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인증서(disciple certificate)

 

 

세상에는 가짜도 많고 믿지 못할 것도 많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증서를 좋아한다.

식약청인증을 받은 제품이느니 미국의 FDA 인증을 받은 제품이니 하면서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전기제품이면 전기제품으로서 또 다른 것들은 다른 것들대로 정부의 인증을 받아 소비자의 신뢰를 받으려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

소비자들도 자기의 비용을 들여 가면서 가짜나 불량품을 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인증이 안된 제품보다는 인증이 된 제품을 선호 하는 것이다.

때로는 어떤 이들이 학력을 속여서 사회에 물의를 빚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때로는 중이나 목사나 부도덕한 일을 행한 것 때문에 사회의 지탄을 받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아마도 인증서가 있어야지만 믿을만한 세상이 점점 되어 가는 것같다.

 

그래서 "certificate"라는 말은 인증서 또는 수료증 또는 품질보증서라는 뜻으로 쓰여지고 있는 말인데 사람들은 이와같은 것을 신뢰한다.

 

요한복음 15장은 “제자의 인증서” 또는 “제자훈련의 졸업장”이라고 부를수 있는 말씀이다.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가장 먼저 말씀을 전하신 산상수훈에서 제일먼저 팔복을 말씀하시는데 그팔복이라는 것이 말하자면 제자훈련의 컬리큘럼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제자훈련의 필수과목이라는 말이다.

심령이 가난한 복을 받는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것이다. 애통하는 복은 받은바 말씀을 가지고 그말씀대로 살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는 온유한 심령이 되는 것이다. 온유한 심령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요 그것은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와같이 앞의 세과목을 이수한 사람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복을 받는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자기의 의에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 또 사람들의 의에 맞추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배가 고프고 목을 말라하는 복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이르고 하나님의 거룩함의 의의 삶을 사는 사람은 그와같이 성장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지 않는 영적으로 어린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고 불쌍히 여긴다 그것이 긍휼히 여기는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는 다섯 번째의 필수과목이다. 그렇게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도 그를 범사에 불쌍히 여겨 주신다. 그와같이 불쌍히 여길줄아는 사람은 마음을 청결히 하는 복을 받아서 일상생활속에서 하나님을 뵈옵는 은혜를 받는다.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를 모시거ㅗ 그의 얼굴을 항상 뵈옵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수행한다. 이것이 화평케하는 복을 받는 것 곧 전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마귀의 공격이 있기 때문에 말씀으로 거룩함으로 살고 마귀의 손아귀에 있는 영혼들을 빼앗아 오는 일을 하기 때문에 마귀가 온갖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훼방하고 대적을 하게 된다. 그것이 예수 때문에 사람들이 욕하고 악하게 말을하는 핍박을 받는 복을 얻는 것이다.

이여덟가지 과목은 어느것 하나라도 빠지면 안된다.

 

주님은 제자들을 데리시고 다니시면서 삼년반동안 제자들에게 이와같은 은혜와 축복을 받도록 인도하셨다.

그리고 주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제자들에게 인증서를 수여하시는 모습이 오늘 본문의 말씀인 것이다.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신대로 그들을 가르치신대로 이제는 제자들이 그와같은 사람들이 다 되었다는 인증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가짜의 홍수시대를 살고 있다.

교회안에도 가짜들이 범람을 한다.

교회안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주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허다하다.

주님을 만나지도 못한 사람들이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인데 그와같은 사람들이 교회일을 열심히 하지만 세상에서는 소금도 빛도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어떤이들은 제자훈련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예수 때문에 핍박을 받는 성도들이 아니라 육신의 행위와 열심 때문에 존경받고 찬사를 받는 종교인들을 양산하고 있다.

가르치는 자신도 전도를 외면하고 주님 때문에 핍박과 고난을 당한 적이 없는 고상한 선생으로만 살고 입으로만 주여 주여를 가르치는 일군이 아닌 말군이 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뿐문 아니라 여덟과목의 컬리큘럼중 어느것 하나라도 알지 못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일들이 많이 있다.

