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송아지

 

오늘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말이 있었다. 그것이 못된 송아지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유명한 속담의 한 부분이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라는 속담이다. 송아지가 자라면 머리에 뿔이 나야하는데 엉덩이에서 뿔이 난다는 이 말은 절대로 그런 일을 행할 수 없는 일을 어떤 사람이 행할 때에 그 사람을 비웃는 뜻으로 말하여지는 속담이다.

 

그러면서 곧 이어서 내 마음 속에 주님이 주시는 생각이 떠올랐다.

 

얘야. 내양을 치는 목회를 하라고 불러서 기름을 부어 내 종으로 세웠더니 하라는 목회는 안하고 교회만 하는 못된 목사들이 세상에 참 많이 있구나.’

 

그것은 분명 주님의 탄식소리이었다.

 

누군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일군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목회를 하지 못하고 교회를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못된 송아지와 같이 못된 목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못된 목사라는 말은 목회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는 목회를 하기보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교회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교회를 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들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회사를 경영하듯이 교회를 경영하고 부하를 다루듯이 교인들을 다루고 조직을 다루듯이 교회라는 조직을 다루는 것은 굳이 믿음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이 그의 피로 구원하신 주님의 양을 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에서 주님이 베드로와 대화를 하신 것을 보면 과연 누가 주님의 양을 기르는 목회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주님은 세 번씩이나 베드로에게 주님을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하신다. 그때마다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을 한 것으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원어성경을 볼 때에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아가파오(하나님의 사랑)하느냐라고 질문을 하실 때에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필리오(친구의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그때에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하셨다. 두 번째도 주님의 질문은 네가 나를 아가파오 하느냐는 것이었으며 베드로의 대답도 역시 틀림이 없이 주님을 필리오 한다는 대답이었다. 그때에도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다. 마지막 세 번째의 주님의 질문은 베드로의 눈높이에서 네가 나를 필리오 하느냐로 질문을 하셨다. 이에 베드로는 근심함으로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필리오하는 줄을 아시나이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때도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와 같은 주님과의 대화에 있어서 베드로가 주님에게 한 대답은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나는 절대로 주님을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힘써 강조하여 말한 것이다.

그것은 베드로가 성령을 받기 전이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주님도 알고 계셨다. 그러나 그는 성령을 받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양떼를 먹이고 치며 어린양을 먹이면서 자기의 생명을 주를 위하여 다 소진하였다. 그것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1:18-19)

 

이 말씀을 가지고 캐톨릭 신학자들의 말을 이어받아서 베드로가 거꾸로 십자가에 매어 달려 순교를 했다고 그것을 믿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은 참으로 경솔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다.

원어를 살펴보면 성령을 받기 전에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성령을 받고 나서는 네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를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임을 알 수 있다.

젊어서는네오스로 주님을 처음 따라나서서 주님을 따랐던 제자의 기간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늙어서는게라스코로 늙고 노쇠한다는 뜻의 단어인데 그것은 곧 성령을 받아서 펄펄했던 베드로의 자아가 힘을 잃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말씀대로 베드로는 성령을 받은 후에 자기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감을 받았다. 사마리아에도 가서 복음을 전했으며 유대인들이 불법으로 여기는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도 갔으며 또 옥에 갇히기도 했다가 천사가 쇠사슬을 벗겨 주어 옥에서 나와서 마가의 다락방으로도 갔다. 그러므로 그가 당할 어떠한 죽음은 십자가에 거꾸로 매어 달린”, 육신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충만하여 자아가 죽어 온전히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생활을 살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어린양을 먹이고 양을 치며 양을 먹이는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을 아가파오하는 목사만이 주님의 양을 치는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못된 목사가 아닌 된 목사인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목사는 못된 목사”, 목사가 못된 사람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목사가 되지 못한사람은 세상의 경제 논리로 교회를 경영하고 조직을 다스리는 일을 하며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교회를 크게 하고자 하고, 큰 교회를 하는 사람들을 높이고 찬양하는 일을 스스럼없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주님을 사랑하고 양을 목회하는 목사가 되지 못한결과로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목사는 목사가 돼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감독으로 세워져서는 안 된다고 디모데에게 교훈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딤전 3:2-5)

 

돈을 사랑하는 것은 술을 즐기는 것과 일반이요, 구타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런 사람들은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말은 일만 가지의 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악 중에 최고의 악을 말하는 것이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은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버지의 아가페 사랑이 그 안에 거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5)

 

주님도 돈을 사랑하고 재물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경히 여기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6:24)

 

그러므로 주님을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목사는 못된 목사”, 곧 목사가 되지 못한 사람이다. 세상에서는 목사라고 인정을 하고 교단에서는 인정해 주어도 주님은 그 사람이 목사인지 알기는커녕 그 사람 자체를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서 교단에서 사람들에게 받을 칭찬과 상을 다 받은 사람들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받을 상이 없는 사람들이다. 아마도 그래서 돈을 더 사랑하고 세상에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목사가 되지 못한 사람이 목회를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찌 보면 그런 사람들은 목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교회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하여 주님은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7:17-20)

 

좋은 나무가 되지 못한 사람이 못된 목사요, 나쁜 나무인 사람이 못된 목사이다. 주님이 그 열매로 그들을 안다고 말씀하신 것은 목회의 열매는 없고 교회의 열매만 자랑하는 그런 못된 목사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부터 영광과 찬사를 다 받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신을 칭찬해 주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삼가 피할 것을 명령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7:15)

 

양의 옷을 입는 것은 그가 주님의 양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곧 주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인 것처럼 위장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행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는 사람들이지 주님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7:21-23)

 

지금의 시대는 못된 목사 주의보가 내려진 시대이다. 참으로 이 시대에 주님을 사랑하는 목사가 몇이나 될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여간 아프지 아니하다.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깨어 기도함으로 그와 같은 이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교회 안에서 조차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주님만을 섬기며, 사람이 아니라 주님만을 따라가는 주의 제자의 삶을 사는 은혜를 받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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