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성 바벨론의 비밀

 

언젠가 길거리에서 교회 이름을 크게 써서 붙인 어느 교회 차가 지나가는데 주님의 작고 세미한 음성이 내 마음속에 들려왔다.

 

얘야, 저 교회가 바벨론 교회야.’

 

나는 즉각 주님에게 질문했다.

 

주님, 저 교회가 어떻게 바벨론 교회입니까?’

그것은 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바벨론에 사로 잡혀간 유다의 포로들과 같이 세상에 다 사로잡혀서 포로가 된 생활을 살고 있기 때문이야.’

 

그 말씀을 듣고 곱씹어 보니 정말 그러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세상에 사로잡힌 포로가 되어 세상을 섬기고 물질을 섬기며 사람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은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바벨론은 세상 역사상 최초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제국이 되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말씀을 버리고 방자히 행하며 하나님을 배반하여 우상을 섬길 때 그의 백성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 가게 하셨다. 그 이후로 바사와 헬라와 로마 제국 등의 큰 나라들이 생겨났으며 사람이 온 세상을 다스리는 세상 권력이 나타나고 지속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도 세상 모든 나라들은 제국주의의 환상에 젖어 있으며 독일도 미국도 세상을 다스리던 큰 나라를 사모함으로 그들의 나라를 상징하는 휘장에 바벨론 제국의 독수리를 새겨 넣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바벨론은 크고 강한 나라의 시조가 되고 상징이 되어 온 것이다.

주님은 요한계시록에서 장차 될 일을 예언하시면서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버리고 교회의 제국을 세울 것을 말씀하시면서 규모가 크고 그 세력이 강하여져서 사람이 교회와 교인들을 다스리는 제국주의적인 교회가 출현할 것을 예언하신 것이 다름이 아닌 큰 성 바벨론으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대형교회들이다. 소위 사람들이 메가 처치라고 일컫는 대형교회는 중세의 캐톨릭이 나타나기 전에는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변형된 교회의 형태 중 하나인 것이다.

그 옛날의 바벨론 제국은 느부갓네살의 제국으로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고 사람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고 사람이 다스리는 권력으로 대형화 된 교회가 곧 바벨론 교회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형교회가 될수록 하나님의 아가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는 성도의 인격도 없으며 교회의 마리이신 그리스도가 아닌 오직 사람이 교회와 교인들을 다스리는 조직화된 교회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바벨론이라는 말은 요한계시록에 여덟 번 나온다. 14장에 나오는 둘째 천사가 말하는 큰 성 바벨론은 의심할 여지없이 캐톨릭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중세에 암흑기에 활개를 치다가 이미 무너뜨림을 당하였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14:8)

 

셋째 천사가 말하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서 짐승은 캐톨릭의 교권을 말하는 것이요, “그의 우상은 교황권이 땅에 떨어지자 종교회의를 만들어 교회 권력을 구축하고 그로 인하여 많은 성도들을 죽인 종교회의를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고 그들의 거짓됨이 만천하에 드러남으로 버림받은 것이다.

그리고 짐승 캐톨릭과 그의 우상을 섬기던 자들이 받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는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을 구원을 받지 못한 교회 안에 있었던 종교인들인 가라지들이 받은 진노의 잔을 말한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4:9-10)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것은 교권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마에나 손에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오늘날 어떤 어리석은 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베리칩을 받는 것이 아니다.(그들의 선조들은 이전에 바코드라고 했는데 그들은 시대를 따라서 베리칩이라고 말을 뒤집었다. 이것만 보아도 그들은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다. 또 그것이 베리칩이나 바코드라면 중세에 짐승을 섬기다가 멸망당한 자들은 그때 당시에는 베리칩도 바코드도 없었는데 어떻게 무슨 표를 받고 진노의 포도주를 받고 멸망을 당했는지 만을 생각해도 그것이 근거없는 새빨간 거짓말인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마의 표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출애굽기로 돌아가야 한다.

 

너는 또 정금으로 패를 만들어 인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 이라 하고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전면에 있게 하라 이 패가 아론의 이마에 있어서 그로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건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28:36-38)

 

그리고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짓는 죄를 직접 속죄함을 받는 것이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그것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함을 받은 성도들이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20:6)

 

그들은 이마에 인치심을 받은 하나님의 소유인 하나님의 종들이다.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7:3)

 

그들의 이마에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 쓴 것이 있는 자들이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14:1)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22:4)

 

그들의 이마에 있는 그의 이름이 곧 어린양의 이름이다.

