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영접기도에 관하여 의심하는 말들을 하곤 한다.

그와같은 오해는 그사람들이 마치 영접기도가 구원을 받는 방법인양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접기도는 신앙고백을 도와주는 것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이 중심으로 듣지 않고 지적인 동의에 그치는 영접기도를 한다면 그것은 진리에서 떠난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성령이 역사를 하신 사실이 분명하면 그것까지도 성령의 역사로 책임을 져 주시는 것이다.

 

영접기도는 구원을 받는 방법이 아니다.

영접기도는 전도방법도 아니다.

영접기도는 신앙고백일 뿐이다.

 

나는 이와같은 영접기도의 위력을 최근에 체험하였다.

이사실을 함께 나눔으로 은혜를 받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한다.

 

지난주일 아침에 역에서 내려 교회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운전기사는 아주 친절한 분이었는데 먼저 말을 걸었다.

 

“서울에서 오셨나요?”“예”

“새벽같이 나오셨겠네요.”

“예 그렇지요”

“참 세상이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때에 서울로 수학여행을 갈 때에는 대구에서 서울까지 열시간이 넘어 걸렸습니다.”

“아 네 그렇지요.”

“그때가 1968년도이었습니다.”

“아 그래요 그때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요”

그는 아주 화들짝 놀랐다.

“아니 그렇게 연세가 많이 드셨어요? 겉으로봐서는 연세라할 것도 없이 나이라고 해야할것같은데요?”

그러고보니 외모로는 나보다 더 늙어 보이는 분이었다.

그는 57세난 사람이었다.

“아 예 아마 꾸준히 운동을 해서 그런가봐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운동도 운동이지만 마음에 스트레스를 안받아야지 쉬 늙지 않지요.”

“예 그렇지요 그런데 이세상살면서 스트레스를 안받을수 있나요. 다 스트레스를 받고 살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받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를 하느냐입니다.”

“예 선생님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평생에 받는 스트레스를 그때 그때 해소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복음을 전할수 있는 대화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종교인으로 가짜로 살았던 과거와 예수를 믿게된 경위 그리고 예수를 믿고나서 받은 병고침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거짓말같은 역사로 나를 도우시고 축복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했다. 경제위기 때에 나같은 것에게 직장을 당당히 시험쳐서 들어가게 하신 주님의 기적같은 역사도 말했다.

 

그러자 그는 자기도 할말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오래전에 자기가 경험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서생님 제가 군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가 군에 있을 때의 일이라면 삼십오년은 족히 지난 과거의 일이었다.

그가 말을 이어갔다.

“제가 공병대대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사층높이의 지붕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위에서 일하던 제가 추락을 하여 허리와 척추를 크게 다쳤습니다.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수술도 했지만 한발자국도 걷지 못하는 절망과 고통에 싸여 있을 때입니다. 본래 통합병원에는 주말만 되면 중이나 목사나 신부등등 많은 사람들이 병실마나 다녀갑니다. 그런에 어느 일요일날에 목사님 한분이 오셨는데 그분이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날밤에 꿈을 꾸었는데 돌아가신 어머님이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아픈 등과 허리를 여러번 오르내리며 쓰다듬어 주시면서 이제 다나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일아침이면 걸을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일아침에 닭고기 반찬이 나올터이니 그것을 먹으면 더 잘 걷게 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 하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으나 침대에서 일어나 두발로 섰는데 이전에는 설수도 없었던 다리에 힘이 생기면서 설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발자욱을 걸었는데 걸어지는 것에 놀라기도 했으나 순간에 힘이 죽 빠지면서 식은 땀이 났습니다. 그래서 다시 침대로 돌아가서 누웠습니다. 그리고는 몇발자국을 걸은 것보다도 내가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이 더 나를 짓눌렀습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가 나왔는데 꿈에 어머니가 말씀하신대로 닭고기반찬이 나왔습니다. 그것을 하나도 남김이 없이 다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디로선가 힘이 솟는데 일어나서 걸었는데 아까처럼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과연 내가 걷게 되는가 의심이 자꾸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시험삼아 더 멀리 걸어보고 또 멀리 걸어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걷는 것만으로는 정상이 아니다고 생각이 들어서 운동장에 가서 축구경기를 뛰어 보았다고 한다. 한게임을 뛰었는데 전혀 무리가 되지 않아서 고침을 받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루는 축구경기를 무려 세게임을 뛰면서 시험을 해보았는데 전혀 힘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야 나음받은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말을 다 듣고는 내가 말을 했다.

