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준비하시는 거예요?”

“아니요.”

      

다들 잠을 자는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디스가 말을 걸어 왔다. 아마도 오가면서 내가 작업하고 있는 컴퓨터 화면을 주의 깊게 보았나 보다. 그리고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서 자기 어머니도 교회를 다니며 원어 공부까지 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에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말해주면서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믿는 가정에 태어나서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교회를 다닐 수밖에 없었으며, 그래서 나는 믿음이 없는 가짜로 교회생활을 하면서 중등부 회장과 고등부 회장 그리고 청년회 회장 주일학교 교사와 성가대 등을 했으나 나에게 믿음이 전혀 없었으며 내가 인생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하나님이 없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다가 주님을 만나고 나의 생활이 변화된 일들을 소상히 이야기했다. 올해 서른일곱 살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스튜어디스는 급한 마음으로 이렇게 물어봤다.

“저도 교회를 나가야 하는데요, 여기 같이 가시는 목사님들은 어느 교회예요?“

그녀는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증오에 대상이 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 가운데서도 40년 전부터 직장에서 교회를 욕하는 자들에게 나를 변화시킨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변화시킨 사실들을 흥미롭게 들었다. 내가 간증을 할 때는 거의 울듯이 몇 번이나 울컥하면서 말을 했다. 이렇게 주님은 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를 한 영혼을 위하여 쓰시는 일을 하셨다. 참으로 마음속이 시원할 정도로 주님이 역사하신 순간이었다.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밤 두시 반에 우리를 발리 공항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호텔 체크인을 하고 네 시쯤에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두 시간 후인 여섯 시에는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서둘러 하고 집회장소로 향했다. 매일같이 여섯시에 일어나서 밤 열시에 돌아오는 강행군이 나흘 동안 이어졌다. 숙소에서 집회 장소는 40분 거리이지만 길이 막히면 두 시간도 더 걸릴 때도 있었다. 아침 아홉시부터 두 시간은 목회자들에게 말씀을 두타임을 전했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하고 같이 동행한 목사님들의 목회 간증이 이어졌고 저녁에는 각 교회 교인들이 모여서 연합집회를 했다. 참석자들은 목회자가 50여명 그리고 밤에는 120명 정도가 꾸준히 참석을 했다.

     

오전 첫 시간에는 사도행전 2장의 교회를 상고하면서 지금의 교회와 확실히 다른 점에 대해 말씀을 전하면서 여기저기서 울고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났다. 목사님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그들은 자기들의 목회와 다른 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충격을 받기 시작했으며 저녁시간에는 두 가지 생명을 전하면서 십자가의 복음 앞에 숨을 죽이고 말씀을 들었다. 그들은 시간마다 퍼포먼스 같은 복음성가들을 요란스럽게 했고, 그때마다 복음성가가 얼마나 공허한지를 말씀을 들어가며 전했다.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는 것과 다른 이율배반적인 가정생활과 사생활을 지적하고 책망하는 일들이 날마다 계속되면서 교회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창세기 3장에서 잃어버린 생명을 다시 찾아 주시기 위해서, 그리고 그 생명을 잃어버림으로 상실한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찾아 주시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열심과 사랑을 전하고 영생과 상관이 없는 교회생활의 위험과 하나님나라를 살지 못하는 교회생활의 허구를 전했다.


