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때와 침묵할 때와 징계할 때

어느 정신병원 병동에서 어떤 정신병자가 "I'm God"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옆에 있는 병자가 "I made you" 내가 너를 창조했다라고 말을 하더란다. 이사람들은 정신병자이기 때문에 그런말을 주고 받는다 하더라도 정상인인 사람들이 서로에게 하나님 역할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많은 분쟁과 상처를 주고 받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조금 우스갯소리를 섞어서 말하자면 사람들은 잘못 행하는 사람들을 볼 때에 서로 고쳐주고자 하는 충동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훈계하고 가르치려 하기 때문에 자존심으로 인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할 때에 싸우고 다투는 일이 일어 나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고쳐주려고 하고 아내가 남편을 고치고 싶어한다. 자녀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일일이 간섭을 하고 잔소리를 하며 때로는 부모에게도 이래라 저래라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어찌보면 이는 에덴동산에서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마귀가 하와를 유혹하면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실과를 따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될것이라고 속였다. 그래서 눈이 밝아졌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무슨 눈이 밝아졌는가 남의 허물을 보고 죄를 보는 눈이 밝아진 것이다. 이는 저주인 것이다.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분리가 되었다. 사랑의 하나님을 상실하고 하나님의 살ㅇ을 잃어버린 가운데 남의 죄가 보이는 것은 괴롭고 너무나도 악한 것이다. 그죄와 허물을 덮어줄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은 자기마음대로 한다는 말이다. 마귀의 종노릇을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결국에는 마귀가 좋아하는 일만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마음대로 결혼하고 자기마음대로 이혼하는 일들이 있다. 그런가하면 서로에게 하나님노릇을 하려고 훈계하고 가르치고 고쳐주려고 애를 쓴다. 자기불량품도 고치지 못하면서 아내불량품을 고치려하고 남편의 불량품 인격을 고치려고 애를 쓴다. 아이들이 고쳐지지 않는다고 무리하게 압박을 하다가 정신적인 데미지를 끼치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고 귀신도 들리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랑을 해야하는데 어떤때는 상대방이 부담을 가지도록 사랑을 하는가 하면 어느때는 무관심으로 상처를 받게 하기도 하고 어떤때는 너무나 억압을 해서 기를 죽임으로 안사람의 인격으로서 자존감을 파괴하기도 하고 어떤때는 너무나 기를 살려 주어서 교만한 인격으로 발전을 시키기도 한다. 도무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부부간에 사랑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도 힘들어 보인다.

자녀들이 가출을 하고 싶을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첫째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무관심의 대상이 될 때에 칩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가 하면 너무나 관심이 지나쳐서 부담스러울때에도 집을 나가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게 된다. 아마도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가는 이유도 이와 같을 것이다. 교회가 자기에게 무관심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말에만 그친다는 것을 아는순간에 교회를 떠나간다. 그런가하면 교회에서 목사님이나 교인들이 관심이 너무나 커서 부담스러워 견딜수 없을 때에 교회를 떠나가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소금으로 고루게함같이 사랑하는 길은 없을까? 어찌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문제를 안고 평생을 살아가면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좌충우돌을 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어떻게 고침을 받을지를 알지 못한다. 왜 그런가 성령으로 세밀하게 인도함을 받는 생활을 배우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말한마디를 해도 성령이 입을 열게하시는 인격으로 변화되는 경건생활을 배우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앞에서 살면 상대방도 하나님앞에서 사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앞에서 살면 자녀들도 하나님앞에서 사는 것이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자녀가 내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며 남편의 인격적인 주권이 남편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아내에게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요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사람의 생활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사람이 사람을 주관할수 없는 것이다.

먼저 말했던 각사람이 하나님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는 말이 사람을 주관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한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피차에 오류를 범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집사님의 가정을 방문해서 교제를 하는 가운데 얼마전에 군에서 제대한 집사님의 아들과 대화를 나누는중에 부대가 집에서 가까워서 좋았겠다고 말을 했더니 여동생인 집사님의 딸이 말하기를 "오빠는요 외박을 나올때마다 엄마하고 싸우고 갔어요"라고 말을 했다. 아니들이 없을 때에 말을 하는 것도 사랑이지만 말을 해야할 때에 말을 하지 않고 참는 것도 사랑이라고 말을 해주었더니 요즘에 와서야 많은 시행착오를 범한후에 깨닫는다는 말을 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후)

이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인데 우리는 사람을 향하여 부지불식간에 소유적인 사랑을 하고 소유권을 확인하려하며 주권을 행사하려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이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생활의 현장에서 순간 순간마다 우리로 하나님 역할을 하도록 유혹하는 마귀의 속임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남에게 실망을 당하기보다는 자기자신에게 실망을 당하는 훔련을 날마다 받으면서 가난한 심령의 복을 받아야 한다. 남의 허물을 아파하기 보다는 자기의 허물을 아파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대하시고 나에게 어떻게 하시는지를 경험하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데에 친숙해져야 한다. 그때에 타인에게 내가 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다리고 그일을 체득함으로 내안에 있는 하나님의 질서와 평안을 가정에서 교회에서 또는 직장에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누리게하는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하나님 말씀하실 때도 있고 침묵하시기도 하시며 때로는 필요에 의해 장계하시기도 하신다. 항상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침묵하실 때도 있다. 침묵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징계하시고 때리시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언제 말씀하시는가? 그리고 언제 침묵하시는가? 그리고 언제 징계를 하시는가?

그의 자녀들이 몰라서 죄를 지을 때에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들을 때까지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신다. 같은 말씀도 반복해서 하신다. 하나님은 말씀이시기 때문이다. 말해야할 때에 결코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런가하면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죄인줄을 아는데 그것을 이길 힘이 없어 죄를 지으면서도 아파하고 고통할 때에 침묵하시고 기다리신다.

그리고 언제 징계를 하시는가 하면 그의 자녀들이 알면서도 죄의 길을 고집하며 고범죄를 지을 때 죄의 습관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 나오지 못할 때에 징계를 하심으로 죄를 떠나게 하시는 사랑으로 역사하신다.

하나님아버지에게는 말씀하시는 것도 사랑이요 침묵하시는 것도 사랑이다 그리고 징계하시고 채찍질을 하시는 것도 사랑이다.

하나님의 잔인 우리들도 이와같은 아버지의 사랑을 체휼함으로 말미암아 남편에게나 아내에게 또는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닮은 모습으로 말할 때에 말하고 침묵할 때에 말하지 않음으로 사랑하고 징계할 때를 지나쳐 가지 않는 지혜와 성령의 감동하심이 항상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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