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최초로 방황하는 인생을 살은 사람은 가인이다.

 

(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피하며누아”(נוַּע)인데 흔들리다”, “요동하다”, “비틀거리다”, “떨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유리하는누드”(נוּד)라는 단어인데 이리저리 움직이다”, “방황하다”, “슬퍼하다라는 뜻이다. 나는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사람들이 하나같이 흔들리고 방황하는 생활을 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자아가 흔들리고 육체가 방황하는 생활을 사는 것이다. 그것을 세상사람들은 인생도 세상의 모든 것들도 다 불확실성 가운데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동서고금이나 빈부귀천의 차이가 없다.

가인은 하나님께 쫓겨났다. 가인은 교회생활로부터 쫓겨난 것이다. 하나님이 가인을 쫓아 내신 지면은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앞으로는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지면에서 땅으로 쫓겨난 것이다. 지면은 주의 낯을 볼 수 있는 교회이며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된다는 땅은 하나님의 낯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말한다. 주의 낯을 보는 것은 의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도와 주심을 은유하는 말씀으로 사용되었다. 가인은 자신이 교회에서 쫓겨나는 것은 전과 같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고 살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흔들리며 방황하는 생활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할 것이라고 하나님께 아뢴다. 그것은 가인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것을 말한 것이다. 교회에서 쫓겨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품을 떠나는 것이다. 교회에서 쫓겨나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도우심과 보호하심(protection)의 축복이 없는 불확실성의 생활을 사는 것이다. 그것은 힘이 센 자만 살아남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세계인 세상의 생존경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짐승의 세계와 같은 약육강식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가인이 교회 속에 있을 때에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죽이고 빼앗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 때는 강한 용사가 유명한 자가 되었다.

하나님은 가인을 교회에서 쫓아 내신다. 가인은 자기가 받는 죄의 벌이 너무나 중해서 견딜수 없다고 했다. 교회에서 쫓겨난 벌처럼 무서운 벌은 없다. 가인이 교회에서 쫓겨난 것은 무엇때문인가? 율법주의적인 생각은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벌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말이다. 죄를 짓고 안 짓고가 자격의 기준이 된다면 하나님이 애시당초 죄인을 구원하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을 것이다. 그는 자기가 지은 죄를 속죄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쫓아 내신 것이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교만하기 때문이다. 지은 죄를 용서받기를 거부하는 것은 더 큰 교만이다. 가인이 교회에서 쫓겨난 것은 이것 때문이다.

가인은 아담의 교회에서 아버지로부터 복음을 듣고 믿은 자이다. 그리고 한동안 날마다 짓는 죄를 씻어 정하게 하는 속죄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서 지은 죄를 사함받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것이 땅에서 나는 소산으로 제물을 드린 것이다. 그는 지은 죄를 사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했다. 그것은 교회생활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그는 교회생활을 할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교회에서 쫓아 내신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안에 있지만 날마다 짓는 죄를 속하지 않음으로 더러워진 영혼으로 사는 사람은 교회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안에서 세상생활을 사는 세상 사람들일뿐이다. 그래서 불신자들과 차이 없이 흔들리며 방황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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