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알렉산더

 

바울은 로마감옥에 갇혔을 때에 디모데에게 두 번째 편지를 보내면서 구리 장색 알렉산더에게 많은 해를 받은 일을 말하면서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저를 매우 경계할 것을 명한다.

 

(딤후 4:14)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딤후 4:15)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알렉산더가 대적한 우리 말은 우리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한다. 알렉산더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거스리는 말을 많이 하고 다님으로 바울의 사역에 해를 많이 끼친 사람이었다. 오래전의 일이기 때문에 바울이 말한대로 하나님이 저에게 어떻게 갚으셨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디모데는 바울의 권면을 받아서 저를 경계하였음이 틀림이 없다.

 

알렉산더는 구리 장색이었다. 구리 장색은 구리 세공업자를 말한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만나고 교제하는 사람들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알렉산더는 생계를 위해서 구리세공업을 하면서 거울이나 그릇이나 장식품도 만들었을 것이고 또 어떤 우상 섬기는 사람들이 우상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면 그것은 그에게 많은 돈을 버는 기쁨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처음에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자 따라다녔지만 그가 종사하는 일로 인하여 끊임없이 우상숭배자들과 장식품 업자들과 접촉을 하면서 그가 혹시 거듭난 사람일지라도 들은바 말씀이 그에게 믿음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생활과 충돌이 되면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대적하는 말을 많이 하였던 것이다.


아무리 기가 막힌 말씀을 듣는다 하여도 알렉산더와 같이 주변이 정리가 안되고 날마다 보고 듣는 것이 바뀌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속에서만큼은 바꾸고 싶고 대적하고 싶은 악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네 친구를 삼가 잘 선택하고라는 찬송가 가사와 같이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생활도 인격과 인생도 달라지는 것이다. 일시적으로는 아무리 큰 은혜를 받고 울고 불고 기절까지 하는 사람도 생활이 정리가 되지 않아서 다시 은혜받기 전으로 또 그 말씀을 듣기 전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 사람들이 알렉산더가 되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를 주신 것은 인격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교제는 거룩한 성도들과 함께 하라고 주신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할례교회를 주신 것도 그와 같다. 할례교회는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할례교회는 세상과 구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교회안으로 들어 와 있는 것들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거룩함이다. 그리고 교회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속에서 나오는 죄를 용서받고 사함을 받아 정결하게 함을 받는 것이 교회이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을 아니 만날 수는 없으나 그들에게 마음을 주고 영향을 받는 것은 구리 장색 알렉산더의 길을 가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안에 있다고 다 거룩한 사람이 아니다. 세상사람들과 같이 살고 세상말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다. 거룩한 말을 하고 거룩한 생활을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다.


나는 나자신의 영혼과 교회안에 있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성도들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47년동안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지금도 세상이 주는 온갖 정보와 오락과 즐거움을 단절하고 산다. 주님이 날마다 내안에 두신 기쁨은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이기 때문이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밤낮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또 글을 쓰면서 위로부터 오는 은혜를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다. 어떤 때는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몇날 며칠이고 통곡을 하고 엎드려 울정도로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며칠마다 한번 씩 찾아온다. 하루 종일 말씀을 묵상하고 찬송하면서 산다. 40여년전에 직장생활할 때도 그랬다. 내가 그렇게 은혜를 받아야 내안에 주님이 두신 생수가 강물처럼 직원들에게 흘러 가는 것을 나는 볼수 있었다. 팬데믹으로 말씀을 전하는 활동이 전혀 없고 집에서 공부하고 글을 쓰면서 지금은 집에만 있는데 같은 아파트 사람들이나 동네 사람들 중에 나를 신기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주님은 나를 그의 최고의 친구로 삼으셨다. 나도 주님이 나에게 최고의 친구이다. 그러므로 주님보다 더 좋아하고 더 사랑할 대상은 이 세상에 아무도 아무것도 없다. 세상에서 들리는 소리도 조심하고 사람들이 하는 말도 주의해야 한다. 세상이 보여주는 것들도 허무한 것이고 헛된 것이다. 지혜자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다.

 

(1: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텔리비젼을 보고 유투브를 보고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것이 만물의 피곤함에 다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것은 보는 대로 찰라의 심심함을 푸는것일 뿐이지 인생에 아무런 유익이 없다. 그런 것들로 많은 알렉산더들이 나오는 것이다.


이글을 쓰면서 생각이 나는 것은 아주 오래전에 서울 근교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했다. 오전에 말씀을 전했는데 어떤 사람이 자기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자신의 BMW 승용차를 세워 놓고 그안에서 세시간을 통곡을 하고 울었다고 했다. 그는 룸살롱을 하는 여집사이었다. 그는 교회가 타락시킨 사람이었다. 또 수많은 목사들이 타락을 시킨 사람이었다. 전에 큰 교회를 다닐 때에 총동원전도를 한다고 해서-그것은 전도가 아니라 인간의 술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전세집을 내놓고 삭월세로 옯기면서 그 차액을 가지고 주일날 경찰서를 찾아가서 전경들 수백명을 버스에 태우고 와서 소위 전도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전국으로 간증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것도 자기 마음에 공허함을 더해서 이전에 하던 룸살롱을 다시 시작을 했다고 한다. 그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충돌이 되어 괴로워서 지하주차장에서 울은 것이다. 딸 둘이 있었는데 다 수입자동차를 사주었지만 자기들의 엄마가 하는 일을 알기 때문에 존경심이 없이 무시하고 싸우자고 대드는 딸들을 보면서 인생무상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울고 지나갈 뿐이지 더러운 직업을 버리지는 못했다. 또 그 교회에는 청량리 사창가의 포주도 있었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지금은 담임목사가 된 목사님이 메가폰을 들고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면서 지나가는데 환자복 차림에 아픈 몸으로 병원 2층에서 뛰어 내려와서 예수를 믿겠다고 해서 교회를 나왔다고 한다. 그도 시간마다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그는 서울근교에 전원주택에서 살았는데 자기의 더러운 직업을 청산해야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투자한 것을 손해 보지 않아야 한다며 끝내 즉시 정리하겠다는 결단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이들도 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수가성여인과 같이 사단에게 당한 피해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은혜를 받고도 수렁에서 즉각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이다

     

룸살롱 주인은 아니고 사창가 포주는 아닐지라도 오늘날 세상에 깊이 발을 담그고 사는 알렉산더같은 교인들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심히 해를 입히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목사도 알렉산더고 장로도 알렉산더이며 집사도 알렉산더들이 교회안에 많이 잇다. 성경은 안 읽으면서 여러시간 텔레비전을 보고 스마트 폰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피를 주고 산 자기의 영혼을 그런것들에게 허무하게 팔아 넘기고 있다.


믿음은 세상을 떠나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세상과 분리되어서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믿음이다. 세상속에서는 세상을 이기지도 못하고 정복하지도 못한다.

오늘 하루도 보고 듣는 것으로 자기의 영혼을 더럽히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만 바라보는 은혜를 받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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