“그건 분명히 하나님이 고쳐 주신 것인데....”

그가 받았다.

“모르지요 뭐 귀신이 고쳐준건지 누가 고쳐 준건지 알수 있나요?”

내가 좀 열을 내었다.

“이것봐요 성경을 보면 귀신의 일은 육체를 멸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귀신은 몸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상하게 하는거에요 이런 참 답답하기는 하나님이 병을 고쳐 주셨는데 그래 삼십년이 넘도록 그걸 인정안하니 참....” 하고는 혀를 찼다.

“.......”

“주님이 어머니 모습으로 꿈에 나타나신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이 고쳐준겁니다.”

“그런데 아내가 교회 권삽니다. 그리고 친척중에 목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가면 좋은 말씀들은 해주시는데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처음부터 확인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내가 죄인인 것 인정하시지요.?”

“예”

“ 그죄를 내가 해결할수 없는 것 인정하지요?”

“예 그러믄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내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아시지요?”“예 다 아는데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믿음의 권면을 해주자 목적지인 교회를 일키로쯤 남았는데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비명을 지르다 싶이 말을 했다.

“도저히 믿을려고 애를 써도 안믿어지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래요 애를 쓰니까 안되는 것이고 애를쓰면 쓸수로 안되는 거예요. 믿음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냥 믿어지는 겁니다. 그 믿어지는 은혜를 하나님이 주셔야 해요. 차를 세우면 내가 도와줄수 있어요.”

그리고 교회골목으로 들어와서는 교회앞에 차를 세웠다. 요금은 9800원이 나와서 만원짜리 한 장을 건네고 잔돈은 놔두라고 했다. 그리고 영접기도를 하자고 했다.

영접하는 자 곧 그이름을 믿는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심에 대하여 말을 했다. 그리고 마음문을 열고 영접하면 주님이 그의안에 들어가셔서 함께 사심에 관해 말을 했다. 그는 자동차 핸드브레이크를 잠그고서는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고 같이 눈을 감고는 영접기도를 불러 주었다.

“주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주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죄가운데서 주님의 사랑을 모르고 방황했습니다.”

“죄가운데서 주님의 사랑을 모르고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이시간에 주님이 나같은 죄인을 사랑하심으로”

“그러나 이시간에 주님이 나같은 죄인을 사랑하심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죄를 사하여 주신 것을 믿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죄를 사하여 주신 것을 믿습니다.”

“이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이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셔 들입니다.”

“나의 구주로 모셔 들입니다.”

“내안에 들어오셔서”

“내안에 들어오셔서”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금부터 영원까지”

“나의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

“나를 구원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구원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내죄를 사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내죄를 사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그리고 그는 울고 있었다.

“아이구 왜 이렇게 자꾸만 눈물이 나지요?”

나에게 물었다.

“그렇게 믿을려고해도 안믿어지던 것을 주님이 이제 믿게하시는 은혜를 주신겁니다.”

“......”

그는 계속 울었다.

미터계를 끄는 것도 잊어버린 까닭에 요금은 만원을 훌쩍 넘었다.

“좀더 있다가 가겠습니다.”

소리를 내서 울다가 흐느끼다가 눈물을 훔치면서 울었다.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눈으로 보았던 순간이었다.

성령으로 하는 전도

성령으로 하는 영접기도 곧 성령으로 하는 신앙고백이 이렇게도 놀라운 것이다.

 

역앞에 택시타는 곳에 많은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손님들도 줄을 서있는가운데 그렇게 준비된 영혼을 주님이 만나게 하신 주님의 역사가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그리고 주님은 그사람의 병을 고쳐주시고도 삼십오년이상을 그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돌아오기를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같이사는 권사인 아내도 친척중에 목사도 그에게 이사랑을 일깨우지 못함을 주님은 얼마나 오랫동안 아파하시고 안타까워 하시고 이영혼을 목마르게 기다리셨을까?

 

나는 교회에 올라와서 당장에 만난 교인들에게 이이야기를 하다가 그냥 울었다.

그를 그렇게도 삼십오년이상 오랜시간을 기다렸던 아버지의 마음이 생각이 나서 울었다.

주님께 모든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린다.

나같은 것을 오늘도 써주시는 주님께 감사한다.

오늘도 나는 무용지물의 교인이 아니라 장로가 아니라 주님이 필요한 사람이요 주님이 쓰시는 사람임에 감사를 드린다. 할렐루야 아멘.

(*.62.17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