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생이 살다보면 본질을 잃어버릴 때가 많이 있고 본질을 잃어버리는 일들이 많이 있다.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안타깝고도 비극스러운 것도 없다.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은 사나마나한 인생을 사는 것이요 그것이 일이라면 하나마나한 일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인데 교회가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앞에서 참으로 악한 일이다.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복음의 본질을 잃기도 하고 목회의 본질도 잃어버리고 예배의 본질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으며 믿음의 본질을 떠나서 교회생활을 하는 일들도 많이 있다.

교회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 가운데서도 성탄절이 그본질을 잃어버린지가 오래 되었다. 성탄절의 본질을 세상에서 잃어버리는 것도 분한 일인데 교회가 그 본질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의 의미를 왜곡하는 하나님앞에 있어서는 아니되고 절대 용납이 되지 않는 일들을 하고 있다.

그것이 예수가 없는 성탄절이다.

그러나 성탄절의 주인공은 예수이다. 예수가 있는 성탄절이 잇는 곳이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이다.

 

요란한 성탄절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다른 복음을 말씀하면서 다른 복음은 교회를 요란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교회를 요란하게 하는 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교회를 요란하게 함으로 복음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복음의 중심인 예수를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말이다.

 이와같이 오늘날의 성탄절은 예수가 없다. 세상의 성탄절도 예수가 없지만 교회의 성탄절도 예수가 없다.

예수대신 산타클로스가 불리워지고 굳킹 윈체슬라우스가 불리워진다. 리틀 드러머 보이는 오래전에 불리우던 캐롤이다. 징글벨도 오래전에 불리워졌지만 예수는 없고 신나게 썰매를 타는 노래의 내용이다. 교회는 예수의 탄생은 앞에다가 내세우는 간판이고 속으로는 교인들을 즐겁게 하는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진행한다. 영적인 실재는 고사하고 신앙심조차도 없으며 최소한의 종교적인 경건함도 찾아 볼수 없는 프로그램들로 가득하다.

 성극과 칸타타 선물교환과 오락프로그램 그리고 새벽송과 공허한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치는 소리들 어느것하나 세상의 구주로 나신 주님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거의 없고 경건하지 못한 프로그램들로 교회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교회안이나 밖이나 예수가 없는 성탄절을 기념하고 지내고 있는 것은 동일하다. 그것은 성탄절이 아니라 유희절이고 사람을 기쁘게하는 날에 불과한 것이다.

 

 

구원하는 성탄절

 

 성탄절은 이세상의 구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날이다. 그 옛날 천사가 전하여준 말대로 세상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날이다. 그 예수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과 천사가 전하여 준 말을 유추해 볼 때에 이세상 죄인들인 우리들에게 두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분이다. 그의미를 다 알고 있어야 성탄이 의미있는 성탄이 되는 것이다.

 

1) 구원자이신 예수

(1: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게 되면 그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한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그이름의 뜻을 풀어서 설명해 준다.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그리스도를 주신 것은 죄인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죄에 매여 종노릇하는 죄인들을 그 죄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시기 위함인 것이다. 죄의 고통은 사망의 고통이다. 사망은 영적인 사망이다. 곧 아담의 죄로 인하여 죽은 죄인들이 사망의 권세 아래서 죄에 끌려 다니며 종노릇을 하는데서 해방시킴으로 죄로부터 자유케 하는 것이다.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모든 지은죄와 죄책감만이 아니라 힘없이 죄에 끌려 가며 죄에 종노릇하는데서 해방되어 다시는 죄에 종노릇하지 않고 진리로 자유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이다.

 

2) 임마누엘

 

가브리엘은 예수의 이름외에 도 다른 이름을 마리아에게 말한다. 그것은 임마누엘이다.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예수님이 태어나기 700여년전에 이사야가 예언한 말씀에 있는 이름이다.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가브리엘은 그 이름의 뜻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라고 했다. 예수라는 이름과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같이 풀이하면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자들을 죄사함받고 잃었던 영생을 다시 찾게 하신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영생을 얻은 성도는 영생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활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임마누엘의 생활 곧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생활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것은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성령을 받아서 성령하나님과 함께 세상 끝날까지 함께 사는 생활을 사는 것이다.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영원히 하나님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생활이 임마누엘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활이고 하나님이 임마누엘하시는 것은 믿는 이에게 부어 주신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예수의 이름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다.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정사를 멘 것은 왕의 왕으로서 온세상을 다스리시는 일을 하신다는 이름이다.

기묘자라는 말은 놀라우신 분이라는 이름이다.

모사는 지혜와 지식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라는 이름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예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이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는 영원히 존재하시는 우리의 아버지라는 이름이다.

평강의 왕이라는 말은 완전한 통치의 결과로서 모든 것을 평강하게하시는 이름이다.

 

 

매일 크리스마스

 

이와같은 예수 곧 임마누엘하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1225일이 성탄절이 아니라 매일매일이 크리스마스이다. 한사람이 구원을 받아 임마누엘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일 크리스마스인 사람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요 매일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고 매일 함께 하시는 성령님으로 도우심을 받아서 이기고 승리하는 생활을 사는 것이다  

일년중에 한시즌만을 이세상의 구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을 기뻐하는 것은 참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것은 주님을 모시고 사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생활속에 없는 이들이나 하는 일이다. 그리고 요란한가운데 예 탄생의 의미를 상실하는 크리스마스는 악한 것이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다.

각사람이 종용한가운데 날마다 성탄절을 지키고 누리고 감사하는 믿음으로 사는 은혜를 받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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