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기뻐서 잠이 안왔습니다.

 

 

집중코스때에 이상하리만치 밥맛이 없어서 거의 밥을 먹지 못하는 나를 안타깝게 여긴 어느 집사님이 집중코스가 끝난 다음날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해서 우리 식구들과 몇몇 집사님들과 함게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는데 식사를 대접한 집사님이 요즘 주님이 축복을 하셔서 천사가 수종드는 일이 일어나고 그래서 수입이 괜찮다는 말을 하였다.

그말을 들으면서 갑자기 이번에 미국에 간증강사로 가지 못하겠다고 한달전쯤 말한 것이 생각이 났다.

 

 

“아니 집사님 그러면 그때에 미국에 가지 못하겠다고 한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었어요?”라고 물었더니

“예 그게 아니구요 아이가 개학을 해서 돌보야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예요”라고 대답을 했다.

“그래요 나는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비행기값이 부담스러워서 그러는줄 알았지? 그래서 곤란해 할까봐 이유도 묻지 않고 그러라고 했지.”

“그게 아니예요 장로님 아이때문이예요.”

“그래 그러면 비행기값만큼 선교비 내면 되겠다.”

협회 재정이 부담스러운 현실이라서 그렇게 제안을 했다.

그러니까 지체없이 기쁨으로 대답을 했다.

“예 그러지요 선교헌금 할께요 장로님”

그렇게 말하면서 그집사님은 기뻐서 어쩔줄 몰라 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요 제가 협회 차량헌금을 더하라는 감동을 주님이 주셨는데.....”

말하는 늬앙스가 그것으로 대체를 하겠다는 말을 하려는듯이 보였다.

그래서 내가 재빨리 말을 했다.

“그건 그거대로 감동을 주신대로 해야하고..... 선교비는 선교비고....”

그랬더니 함께 있는 좌중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집사님은 약간 당황을 한듯이 대답을 했다.

“예 알겠어요 장로님”

 

그리고 돌아 오는 차안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장로님 이전에 주님이 여러번 저에게 주님을 향해서 부요치 못하고 인색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

"저도 주님을 향해 손이 크고 부요하게 해 달라고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사람은 너나 할것 없이 누구나 그런 심리로 사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절약하면서 살아야 하니 때로는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께도 절약을 하고 하나님께도 자신도 모르게 받은바 은혜가 하늘같고 바다같은 사실을 잊어버리고 인색해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나도 그런때가 많이 있었다.

주님을 상대로 “절약심리”가 발동할 때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께 부요함을 요구하시고 그훈련을 지금도 각사람에게 시키신다. 그이유는 마침내 우리에게 하나님의 부요함을 허락하시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그다음날 그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르는 전화번호가 찍혀 있어서 전화를 했더니 그집사님이었다.

그날 집에 가서 자기전에 그날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말하고 의논을 하면서 얼마를 드리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얼마를 더하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이의를 달지 않고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해 놓고는 너무나 기뻐서 깊은 밤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다.

모르는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던것과 같이 그집사님은 나에게 평생 전화 한번 통화하지 않았던 분이었다. 그런데 주님이 그 날밤에 주신 기쁨이 너무나 커서 그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전화를 했던 것이다.

 

 

이집사님은 비로소 주님을 향하여 부요할 때에 주님이 주시는 큰 기쁨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그전화를 끊고 나서 우리 모두가 이와같은 기쁨으로 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내마음으로 들어 왔다.

 

언젠가부터 사람의 강요로 헌금을 하고 찝찝하고 아픈 마음과 당했다는 생각 그리고 억울한 마음에 고통하는 풍조가 한국교회에 들어 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은혜를 받고 주님을 사랑하면서도 주님께 인색하고 주님을 향해서 머리를 굴리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때로는 주님에게 빼앗기듯이 헌금을 하는 풍조가 얼마나 팽배하였는가?

그것은 사람의 욕심과  마귀의 궤휼에 빠진 것이다.

 

 

주님은 그렇지 않다. 주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주님은 그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주님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는 것만이 아니라 이제는 주님을 사랑하는 심령으로 성장하기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고 계신다. 주님이 우리를 기르시는 목표는 우리가 그의 사랑을 받기만 하는데서 성장해서 이제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것이 영적인 성장이기 때문이다.

 

 

바라기는 아무쪼록 오늘도 이와같은 기쁨으로 넘치는 성도들이 이땅에 많아지기를 기도한다.

(*.62.16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