 

교회밖의 세상보다도 품질보증이 더욱 더 필요한 곳이 교회안이다.

사람들에게 불량품 판정을 받는 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더 무서운 일이다.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생각을 하면 사람들에게조차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앞에서 인정을 받을 리가 만무한 것이다.

이것은 엄한 사실이다.

 

제자들은 삼년반동안 주님을 따랐다.

단하루도 주님을 떠난적이 없었다.

어떤 제자는 부친상을 당하여도 휴가를 얻지 못하였다.

베드로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라는 말과 같이 그들은 그렇게 단하루도 주님을 떠난적이 없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듣고 보고 주목하고 만지면서 살았다. 눈을 뜨면 말씀이신 주님이 앞에 계셨다. 말마다 책망을 받고 행실마다 꾸중을 들었다 그뿐 아니라 주님은 마음속에 품은 생각까지 들추어 내셔서 책망하시면서 가르치셨다. 그렇게 살면서 주님의 말씀으로 고쳐져서 주님이 원하는 사람들 곧 주님같은 사람들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서 주님의 마음에 흡족함이 왔을 때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그들을 인증하시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열두가지의 인증의 사실을 가지고 말씀하셨다.

이열두가지는 하나라도 빠짐이 없이 그리스도인이 주님께 받아야하는 인증서인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인증하신 열두가지 사실이 무엇인지를 하나씩 짚어가면서 살펴보도록 하자.

 

1. 농부와 포도나무와 가지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요 15:1,2)

 

성경에서 믿음은 종종 전쟁으로도 표현이 되지만 농부가 경작을 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표현된다.

전쟁은 싸우는 것이고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인이 마귀와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성장을 해야한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성장을 해야하는 부분이 농사를 짓는 것으로 표현이 된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자신이 포도나무이며 제자들은 가지이고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가 되심을 말씀하신다.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는 이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막 1:17)

 

그러나 이제는 주님이 삼년반동안 제자들을 기르셨기 때문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줄기라고 말씀을 하신다. 포도나무와 포도나무 가지는 같은 것이다. 나무는 가지같고 가지는 나무같은 것이다. 다시말해서 주님은 제자들을 자기같은 제자들로 기르시고 경작을 하신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제자훈련의 목적인 것이다. 그목적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경작하는 농부는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그농부이신 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가지치기와 가지를 깨끗하게 하는 일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제해버리신다.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맺게 하시기 위해 깨끗하게 하신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줄기와는 다른 가지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주님은 이말씀을 하시면서 가롯유다를 염두에 두시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다른 제자들과 같이 삼년반동안을 똑같이 고생하고 먹고 자면서 주님을 따라다녔지만 유다는 제자들과 같이 말씀으로 양육을 받지 못했고 말씀으로 변화를 받지도 못하였다. 그 사실을 주님은 일찍부터 알고계셨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요 6:64-71)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잡히시기전에도 주님은 이사실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요 13:10,11)

 

그리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맺게하기 위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주님은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은 곧 예수를 버리고 도망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곧 죄를 지을 사람들이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를 할 것을 미리 알고 계셨다. 그래서 그들이 죄를 지을 것을 다 아시고 죄를 지으면 아버지께서 깨끗하게 해주신다고 다시말하면 용서해주셔서 더 열매를 많이; 맺게 하신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주의 제자들과 같이 우리는 연약하다.

주님이 깨끗하게 하시고 영적으로 성장을 시킨 사람도 죄를 지을 것이 명백한 사실임을 주님은 알고 계셨다. 그러나 죄를 짓고 넘어지는 것보다도 농부되신 아버지가 죄를 지루 때마다 즉각적으로 죄를 씻어 정하게 하심으로 더 열매를 많이 맺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다.

