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치료하기 위해 치과에 갔습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 나의 이름이 불리워졌습니다.

의자에 앉아서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서 의사선생님이 나에게 인사를 하고 내 옆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치료하면서 의사와 위생사가 주고받는 대화가 내 귀에 들려 왔습니다.

집이 어디니?”

“00동이예요.”

그러면 여기 오는데 버스 한번 타니?”

, 정류장까지 조금 걸으면 돼요.”

아마도 주고받는 대화를 보니 위생사는 그 치과병원에 출근한지 며칠 안 되는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의사가 또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교회는 다니니?”

, 동네에 있는 교회 다녀요.”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습니다.

나는 치과 의자에 누워서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대화가 거기서 끝나면 않되는데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이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대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만 다니면 구원을 받는 것이나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과 그 주님 안에 거하면서 함께 사는 생활이 있고 그리고 열매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그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문제는 비단 그 두 사람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이십여 년 전에도 지리산 밑에 있는 교회에서 집회를 했는데 낮 집회를 마치고 지리산 중턱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에 여러 명의 현지 목사님들과 함께 정상 쪽으로 얼마를 같이 올라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어느 등산복을 입은 처녀 셋이 내려오는 것을 어느 훈련을 받은 목사님이 붙잡고 질문했습니다.

아가씨들 교회다녀요?”

.”

. 그래요. 그럼 잘 다니세요.”

내가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그 아가씨들을 붙잡고 예수를 증거 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성당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냐는 질문에 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등산과 연관된 말씀을 주셔서 그 처녀들이 셋이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을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사는데 돌아오는 주일에 꼭 가까운 교회를 나가겠다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러자 그들에게 교회 다니냐하고 물어본 목사님이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암 환자에게 병원만 열심히 다니라고 말하는 바보는 이 세상에 한사람도 없습니다.

검사도 자주 해보고 상태 체크도 자주해보고 적당한 치료를 받는지 아니 받는지가 중요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예수보다 교회를 앞세우는 어리석은 일을 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라면 주의 이름으로 목사노릇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해도 그런 사람들은 주님이 전혀 알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와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어리석은 것보다도 구원을 받은 사람인지가 의심이 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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