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님 큰일 났습니다. 미국교회가 종말론에 미쳐가고 있어요”

“라디오 방송을 틀으면 미국목사들이 나와서 짐승의 표를 받지 말자는 캠패인을 벌입니다.”

“비상식량을 준비하고 은신처를 찾아야 한다고 난리들입니다.”

“바이올라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대대적으로 현혹을 하게 하는 일들이 미국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번에 미국에 사경회를 갔을 때에 들은 이야기들이다.

전도훈련을 받고 교회가 회복되었다고 말하면서 예수전도협회에서 훈련을 받았다는 사실을 교묘히 숨겨온 어느목사가 짐승의 표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동영상을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 놓고는 전세계적으로 현혹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 온다.

 

 

역사를 보면 살기가 어려워 질수록 종말론이 대두된다.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까지도 천지개벽을 교리로 내세우는 것이 세상죄인들의 생리인 것이다. 지나간 역사를 돌아 볼 때에 교회도 교인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교회하는 것이 어려워질때마다 종말론을 들고 나와서 교인들을 두렵게 하여 어려운 형편에 헌금을 하게 하여 규모가 비대해진 교회의 필요를 채우고 지도자들의 욕심을 채우는 일들을 계속해서 해온것은 끊임없이 있어 왔던 사실이다.

 

 

미국경제가 어렵다.

전세계의 경제가 그렇듯이 유럽도 미국도 경제가 이전과 같지 않다.

경제가 어려우면 쓸데없이 인본적으로 일을 벌려 놓고 비용이 극대화된 교회들이 먼저 어려워 진다. 방송설교를 하는데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고 빚을 내어 건축을 한 교회들이나 선교나 신학교나 여러거지 사업을 벌여놓은 교회들은 교인들에게 또다시 종말론을 가지고 미혹을 하고자 하는 카드를 만지작 거리게 되어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미국교회가 이와같은 일에 앞장을 서는 양상이다.

심지어는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 목사들이 한국까지 와서 지방으로 돌아 다니면서 요한 계시록을 강해하면서 종말의 두려움을 심어 주고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고 알지도 못하는 교리들을 떠들고 다님으로 교회를 어지럽게 한다는 말도 들린다.

목사도 교인들도 성경을 모르고 신천지인가 하는 이단이 요한 계시록을 가지고 교인들을 속이고 교회를 해치는 일들과 맛물려서 요한 계시록을 알아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가 되었지만 문제는 건강한 종말론이 아니라 악한 종말론이 오히려 교회를 해치고 있다는 현실에 주목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느 목사님이 교인들을 데리고 하룻밤 기도를 하기 위해서 기도원에 갔더니 기도원 원장이라는 장로가 그목사님에게 권하기를 환란이 곧 올터인데 비상식량을 많이 준비해 놓았으니 여차하면 자기 기도원으로 교인들을 데리고 오라는 말을 하더란다.

어떤이는 거짓말에 미혹이 되어 자기 집의 지하에 은신처를 파 놓았다는 말도 한다고 한다.

 

 

어느 목사님은 요한 계시록공부라는 공부는 다 쫓아 다니고 자기가 신학교에서도 요한 계시록을 강의도 했는데 비상식량으로 누룽지를 준비하고 자기 아들며느리에게 까지도 누룽지를 준비하게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가 요한 계시록 사경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대강의 설명을 듣더니 “왜 이렇게 다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그다음 사경회때에 참석을 했다. 그래서 그에게 질문을 했다.

 

 

“목사님 누룽지를 준비했다면서요?”

“네”

“은신처도 필요하다면서요”

“네”

“그것은 영을 위한 준비인가요 육신을 위한 준비인가요?”

“.........”

“육신을 위한 준비이잖아요?”

“.........”

“어려움이 오고 환란이 오면 내육신하나 먹고 살겠다고 나하나 잘먹고 살겠다고 육신을 준비하는 것이지 내영혼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주님오시기를 준비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는 그래도 총명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말이 무슨말인지를 단번에 알아 차렸다. 그리고 계시록 사경회를 듣고 이렇게 다를수가 있느냐고 탄식을 했다. 자기가 공부한 것과 가르친 것이 다 헛된 것을 알고 버렸다고 한다.

 

 

짐승의 표는 바코드가 아니다.

무슨 칩을 받는 것이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귀의 속임수일뿐이다.

바코드가 짐승의 표라면 마귀가 그렇게 어리숙하고 바보가 아니다.

믿음은 형편 없어도 바코드만 안받으면 건짐을 받는다고 믿는 것은 믿음을 복권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악하고도 천한 지식이다.

혹시 그것이 짐승의 표라 하여도 안받으면 건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어야 안받는 것이다.

믿음은 심령의 문제이지 육신의 표의 문제가 아니다.

주님도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믿음을 준비할 것을 명하셨다.

