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부탁

 

일전에 나는 몇 목사님들과 대화를 하면서 어느 목사님을 말하면서 그분이 몇 년전에 곧 다시오겠다는 약속을 나에게 했지만 그것은 전화를 받는 것이 귀찮아서 핑계를 댄 것이며 그 교회 집사님과의 대화중에 아무래도 우리 목사님은 협회에 오기가 힘들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었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좌중의 어느 목사님이 그 목사가 조만간에 올 것입니다라고 말을 했다. 일순 나에게는 그분의 말이 마치 나를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분은 그런 뜻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분에게 조금은 단호한 듯한 어조로 이렇게 말을 했다.

 

목사님 그분이 협회에 다시 나타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어도 안 되고 협회를 위해서도 나타나면 안 됩니다. 그분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나타나면 나타나고 안 나타 나더라도 그분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에 대한 반응은 없었지만 무거운 침묵이 뒤를 따랐다.

생각해 보면 내가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직장도 사생활도 인간관계도 그 외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 일을 하는 것은 나를 기쁘게하기 위함도 아니고 나를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협회라는 조직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나 협회나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를 위한 것이요 갈 길을 잃은 영혼들을 위한 것이며 그 영혼들을 바르게 인도해야할 교회와 주의 종들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날 이때까지 나는 비록 연약하지만 협회를 위해서나 또 나를 위해서 무슨 방법이나 수를 쓰지 않고 때마다 주님이 허락하시는 은혜대로 이일을 해왔다. 몇 명이 참석하느냐의 문제도 단 한사람이라도 주님이 보내시는 줄 알고 믿음으로 이일을 해왔으며 많이 모일 때는 많이 모이는 대로 또 주님이 미리 말씀하신대로 악한 자들의 거짓말과 훼방으로 소수가 모일 때는 소수대로 그 때마다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것으로 알고 작은 일에도 큰일과 같이 충성하는 믿음으로 이일을 해왔다.


때로는 순수함으로 주를 섬기고 영혼을 섬기는 나와 협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안팎에 많이 있었으나 그런 가운데서도 주님의 부르심의 뜻은 훼손된 적이 없었다. 때로는 실수도 있고 오판도 많았으며 유혹을 이긴 적도 많이 있고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지은 적은 그보다도 더 많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는 죄를 사유해주시는 주의 은혜를 받고 나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사랑을 확신하면서 나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분한 마음으로 행할 때에 하나님의 신이 더욱 강하게 역사하시는 역사도 수없이 경험하면서 살아 왔다. 아직도 나와 같이 연약하고 불완전한 도구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의 보전하시는 은혜로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새롭게 하심-아나 카이노시스 프뉴마 하기오스”(3:5)의 은혜로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 오셨다.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다”(13:52)는 말과 같이 하나님은 지난 45년동안 나같은 보잘것없는 만물의 찌끼같은 자에게 날마다 옛것과 새것을 하나님의 곳간에서 내어 오도록 하시는 은혜를 주셨다. 그래서 기존의 기라성같은 신학자들의 연구에나 또 주석에도 없는 수많은 깨달음을 비록 소수의 사람에게나마 나눌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이는 다 전적인 하나님의 100%의 은혜로 된 것이다.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지 않으면 자연세계에서 일어나는 하찮은 것이라도 깨달을 수 있는 자가 세상에 누가 있겠는가? 하물며 주의 제자들에게만 허락된 하늘나라의 비밀을 아는 일이야 얼마나 더하겠는가?

 

나의 간절함을 따라 모든 분들에게 구하는 것은

나를 위하고 나를 위로하는 일을 그만 두라는 것이다.

어떤 것이 협회를 위하는 일인지를 궁구하는 마음을 절대로 가지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간절한 부탁

 

일전에 나는 몇 목사님들과 대화를 하면서 어느 목사님을 말하면서 그분이 몇 년 전에 곧 다시 협회에 오겠다는 약속을 나와 했지만, 그것은 전화를 받는 것이 귀찮아서 핑계를 댄 것이며 그 교회 집사님과의 대화 중 아무래도 우리 목사님은 협회에 오기가 힘들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었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좌중의 어느 목사님이 그 목사가 조만간 올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일순 나에게는 그분의 말이 마치 나를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분은 그런 뜻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분에게 조금은 단호한 듯한 어조로 이렇게 말을 했다.

