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요한계시록을 집필중입니다.

무능하고 지혜도 없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음을 양해를 구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나 시시때때로 주님이 지혜를 주심으로 이전에 거짓말로 가득찬 요한계시록의 해석을 능히 씻어 낼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영감을 따라 쓴 글이 여러분들에게 시급히 필요하겠다 싶은 마음에 일부를 잠간 엿보여 드리기 위하여 이글을 실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마귀의 궤계가 교회안에 역사하여 많은 거짓된 종들과 거짓된 신학자들을 통해서 원수 마귀의 교활하고 교묘하게 왜곡하고 고의적이고도 계획적으로 의도된 거짓말에 속아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와같은 일들은 다 교회를 통해서 자행되었으며 교회의 이름을 행하여 졌고 유명하다고 하는 신학자들에 의하여 저질러진 마귀의 더러운 술수와 궤계입니다.

다니엘에게 예언의 말씀을 주신대로 중세 캐톨릭은 성경본문을 훼손하고 연대기를 임의로 뜯어 고치고 성경해석을 자의적으로 하여 진리를 왜곡시켰던 것입니다.


(단 7: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지금은 그동안 잘못되고 거짓된 것들을 바로 잡을 때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심이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마귀가 저질러 놓은 거짓말을 드러내고 밝혀 놓음으로 진리의 빛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지금은 진리의 전쟁의 때이며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이한 검인 말씀으로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을 주님께서 친히 잡아 낼 때입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저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해주시기를 바라며 오늘 아침에 쓴 글을 올려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주님이 요한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네 번째 이유는 주님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기 때문이라고 말씀 하신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는 다윗의 열쇠를 말하는 것이다. 다윗의 열쇠는 다윗의 자손의 열쇠이며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열쇠이다. 그것이 곧 사망의 문을 열고 음부의 문을 여는 열쇠를 가지신 것이다. 이사야는 궁내대신 엘리아김에 대한 예언에서 이렇게 말씀했다.

 

(22:22)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빌라델비아교회에 말씀하시면서 같은 말씀을 하셨다.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다윗의 열쇠 곧 그리스도의 열쇠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이다. 전에 죽었다가 다시 사신 다윗의 자손인 예수는 사망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에 사망과 음부에 갇힌 자를 풀어 나오게 하시는 권세를 가졌다는 말이다. 사망에 갇힌 자를 나오게 하는 권세는 아담이후에 죽은 영혼들을 다시 살리시는 영생을 주시는 이심을 말하는 것이다. 음부는 죽은 영혼들이 가는 곳이다. 음부에는 구원받은 구약의 의인들이 있는 곳인가하면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도 음부에 간다. 그리고 음부에서도 의인의 거처와 구원받지 못한 악인의 거처는 큰 구렁으로 분리되어 있음을 본다.

그래서 주님은 나사로의 무덤에서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다.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기서 죽어도 살겠고라는 말은 헬라어로 칸 아포드네스코 자오인데 죽는 것의 시제가 에어리스트 시제로 이전에 단번에 완료된 것을 말하는 시제이다. 그러므로 이번역은 죽었었어도로 번역하는 것이 맞는 번역이다. 곧 이전에 죽었던 사람들도 다시 살리신다는 말인데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이전에 영생의 언약을 믿고 죽은 구약의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미 육체가 죽어서 음부에 내려가 있는 의인의 영혼들을 음부의 문을 열고 나오게 하시는 권능이 곧 음부의 열쇠의 권능이다. 그리고 주님이 마르다에게 말씀하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아직 몸이 죽지 않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영적인 사망에서 풀어 살리시는 권세가 사망의 열쇠를 가지신 권세인 것이다. 이를 가리켜 주님은 자신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말씀을 하신 것이다.

다윗의 씨인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씨이며 이삭의 씨이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에서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라는 말씀이다.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이삭의 아내를 취하기 위하여 밧단아람에 가서 리브가를 데리고 올 때에 그종의 신앙고백과 간증을 들은 라반이 감동이 되어 그의 누이에게 한 말도 원수의 성문을 얻는다는 말이다.

