의 지금의 번화가의 땅이 다 그분의 부친의 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모님은 간호원이었는데 믿음이 좋아서 교회목사님이 시간만 있으면 “얘야 너는 믿음이 좋으니 꼭 목사에게 시집을 가야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남자가 여자를 끈질기게 따라다니고 구애를 하여 자기사람을 만들어 놓고는 군대에 갔다 왔다고 한다. 그후부터는 날마다 술마시고 방탕하고 외간여자들과 놀아나면서 그많은 땅을 하나씩 하나씩 다 팔아 탕진을 하는 바람에 일가친척과 동네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멸시를 당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가난이 찾아 오고 셋방살이를 하면서 일평생 방탕한 삶을 버리지 못하고 그래서 부부싸움을 하도 심하게 하여 셋집주인마다 쫓아 내면 다른 곳으로 가고 그러면서 자식들을 고생을 시키고 자녀들에게도 존경을 받지 못하는 아버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는 중에 자식 삼남매가 결혼후에 다불행하게 되어 하나같이 이혼을 하고 그자녀들이 낳은 아이들을 도맡아 길러야하는 형편이 되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작은 보육원을 차린 형국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손자들과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그나이에 어느회사 경비를 하다가 높은 곳에 열쇄를 채우기 위해서 디딜 것을 의지하여 열쇄를 잠그다가 뒤로 넘어져서 뇌진탕을 일으키고 뇌수술을 하였는데 뇌에 물이 차서 하룻만에 재차 수술을 하고 세 번이나 수술을 한후에 중환자실에 열하루있다가 이제는 의식을 회복하여서 일반병실로 옮겼다고 한다.

 

한사람의 일생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내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났다.

 

“여기 할 수만 있다면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 또 하나 있구나.”

 

그러면서 사실 세상사람들중에 모든 것을 지우고 다시 인생을 시작할수만 있다면 그런사람들에게 신청을 받는다고 하면 한사람도 빠짐이 없이 줄을 서서 신청을 하는 광경이 눈앞에 선하게 흘러갔다.

 

모든 인생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 것과 상관이 없이 실패한 인생이다.

한사람도 예외가 없다.

그것은 단 한사람도 후회가 없이 사는 사람은 이세상에 없는 것이 그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노인이면 또 노인나름대로 다 후회가 있는 인생을 살고 있고 살아 온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 어떤이의 삶이 성공한 것으로 비추어질수는 있지만 성공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그냥 남들과 비교했을 때에 그와같은 생각이 들고 그와같은 관점이 생각이 나는 것뿐이다.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어떤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으로 비추어지고 그렇게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사람들에게 평판을 받을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 물어보면 거짓이 없이 진실한 이들은 자기가 행복한 삶을 살아 오지 않았다고 고백할 것이다.

 

이와같이 모든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다.

한사람도 예외없이 실패로 가는 길에 서있는 것이다.

 

사람과의 차이는 한사람 한사람 많이 있지만 가는 길은 같은 길이요 결과도 같은 것이 실패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다같이 생노병사의 길을 가고 있다.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어 죽는 길에 다 서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그 가는 길의 내용이 좋지 못하다. 수를 셀수 없는 과오와 후회와 돌이킬수 없는 죄를 피차에 주고 받으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어린시절은 어린 시절대로 후회가 있고 학창시절은 학창시절대로 최선을 다하지 못한 아쉬움이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도 우리는 날마다 자기 마음에도 차지 않는 생활을 영위하면서 서로를 실망시키는 가운데서도 자신을 가장 실망시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임을 확인하면서 뉘우칠 수밖에 없는 생활을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제의 생활이 오늘에 후회가 되는 것과 같이 오늘의 언행심사가 내일후회가 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단한사람도 예외 없는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앞에 말한 그분만이 인생을 후회할것으로 만들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후회할 것으로 만들면서 사는 것이다.

 

그러면서 불가능한줄을 알지만 인생을 다 뿌기고(?)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할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하는 막연한 아쉬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도 별수가 없고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죄와 과오와 무능함이 너무나 아쉽기 때문에 막연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사라아고 있는 것이다.

 

왜 모든 인생이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그것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한사람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수 있는 능력이 스스로에게는 없는 불량품이기 때문이다.