 

목사님 그 분이 협회에 다시 나타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어도 안 되고 협회를 위해서도 나타나면 안 됩니다. 그 분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나타나면 나타나고 안 나타 나더라도 그분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그 말에 대한 반응은 없었지만 무거운 침묵이 뒤를 따랐다.

생각해 보면 내가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직장도 사생활도 인간관계도 그 외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 일을 하는 것은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함도 아니고 나를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협회라는 조직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나 협회나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를 위한 것이요, 갈 길을 잃은 영혼들을 위한 것이며 그 영혼들을 바르게 인도해야 할 교회와 주의 종들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날 이때까지 나는 비록 연약하지만, 협회를 위해서나 또 나를 위해서 무슨 방법이나 수를 쓰지 않고 때마다 주님이 허락하시는 은혜대로 이 일을 해왔다. 몇 명이 참석하느냐의 문제도 단 한 사람이라도 주님이 보내시는 줄 알고 믿음으로 이 일을 해왔으며, 많이 모일 때는 많이 모이는 대로 또 주님이 미리 말씀하신 대로 악한 자들의 거짓말과 훼방으로 소수가 모일 때는 소수대로, 그때마다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것으로 알고 작은 일에도 큰일과 같이 충성하는 믿음으로 이 일을 해왔다.

 

때로는 순수함으로 주를 섬기고 영혼을 섬기는 나와 협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안팎에 많이 있었으나 그런 가운데서도 주님의 부르심의 뜻은 훼손된 적이 없었다. 때로는 실수도 있고 오판도 많았으며 유혹을 이긴 적도 많이 있고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지은 적은 그보다도 더 많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는 죄를 사유해주시는 주의 은혜를 받고 나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사랑을 확신하면서 나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분한 마음으로 행할 때 하나님의 신이 더욱 강하게 역사하시는 역사도 수없이 경험하면서 살아 왔다. 아직도 나와 같이 연약하고 불완전한 도구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의 보전하시는 은혜로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새롭게 하심-아나 카이노시스 프뉴마 하기오스”(3:5)의 은혜로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 오셨다.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다”(13:52)라는 말과 같이 하나님은 지난 45년 동안 나 같이 보잘것없는 만물의 찌끼 같은 자에게 날마다 옛것과 새것을 하나님의 곳간에서 내어 오도록 하시는 은혜를 주셨다. 그래서 기존의 기라성 같은 신학자들의 연구에나 또 주석에도 없는 수많은 깨달음을 비록 소수의 사람에게나마 나눌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이는 다 전적인 하나님의 100%의 은혜로 된 것이다.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지 않으면 자연세계에서 일어나는 하찮은 것이라도 깨달을 수 있는 자가 세상에 누가 있겠는가? 하물며 주의 제자들에게만 허락된 하늘나라의 비밀을 아는 일이야 얼마나 더하겠는가?

 

나의 간절함을 따라 모든 분들에게 구하는 것은

나를 위하고 나를 위로하는 일을 그만 두라는 것이다.

어떤 것이 협회를 위하는 일인지를 궁구하는 마음을 절대로 가지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만일 그런 것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나에게 티끌만큼이라도 있다면

나는 당장에 주 앞에서 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순간이라도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은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의 종은 사람을 위하고 또 일을 위하며, 또한 그것이 교회라 하더라도 조직을 위하는 일이나 말을 하기에는 너무나 귀하고 비싼 값이 지불된 존재라는 사실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그래서 바울은 사람을 위하는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고 권면한 것이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고전 7:22-23)

 

주님!

누구나 주의 사람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주를 위하고 주가 사랑하신 영혼을 위하는 것이 전부인 삶을 살게 하옵소서. 아멘.




(*.154.7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