 

가롯유다같은 가짜는 죄를 지으면 자르신다. 죄를 지어도 짜르고 죄를 아니지어도 자른다. 그것은 가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안에도 가짜들이 많이 있다. 주님과 삼년반을 살았던 제자들중에도 가짜가 있었다면 교회안에 가짜가 없겠는가? 그리고 다른 제자들같은 진짜는 죄를 지어도 깨끗하게 하셔서 열매를 맺게 하신다. 날마다 죄를 지어도 씻김을 받고 용서받는 생활을 사는 사람은 진짜라는 말이다. 이일이 농부이신 하나님아버지가 오늘도 하시는 일이다. 자르는 대상이냐 깨끗하게하시는 대상이냐가 중요하다. 가롯유다는 자르는 대상이었으나 다른 제자들은 죄용서함을 받고 깨끗케 하시는 대상이었다.

 

 

2. 말씀으로 거룩해진 제자들

 

두 번째로 주님의 제자의 인증내용은 말씀으로 깨끗함을 받은 것이다.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3,4)

 

주님은 제자들을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셨다.

말씀으로 죄와 죄성을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게 하심으로 죄를 씻어 주셨다.

죄를 씻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는 인격으로 고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6,27)

 

말씀으로 거룩해져야 포도나무같은 줄기가 될수 있다.

주님이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해져야 주님과 함께 살수 있고 사는것에서 지나 주님안에 항상 거하는 생활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져야됨을 명하셨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주님도 제자들에게 처음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을 기르시고 양육하는 목표가 하나님처럼 온전하게 되는 것임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그래야지만 주님안에 거할수 있고 주님안에 거해야 열매를 맺을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전도하고 싶어도 전도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님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심히 전도를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도 주님안에 거하는 원칙을 잊었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깨끗해진 사람만이 주님안에 거할수 있으며 주님안에 거하는 사람만이 전도할수 있고 열매를 맺을수 있다.

 

3. 저절로 열매를 맺음

 

세 번째의 주님의 제자의 인증은 열매를 저절로 맺는 것이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전도를 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나 열매를 맺는다 하여도 저절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다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주님안에 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에게는 전도보다도 전도의 열매를 맺는 것보다도 우리가 그안에 거하는 것을 더 중요시하고 우선적으로 여기신다. 어떤 사람이 주님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그사람에게 전도도 열매도 요구하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믿는다하면서 주님안에 거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악함가운데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주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악함을 가지고 말씀으로 깨끗케 되는 말씀에 순종하는 인격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은 그사람이 전도를 못하는 것을 싫어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같이 죄지 않는 그사람을 싫어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안에 거하는 사람은 저절로 열매를 맺는다.

왜냐하면 가지는 줄기에 붙어 있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요 열매는 줄기가 역사함으로 가지에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줄기에 붙어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히ㅏ는 삶을 살게 되고 그렇게 사는 사람은 줄기같은 가지가 되는 것이다. 그때에 줄기에서 양분이 올라와서 가지에 열매가 맺히는 것과 같이 저절로 열매를 맺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줄기에 붙어 있는 가지는 전도가 쉽다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주님안에 항상 거하는 사람은 전도가 쉬운 것이다.

왜냐하면 저절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나는 전도를 하면서 저절로 열매를 맺는 일들을 많이 경험을 하였다.

직장에서 찾아와서 예수를 믿게 해달라는 사람들도 많았고 길에서 따라와서 예수를 믿게 해달라는 사람들 그리고 집으로 찾아와서 예수믿고싶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말씀을 전하는 것도 내가 아니라 내안에 성령께서 역사하심도 많이 보았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19,20)

 

듣는 사람들이 감당할수 없고 꼼짝 못하게 하는 지혜의 말씀도 주셨다.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눅 21:15)

 

주님의 일은 주님이 하시는 것이다. 그의 제자는 도구로 쓰임을 받고 순종하는 것이다. 저절로 열매를 맺는다는 말은 주님의 일이 쉽고 형통하게 이루어 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는 주의 일을 쉽게하는 것이다.

