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했던 주님의 역사

 

시간이 좀 지나갔지만, 주님의 역사를 글로 남겨야겠다는 부담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다니엘사경회준비로 거의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일정을 소화하다,보니 글을 쓸 시간도 없었다.

지난 11,초에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있었던 주님의 역사는 그만큼 각별하고도 최근에 볼 수 없었던 은혜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선교사로서 언어준비를 하는 이인의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10월 초순경이었다.

다짜고짜로 집회를 잡아 달라는 청이었다.

그런데 형편이 그달 말쯤에 다니엘서 1차 사경회를 앞두고 있었고 이어서 11월 말에 2차 사경회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단번에 거절했더니 국제전화로 여러 번 전화를 하면서 교회형편이 꼭 집회가 필요하다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사실상 나에게는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마도 주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전마다 전조증상으로 나타났던 마귀의 역사였던 것 같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여러 가지 핑계를 대어 안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것이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비행시간을 보니 일곱 시간이나 되어 미국에 가는 시간과 맞먹는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몸이 힘든 것은 아니었지만, 괜히 꾀가 나는 것이었다.

또 윤아무개라는 율법주의자인 목사 밑에 있는 사람이 와서 집회를 했는데 회개가 되지 않았다며 꼭 와달라는 부탁도 했다.

하도 막무가내로 부탁하는 통에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목사님 인터넷에 나에 관해서 쓸데 없는 거짓말을 하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목사님이나 교인들이 그것을 다 읽고 그래도 내가 필요하다면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내가 알지 못하는 교회에서 집회요청이 오면 매번 이렇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가 그랬다. ‘인터넷에는 진실을 위한 공간이 없다(There's no place for the truth on internet)’ 그렇다. 익명이요 얼굴도 안보이고 음성도 들을 수 없으니 제멋대로 글을 쓰고 나대기 때문이다.

담임목사님에게 그렇게 전했더니 20년 전에 자신도 훈련을 받고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말을 하면서 회의를 하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안 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사실상 이 집회는 가능한 조건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므로 주님이 역사하셨다는 말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교회도 일 년에 두 번씩을 부흥회를 하다가 장로님들의 의견으로 한 번씩만 집회를 하기로 하고 지난봄에 부흥회를 마쳤다고 한다. 그리고 재정도 없어서 비행기값도 안되고 강사비를 드릴수도 없고 숙식만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협회도 항상 그렇듯이 재정이 준비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전도 축제를 앞에 놓고 한다기에 그것도 무슨 행사에 목적을 두고 들러리로 집회하는 것이어서 탐탁하지가 않았다.

주일 낮시간부터 집회를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토요일로 비행기예약을 했다. 토요일 오후 비행기를 타고 자카르타에 밤 9시쯤 도착을 했다. 자카르타에서 반둥까지 고속도로로 세 시간을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운전사가 졸리는지 가다가 차를 세우고 한숨 잠을 잤다. 그리고 새벽 한 시쯤에나 여장을 풀었다.

집회는 주일 오전부터 시작해서 새벽 낮 저녁 하루 세 번씩 하게 되었다. 그런데 주님의 역사 중의 하나는 말씀을 미리 주신 적이 없었다. 한두 시간 전에 꼭 주셨다. 그날 아침에 식사하고 호텔방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주님의 말씀이 임했다.

얘 나와 함께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인데 나와 함께 살지 않으면 교회도 예배도 기도도 찬송도 다 소용이 없는 것이야. 그런데 나와 함께 살려면 조건이 있어야 해.”

그러면서 정리가 되었다.

첫 번째는 나와 성도가 서로 알아야 해. 일방적으로 아는 것 곧 한편만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야. 두 번째는 첫 번째 다음으로 오는 단계인데 서로 사랑하는 것이야. 알지 못하고는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하는 것도 쌍방적인 것이지 일방적인 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없지. 세 번째 단계는 서로 희생하는 것이야. 나의 희생은 아들을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죽게 내어 준 것이지만 나를 사랑하는 너희의 희생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지. 그리고 네 번째 단계는 서로 연합하는 것이야. 서로를 알아야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사랑을 받아야 희생하고 순종하며 순종해야 하나가 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모르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찬송하고 기도해도 일방적인 것이며 쌍방적인 사랑이 안 되고, 사랑하지 못하니 순종이 안 되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지 못하니 나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연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마귀의 공격을 받고 죄에 넘어지고, 자기 영혼을 더럽히기 때문에 영적으로 성장하기 보다는 병에 들어 사는 것이야. 그리고 교회생활도 빛 좋은 개살구와 같이 겉만 번지르르하지 내용이 없는 교회생활을 하는 것이야.”

