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심플하고 쉬웠던 요한계시록 사경회

 

“계시록이 이렇게 심플하고 쉬운데...”

 

부산에서 온 어느 목사님이 잘못된 종말론을 가르치는 이단인 스룹바벨인가 하는곳에 빠졌다가 주님의 은혜로 극적으로 돌아와서 지난번 예수전도협회 계시록 사경회에 참석 하게 되었는데 시간 시간마다 은혜를 받고서 쉬는시간이면 상기된 얼굴로 “허~ 게시록이 이렇게 쉬운데... 천지개벽할 일입니다. ”라고 탄성을 지르다시피 거듭해서 고백을 하곤 했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목사님 저 정말 잘왔지요? 우리 주님이 버려 마땅한 죄인을 외면치 않으시고건져주셨으니...달리는 열차로 말하면 통일호도 올라타기가 쉽잖은 일인데 새마을호도 아니고 ktx에 테워주신 셈이 아닐까요! 주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이 놀라워요”

 

그의 말과 같이 예수전도협회의 계시록 사경회는 항상 그랬듯이 은혜에 감사와 회개의 사경회였다.

 

다른 곳에서는 예외없이 공부만 하고 적그리스도를 보고 짐승을 보고 짐승의 표를 논하고 다가온 종말을 보고 전쟁의 두려움과 멸망과 버림받을까하는 두려움을 주는 종말론이지만 예수전도협회의 요한계시록 사경회는 주님앞에서 나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사경회이기 때문에 은혜를 받고 회개하고 통회자복하고 심령을 회복하게 한다.

 

“이런 요한 계시록 사경회는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힌때 요한계시록을 연구하고 가르치기도 했다는 어느 목사님의 고백이다. 그는 배울때도 두려웠지만 가르치면서도 무서웠다고 고백을 했다. 그는 한 때 화난이 오면 그 때에 자기의 육신이 살겠다고 육신을 위해 비상식량으로 누룽지를 준비했던 사람이었으나 그것이 영적인 준비도 아니요 믿음의 준비인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받고 즉시 버리고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었던 사람이었다.

 

계시록의 말씀도 다른 성경과 같이 말씀은 빛이지 어두움도 혼란도 아니다.

말씀은 어두움과 두려움을 몰아내는 빛이다

 

특별히 나에게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기쁨과 놀람과 감사와 눈물의 계시록 사경회였다. 회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거짓된 것들이 빛가운데 드러나 여지없이 박멸되는 일은 너무나 통쾌한 일이 아닐수가 없다.

 

강사인 이유빈장로가 지난 2년동안 수백권의 원서를 읽어가면서 수백년동안 500명이 넘는 종말론 학자들의 견해를 다 살피고 그중에서 영감이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성령이 감동을 주시는대로 푸는 요한계시록은 마치 오늘날 종말론의 오류로 가득한 현실 속에서 보화를 건져 내는 것과 같이 귀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종말은 하나인데 종말론은 여러 가지다.

이는 있을수 없는 일이다.

 

George E. Kouri 와 Richard Hogue 의 공저인 하나님나라의 징조(The sign of the kingdom)의 머릿말에 이런말이 있다고 한다.

 

“교회는 주님이 말씀하신 종말론을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하면 자기의 것을 발명하고자하는 유혹을 받는 것이다.”

 

이번에는 특히 적그리스도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주님이 무섭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였다. 주님과 안맞는 교회들은 적그리스도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주님을 두려워 해야 한다. 사실 세속에 빠진 교회와 성도들은 적그리스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적그리스도 친화적인 부류들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오히려 적그리스도가 좋아하지 않을까싶다는 말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번사경회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요한 계시록을다루는 신학자들의 중대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이계시를 주께 받은 요한과는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에 치명적이며 그러기 때문에 오류를 양산하지 않을수가 없다는 말이다.