에스겔도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친 거룩한 자들에 대하여 말씀한다.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9:4-6)

 

또 손목에 관한 것은 민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손목에 매라고 말씀하시며 또 그 말씀을 미간 곧 이마에 붙여 표를 삼고 네 집의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고도 말씀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6:4-9)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 (11:18-20)

 

그것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진실한 종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심판의 표라고 말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 (살후 1:5)

 

이렇게 하나님의 표를 이마에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심판을 받는 짐승의 표를 이마에 받는 것이다. 그것은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이 마귀에게 속한 것임을 나타내는 표이다. 그것은 둘째 짐승의 시대에도 나타나는 일인데 둘째 짐승은 14장에서 말하는 무너진 큰 성 바벨론으로 말하여지는 첫째 짐승의 뒤를 이어 나타난 개신교 교권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라 교권을 섬기는 자들이다. 저가 첫째 짐승 앞에서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지금 행하고 있다. 첫째 짐승이 행한 일을 그대로 행하며 거짓 이적을 행하고 그들도 종교회의를 이용하여 성도들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3:15)

 

그리고 그들도 자기에게 속한 자들의 이마에 표를 받게 하는 것이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니라” (13:16-18)

 

여기서 매매아고라조이다. 아고라조는 상업적인 거래를 말하고 값을 주고 사는 것을 말하는 단어이다. 그것은 어떤 거짓말하는 자들의 말과 같이 슈퍼마켓에 가서 먹을 것이나 생필품을 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그런 것들은 돈만 주면 언제든지 살 수 있다) 저희들 곧 짐승의 모임에서 모든 이권적인 교통과 주고받는 거래를 막는다는 말이다. 그와 같은 일들은 오늘날 교단 안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지혜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저들만의 리그에서 저희들만의 거래를 하고 있으며 저희들만의 이권에 참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짐승의 수는 사람의 수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수는 칠이고 사람의 수는 육이라는 것만 말하고 그 이상은 역시 듣기에 둔하므로 여기 지면에서는 밝히지 않고자 한다.

이모든 진리들을 왜곡되게 하고 거짓말로 미혹하는 영이 적그리스도의 영이요, 거짓선지자들이다.

요한계시록 16장에서 일곱 천사에게 주는 진노의 대접은 타락한 교회에 내리는 재앙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거짓된 자들이 말하는 대로 세상에 내리는 재앙이 아니라 진리를 떠난 타락한 교회들에게 내리는 재앙이다. 일곱 대접의 재앙을 다 말하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지면도 부족하며 또 듣기에 둔하고 들을 수 있는 귀도 준비되지 않았기에 다음에 자세히 말하도록 하고 처음 세 가지 재앙만 일러두자면 이러하다.

첫째 대접의 재앙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악하고 독한 헌데는 짐승의 교권을 숭배하는 자들이 받는 육신적인 쓰라린 고통과 스트레스와 아픔을 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큰 교회가 잘못을 저지르고 불법을 행하는데 그 교회가 교단에서 나갈까 두려워하여 불의를 참고 타협하는 고통도 그것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둘째대접의 재앙에서 바다는 세상을 말하는 예언적인 용어이다. 타락한 바벨론 교회는 세상에 생수가 강물처럼 넘치게 하여 영혼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안의 거짓된 종교인들로 인하여 날마다 악하고 더러운 것을 세상 밖으로 솟쳐 냄으로 온 세상으로 피가 가득하게 하여 그 안에 있는 영혼들을 살리지 못하고 죽이는 것이다. “바다가운데 모든 생물에서 생물영혼을 말하는 프쉬케임을 기억하라.

세 번째 대접의 재앙은 대접을 강과 물의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라는 말씀인데 그것은 오늘날 수많은 교회의 강단에서 나오는 말씀이 영혼이 마시고 살 수 있는 생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 영혼이 도저히 마실 수 없고 살수도 없는 그 옛날 애굽에 내렸던 재앙과 같은 피 같은 설교들이 강단마다 나오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람의 설교는 지적이지만 영혼의 양식이 될 수는 없는 말씀이다. 어떤 이의 설교는 합리적이어서 혼적인 깨달음을 주고 혼적으로 청량감은 주는지 모르지만 그것도 영혼의 양식이 되는 말씀이 아닌 것이어서 많은 영혼들이 실망을 하고 있다. 16장의 마지막부분에 나오는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귀신의 영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교회 안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라지고 민주주의로 대변되는 인본주의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일컬어지는 배금주의교회 안에서 권세와 능력을 영원토록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주님의 다스리심을 부인하고 사람이 주의 몸 된 교회를 다스리는 교권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세 더러운 영으로부터 나오는 설교는 생수가 아니라 피가 되어 영혼들이 먹고 살수 없는 것들만을 강단에서 쏟아 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16장 이후에 언급되는 큰 성 바벨론” “견고한 성 바벨론” “큰 바벨론은 다름이 아닌 오늘날의 서로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세속화된 교회들을 말하는 것이다. 극히 적은 수의 진실한 교회를 제외하고 교회 안에서 사람의 권력이 행사되는 교회는 규모가 작은 교회든 큰 교회든 그것은 바벨론 교회인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아가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형제자매로서의 성도들의 모임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는 조직으로서 견고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사실상 교회가 일정부분의 수를 넘어 서면 서로 사랑하는 성도의 관계는 생각조차도 할 수 없고 피차에 서로가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하는 인간관계조차도 형성되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교회라기보다는 종교적인 조직이다. 거기에는 주님이 말씀하신 교회의 원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님이 말씀하신 교회의 필요충분조건은 교회 안에는 반드시 주님이 계셔야 한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18:20)