 

(24: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 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

 

이렇게 미리 주신 예언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가 이세상의 구주로 오셔서 33년동안을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이세상 모든 죄인들인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다이루었다는 말씀이다.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사망의 권세를 잡았던 옛 원수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이기셨기 때문에 예수는 모든 죽은 영혼들을 살리시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것이다. 아멘. 그것이 주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대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것이다.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참고로 마태복음 16장 19절의 천국의 열쇠는 다윗의 열쇠와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기도의 열쇠요 주의 제자들이 기도함으로 천국의 권능을 가져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준 열쇠이다. 그것은 거짓말하는 캐톨릭이 말한데로 베드에게만 주신 열쇠가 아니다. 마태복음 16장에는 베드로에게 이열쇠를 주신다고 말씀하시면서 네게로 단수로 말씀하시지만 마태복음 18장에서는 같은 말씀을 다시 반복하시면서 너희가라고 복수로 말씀하신다. 거짓말하는 캐톨릭은  심지어 반석이 베드로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원문에 보면 베드로를 지칭하는 반석은 페트로스이지만 주님이 그의 교회를 세우시는 반석은 페트라로서 그 단어가 다름을 알수 있다. 페트라는 반석이요 기초돌인데 그것은 신구약성경 내내 하나님이 반석이심과 구원의 반석이심을 말할 때에 쓰여진 단어이다. 그에 비하여 페트로스는 돌이나 바위에 지나지 않는 작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말하자면 주님은 교회의 터인 반석이요 베드로는 그위에 교회를 세우는데 필요한 건축자재로서의 바위나 돌인 것이다. 그러나 캐톨릭은 이거짓말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성경의 원문까지도 훼손을 시켜 놓았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에서 너는 베드로라 다음에 그리고라는 말인 카이가 들어가는 데 그것을 고의로 빠트림으로 베드로가 반석인것처럼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바로 잡으면 너는 베드로라 그리고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가 됨으로 베드로가 주님이 말씀하신 반석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열쇠에 관한 말이 있는데 누가복음 11장 52절의 지식의 열쇠가 있다.  


(눅 11: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이 지식의 열쇠는 다름이 아닌 성경을 가르치는 권세를 말하는 것이며 주님이 율법사들을 책망한 것은 그들에게만 그런 권세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가르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님에게도 가르치는 권세를 가지고 공격을 하기도 했다.


(막 11:27) 저희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걸어다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막 11:28) 가로되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누가 이런 일할 이 권세를 주었느뇨


그런데 누가복음 12장 52절에서 중요한 사실은 지식은 말씀을 순종하여 체험하는 지식인 "기노스코"가 아니라 지식으로만 알고 머리로만 배우는 "그노시스"이다. 기노스코는 순종하는 지식이지만 그노시스는 순종함이 없는 머리와 입의 지식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이렇게 책망을 받은 것이다.


(눅 11:46)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또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천국문을 닫고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고자하는 자들도 막는 자들이라고 했다.


(마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누가복음의 구절을 시제로 보면 들어가지 않고는 "에이셀코마이"인데 에어리스트 능동태이며 막았느니라는 "콜뤼오"인데 그 또한 에어리스트 능동태이다. 그들이 하는 행위는 자기도 하늘나라에 능동적으로 들어 가지 않으면서 들어가고자하는 사람들도 고의적으로 힘쓰고 애써서 막는 것이다.

이와같은 사람들은 오늘날도 교회안에 지도자라고 하는 이들가운데 또 신학교수들가운데 부지기수로 많이 있다. 강단권이 자기만의 전유물인것처럼 주장하면서 그들이 전하는 말씀은 하나라도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행함이 있는 지식인 "기노스코"는 절대로 가르칠수 없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고 주님을 따르지도 본받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을 자세히 보라 그들은 전도도 못하고 사람을 낚는 어부도 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순종이 필요 없는 "그노시스"만을 가르치는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또 다른 열쇠는 요한계시록 9장과 20장에서 나오는 무저갱의 열쇠이다. 이 무저갱의 열쇠는 마귀도 가지고 있고 천사도 가지고 있는 열쇠이다. 이에 대하여는 많은 사람들이 듣는 것이 둔하므로 나중에 9장과 20장을 할 때에 자세히 설명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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