 

 

짐승은 16세기 17세기의 신실한 신학자들이 주장했던 것과 같이 카톨릭 교권을 말한다.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그교권에 굴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교권을 섬기던 자들이 짐승의 표를 받은자들이다. 마귀는 이와같은 일들을 미련한자들을 통하여 교묘하게 숨김으로 교회를 망하게 하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의 제자요 폴리캅의 제자이었던 이레니우스는 자기 스승인 요한이 쓴 요한 계시록의 666을 라틴숫자로 이해하였다.

 

 

헬라어는 철자마다 숫자값이 있는데 헬라어로 "Lateinos"라는 단어가

 

L은 30

A는 1

T는 300

E는 5

I는 10

N은 50

O는 70

S는 200 을 가리킨다

 

 

이수를 다 합하면 666이다.

Lateinos는 "Latin Kingdom"을 일컫는 말이다.

곧 라틴왕국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라틴나라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교권이 다스리는 인간의 통치체계를 말하는 것이다.

 

 

로마교황청은 그들의 공식언어로 라틴어를 지금까지도 쓰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Rome's canons, missals, prayers, decrees, bulls(교황인이 찍힌 교서) blessings, cursings가 다 라틴어로 되어 있다.

 

로만 카토릭은 교회가 아니다.

그들은 짐승의 정권일 뿐이다.

그들은 성도들과 싸워서 이긴 짐승일뿐이다.

수천만의 성도들이 그들의 손에서 죽어갔다.

 

 

교회사는 다시 쓰여져야한다.

카토릭이 교회사의 중심이 된 것은 마귀의 계략이다.

그당시 순교사화가 곧 교회사이다.

순교를 당한 교인들이 곧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 짐승은 개신교의 교권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이 쓰여진후 이천년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사실이다.

왜냐하면 정통신학은 칼빈과 요한 웨슬레 이후에는 거의 정지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로만 카토릭 짐승인것을 확언하면서 둘째 짐승의 출현에 대한 예견과 짐작만을 하는 것으로 그들의 신학을 마무리 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있어서는 오히려 그때보다 신학이 퇴보했다. 오히려 더 흑암가운데 오리무중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는 앞서 말한 종말론을 악하게 이용해먹는 일들로부터 연유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전에 로만 카톨릭이 그랬던 것과 같이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교단이 정치력을 행사함으로 하나님나라의 통치는 교회안에 그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계 13:11)

 

 

개신교교권은 카톨릭이 교회에 그렇게 했던 악행을 부러워하고 그의 조직력과 강력한 통치를 사모하며 그 첫째 짐승이 한 그일을 그대로 본받고자한다. 에레미야가 탄식했던 하나님의 통치를 배제하고 자기권력으로 백성들을 다스렸던 옛날제사장들의 모습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께 있는데 그권력을 사람들이 도적질 한것이 짐승이요 적그리스도이다. 둘째 짐승은 용처럼 말을 했다는 말은 카토릭이 말한 것과 같은 것을 개신교 교권들도 같은 말로서 교인들의 눈을 어둡게하는 것을 말한다. 그도 첫째 짐승과 같은 권세로 교인들을 다스린다. 그리고 우상에게 경배하는 않는 자는 죽이기도 했다. 거짓 이적으로 교인들을 미혹하게 한다. 그리고 사람을 섬기게 한다.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표를 받지 않는 사람은 매매를 못하게 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이여 정신을 차리라.

매매를 못한다는 말은 수퍼마켓에서 쌀을 못사고 라면을 못산다는 말이 아니다.

이전에 핍박을 받던 성도들의 고통이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는 것이었는가?

육신이 불에 타고 죽임을 당하면서도 믿음의 정절을 지킨 선조들의 신앙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게 그렇게도 두려운 일인가?

교회가 사람의 권력과 마귀의 다스림가운데 마귀의 영향력가운데 있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일이다.

 

 

매매를 못하게 하기 때문에 비상식량을 준비한다는 것은 참으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어리석음이다. 거래를 못한다는 말은 교권에 굴복이 되지 않으면 종교적인 거래를 허락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첫째 짐승에게 거래가 금지되고 쫓겨난 사람들이 루터요 칼빈이었다. 그이전에는 신실한 전도자 피터 왈도도 교황에 의하여 이단으로 정죄되고 교회에서 쫓겨 났다. 교황은 왈도가 정말 귀한 믿음으로 사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말을 하고도 교회의 조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판단하고 그를 쫓아 낸 것이다. 둘째 짐승에게 희생을 당하고 교회안에서 설교를 못하게 하는 강단권을 박탈당한 것이 요한 웨슬레요 죠지 휫필드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교단안에서 종교적인 거래를 금하는 것이다. 또한 감리교에서 전도한다고 목사직을 박탈당하고 쫓겨난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암 부츠인 것이다.

 

 

이유빈장로도 진리 때문에 애매히 고난을 받고 있지 않은가?

이유빈 장로도 거래를 금지한 교단들이 있다.

그들과는 영적인 교통이 안된다.

그들편에서의 종교적인 거래를 금한 것이다.

 

 

참여 금지를 한 교단도 있다.

아직도 협회를 연구한다면서 이십년이 가깝도록 아무 이유없이 교회와 교인들을 거짓에 묶어 놓음으로 세상도 행하지 않는 불법적인 처사를 하고 있다.