 

 

4. 과실을 많이 맺음

 

네 번째 제자 인증의 내용은 과실을 많이 맺는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5,6)

 

가지에는 두가지의 가지가 있다.

열매를 맺는 가지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이다.

열매를 맺는 가지는 계속 열매를 맺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불에 던져 땔감으로 쓴다. 열매를 맺는 가지와 땔감으로 쓰는 가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주님안에 거하는 인증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열매를 맺는 주의 제자이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같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에게 쓰임을 받지 못하고 사람에게나 쓰임을 받는 종교인이 되는 것이다. 주님의 종이 아니라 사람의 종노릇을 한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기쁘게하되 그것도 불사르듯이 잠깐 기쁘게함을 받고 배신을 당한다. 교회를 다녀도 교회일을 열심히 하여도 주님안에 거하는 생활의 인증을 받지 못한그리스도인들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다. 무엇보다 먼저 줄기에서 떨어져나간 가지와 같이 말라진다. 그다음에는 버림을 받는다. 그리고 사람에게 쓰임을 받고 불에 살라진다

주님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을 심령이 메마르고 영혼이 바싹 바싹 타들어 간다. 감사도 기쁨도 사라지고 찬송도 입에서 떠나고 기도할 마음조차도 없어진다. 말씀을 읽고 묵상을 하기보다는 세상의 영화와 음악과 텔레비전에 탐닉한다. 그래서 주님이 쓸수 없음으로 주님에게 버림을 받는다. 그리고 사람이 쓴다. 교회안에서 조차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과 칭찬을 구하지 않는다. 그럼으로 자기의 영혼과 인생을 불사르고 만다.

그러나 주님안에 거하는 사람은 주님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주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다. 주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의 일을 하지만 주님안에 거하는 사람은 주님이 하시는 일에 도구로 쓰임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백을 한 내게 능력주시는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다는 말씀은 내게 능력을 주시는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말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안에 거하는 주의 제자는 과실을 많이 맺는다.

 

5. 기도응답

 

다섯 번째의 제자의 인증내용은 기도응답을 받는 생활을 사는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7,8)

 

주님안에 거하는 사람에게는 기도응답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그기도응답의 비밀이 주님안에 거하는 것이다.

주님안에 거히지 않는 사람의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그것을 우리는 염원이라고 말한다. 마음속에 소원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없는 이방인들이 하는 기도이다.

그런기도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응답이 있을수가 없다.

 

기도는 들으시는 분 곧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있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위해서는 그아버지가 약속하신 약속을 붙잡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응답에 담대한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7절의 말씀대로 주님안에 거하면 그거함의 결과로 말씀이 우리안에 거하게 되고 말씀이 거하는 주의 제자는 무엇이든지 구하는대로 응답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안에 거하는 제자는 기도응답을 받는다. 그러나 기도응답이 없는 사람은 말씀이 그안에 거하지도 않으며 말씀이 그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은 주안에 거하는 제자가 아니다.

 

참제자의 식별방법중에 하나가 기도응답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나의 기도에 응답을 하시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주님의 참제자이다.

그러나 주님이 기도에 응답하시는 일이 없거나 별로인사람은 주님의 제자로서의 인증을 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됨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안에 거하는 주님의 제자는 구하는대로 응답을 받는 생활을 살기 때문이다.

참된 주님의 제자의 증거가 기도하는 제자요 기도하는대로 응답을 받는 제자인 것이다.

 

6.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는 참제자

 

여섯 번째의 제자인증은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게하는 사람이 참제자인 것이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

 

열매를 많이 맺는 사람이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 드릴수 있다.

말로만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하는 것은 공허한 것이다.

행실은 변하지도 않고 주님안에 거하지도 않으면서 주님따로 자신따로 살면서 말로만 영광을 돌리고 찬송으로만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것은 거짓된 것이다.