둘째 날, 낮 시간부터는 사람들이 사뭇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씀이 끝나면 울고 기도하느라고 한참이 지나도 자리를 좀처럼 뜨지 않는 일들도 일어났다. 오후에 간증한 목사님들을 찾아가서 고맙다고 감사를 표하기 시작했다. 노충기 목사님의 간증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특별히 사모님이 노 목사님에게 쓴 편지에 평생 안 변할 것 같은 목사님이 변화되었다고 인정을 하는 대목에서 사람들이 목회보다도 자신들이 변화되어야한다는 사실에 큰 부담을 가지기 시작을 했다 그리고 오전의 말씀도 “변화되어야 한다”는 메세지에 초점을 맞추어 계속 말씀이 주어졌다. 이명희 목사님의 간증이 끝나고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안아주고 사랑을 나누고 같이 울기도 하는 등, 은혜를 받은 모습이 역력해졌다. 어떤 분은 찾아 와서 말하기를 육십 평생에 이렇게 죄를 회개하고 자백하는 간증을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노라고 큰 은혜를 받았다며 사례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저녁시간은 사흘 동안 집회를 하였는데 십자가의 구속의 복음과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하여 성령을 받은 특권과 축복에 관하여 말씀을 전하고 성령을 순종하여 사는 생활, 세상을 버리고 헌신되고 구별된 생활을 사는 것에 관한 말씀을 전했다. 나는 40년 동안 텔레비전을 안보는 것을 말하면서 한류드라마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야 함을 전했다.

 

가인과 아벨에 말씀을 전하면서 나는 23년 동안 교회를 다녔던 가짜임을 상세히 설명을 하면서 여러분들도 가짜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을 전했다. 말세에 바벨론 교회의 실상을 전하면서 세속화된 교회를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에 대하여 전하고 나는 찬송을 직장에서 부르고 길에서 불렀다고 했다. 사도행전 2장의 교회는 하나님을 찬미할 만큼 그들은 변화된 삶을 살았고 그들이 찬송했을 때에 예루살렘의 온 백성들이 칭송을 했고, 그 결과로 주께서 날마다 믿는 자들의 수를 더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났다고 전하면서 오늘날은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고 여러분들이 변화되면 집에서 길에서 시장에서 직장에서 찬송을 부르고 다니게 되면 힌두교들이 예수를 믿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변화 받은 생활로 찬송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마 여러분들은 힌두교도들이 완악할 것이라고 하겠지만 예수님당시에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수없이 잡아다가 죽인 것을 말하면서, 그래도 그때에 유대인들보다는 지금의 힌두교도들이 훨씬 온유하고 부드럽다고 말씀을 전하면서 힌두교도들 사이에서 찬송할 수 있고 그들에게 칭송을 받을 수 있는 생활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함을 말씀을 전할 때에 그들은 변화 받지 못하고 교회만 다니고 교회일 만을 열심히 한 자신들을 아파하며 울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교회에서만 잘하고 집에서나 개인생활은 엉망인 것을 아파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또 아무리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도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거나 세상 친구들을 만나고 세상의 이야기를 들으면 받은바 은혜가 다 새어 버린다며 ‘새는 바가지’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였다.

그런데 그 시간이 끝나고 같이 간 목사님 중에 한분이 나를 찾아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장로님 제가 새는 바가지의 원조입니다.”

“그렇게 많은 은혜를 받고도 다 새어버리는 생활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아픔을 가지고 고백을 하기도 했다.


셋째날 아침 시간이었다.

주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을 말하면서 에릭리들의 불의 전차를 전하는데 갑자가 통역이 끊겼다. 그리고 통역을 하던 목사님이 “헉”하고 소리를 내더니 울기 시작했다. 나도 그분이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지만 그분의 사모님이 앞에 앉아 있다가 바닥으로 철퍽 주저앉아서 울기 시작했다. 나중에 들은 사모님의 말씀이 자기 남편이 그렇게 우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회중은 더 격하게 울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 되는 은혜가 임했다. 


여기서는 도무지 은혜를 받지 못하던 49세의 주의가 산만한 집사님을 은혜라도 받게 해야겠다 싶어서 데려 갔는데, 처음에는 말씀 시간에 들락날락하더니 그도 시간이 갈수록 차분하게 말씀을 듣더니 십자가를 말하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점차 눈물을 흘리며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일도 일어났다.  

    

“우리에게 신학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신앙생활이 필요합니다.”

이 말은 집회가 끝나고 어느 인도네시아 목사님이 부르짖다시피 한말이다. 한국의 어느 장로교 교단에 목사들이 석 달에 한번 씩 와서 세미나를 하는데 그들은 신학을 가르치고 강의를 한다고 한다. 그와 비교해서 인도네시아 목사님들이 이번 집회에서 받은 은혜를 표현한 것이다.