어떤 교단은 잘못했다고 공식적인 문서로 사과를 하고도 내부적으로 금지를 시킨 이중적인 악함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들이 사인한 그문서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아비는 마귀인것이 분명하다.

그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에 그들과 대화하면서 이는 마귀의 역사라고 했을 때에 그들은 머리를 흔들며 마귀라는 소리를 제발하지 말라고 하면서 괴로워 했다.

 

 

그리고 지금은 무지한자들은 감히 진리를 대적하여 이단이라는 말도 서슴치 않고 있다.

캐토릭이 신실한 성도들을 이단이라는 이름아래 얼마나 많이 죽였는가?

 

 

이시대에 이단도 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단과 성도를 구분하지 못하고 같은 용어로 성도들을 이단으로 정죄를 하는 이들은 진짜 이단보다도 더 악한자들임에 틀림이 없다.

 

 

중세 카톨릭이 그와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네로나 도미시안보다도 더 악하고 잔인했다.

하나님은 그와같은 자들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반드시 갚아주시고 신원해 주신다.

 

 

어느교단의 조사위원장이라는 사람은 인품도 있고 신학의 학문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가 예수전도협회조사위원장을 맡았는데 이것이 진리인줄을 알면서도 막판 정치적인 타협에 끌려 들어가서 “신학이 다름 참여를 금지함”이라는 결론을 보게 되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예수전도협회를 잘아는 사람이었던 것은 그의 교인들 칠심여명이 훈련을 받고 예배가 찬송이 살아나는 것을 보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부목사가 훈련을 받아 가정이 회복이 되고 영력이 회복되는 것도 보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할수 있으면 자기교회 교인들이 다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아마도 예수전도협회가 이단이라는 정죄를 받지 않은 것으로 만족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일이 있은후 그는 얼마 아니되어 지병인 당뇨로 시력장애가 와서 병원에 입원을 한다. 그리고 은퇴를 앞둔 나이지만 곧 천국에 들어갔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이 짐승의 만행이요 이것이 마귀의 장난이요 이것이 둘째 짐승의 일이다.

오늘날 타락하고 인본화된 개신교는 중세 캐토릭의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들이 왜 그랬는가?

진리때문인가?

그들도 예수전도협회가 옳은 것을 시인한다.

왜 그랬는가?

자기들의 욕심과 정욕을 거스리기 때문이다.

그들의 교권이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권세와 충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은 막힌적이 없다.

주님의 역사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

저들이 우리에게서 나간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님을 드러 낸 것이다.

복음과 성도를 핍박을 하는 것은 교회가 아니다.

그것은 사단의 회다.

주님은 주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면 그것이 진정한 성도요 교회이다.

 

 

캐토릭으로 인하여 교회안에 있는 사람들이 거룩함은 고사하고 도덕성까지 파괴됨으로 세상의 지탄을 받고 모슬렘이 태동되었던 중세의 암흑기와 같이 둘째 짐승에 의해서 세상의 도덕성 밑으로 까지 타락한 오늘의 개신교는 두 번째의 암흑기를 가져왔고 우리는 그아래를 지나며 세상 죄인들의 격렬한 저항앞에 놓여 있다.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욕을 하고 목사를 먹사라고 욕을 하는 시대이다.

전도가 안된다.

문을 닫는 교회들이 속출하고 있다.

교회가 경매에 붙여진다.

목사들이 밥벌이와 자식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분주한 발걸음으로 다니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하는데 먹을것과 입을 것을 먼저 구하는 처지에 떨어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땅에 기괴할 정도로 복음의 문이 막혀 있다.

그럼에도 저들은 교단안에서 저들만의 거래를 즐기고 있다.

 

교회도 사람도 하나님의 전적인 통치아래 있을 때에 선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의 권력아래서는 마귀의 조정을 받는 적그리스도의 미혹의 대상이 될수밖에 없는 것이다.

 

 

옛선지의 말과 같이 이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

이제는 모르는자가 되면 안된다 아는자가 되어야 한다.

말씀을 알고 하나님을 알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알아야 한다.

이제는 자다가깰때가 되었다.

밤이 깊고 새벽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제는 고개를 들때이다.

이는 구원이 전보다 더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마귀가 못하게한 전도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도 훈련받고 전도할 때가 가장 좋았다는 말들을 전국적으로 여기저기서 많이 듣고 있다.

교회도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자들도 많이 있다.

 

 

이제는 짐승의 훼방으로 닫혔던 복음이 다시 열려져야 한다.

회개도 죄를 자백하는것도 영원불멸의 진리이다.

누가 회개를 못하게 하는가?

그것은 마귀이다.

누가 죄를 자백함으로 양심의 자유를 얻고 죄를 이기는 삶을 방해하는가?

그것도 마귀의 역사이다.

 

 

이원수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고 이제는 십자가의 군병으로 남은 날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고 승전가를 부르면서 천국에 가야하는 일만이 남은 것이 아닌가?

 

 

일어나 빛을 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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