 

그와같이 알맹이 없는 것을 하나님이 모르실 리가 없다.

그리고 그와같이 진실하지 못한 것들에 속아넘어가고 만홀히 여김을 당하실 주님은 더더우기 아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하나님을 속이려는 자들은 자기 스스로만을 속일뿐이지 하나님은 절대로 속지 않으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영광을 받으시는 유일한 방법은 그의 자녀인 주의 제자가 열매를 맺는 것이며 그것도 많은 열매를 맺을 때에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나를 통해 내가 열매를 많이 맺는 것 때문에 아버지가 영광을 받아야 참제자라는 말씀이다.

그것도 찔끔 찔끔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열매를 풍성히 많이 맺어야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그것이 주님의 참제자의 인증서인 것이다.

 

7. 사랑안에 거함

 

일곱 번째의 제자의 인증은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9,10)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자가 그의 참 제자이다.

주님의 사랑안에 거한다는 말은 주님의 사랑을 잊지도 않고 잃어버리지도 않고 항상 그사랑을 간직하고 그사랑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주님의 사랑안에 거한다.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참제자는 그사랑을 떠나서는 살수가 없다.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주님의 참제자는 주님을 떠나 다른데에 가서 거하지도 못하고 한눈을 팔지도 못한다.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그아들을 사랑하신 사랑과 동일한 사랑 곧 아가페의 사랑안에서 사는 것을 말한다.

주님의 사랑은 아버지께서 그아들을 사랑하신 사랑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 그사랑으로 주님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주의 사랑안에 거한다.

주의 사랑안에 거한다는 말은 주의 사랑안에 머물러 있음을 말한다.

주님의 사랑안에 머물러 있다는 말은 그사랑안에서 생각하고 그사랑안에서 판단하고 그사랑안에서 말하고 그사랑안에서 보고 듣고 사는 것을 말한다.

그사랑안에 거하는 것은 주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주의 사랑을 떠나지도 망각하지도 않고 사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주님의 사랑이 날마다 생활속에서 지속되는 그리스도인이다. 가정에서도 그사랑으로 살고 직장에서도 길에서도 환경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도 그사랑안에서 말하고 행하고 사는 것이다.

 

주님도 아버지의 사랑안에 거하는 비결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아버지께 받은 사랑으로 죄인들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 하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의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는 것이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때에 항상 주의 사랑안에 거하는 삶을 산다는 말이다. 성도들이 주님의 사랑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그렇게 성도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주의 사랑안에 거하는 생활을 산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참제자의 인증서인 것이다.

 

8. 서로 사랑하는 기쁨

 

여덟 번째로 주님의 제자의 인증서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 15:11)

 

주의 참제자의 증거중의 하나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보이는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수 없기 때문이다.

보이는 형제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이 없든지 아니면 주님께로부터 사랑을 받았는데 받은바 사랑을 잃어버렸든지 둘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이둘은 다 주님의 제자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주님의 제자의 증거는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며 사람에게 속한 사랑이나 땅에 속한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성도들을 예수사랑가지고 서로 사랑할 때에 말로 다할수 없는 기쁨이 온다.

그기쁨은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다.

그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인 성도를 사랑하는 기쁨은 내가 주님의 사랑의 도구로 지금스임을 받고 있는데서 오는 기쁨이다.

