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 80이 안되는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의 로스엔젤레스 남쪽의 오렌지 카운티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가  IQ가 80이 안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목사가 된 것을 항상 자랑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처음 전도훈련을 할 때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서울의 명문대학교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여 수석으로 졸업한 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미국교포가 선망의 대상이 될 때이었기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것저것가리지 않고 미국에 조그만 개척교회 목사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메리칸드림이 허상으로 드러난후에 고달픈 개척교회 사모의 일을 하면서 날마다 도망갈 생각만 하고 살았습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만 살돈이 있으면 도망가야지 하는 마음만 가지고 살았답니다.

목사가 훈련을 받고 사모도 훈련을 받았는데 그 사모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도망갈 생각을 완전히 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내가 미국에 갈 때마다 운전사를 자청하고 나서서 거리가 멀다하지 않고 여러시간을 운전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자기 아내가 변화된 것에 감사를 표하면서 힘들이지 않고 봉사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것은 그가 잘변화되지를 않고 늘상 그믿음이 그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도 항상 어려운 상태 그대로 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부터는 연락이 끊기었는데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 나를 통해서 자기의 아내가 변화된 것을 고마워 하면서도 또 그랬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나를 더 이용할 것이 없을까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를 한참동안 가까이 했던 것입니다. 

자기가 먼저 변해야 변화된 아내를 이끌수 있고 가정도 새로워지고 은혜받은 교인들과 교회도 새로워지는데 많은 목사들과 같이 나를 이용하고 협회를 이용하여 교회를 잘하려고 하다가 자기 뜻대로 안되니까 연락을 끊고 잠적을 한 것입니다. 

한국에도 그런 목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열등하고 인간적으로도 좀 모자란듯한 사람들까지도 주님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가정이 깨지기 직전에 은혜를 받고 회복된 목사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목회를 포기하기 직전에 은혜를 받고 회생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이용하는데에 길들여져 있었던 사람들이며 나와 협회를 그리고 주님의 지상명령인 전도까지도 이용할 것으로 구하고 찾다가 불행하게도 자신이 변화될 시기를 놓치고 결국은 주님이 이끄시는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협회와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에 주님이 그들을 내어 보내시는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협회를 떠나간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어 보내신 것입니다. 혐회에서 내어 보낸 것이 아니라 주님이 당신 앞에서 쫓아 내신 것입니다.

주님도 그러 하셨듯이 나와 협회는 한 사람이 변화되기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을 했지만 많은 목사들은  자기를 먼저 변화시키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을 싫어하고 주님을 거부하고 나를 이용하고 협회를 발판으로 삼아 전도와 성경공부와 주님까지도 교회를 해서 먹고 사는일에 이용을 하려고 혈안이 되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내가 데리고 같이 일하던 간사들도 은혜를 받아서 우선적으로 자기가 변화되는 사람들도 몇명있었지만 대부분은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나와 협회를 이용한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항상 나를 보면 협회를 만난 것에 감사를 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변화되지를 않으니 목회는 훈련을 받고 은혜를 받기 전이나 그 후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목회가 시원치 않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가난도 평생 따라다니는 "평생가난"을 달고 쪼들 쪼들하게 살기도 합니다.  누군가 그들을 두고 하는 말이 "그러니 항상 가난하게 살지"라는 말이었습니다.  더러는 교회도 커지고 예배당도 짓고 또 이 땅에서 하는 일에 복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자기를 먼저 변화시키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을 배반하고 주님이 주신 은혜를 등한히 여김으로 그들에게는 복과 함께 저주도 임하여 불의의 사건과 사고와 교인들과 다투고 자녀가 형통하지 못하는 복잡하고 고달픈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보고싶어서 이글을 쓰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주님도 이용하고 나도 이용하고자 했던 그런 사람들을 다시 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면 섬찟하고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증인이 되시거니와 골방에서그들의 얼굴이 떠오르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그네들이 목회가 아닌 교회를 했던 죄를 회개하고 목회도 변변치 않은 목회아닌 목회를 하려고 주님을 이용하고 성경공부를 이용하고 전도를 이용하려 했던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불쌍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악할 대로 악해졌으면 은혜를 베푸신 주님을 자기의 일에 이용을 하는 자리에 들어갔는지를 깨닫고 마음을 찢고 회개하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심판이 급하고 지체하지 않으며 주님의 멸망은 자지 아니합니다.  


오늘도 코로나 시대에 하나님의 진노가 처처에 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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