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번씩 일곱 번

 

몇 주 전에 지방에서 신년 부흥사경회에 말씀을 전할 때의 일이다. 수요일 날 저녁 식사에 담임목사님과 단둘이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어느 집사님과 자매님이 우연히 합석을 하게 되었다. 식사를 하면서 두 분이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그러는 중에 그 자매님이 나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다.

 

장로님 같은 죄를 거듭해서 계속 짓는데 주님은 그런 죄도 사해 주시나요?”

 

그 순간에 대답이 즉각적으로 나갔다. 그것은 내가 준비한 대답이 아니라 주님이 준비하신 대답이었다. 그렇게 신속하게 답이 나갈 수가 없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라고 말씀하셨는데 자매의 죄라고 용서하지 않으시겠어요?”

 

그 순간 그 자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 순간에 나는 , 이문제가 성도들에게 있어서 아주 실제적인 문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처음 예수 믿을 때에 그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받아 들여 졌던 문제이기도 했다. 그날 저녁 말씀을 전하면서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주님은 우리의 죄를 거듭해서 용서를 해 주신다는 말씀으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눈이 크게 떠지고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주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신을 육체 속에 부어 주실 때 그들의 죄를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도 아니 하리라고 언약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31:33-34)

 

일흔 번씩 일곱 번 죄를 용서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사실상 어느 누구든지 그의 죄를 무한 용서하라는 말씀이다. 월요성경공부 때 이 은혜를 나누었는데 어느 장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장로님의 말은 이러했다.

 

장로님, 우리교회에 아주 못된 부목사가 있는데요. 하도 문제를 일으켜서 조사를 해보았더니 이전에 있었던 네 교회에서도 똑같은 짓을 해서 쫓겨난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 보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오늘 말씀을 들어 보니 주님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를 하라 하신 말씀을 듣고 주저되어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장로님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장로님, 우선은 그분의 행실과 열매를 보면 목사지만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의 죄를 용서를 해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주님의 대화 내용을 보면 용서를 해주는 대상은 분명히 형제입니다. 그분은 형제라고 하기에는 곤란한 것 같습니다.”

 

……

 

그리고요. 더 중요한 말씀은요 본인이 잘못 한 줄을 모르는데 용서라는 말이 성립이 안 됩니다. 용서를 해 주기 위해서는 본인이 먼저 자기의 행위가 잘못된 것을 알고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자 그 장로님은 곧 말귀를 알아 듣는 것 같았다. 그리고 피차에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형제의 죄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를 하라고 하신 주님은 누가복음에서 형제가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죄를 얻고 일곱 번이라도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하면 그의 죄를 용서하라고 가르치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17:3-4)

 

아주 오랜 옛날에 어떤 목사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벼룩도 낯짝이 있지 어떻게 그리 합니까?”

 

나는 그에게 지체하지 않고 말을 해 주었다.

 

목사님 벼룩은 낯짝이 있어도 죄인은 낯짝이 없는 겁니다.”

 

아마도 주님 앞에서 낯짝을 찾는 죄인은 교만하기 때문에 그리할 것이다.

오늘도 주님은 사랑하시는 그의 자녀들에게 그들의 죄를 무한 용서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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