내가 있어야할 자리에 있고 내가 해야할 일을 하고 있으며 나같은 것이 누구를 사랑할수 있다는 것이 한량없는 기쁨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세상을 오늘도 기쁨이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할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한사람도 사랑할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정욕을 좇아서 자기만을 사랑하는 것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오직 자기만을 사랑하고 자기의 욕심만을 채우면서 사는 것이 이세상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죄인이었던 내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구원을 받고 주님을 좇아 제자의 삶을 살면서 주님을 배우고 주님안에 거하며 그사랑안에 거하게 되었을 때에 내가 이기심없이 자기의 정욕과 상관이 없이 누군가를 주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랑할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말할수 없는 기쁨이 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변화되는 것이 이세상 어떤 것과 비교할수 없는 기쁨이라면 변화된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누군가를 사랑함으로 그사람을 변화시키는 기쁨은 자기가 변화된 기쁨과는 비교할수 없는 기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들이 그사랑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상의 기쁨은 이세상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주님의 참된 제자의 또하나의 인증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9. 주님의 친구

 

아홉번째로 주님의 제자의 인증은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 15:13-15)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큰 사랑이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뜻은 사람가운데 큰 사랑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랑이지만 주님의 사랑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이 죄인들을 위하여 목숨을 주신 사랑이며 죄로인하여 원수된 나를 의하여 대신 죽으신 사랑이라는 말씀이다.

먼저 이와같은 사랑을 받은 사람은 주님의 친구가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친구이신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하는 친구가 된 것이 주님의 제자들이었다.

우리도 주님을 죽도록 사랑하면 주님의 친구인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주님의 명령하시는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이다.

그순종은 억지 순종이 아니라 받은바 하나님이 주신 원수도 친구같이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의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주님의 참제자라는 말이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4)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도 목숨을 버리기까지 친구를 사랑하는 사랑이 요구되는 것이다. 사람의 말에 순종하는 정신으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가 없다.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도 주님을 따라가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생활을 살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자기를 따라오는 제자가 되는 것은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해야지만 가능함을 여러번 말씀하셨다.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5-27)

 

친구는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기 때문에 주님의 친구가 된 그리스도의 제자는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주님도 아버지의 계명 곧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으로 아버지를 사랑하신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면 종이지만 주인이 하는 일을 다아는 사람은 종이 아니라 친구라는 말이다.

주의 제자는 주님이 하시는 일을 다 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도 아니요 주님의 친구도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모든 것을 미리 알리시고 행하셨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다 알게 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종이 아니요 주님의 친구라고 하신다.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다 알게 했다는 말씀은 성경에서 아는 것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을 말한다. 아버지께 들은 모든 것을 다 알게 하셨다는 것은 아버지께 들은 말씀을 제자들에게 다 체험을 시켰다는 말씀이고 그것은 제자들이 주님이 들려주신 아버지의 말씀에 다 순종했다는 말이다.

 

그와같이 아브라함이 주님으로부터 저는 내 벗이라는 인증을 받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친구가 된 것이다. 사람이 친구를 대함과 같이 하나님이 모세를 친구로 대해주셨다. 모세도 주님의 참제자의 인증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은혜를 받았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다 하나같이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다. 오늘 말씀에서도 주님의 제자들이 가룻유다를 제외하고 다 주님의 친구가 되었다.

 

주님은 나보다도 나의 친구가 되기를 더 원하신다.

주님은 나의 친구가 되기를 먼저 원하신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고 싶어서 여자의 후손으로 이땅에 오신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랑하는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셨다.

주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 싶어 부활하셨으며

주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시기 위해 성령으로 우리몸을 성전삼고 우리안에 들어와 계시는 것이다.

제자에는 두가지 종류의 제자가 있다.

주의 제자들은 이두가지를 다 경험한 사람들이다.

곧 종같은 제자와 친구같은 제자이다.

 

종은 주인을 두려워하고 어려워한다.

그리고 종은 주인을 잘 모른다.

종은 주인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친구는 친구를 사랑한다.

친구는 친한 것이 친구이다.

친구는 서로를 너무나 잘안다.

친구는 친구를 사랑한다.

 

주님의 제자들은 이제는 종이 아니라 친구라고 부른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아직도 종같은 제자인지 아니면 친구같은 제자인지 스스로 살펴보자.

 

참제자의 인증은 주님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10. 항상 있는 과실

 

열 번째의 제자의 인증은 열매가 있되 항상 열매를 맺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주님의 제자는 항상 열매가 있는 사람이다.