 

1. 요한은 복음전도자였는데 그들은 영혼을 건져내는 전도자가 아니다

2. 요한은 하나님나라의 생활을 살며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했는데 그들은 거의 대부분이 하나님나라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3.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전도로 고난을 받았는데 그들은 대부분이 말씀과 전도로 인한 고난과 핍박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4. 요한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아는 사람이었으나 그들중에 대부분은 교회를 모르는 학자들이었다.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한국에서도 종말론을 가르치는 데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하는 어떤 사람도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외치길래 강의를 수강하는 어느 목사님이 지적을 했다고 한다.

 

“목사님은 그렇게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하면서 왜 전도를 안합니까?”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을 하더란다.

 

“아 그러지 않아도 그게 약해서 제가 전도를 좀 배우려고 합니다.”

 

그가 전도를 모르는 것이 분명한 것은 전도가 어디서 배워서 하는 것인가? 전도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접붙인 가지로서 전도하고 열매를 맺는다는 기본적인 성경의 원리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괄목할만한 것은 요한계시록의 조감도가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참석한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요한복음이 간결하고 쉬운데 괜히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었다며 그동안의 무지를 아쉬워 했다.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1:19)

 

이말씀을 요한 계시록의 요절로 볼 때에

 

“네 본 것”은 1장에서 본 주님의 모습이다.

 

“이제 있는 일”은 2장과 3장에서 말하고 있는 교회의 현실이다.

 

“장차 될 일”은

4장과 5장의 어린양이 보좌에 앉으신이로부터 왕권을 받는 장면과

6장부터 11장의 세계역사의 진행과

12장부터 마지막 22장까지의 교회역사의 진행인 것이다.

 

이번에 처음 참석을 한 어떤분은 그동안 계시록을 깊이 연구했는데 예수전도협회홈페이지에 올라온 요한계시록에 관한 글들을 읽으면서 “아 이견해가 맞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석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가지 듣고 배우고 생각한 것과는 너무나 다른 말씀에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몇몇 목사님들과 고통을 하는 가운데 밥을 먹는 시간이나 잠을 자는 시간에 먼저 깨우친 목사님들이 열심히 돕고 설명을 하면서 점점 지식의 어두움의 터널을 빠져 나오면서 얼굴빛까지 환해지는 것을 보았다. 또 미흡한 것은 그다음강의 시간에 주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도 많이 있었다. 우리도 그랬지만 이미 선점된 지식을 버리지 못하여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요한계시록을 전혀 하지 않은 목사님들이 얼마나 행복해 보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의 종말론으로 요한계시록이 더 분명해지는 역사도 있었다. 저희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만 너희에게는 그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는 말은 참으로 위로가 되는 말씀이 아닐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희와 너희의 구분이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이하의 말씀에 있으며 그말씀을 풀어줄 때에 그렇게 살지 못한 내모습을 보고 통회하고 자백하며 용서를 구하고 잘살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부르짖는 은혜가 있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기도하라는 너희들인 성도들의 삶의 내용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다.

 

성령을 소멸치 말며는 성령충만하라는 말씀이다.

예언을 멸시치 말고는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순종하라는 말씀이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는 말은 범사에 꼼꼼히 살펴서 내영혼에 유익이 되는 것만을 취하되 빨리 붙잡으라는 뜻이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은 내영혼에 해가 되는 것은 모양만 그렇게 보여도 끊으라는 말씀이다. 이렇게 살 때에 항상기뻐하는 삶을 살으며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성도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하나님의 목적이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까지 온전하게 보전하시고자 하심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는 말씀에서 부르심은 알파요 이루심은 오메가라는 말씀에 엄청난 은혜가 임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주님은 부르셨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를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미쁘신 주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너희”인 우리에게는 그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두려워 하는 것이 불신앙이요 죄인 것이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動心)하고나 두려워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살후 2:1,2)


끝나는 시간에는 천국에서 만나보자를 하면서 울고 통곡하고 사랑을 나누었다.

 

주님 은혜 감사합니다.

 

                                                                                                                                주의 은혜로 용서받은 죄인 등대교회 김선문목사

(*.8.21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