     

마지막 시간이 끝나고 예배당에서 아래층으로 내려 왔는데 어느 목사님이 나에게 왔다 그 목사님은 목회자 모임의 회장이라고 했다. 그분의 사모님이 첫날 세상 무대에서처럼 복음성가를 인도했었다. 그 사모님은 내가 복음성가가 그릇된 것을 말하는 것에 대해 첫 시간에 받지 못했는지 말씀이 끝나고 목사님과 함께 기도도 안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오전부터는 화장도 하지 않고 말씀을 들으며 흐느껴 울었고 그 목사님도 같이 울고 기도했다. 그 목사님이 나에게 오더니 겸연쩍게 웃었다. 그러자 옆에 있는 목사님이 무엇을 하려는 것을 알았는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영어를 조금밖에 못합니다.” 그리고 나서 나에게 가까이 온 그 목사님이 아이패드를 꺼내더니 무엇인가를 타이핑했다. 그러자 인도네시아말로 쓴 글 위에 영어가 나타났다. “Pray for us to keep going this Seminar in Bali.” (발리에서 이 세미나가 계속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나를 쳐다보고 웃었다. 나도 그분을 쳐다보고 웃었다. 그리고 눈으로 인사를 하면서 고개를 끄떡였더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꼭 바보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좋아 했다.

      

그리고 현지목사님들 사모님들과 같이 25명이 식사를 했다. 계획에 없는 것이었으나 끝나는 시간에 몇 사람만 하기로 했는데 얼마가면 되겠느냐고 묻기에 많을수록 좋다고 했더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사람들은 돌아가고 시골교회 전도사 부부까지도 같이 식당에 갔다. 식당은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식당으로 하라고 했더니 생선을 장작불에 구워서 요리를 하는 식당으로 갔다.

       

거기서 어느 젊은 사모님이 간증을 했다. 자기는 한국에서 온 강사들이 복음성가를 같이 부르지도 않고 또 시간마다 복음성가를 부르면 안 된다는 말에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어서 말씀을 들을 때에도 마음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말씀을 들어보니 자기들이 정말 복음성가를 멋들어지게 부르고 집에 가서 사는 것은 그와 정반대로 살았다는 말씀이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말씀을 들으면서 복음성가가 혼적인 것이어서 자기를 위한 것이며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과 찬송은 생활과 간증으로 불러야하며 승리생활이 없이 찬송을 부르는 것은 회개찬송이 아니면 하나님 앞에 가증하다는 말씀들이 다 맞다는 생각이 들고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했다고 하는 간증을 했다.

       

어느 목사님은 “전도는 쉽다” 책의 영문판을 자기가 번역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다. 그 이유는 거의 대부분이 영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를 의욕적으로 질문을 하면서 자기들도 복음성가보다는 찬송가를 더 좋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준비기간이 너무나 짧아서 의사소통이 부족해서 복음성가를 그렇게 열심히 불렀다며 부끄러워  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자기들이 찬송가를 준비해서 부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 다시 이 세미나를 할 수 있느냐고 성급하게 묻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 해라고 했더니 어느 목사님은 “다음 해 언제입니까?” 라고 물어왔다. 빨리 했으면 하는 갈망의 눈빛이 역력했다.

    

발리를 떠나서야 룸 매니저가 방값을 할인해 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방청소를 하지 않았기에 항의를 했더니 미안하다며 식사 한 끼를 대접해주었는데 방값과 식사비가 너무나 적게 나와서 살펴보았더니 미화로 오백 불 가량을 할인해 주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세밀하심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았으며 순간순간마다 주님이 내 생각을 다스리고 할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가르쳐 주시고 예화하나도 그 때 그 때 생각나게 해주시는 은혜를 받았다.