열매가 있다가 없다가 하는 사람이 아니다.

열매를 맺었다 안맺었다하는 사람이 아니고 항상 열매가 맺어지는 사람이다.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다. 주님이 우리를 택하여 세우셨다. 그러므로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일군으로 세우신 주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면 주님이 열매를 항상 있게 하시는 것이다.

주의 택하심대로 살지 않고 불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열매가 항상 있을수가 없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0,11)

 

또 열매가 항상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언제든지 기도한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에 응답을 해주신다.

사람이 기도응답이 없는 이유는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요 또 열매를 맺어도 항상 열매를 맺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윗도 고백하기를 복있는자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11. 세상이 미워하는 핍박

 

열한번째로 주님의 제자의 인증서는 핍박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 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7-25)

 

제자의 인증조건중에 중요한 하나는 핍박을 받는 주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이 핍박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시는 모든 현장에 함께 있었다. 그리고 주님으로 인하여 그들도 핍박을 받았으며 바리새인들에게 천덕꾸러기들이 되었다.

 

주님의 제자들은 핍박을 받는다.

핍박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참 제자가 아니다.

핍박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도 아니다.

 

주님을 닮고 거룩한 삶을 시작하면 세상이 미워하는 일이 시작이 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그것은 저들과 같이 극한 방탕에 달음질 하지 않기 때문에 받는 핍박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벧전 4:1-5)

 

교회안에서도 육적인 사람들이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다.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 4:29)

 

주님의 제자훈련의 마지막 컬리큘럼이 핍박이다.

핍박은 필수과목이다.

핍박이 없는 것은 경건하게 살지 않기 때문이다.

핍박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기 때문이다.

천국을 소유하고 천국백성들과 같이 살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0-12)

 

주님도 이땅에 계실 때에 핍박을 받았다. 그리고 장로들에게 붙잡혀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장로들이 예수를 죽인 것은 아니었다. 악한자들이요 죄인인 그들은 거룩하신 주님을 만지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의 인증서인 이말씀에서 핍박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핍박을 받을 때에 꼭 필요한 것은 핍박을 받는 성도들끼리 피차에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요 15:17)

 

그리고 핍박을 받는 제자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세상이 먼저 주님을 미워했기 때문에 주님의 제자들을 핍박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요 15:18)

 

그리고 그이유는 주의 제자들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택함을 받은 천국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핍박을 하는 것이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주님은 제자들이 핍박을 받는 것은 주님이 받으신 고난보다 더큰 고난을 받을 것일 미리 말씀하신다.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다고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제자들이 받을 고난이 큼을 미리 예고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고난중에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지키어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음을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요 15:20) 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저들이 핍박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요 15:21)

 

주님이 이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저들의 죄를 핑계할수 있으나 이제는 주님이 이땅에 오셔서 직접말씀하셨기 때문에 저들의 미워하고 핍박하는 죄를 핑계할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요 15:22)

 

주의 제자를 미워하는 자는 주를 미워하는 것이요 주를 미워하는 자는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요 15:23)

 

주님은 이땅에서 사람이 할수 없는 말씀과 일들을 많이 하셨다. 지금도 주님은 계속 일하신다. 그런데도 세상은 주님을 미워하고 주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는 제자들을 미워한다.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요 15:24)

 

주님이 선한 일을 하신 것이 저들에게는 오히려 비방거리가 되었다. 안식일에 삼십팔년된 병자를 고치신 일이나 진흙을 이겨 나면서부터 소경이 된 사람을 고치신 것도 안식일이었다. 십팔년동안 몸이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여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신 것도 안식일이었다. 안식일에 한편손마른자의 손을 고쳐주실 때에도 사람드은 주님을 죽이려고만 했다. 주님은 그들에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것이 옳으냐고 물으셨으나 그들은 한마디도 답을 할 수가 없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연고없이 주님을 죽이기로 모의를 하였다.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막 3:1-6)

 

하나님을 미워하기 때문에 예수를 미워하고 예수를 미워하기 때문에 제자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그것을 주님은 아무 이유 없이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연고없이 욕하고 이유없이 악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 바 저희가 연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25)

 

12. 증인의 삶

 

마지막으로 열두번째의 제자의 인증서는 증인의 생활을 사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요 15:26,27)

 

마지막으로 주님의 제자의 필수과목인 컬리큘럼은 전도이다.