 

그리고 모든 모임마다 주님과 함께 모이는 모임이 교회이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11:23)

 

여기서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이라는 말은 나와 함께 모이지 아니하는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어느 모임이든지 주님과 함께 모이지 않고 사람이 주관하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모임은 성도들의 모임이 아니며 그것은 교회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바벨론 교회에서는 반드시 사람을 섬기라고 종용하는 일들이 나타난다.

1960년대 곧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지만 대구에서 온 부흥사라는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담임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말하지 말고 주의 사자라고 하라던 말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목사님도 다른 이들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교인들에게 담임목사를 섬길 것을 종용하는 말도 허다하게 들어왔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다. 제자들에게 오히려 주의 종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고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10:42-4)

 

그러므로 목사든 장로든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주님이 세상 모든 죄인들을 섬기신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 아주 마땅한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교회 안에 이방인의 집권자들과 대인들이 되어 권세를 부리는 자들이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바벨론 교회인 것이다. 그들은 이전에 세상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하던 그 첫 번째 짐승의 행사를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음행은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는 것을 말하며 진노의 포도주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 바벨론교회의 현실과 종말을 요한계시록 17장과 18장에서 기록하고 있다. 두 장에 기록된 말씀을 지면상 다 풀어줄 수는 없다. 또 듣기에 둔하기 때문인 이유가 있음도 물론이다. 그리고 이 진리는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그 중에 단지 몇 가지만을 풀어 말하고자 한다.

우선 173절에서 성령께서 요한을 데리고 나간 광야는 열매가 없고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복음이 없는 오늘날의 교회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여자는 교회를 말하는 예언적인 용어이며 붉은 빛 짐승은 그리스도를 벗어난 교권을 말한다. 붉은 빛은 피를 말하는 것으로 성도들을 죽이는 속성을 말한다. “그 짐승의 몸에 참람 된 이름들이 가득하고”에서 참람 된블라스페미아로서 신성모독 곧 하나님을 부인하는 이름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이름들의 구체적인 사실들도 듣는 것이 둔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밝히지 않기로 한다. 단지 그와 같은 이름들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이름들이며 하나님이 주신 이름들도 아니다. 그런 이름으로 일컫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며 교권을 섬기고 사람들을 섬기고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는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 이마에는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그의 이름이 기록된 것이다. 그리고 이 여자 곧 이 교회는 성도들을 죽이고 예수의 증인들의 피를 흘리는 교회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기이하고 이상한 일을 행한다.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17:6)

 

또한 바벨론 교회는 어린양과 싸우고자 하는 교회이다. 곧 주님을 거스리는 교회를 말한다. 그래서 요한은 그 모습을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겼다고 말한다.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17:6)

 

18장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다른 천사는 이렇게 말한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18:2)

 

오늘날 교회 안에 귀신들린 자들이 많이 숨어 있다. 귀신들린 사람들이 거의 모든 교회마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것은 영분별이 안 되는 어두운 교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가 더러운 영이 모이고 거짓선지자를 말하는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 또 바벨론 교회는 사치한 세력이 있고 치부하는 자들이 있는 곳이다. 이에 대한 실상들은 일일이 다 밝히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이 있다. 믿음가지는 없어도 상식이 있고 지각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실들을 다 보고 듣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거기서 나와 탈출해야 한다. 곧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자기를 영화롭게 한 만큼 그리고 사치한 만큼 갑절이나 갚아주시겠다고 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8:4-7)

 

여기서 왕이 아니라 스스로를 여황이라고 하는 말은 만왕의 왕 되신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모시지 않고 그리스도 없이 교회 안에서 왕 노릇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과부가 아니라고 결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겠다고 주장을 하지만 실상은 그들에게는 신랑 되신 예수가 없다. 여자인 교회의 신랑은 예수님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미련한 다섯 처녀의 반열에 들어간 것이다. 주님은 그들을 알지 못하신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에게 단 하루 만에 재앙들이 임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18:8)

 

그들이 망하는 것은 그들로 인하여 돈을 벌고 이를 보던 세상 사람들에게는 애통하는 일이 되지만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는 즐거워하는 일이 된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18:20)

 

그리고 큰 성 바벨론 교회는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 멸망의 길을 간다. 그 이유는 선지자들과 성도들을 죽이는 교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 (18:21-24)

 

그리고 바벨론 교회, 곧 음녀교회의 심판은 하늘에서는 허다한 무리들과 이십사 장로들과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송하게 하는 것이다.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두 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 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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