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베랴 바닷가로 나아가자

말씀을 전하기 위해 부산으로 가면서 고속열차 안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어느 장로님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올리고 전화를 받고 인사를 나누자마자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내 입에서 흘러 나왔다.

“장로님 숨을 쉬는 데는 지장 없이 살고 있지요?”
“예!”
그 장로님이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이렇게 통화나 하고 만난지가 오래되는데 마치 갱도에 갇혀있는 광부와 같아 보입니다.”
“장로님 그러면 구조를 해 주셔야지요.”
“아니 구조를 바라는 눈치가 아니고 이제는 갱도생활에 익숙해져서 그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데 구조를 어떻게 합니까?”
“......”
“그리고 구조를 하는 것도 주님이 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건가요?”

말씀을 전하는 시간에 그 장로님과의 대화를 말하면서 세상에 갇히고, 돈에 물질에 일에 갇히고 사람들에게 갇혀서 마치 탄광갱도에 갇힌 광부가 숨만 쉬고 살듯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은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를 말하면서 교인들이 적지 않이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말씀을 다 전하고 나서 그 장로님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양 교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식사를 하면서 교제를 나누며 ‘갱도에 갇힌 심령’ 이 단연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울산에서 오신 목사님이 자신은 일년 동안 갱도에 갇혀서 살다가 왔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장로님이 글을 쓰신 것이 마음에 오해가 되어 시험에 들은 나머지 이 곳 저 곳을 다니며 살아볼려고 노력을 하다가 도저히 안 되서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어도 그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나중에 숙소까지 와서 함께 자면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것이 오해한 것이었음을 알고 마귀에게 속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마다 주님이 만나주심으로 울고 통곡을 하며 회복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보지 못하는 교제의 단절에 들어가고 수많은 사람들은 통화도 되지 않는 단절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쉽게 만나고 통화를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오랜 세월동안 경험을 할 수가 있었다. 주님이 그 마음을 십자가의 복음으로 돌이켜 주셔야한다. 전도와 목회를 잘하고 교회를 크게 하려고 자신의 심령 속에 주님이 부어주신 순수한 주님의 사랑을 목회꺼리로 바꾸어버린 사악함과 교만함을 회개하는 은혜를 주님이 주셔야 한다. 목회를 잘하려고 해도 목회가 안 되는 아픔을 체휼해야 할 만큼 체휼을 해야 주님을 찾게 되는 것이다.
교회성장이나 전도를 잘하고 설교를 잘하는 것이 우선적인가치가 되어서 목회를 했지만 교회성장이 안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임을 알아야하고 전도가 안 되고 오히려 교인들에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의 중심에 서있는 부도덕함을 아파할줄 알아야하며 설교를 잘하고 심방을 열심히 하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하고 은사를 부르짖고 하는 것들이 자기의 욕심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기에 얼마나 허공을 치는 헛된 일들이었다는 것을 아파할줄 알 때에 돌아올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교회가 성장. 한다 저렇게 하면 된다.’는 꼬임에 빠져서 그런 교회들의 들러리나 서고 열두 해를 혈우병으로 앓은 여인과 같이 많은 돌파리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돈만 허비하는 일들이 지금 한국교회에 일어나고 있다. 회개를 하지만 회개가 안 된다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자아비판인지 회개인지 모르겠다는 소리도 들린다. 형식적인 죄자백으로 우상숭배자같은 예법을 행하고 가르친다. 율법주의의 맹세로 사람들의 심령을 황폐화시킨다. 은사를 강조하나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듣는다.

소위 목회를 잘해보려고 여러 가지 목회꺼리를 위하여 믿음을 팔고 영혼을 팔았던 죄를 회개하는 은혜를 주님이 주셔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주님도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지 않았는가?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믿음이 무슨 필요가 있으며 성령이 필요하겠는가?

지혜로운 사람은 할 수 있는 일들과 할 수 없는 것을 재빠르게 분별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는가? 사람이 교회성장의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거룩함도 없고 성령의 역사가 없이 교회가 성장되겠는가? 교회는 주님이 성장을 시키는 것이다. 베드로와 같은 주의 종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다. 베드로가 디베랴바닷가에서 받은 명령은 교회를 성장시키라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지 못하는가? 주님은 그의 사랑을 확인하시고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양을 먹이라’,  ‘내양은 치라’고 말씀하셨다. 자기의 욕심을 사랑하는 자는 교회를 성장시키려는 교만에 들어가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혼을 성장시킨다.

오래전에 훈련을 받고 500명의 교인들이 1200명이 되었다고 자랑을 하던 분이 이제는 교회성장의 욕심의 꼬임에 빠져 날만 새면 이만이천명을 부르짖는다는 말을 듣고 개탄하는 중에 주님이 “얘야 그 이만이천이 기드온이 제일 먼저 돌려보낸 쓸모없는 교인들과 숫자와 어찌 그리 꼭 같냐? 저들이 내용도 없고 믿음도 없는 이만이천을 모아 무엇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라는 음성을 들려주신 적이 있다.

이제는 흑암에서 나와야 한다.
인본주의의 흑암에서 나오고 물질적인 가치관으로부터 온 교회성장주의의 속임수에서 나와야하고 자기는 변하지도 않고 교회를 크게 하려는 더러운 욕심으로부터 헤쳐 나와야 한다. 욕심을 버리고 주님이 처음 만나주셨던, 주님을 부인하고 주님을 버리고 주님을 떠나갔던 제자들 세상이 두려워서 숨어있을 수밖에 없던 제자들 주님의 부활하신 사실마져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던 제자들에게 만나자고 하셨던 그리고 주님이 먼저가 계신 디베랴 바닷가로 나아가야한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거기서 주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베드로와 같이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의 사랑을 저버렸던 죄를 회개하고 다시 시작하는 은혜를 주님께로부터 받아야 한다. 인생은 무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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