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에 있었던 실화이다.

어느 목사님이 계셨는데 교회에서는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친절하기가 천사와 같으신 목사님이셨다. 그런데 집에만 들어오면 아내에게 폭언을 퍼붓고 혈기를 참지 못해서 화를 내고 아이들을 때리고 하는 이중적인 생활을 살았다. 교회안에서의 목사님의 모습과 가정에서의 모습이 나무나 다른 나머지 온 식구들이 다 고통가운데서 살았다. 사모님은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이었는데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를 하다가 어느 날 어떤 일 하나를 행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목사님이 외출을 한 사이에 사택에 있는 가재도구를 교회의 강단위로 옮겨 놓는 일을 했다. 아직 일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목사님이 돌아오셨다. 자기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충격을 받은 목사님이 사모님에게 물었다.

여보 당신 실성(失性) 했습니까?”

“......”

왜 이런 일을 하시오?”

 

그 때에 사모님이 대답을 했다.

 

여보 당신이 여기 강단위에만 있으면 천사고 집에만 오면 악마니 우리 아주 여기서 살림을 차리고 삽시다. 나는 악마와 함께 살고 싶지 않아요. 당신의 천사같은 모습이 좋습니다

 

그 목사님은 이일로 인하여 자신이 이중생활을 한 것을 크게 회개하고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게해 달라고 기도하고 그 후로는 그렇게 변화된 가정생활을 살았다고 한다.

이런 내용의 글을 너무나 오래전에 읽어서 그 출처도 밝히지 못함이 유감이다. 그러나 이글은 오늘날에도 필요한 글이기에 인용을 했다. 이 글의 제목이 말씀을 설교하지 말고 생활을 설교하라이었다. 오늘날 설교하는 사람들 중에 자기 생활과는 동떨어진 것을 설교함으로 자기는 가르치기만 하는 사람으로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와 같은 사람들은 예수님시대에도 많이 있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런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다.

(23: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23: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23:6)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23:7)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런 사람들은 말만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들에게만 말씀대로 행해야 하는 의무와 부담을 지우고 자기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는 사람들이며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 사람에게 높임을 받기 위하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행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그들의 생활에 하나님은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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