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엔가 나의 마음속에 주님의 작고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얘 찬송가는 나를 찬송하는 것이고 복음성가는 성도의 생활을 찬송하는 것이지만 현대복음성가는 아주 악한 것이다.”

……

왜, 그런지 아니? 그것은 단지 사람의 생각을 노래하는 것이기 때문이야.”

 

그렇다. 찬송가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찬송하고 그가 우리를 구속하신 일을 찬송하는 것이다.

통일찬송가 1장부터 53장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찬송가로 되어 있다.

만복의 근원 하나님, 복의 근원 강림하사, 거룩 거룩 거룩등의 노래들을 가리켜 찬송가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전의 통일찬송가에는 복음성가도 있다. 복음성가는 믿음으로 사는 성도의 생활을 노래하고 성도의 기도와 기원을 노래하는 것이다.

내 주를 가까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샘물과 같은 보혈은, 나의 죄를 씻기는, 먹보다도 더 검은등의 노래를 복음성가라고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안에서 부르고 있는 현대복음성가(CCM)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도 아니고 성도의 생활을 노래하는 것도 아닌 단지 생각을 노래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노래하고 신앙생활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도 노래하기에 부담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생활이 없는 사람들도 노래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아니 오히려 그 영혼이 구원 받지 못해서 하나님이 없고 또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활이 없기 때문에 영적인 실재가 없는, 생각만을 노래하는 노래가 그들에게는 맞는 것이 되는 것이다.

 

물론 통일찬송가에도 생각을 노래하는 것들이 있다. “온 세상 위하여라든가 부름 받아 나선 이 몸같은 것들은 생각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그들만의 생각을 노래한 CCM을 부른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아무리 이스라엘이라 해도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그의 임재가 없으면 자기들의 생각을 노래하는 황당함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사건은 오래전에 광야에서 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세와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더디 내려옴을 보고 아론에게 이르기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고 한다. 아론은 그들에게서 금고리를 받아서 부어 각도로 새겨 금송아지 형상을 만든다. 그리고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고 공포한다. 그리고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라고 공포한다. 다음날 그들은 일찍이 일어나서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뛰 놀았다. 하나님은 진노하심으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들을 진멸하고 모세로 큰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나 모세는 백성들을 진멸하시기로한 주의 뜻을 돌이키시도록 중보기도하고 증거의 돌판 둘을 들고 산에서 내려온다. 그 때에 진중에서 떠들며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호수아가 먼저 들었다. 그리고 모세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호수아가 백성의 떠듦을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32:17)

 

그러자 모세가 그 소리를 듣고 말한다.

 

모세가 가로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나의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32:18)

 

하나님의 교회는 영적인 군대이기 때문에 마귀와 싸워서 승리한 승전가를 부르는 것이다. 이기지 못하고 패배했으면 패배를 불러온 자기들의 불순종을 아파하며 부르짖는 회개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교회는 승전가를 부르든지 아니면 회개하는 노래를 부르든지 둘 중의 하나를 부르는 것이다. 그밖에 모든 노래는 모세가 말한 사람의 노래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도 없이,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활의 실재(實在)도 없이, 단지 하나님께 대한 그리고 신앙생활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노래하는 것은 옛날에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불렀던 사람의 노래이다. 그들은 사람의 노래를 부르면서 스스로 흥분시켜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느끼기 위하여 춤을 추고 흥분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복음성가만 부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여 손을 들고일어나서”, “몸을 흔들며노래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모세는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보고 대노함으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어 버린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사람의 생각을 노래하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생각이나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할 리가 없다. 그들의 공통점은 영적인 실재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듣고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이 없다. 회개는 하지만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없다. 찬송을 부르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즐거움을 위하여 노래한다. 기도를 하지만 응답이 없고 기도의 행위로 자기의 위안을 삼는다.

