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님 이전에 훈련받았던 많은 분들이 다시오면 좋은데 그들이 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20여년 전에 세미나에 간증을 하시던 집사님이 나에게 질문한 말이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그때에 받았던 은혜를 다 잃어버리고 20년 동안 사업을 한다고 하면서 죄 가운데 살던 중 남편 장로님이 지난해 9월에 있었던 추석사경회에 참석하여 말씀을 듣고 주 안에 거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되는 생활에 은혜를 받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한다. 남편 장로님이 가지고 있던 개인적인 문제들이 다 주님이 해결해 주심으로 저절로 풀어지고 난관에 봉착해 있던 사업문제도 저절로 풀어지는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자녀의 문제가 해결되는 은혜를 받으면서 남편의 변화와 가정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지난 1월부터 월요성경학교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이십 년 동안 암흑기를 지나면서 이전에 받았던 잃어버린 은혜를 다시 찾기 위해 다짐도 수없이 하고 계획도 수없이 세우던 것이 다 물거품이 되었으나 이,번에는 계획도 없었고 무슨 결심도 없었는데 값없이 주시는 주님의 은혜로 남편 장로님이 은혜를 받는 것부터 모든 것이 다 저절로 되는 은혜를 입었다고 한다.

너무나도 힘이 들었던 교회생활도 주님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이제는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없었던 주일이 기다려지는 은혜가 회복되고 예배 때마다 주님이 찾아오셔서 만나주시는 은혜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자기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회복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고 했다.

아마도 훈련을 받은 이들은 이 은혜를 알기 때문에 다시 찾고 싶을 텐데 왜들 주저앉아 있는지 안타까운 마음에 그렇게 나에게 질문을 한 것이다.

 

나는 각 사람의 형편과 처지를 잘 알지는 못해도 짐작이 가는대로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그때에 은혜를 받은 분들이 전도가 최고의 가치인 것처럼 생각하고 전도를 하다가 은혜가 빠져 나가니까 언제부터 전도가 행위가 되었겠지요. 그리고 그것이 율법의 행위가 되니까 전도를 중단한 것이 죄스러워서 미안한 마음에 못 올겁니다.”

 

그러면서 사실 우리는 처음회개할 때에도 미안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온 죄인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온 것이 다름이 아닌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하는 마음으로 나온 것이 아닌가?

주여 주여 내말 들으사 죄인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라고 두 손을 들고 울면서 불렀던 그 은혜가 주님이 반겨 맞아주시는 은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은 협회에 다시 오라는 말이 아니다.

주님 앞에 나아와 잃었던 주님을 다시 찾고 은혜를 다시 회복하라는 권면이다.

은혜를 잃어버린 것이 미안해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교만하기 때문이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15:17-19)

 

아직도 탕자의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미안해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데서는 몰라도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앞에서는 미안해 하는 것이 교만이다.

미안해하면 주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사랑을 받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에 본 러브스토리라는 영화의 한 장면에서 사랑은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야”(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라는 대사가 자꾸 생각이 난다. 사람은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어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실 것임이 분명하다.

 

사랑은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팝송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는데 사십여 년 전에 누구에겐가 들은 말이 생각이 난다.

죄를 짓고 복역 중에 있는 사람이 만기 출소일이 가까워지자 고향의 홀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자기같이 악한 죄인을 다시 아들로 받아 주실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기차를 타고 지나갈 때에 기찻길 옆에 있는 자기 집 마당에 하얀 소복을 입고 서 계시면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집으로 가겠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만기일이 다 되어서 역으로 가서 기차표를 끊었다. 어머니가 자기를 용서해주시고 받아주실까 하는 두려움과 설레임이 교차되는 마음으로 기차를 타고 갔다. 고향집 정거장을 지나서 다음 정거장으로 가는데 창밖으로 자기 집을 내어다 보니 열 명이 넘는 여자들이 소복을 입고 자기 마당에 서 있었다.

어머니는 자기 혼자 소복을 입고 서 있으면 혹시 사랑하는 아들이 보지 못하고 실망하여 집으로 오지 않을까 하여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에 맞추어 동네 아줌마들을 다 동원하여 소복을 입고 자기 집 마당에 서 있게 한 것이었다.

그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에 놀라고 감복하여 울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우리가 은혜를 잃어버리면 우리 자신보다도 주님이 더 급하신 것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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