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멋있으신 우리아버지

 

 

“장로님 멋있어요”

미국의 어느 집사님 딸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나를 칭찬하거나 나를 좋게 말하는 말에 익숙하지 못하고 항상 어색해 한다.

그래서 일부러 말을 바꾸어서 물어 보았다.

“응 맛있다구?”

“아니요 멋있어요”

미국에서 태어나 우리말을 더듬거리면서 다시 말하길래 나는 딴청을 피워댔다.

“응 알았어 맛있다는 말이지?”

그냥 그렇게 흐지부지된 대화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에서 역사하신 주님은 정말로 멋있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셨다.

사경회 첫날부터 안좋은 소식이 들려 왔다.

첫날집회가 끝난후에 이윤상집사 어머니에게 “윤상이는 왜 안왔어요?”라고 물었더니 당장에 퉁명스러운 대답이 나온다.

“걔요 가정이 엉망이예요. 여기 오고싶지 않대요.”

무슨일인가를 물으니 얼마전에 크게 부부싸움을 하고 부인의 손가락까지 부러지고 경찰을 부르기 직전까지 갔다는 말이었다.

“기도해야지요.” 하고 대답을 하고 숙소로 돌아 왔다.

그리고 김관기장로님이 사경에 이르도록 몸이 쇠약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심방을 갔다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소생하기가 힘들것같다는 말이 들려 왔다.

그야말로 상직막같이 그루터기같이 조금남은 전도자들이 이렇게 와해되는가 하는 불안한 마음도 엄습해 들어왔다.

그런가하면 김정선집사님이 세시간이나 걸리는 먼데서 운전을 하고 그의 어머니와 오빠와 함께 참석을 해서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집회 첫시간이 끝나고는 울먹이면서 말을 건넸다.

“장로님 기도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의 어머님이 감격해서 아들과 딸을 가리키면서 "이아이들은 누가 뭐래도 장로님제자이지요"

김집사님의 남편이 많이 마음이 돌와 왔다는 것도 큰 위로의 말이 되었다.

 

 

그리고 텍사스의 김경희 권사님이 집회시간전에 와 있길래 헉을 하면서 “I never expected you are here."(당신이 여기 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어요)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는 항상 미국에 와서 로스엔젤레스에서 전화를 하면 그때에야 마지 못해서 ”글쎄 로스엔젤레스가는 비행기표가 있나 알아 볼께요“하면서 올때도 있었고 못올때도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일간의 사경회를 온전히 참석을 하고 달라스로 돌아갔다. 이틀밖에는 참석을 할 수가 없었는데 남편과의 약속을 하루연장하면서 다니엘서를 다듣고 는 하는 말이 ”Amazing"이라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의 말과 같이 로스엔젤레스 다니엘서 사경회는 의기양양하고도 당당한 은혜를 부어 주었다. 의기소침할수밖에 없었던 종말론과 두려워했던 환란이나 여러 가지 거짓된 악한 말들을 한번에 날려 버린 통쾌한 집회였다. 셋째날 저녁에는 집회를 끝나고 기도로 마쳤는데 기도가 끝날줄을 모를 정도로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최후승리를 믿는 종말론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주일날 저녁에 사경회 마지막 집회를 마치고 돌아 왔을 때에 이윤상집사의 “죄송합니다”라는 메일이 와 있었다. 하도 죄를 많이 지어서 도저히 집회에 참석할수 없으며 다음번에나 참석을 할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자리에 누웠는데 도저히 잠이 오지를 않아서 주님이 마음에 강권하시는 바에 따라서 일어나 메일에 답장을 썼다.

간곡한 마음으로 편지를 썼는데 마음속에 주님이 역사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몇몇분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같이간 일행들도 편지를 읽어보더니 주님이 역사하실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월요일날 집회장소에 갔더니 문틈사이로 먼저와서 있는 이집사님의 얼굴이 보였다. 그래서 달려가서 안아주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주님은 메일의 답장을 쓰기를 강권하실 때부터 이미 역사를 시작하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의 일행들도 다 기뻐했고 기도해주신 분들도 다 기뻐했다. 그리고 말씀을 전했는데 평상시보다 일찍 마쳤더니 한동완 목사님이 호텔방 키가 바뀐것을 모르고 이전키를 가지고 김헌용형제의 차를 타고 내숙소에 가서 샤워를 한다고 떠났다고 한다. 연락도 잘 취해지지를 않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배전도사님의 차를 태워 달라고 했다. 내가 막 나가는데 이범영간사가 무슨 큰일이난듯한 표정으로 내귀에 대고 말을 했다. “저어 장로님 배전도사님이요 버스와 물품을 자기가 감당할수 없으니 다가져가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나는 감이 잡히지를 않아서 그냥 고개만 끄떡이고는 내려가서 차에 올랐다. 한 5분이면 가는 거리였는데 차가 출발하자마자 배전도사님이 입을 열었다.

