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신 하나님



(계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요한은 하나님을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고 말한다. 같은 말이 요한이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던 4장에도 나온다.

 

(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4: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4장에서 전에도 계셨고라는 번역은 14절의 전에도 계시고와 다르게 번역을 해 놓았는데 4장의 번역이 잘못된 것이다. 18절에서도 과거로 번역을 해 놓았다.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이와같이 같은 책에 있는 같은 말씀을 각기 다른 말로 번역을 해놓은 것을 보면 번역자들의 부주의 함과 불성실함이 느껴진다. 여기 세 구절에 공통적으로 쓰인 이라는 동사는 미완료동사로서 전에도 주욱 계셨던 사실을 표현하는 시제를 가진 단어다. 그것은  과거를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셋중에서 14절의 번역이 비교적 맞는 번역이라고 할수 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신다. 그로므로 하나님에게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구분이 있을 수가 없다. 그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해주는 말씀이 요한복음에 있다.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8: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있느니라에이미로 현재동사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과거는 하나님께는 현재이다. 그리고 하나님에게는 현재도 현재이며 미래도 하나님에게는 현재일 뿐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고 말씀한 것이다.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시간과 공간속에 갇혀서 살아가는 먼지 같은 존재인 인간에게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구분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셔서 존재하신다.  







그러므로 세구절 동일하게 뒤따르는  장차 오실 이라는 번역은 틀린 것이다. 따라서 1장 8절의 장차 올 자"와 48절의 장차 오실 자라는 번역도 물론 잘못된 것이다. 장차라는 말은 원문에 있지도 않다. 그것은 엘코마이라는 단어이다. 그에 대한 "오실 이라는 번역은 말 그대로 미래를 나타내는 말인데 원문의 시제는 현재분사이다. 말하자면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 오시고 계시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잘 못된 표현이다. 처음부터 번역자들이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선입관을 가지고 거기에 집착을 한 나머지 지어낸 엄청난 실수인 것이다. 여기서 엘코마이는 "온다라는 뜻이지만 나타나다라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지금도 하나님이 믿는 이들에게 계속에서 현현하시는 사실로 이해를 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이지 하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것 하나만 생각을 해도 이것은 엄청난 실수이다. 아버지께서 심판하시는 권세를 아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에 이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시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이구절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며 계속해서 현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번역을 하고 이해를 하는 것이 정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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