그냥 전도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확실히 보여주는 증인의 생활을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증인이 될수 없다.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도 증인이 되지 못한다.

성령을 좇아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도 증인의 반렬에 들어갈수가 없다.

전도의 행위나 행사는 할수 있지만 그것은 그리스도가 증거되지 않는 전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보여지지 않는 전도, 그리스도가 전파되지 않는 전도를 하는 사람들은 주의 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어리석은 사람들이 사탕을 나누어 주면서 교회에 오라고 유인하는 것이나 강냉이 봉지나 팝콘이나 커피한잔으로 죄인들의 환심을 사면서 교회 나오라고 유인하면서 그것이 전도라고 생각을 하고 행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가 증거되지 않는 악한 행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전도는 사람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다. 전도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나를 증거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성령을 모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고 살았고 보고 들었고 만졌기 때문에 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과 함께 있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가 없다.

그것도 처음부터 함께 있었어야만 한다. 처음부터 함게 있었다라는 말은 꾸준히 주님을 따라간 제자들을 말씀하신 것이다.

뜨내기처럼 들락 날락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증거할수 없다. 은혜를 받았다 까먹었다를 되풀이한 기복이 많은 생활을 한사람도 증인이 될수는 없다.

오늘날 전도라고 하면서 주님이 증거되지 않는 유사행위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증거되지 않는 전도를 하는 사람은 진짜 주님의 제자가 아니라 가짜요 유사품이요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증거되지 않는 전도를 통해 교인들을 모집하지만 주님이 바리새인들의 전도를 책망하신 말씀과 같이 그들로 배나 지옥자식이 되게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

 

그것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전도가 아니라 외식하는 전도 곧 속빈강정과 같이 그리스도가 증거됨이 없는 외식에 지나지 않는 악한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교회로 끌어 들인후에 어떻게 되었는가 생각해보라.

그리스도의 증거를 받지 못하고 교인이 된 그들이 천주교로 가고 신천지로 가고 온갖이단에 현혹이 된 것이다. 오래전에 모슬렘으로 빠져들어간 수많은 사람들은 계시록에서 이마에 어린양의 인을 맞지 아니한자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배교할 것이라고 주님이 미리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역사속에서 보고 있다.

 

그러나 인증을 받은 주님의 제자는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전도를 하여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하는 기쁨 곧 영혼을 추수하는 기쁨으로 날마다 사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요한복음에서 주님의 제자들을 인증하신 열두가지나 되는 제자의 인증조건을 두루 살피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는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열두가지나 되는 주님의 제자의 인증서를 들은바 대로 나는 어디에 속하며 어디쯤 이르렀는지를 시험하고 확증하는 것이 급하고 중요하다. 만약에 주님의 인증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목회는 물론이요 교회일도 물론이며 자기 스스로의 신앙생활도 지키는 믿음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열두가지 제자의 인증에 못미치는 사람은 청강생이거나 졸업장을 받지 못하고 학위증을 받지 못한 사람과 같은 것이다. 세상에서도 중도탈락자가 불쌍한 처지라면 주님의 제자로서 인증받지 못한채 인생을 마치는 것은 가장 불행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과 같이 날마다 그리고 집중적으로 일천이백육십일의 영적인 양육을 받아 제자들과 같이 주님의 인증서를 받음으로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간 그 영광스러운 주의 제자의 길을 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은혜를 받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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