그능력은 공부를 잘하고 좋은 학교를 가서 실력과 경력을 쌓고 남들보다 돈을 잘벌고하는 그런 따위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와같은 것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 곧 그와같은 것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과 비교적인 우위에는 서게할지는 몰라도 자기자신에게만큼은 무능하고 지혜도 없는 불량품임을 부인할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의 인격을 운용할줄을 모른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사랑해야하는지를 결정할 지혜가 없기 때문에 생각해서는 안될 것을 생각하고 말해서는 아니될 말을 하고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들에 정욕적으로 사랑하고 욕심을 내어 죄를 짓고 자기의 영혼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죽는 것이 사람에게 정하신 길이요 피할수 없는 길인것같이 그길을 어제도 오늘도 또한 내일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항상 마음 깊숙한 곳에 소원같이 다시 시작하고 다시 살수 있는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는데에 모든 인생의 슬픔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살면 다시 살수 있다.

이말은 이상한 말과 같이 들릴지 모른다.

다시산다는 말은 거듭난다는 말이다.

거듭난다는 말은 사람들이 많이 쓰고 있는데 그런 말이 아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다.

거듭난다는 말은 두 번째 태어 난다는 말이다.

거듭난다는 말은 위로부터 난다는 말이다.

 

처음난 것은 육체이지만 두 번나는 것 곧 거듭나는 것은 영생을 얻는 것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다시말해서 어머니 배에서 나온 것은 육체에 지나지 않는 다는 말이다.

거듭나는 것은 성령으로 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말이다.

 

육체는 실패한 인생을 사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육체로는 육체를 이길수도 없고 다스릴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앞서말한 그분도 날마다 육체로부터 나오는 욕심과 정욕을 이기지 못하여 사람답게 사는 진리의 길을 가지 못하고 사람답지 못하게 사는 죄의 길 곧 패배와 멸망의 길을 걸어 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모든 사람들이 그길에 서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무질서한 우리의 육체는 하나님의 성령으로만 다스릴수 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이 진리로 사는 것이고 진리가 우리의 영혼을 자유하게 하는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자에게는 하나님이 죄사함의 은혜를 주시고 그보증으로 성령을 주신다. 그것을 가리켜 영생을 얻는다고 말한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와 전혀 다른 생명을 받는 것이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길을 나에게 강요해온 흠이 많은 육체의 생명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것이다.

이생명을 받는 것은 태어날 때의 생명보다 더 나은 생명을 받는 것이다.

이생명을 받을 때에 우리는 지나간 죄를 다 용서받고 흰눈보다 더 희께 씻김을 받는다.

우리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으실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리게 하는 은혜를 주신다.

 

우리의 알량한 소원은 이부족한 육체를 가지고 다시 시작할수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살았으나 말로 다할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는 실패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던 불량품 생명이 아니라 그육체의 생명을 다스려 인격의 질서를 회복할수 있는 성령을 주심으로 우리안에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를 건설하심으로 다시 인생을 시작하게 하신 것이다.

 

새술은 새부대에라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새인생은 새생명으로 살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는 것이나 구하는 것에 지나친 은혜를 주신 것이 과거를 다 잊어버리고 다시 살게 하실뿐 아니라 다시살수 있는 생명까지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믿고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기 이전의 생활을 철폐하고 주님이 주신 새생명으로 사는 생활 곧 영적인 생활 하나님과 함께 사는 하나님의 친구가 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다스려주시는 새질서 곧 하나님의 말씀의 질서의 생활을 사는 은혜를 구하고 받아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새것이 되어야 새생활을 살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전과 같은 생활을 사는 사람들이다.

새생명을 받고도 새로운 생활을 살지 않는 사람들이다.

새것이 되었는데도 헌 것을 사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새것이 된 것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다시살수 있는 은혜를 받았는데도 다시 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전보다 나은 생명 이전보다 나은 생활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생각을 하던 이전생활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안고 사는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이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벧전 4:3)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은 사람은 실패한 인생을 다시 살수 있는 특권과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것이야말로 이세상 사람들이 지금도 막연히 다시 살고 싶어하는 실패한 인생을 다시살수 있게 된 소원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이제는 육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사는 것이다.

 

실패한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것

 

이것이 구원이다.

이것이 소망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길은 예수를 믿는 길밖에는 없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8.21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