 

오래전에 훈련을 받은 목사님 한분이 있었다. 훈련받을 때의 은혜가 사라지고 나자 그는 공허함을 이기지 못하여 복음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교회 안에 어느 택시기사를 하는 집사님 부부는 복음성가를 신앙 양심상 부를 수가 없어서 때마다 같이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불편함을 느낀 그 목사님은 그 집사 부부를 쫓아내고 다른 교회를 가라고 했다. 하나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불러낸 비극인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도 아니고 믿음으로 사는 생활을 노래하는 것이 아닌, 단지 생각을 노래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악한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헛된 맹세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즉시 제일 먼저 유대인들의 거짓 종교(false religion)의 악함을 책망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5:33-37)

 

생각을 말하는 것은 헛맹세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생각을 노래하는 것은 사람에게 맹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맹세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맹세를 하는 것은 악한 것이다. 왜냐하면 행하지도 않고 행할 마음도 없고 또 행할 능력도 없이 하는 것이 헛맹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송가도 아니요, 생활을 찬송하는 복음성가를 부르는 것도 아니요, CCM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 헛맹세를 노래로 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순종을 하는 생활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생활을 살면서, 단지 그랬으면 하는 마땅한 생각만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을 우롱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노래로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를 노래하면서 그렇게 살지는 못하고 그렇게 노래만 하다가 죽은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우리 왕이여라고 노래하면서 실제 생활 속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사는 자기가 왕인 생활을 사는 이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런 사람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지만, 가정에서 직장에서 불신자들 앞에서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할만한 생명이나 생활이 없기 때문에 단지 생각을 노래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를 따라가는 생활이 전무한 사람들이다.

 

나는 23살의 나이에 처음 예수를 믿고 내 일생에 처음만난 하나님아버지에 대하여 아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 아버지가 알고 싶어서 하루 종일토록 성경말씀을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말씀이 많이 깨달아지는 은혜가 나에게 임하면서 문득 두려운 마음이 생겨났다.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열 개를 깨닫고 하나만 행할까 두렵습니다. 하나 깨닫고 하나 행하게 하옵소서.”

 

어떤 때는 말씀이 많이 깨달아지는 것이 부담이 되고 무섭기까지 하여 더 이상 성경을 읽지 못하고 울고만 있을 때도 허다하게 많았다. 열 개를 깨닫고도 아홉 개를 행하고 하나를 행하지 못하면 그것은 불순종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머리로 가고 지식이 되고 생각이 될지언정 나의 생활과는 상관이 없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도 그와 같은 악함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5:19-20)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는 자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23:2-4)

 

그들에게 있어서 말씀은 가르치는 재료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해야할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랍비라 칭함을 즐기고 선생이 되는 것을 좋아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이 없고 말씀을 지식으로만 생각으로만 아는 것이 영지주의의 정확한 정의이다. 지나간 오랜 세월 동안에 영지주의에 대하여 여러 가지 개념도 많고 학설도 말도 많지만, 영지주의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이 없이 말씀을 지식으로만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의 입술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생각에는 있지만, 그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은 없다. 모세가 말한 대로 말씀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30:9-14)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을 노래하는 것은 영지주의의 노래이다. 자신이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을 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을 분명히 알고 또 그렇게 살고자하는 소원도 없이 허망하게 드려지는 것이 영지주의의 노래인 것이다. 입에 있는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마음에 있는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기망하는 것이다. 그것은 불경스러운 것이며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이나 노력을 요구하신 적이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일방적인 은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중심에 진실함만을 요구하신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51:6)

 

중심에 진실함이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죄를 사하여 주시고 나타나시며 가까이하여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우선적이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빛 앞에서 우리의 삶을 조사받아서 거짓되이 말하고 노래하고 가르친 것이 단하나라도 있는지 깨닫는 은혜를 구하고 회개하여 용서하심을 받고 고침을 받는 은혜가 임하여야 한다.

 

그리고 헛된 생각을 노래하는 자가 되지 말고 한 소절을 찬송하더라도 생각을 노래하지 않고 사실을 찬송하는 은혜를 받자. 곧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께로 가까이 가기를 소원하며 주와 함께 사는 생활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는 은혜를 받자.

 

주님, 이글을 읽은 모든 이들에게 그렇게 되게 하시는 은혜를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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