 

 

“저어 장로님 엘에이 전도현장에 나와야되는지 안되는지 고만중입니다.”

“그거야 기도하고 주님이 나오라면 나오면되고 주님이 나오지 말라면 아니 나오면 되지요”

그렇게 원론적인 대답을 하고는 마음속에 주님이

“얘 배전도사가 지금 엘에이 전도현장에서 은혜를 받지 못해서 괴로워서 그러는 거란다.”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그래서 말을 했다.

“전도사님 오늘 저녁에 말씀전하는 것을 못들으셨는데요 교회는 세가지 믿음의 내용이 있어야합니다.”라고 그날저녁에 전한 데살로가 1장의 말씀을 가지고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중에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라는 것만을 말했다.

“사랑의 수고는요 내가 손해를 보고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데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제가 여기 오는 것도요 저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여기 있는 분들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서 내가 희생을 하는것이 사랑의 수고이지요.”

“........”

“애기엄마가 말씀을 듣고 싶은데 애기가 주체할수 없이 울면 어떤 성도가 그아이를 안고 밖에 나가서 달램으로 자기는 말씀을 듣지 못해도 그애기엄마가 말씀을 들을수 있도록 희생하는 일들이 사랑의 수고인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와같은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였지요.”

 

그가 엄숙하게 말씀을 듣고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면서 주님이 역사하심을 강하게 느낄수 있었다. 그가 세미나 간증시간에 나와의 대화에서 은혜를 받은 것을 삼십분이나 간증했다. 사실 그는 엘에이 전도현장을 삼월달부터 나오지 않으면서 그가 살고 있는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전도자들과 전도를 하려고 계획을 했던 터이었다. 그런데 주님이 그의 마음을 돌리신 것이다. 그것도 김헌용간사의 차를 타고 한동완 목사님이 헛발걸음을 하지 않았으면 나와 대화를 할수 있는 기회를 전혀 가지지 못할 것을 주님이 그렇게 자로 잰듯이 소름이 끼치도록 역사를 하신 것이었다. 나중에 한목사님과 김헌용간사도 그렇게 주님이 단오분동안에 역사하시기 위해서 그와같이 착오를 빚게하신 주님의 섭리하심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사실상 로스엔젤레스의 전도자들은 이윤상집사의 일과 김관기장로의 일 그리고 배전도사님의 일로 낙심할 때로 낙심하고 일어설 기력도 없이 기진맥진하였던 상태 이었다. 그런데 주님이 이렇게 역사하심으로 다 큰 기쁨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괄목할만한 일은 집회장소에 어려움을 빚자 김선원목사님이 월세가 많이 들지만 교회를 계약을 하였다 이과정에서 사모님과 상당한 마찰을 빚었는데 굴하지 않고 끝내 승리하여 작지만 아담한 교회당을 얻어서 우리마음대로 집회를 할수 있는 역사도 있었다. 주일낮예배때에 일행중에 한동완 목사님이 부모를 경외하라는 말씀을 전하면서 성경에 경외하라는 대상이 셋인데 하나님께 경외하고 부모를 경외하며 남편을 경외하라는 말씀을 전하고 그사모님을 주중에 만나서 그의 특유의 권위의 은사로 권면하고 상담해주는 일도 있었다.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강사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편안한 마음으로 간증을 하고 한사람당 세시간씩 충분하게 진행을 했다. 간증이 끝나면 처음온 사람들이나 기존의 전도자들이 간증자를 붙들고 우는 역사들이 일어났다. 이전에는 진행하는 간사가 그와같은 것을 못하도록 접촉을 막아 방해를 해서 안타까웠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간증이 끝나면 이말씀을 자기 자녀들이 들어야한다고 하던 권사님이 이제는 간증자를 붙잡고 나도 이렇게 말씀으로 살게 기도해달라고 통곡을 하는 역사도 일어났다. 간증자들의 말에 의하면 아마도 이권사님이 이제는 말씀을 자기것으로 받는것 같다고 했다. 이전과는 달리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세미나가 진행이 되어 오래전에 그렇게 했던 세미나가 회복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또 이전에는 집회올라가기전에 진행하는 간사가 귀에다 대고 시간을 잘 지키라고 하는 바람에 영감을 다 잃어버리고 이것저것 빼고 간증을 하는 바람에 오히려 이미 간증을 들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중요한 것을 왜 빼고 했느냐"는 아쉬움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또 세미나전에 사경회 때에 이유빈장로가 말씀을 전하는 두시간동안 협회를 얼마전에 나간 간사가 간증강사를 마음에 받을수 없는 것을 가지고 책망을 하여 영혼을 죽여 놓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 여자숙소에서는 또 다른 간사가 간증강사들을 간섭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주어서 엘에이 공항을 떠날 때는 각사람의 마음속에 각각 “다음에는 절대로 안와야지”굳게 맹세를 하고도 때가 오면 주님의 일이니까 다시 오지만 마음에 얼마나 사람으로부터의 압박을 많이 받았는지 모른다고도 했다. 어떤때는 밥을 먹을 때에 내내 책망을 하여 먹은 밥을 체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얼마나 영혼이 자유롭고 날라갈듯이 가벼운지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간증시간마다 주님이 자유롭게 역사하심으로 많은 은혜를 받고 시간마다 통곡을 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처음온 분들도 말할수 없는 은혜를 받고 친형제자매들처럼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다.