       

나도 시간마다 은혜를 받아 울면서 말씀을 전했으며 그들도 울면서 말씀을 듣고 주님을 만나고 뵈옵는 은혜를 받았다. 여러 번 해외 집회를 하였지만 이와 같은 은혜를 받은 적이 전무했다. 창세기를 공부하면서 교회론이 확실해진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신학자들은 창세기의 생명을 거의 알지 못하는 수준이다. 두 가지 생명은 많은 목사님들도 협회에 와서 처음 들었다고 했다. 영생의 개념이 빠진 창세기는 창세기가 아니다. 하나님은 자연세계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생명 곧 영생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창조하신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생명을 다시 찾아 주시고 그 생명으로 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시고 여자의 후손인 그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성령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의 다스림을 받으며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이지 교회만 다니는 것이 아니고 종교적인 의식을 수행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세워진 교회가 이제는 그 능력도 기능도 거룩함으로 세상과 구별된 것도 다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급기야 이제는 세상죄인들에게까지도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될 정도로까지 추락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는 하나님이 이와 같이 타락한 교회를 닫으시려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러는 중에 그의 백성들을 타락한 교회에서 빼내시는 일을 하시는 것이다. 고칠 수 없는 교회는 버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혼을 위하여 세운 교회는 고치지 못하고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면 항상 버리셨다.

       

아담의 교회는 노아의 홍수로 버리셨다.

노아의 교회는 아브라함을 택하심으로 문을 닫았다.

아브라함의 교회는 애굽으로 감으로 문을 닫았으며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의 교회, 곧 구약교회는 예수를 죽이고 그 운을 다했으며

이제는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한, 신약교회가 타락한 것을 요한은 계시록에서 바벨론 교회라고 말하며 이제는 주님이 그 문을 닫으시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와 같은 바벨론 교회 안에 있으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이 백성들에게 거기서 나올 것을 명하신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18:4)

 

 생명이 없고 하나님 나라의 생활을 살지 못하는 교인들로 가득한 교회를 다니면서도 아픔이 없는 사람들이 무수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와 같은 사람들과 단 한 시간이라도 어울리는 것이 재앙이다. 더군다나 목사나 장로들이 영생이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믿음이 없는 교회를 다니는 것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재앙이며 그와 같은 교회는 성도의 교제가 아니라 세상의 교제와 육적인 친구, 그리고 죄에 참예하는 사귐만이 있을 뿐이며 그것은 많은 재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주님은 그와 같은 불필요한 고통과 재앙이 그의 사랑하시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전 세계 교회가 타락하고 병든 이때에 하나님은 이 사역을 통해서 그의 백성들을 바벨론 교회에서 나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과 인격이 있고 하나님 나라의 생활을 사는 세상가치에 물들지 않고 순수한 성도들의 사랑의 사귐이 있는 예루살렘 교회로 빼 내시는 때를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일이 어떻게 진전이 될지가 더 궁금해 졌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운 것이 분명한 이때에 우리는 비상식량이나 은신처를 준비하는 육신만 위하는 재림을 준비하는 어리석은 자들과 같이 되지 말고 신랑을 위하여 거룩함으로 단장하고 그의 맡기신 일에 죽도록 충성함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주님 앞에 아름다운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발리에서 새벽 두시 반에 이륙한 비행기를 타고 일곱 시간을 오면서 세 시간 정도 잠을 자고 나머지 시간은 그들의 순수한 눈망울들이 내 앞에 나타나서 계속 울면서 눈물을 훔치면서 왔다. 지금도 그들의 은혜를 받고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떠 올리면 눈물이 저절로 난다.

          

필요한 비용도 헌신된 분들을 통해 부족함이 없이 채워 주시고 모든 필요를 채우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신 주님을 다시 한 번 찬양을 하면서 이와 같은 주님의 일을 인도네시아의 일이나 또는 협회의 일이나 사람의 일로 생각하지 않고 각각 자기의 일로 생각을 하고 같은 마음으로 기도해 주신 분들과 또 귀한 예물을 드려 주님을 기쁘시게 한 모든 분들에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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