 

한동완목사님이 교인들 한사람 한사람씩 변화된 간증을 한 것은 가히 압권이었다. 듣는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자기들도 변화되어야하는 영적인 욕구를 가지기에 충분한 역사가 일어났다. 그는 사모님을 따라오는 마음으로 왔으나 주님의 계획은 따로 있었다. 참으로 그목사님을 주님은 쉬는 시간에도 상담해주고 권위해 주는 도구로 바쁘도록 쓰셨다. 주경미사모님의 간증으로 어떠 어떠한 사람들을 주님이 변화시켜 쓰시는지를 분명히 보고 알게되었다. 한동완목사님부부의 사랑으로 간증강사들이 밝고 환한 분위기가운데 사역을 계속 담당할수 있었으며 이전에는 간증강사들이 무엇인가에 눌리고 두려워 하고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는 어디로갔는지 다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한목사님이 미국가기 며칠전에 편두통으로 말로 다할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급작스럽게 종합병원에서 시티촬영까지 하고 갔는데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기내에서 두통도 씻은듯이 사라지고 굳게 뭉쳤던 어깨도 다 풀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마귀의 역사이었다. 그런데 주님이 그로 간절함을 주셔서 승리하게 하셨다. 이것 또한 주님의 역사이었다. 왜냐하면 한목사님은 당신의 입으로 사모의 보디가드노릇이나 하러 간다고 말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목사님은 가벼운 마음을 가고자 하였으나 주님은 그에게 영적 부담을 주시고 그를 쓰시기 위해 일시적인 아픔을 주신 것이었다.

 

사람이 교만하면 또한 교만한 사람이 같이 있음으로 주님의 사역이 얼마나 방해를 받았는지를 실감나게 체감할수 있는 기회이었다. 로스엔젤레스의 만나기만하면 전도의 행위를 자랑하고 자식이 돈잘버는 것을 자랑하던 전도하는 권사님이 주님이 걷어 내심으로 사라진지가 수년이 되었다. 또한 로스엔젤레스에 중국선교를 한다며 만나기만하면 자기를 자랑하고 교만을 떨던 장로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협회에 고병훈 장로와 백향자권사도 이제는 함께 일할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리고 그러자마자  주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역사하시기 시작했다.

 

이번 엘에이 사경회와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날마다 순간마다 시종일관 자로 잰듯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우리는 보았다. 그리고 간증강사들의 영혼이 먼저 자유로와 짐으로 그들을 쓰시는 주님이 불편함이 없이 자유롭게 쓰시고 역사하시는 것도 보았다. 이제는 그동안의 아픔을 뒤로 하고 마귀의 역사와 훼방을 뒤로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전도자들이 다짐하고 결단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에서도 주님의 역사가 다시 자유롭게 시작되는 일이 일어남을 확신을 할수 있는 시간이었다. 항상 부족한 저희들을 위하여 기도해주시는 모든분들게 감사를 드리며 주님께 모든영광을 돌린다. 아멘

(*.8.21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