시간이 되어 호텔 로비에 나가 있었는데 어느 집사님이 오기로 되었는데 오지를 않았다. 11시가 훌쩍 넘어서 한국 사람인듯한 분이 운전해서 들어 오는데 착각을 해서 다른 호텔로 갔었다고 한다. 그리고 교회로 가서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이 주신 말씀을 전했다. 나도 울고 교인들도 울었다. 말씀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알게 되는 것만큼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것만큼 말씀에 순종했던 생활과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연합된 삶을 살았던 것 특히 직장에서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산 것들을 말할 때에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간증도 다시 생각이 나게 하시는 은혜가 임하기도 했다. 나도 말씀을 전하면서 울었지만, 교인들도 또 주일마다 오는 지방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들도 다 울고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주기도송을 하고 축도를 하며 마쳤는데 주기도송을 부르면서 이 찬송은 불러서는 안 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킨 가톨릭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미쳐 생각하지 못하였었는데 그 다음 집회 때에 그 말을 했더니 그 교회에서 그 다음주일부터 주기도송을 폐지했다. “우리들의 큰 죄 다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가사는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도 사하여 주옵시며.”라는 기도는 성도들 간의 용서가 하나님이 주시는 사죄의 은혜와 맞물리는 것임을 가르치는 말씀인데 성도와의 사이의 죄를 빼어 버린 교회생활을 부인하는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교회가 아무런 분별력이 없이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점심을 먹는데 어떤 분이 큰소리로 그랬다. “아 너무나 좋아 오늘 저녁에도 또 와야지!” 그분은 선교사님이라고 했다. 그분은 새벽도 빠지지를 않았는데 마치 사람이 눈물이라고 할 정도로 매시간 눈물로 말씀을 들었다. 주님 가르치신 기도를 가지고 우리가 아침마다 가져야 하는 영적인 세 가지 목표와 그를 이루는 생활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생활에 대하여 나의 경험을 세밀하게 간증하는 것으로 집회는 계속되었다.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에 피아노 반주를 하지 말라고 했다. 회개 기도가 터지면서 그런 도구가 필요 없어졌고 반주하는 이도 기도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날 새벽에 말씀을 전하고 기도를 시키는데 사모님이 피아노 반주를 하러 걸어나오면서 비틀거리면서 펑펑 울면서 나오셨다. 그래서 반주를 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생활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사는 생활, 그리고 가정생활과 자녀교육 등을 말씀으로 전할 때에 성령의 압도하심의 분위기 가운데 말씀을 전하고 들었으며 말씀이 끝나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주일 낮부터 시작된 집회는 화요일 밤을 지나서 수요일 새벽과 낮에 끝나기로 했다.

화요일 밤에 말씀을 다 전하고 천국에서 만나보자를 불렀는데 호텔로 나를 태우러 오는 집사님이 목사님을 보면서 울고 있었다. 목사님은 그 집사님이 당신을 바라보는지를 모르고 있었으며 그 집사님은 차마 목사님에게 갈 용기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집사님은 교회를 안 나오겠다고 다른 교회로 가겠다고 지난 주일에 예배에도 빠졌다고 했다. 그 전주에는 사모님이 인사를 했는데 고개를 돌리고 외면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강사를 위해 차량봉사를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기쁨으로 하겠다고 했단다. 그리고 새벽 낮 저녁을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를 회복을 했다.

마지막 시간인 수요일 오전시간에 말씀을 전하면서 생전에 생각조차도 해보지 못하던 말씀이 나갔다. 그곳은 봉제공장을 하는 교민들이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날 말씀을 전하면서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교회 안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교회 밖에서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회 밖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어떻게 살았느냐 하나님과 어떻게 가까워지고 하나가 되었느냐가 교회생활 속에서 확인되는 것이며 그 확인되는 기쁨을 가지고 찬송하고 예배를 드리며 아직도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기도를 하는 것이 하나가 되는 교회라고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예화를 전했다. 봉제공장에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단을 하고 재봉을 하는 것과 같이 세상에서 직장과 가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칼로 재단을 하면서 날마다 살고 주일이 되면 교회에 와서 서로 주님께 재단을 받은 자신을 서로 맞추어 보면서 잘 안 맞으면 다시 한 주간을 살면서 재단을 하고 또 교회에 와서 맞추어 보면서 어떤 부분은 맞기 때문에 기뻐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지만 어떤 부분은 아직 맞지 않는 것을 가지고 애통해 하면서 다시 세상을 나가서 주님과 함께 살면서 주님을 따르고 닮고 하는 사이에 주님의 규격으로 맞추어 지면서 교회가 하나가 되는 길을 가는 것이라고 말씀을 전하면서 내가 주님과 하나가 되는 삶을 게을리 했기 때문에 교회가 하나가 되는 데에 방해꾼 노릇을 한 것을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한 사람씩 일어나서 회개하는 기도를 몇 명을 시킨 후에 자기와 가장 안 맞는 사람을 찾아가서 주님과 함께 살지 못하고 주님의 재단을 생활 속에서 잘 받지 못한 것을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을 때에 그 집사님과 목사님이 끌어안고는 소리를 높여 울기 시작했다. 이인의목사님이 그리로 가더니 세 사람이 엉겨 붙어서 울기 시작을 했다. 또 담임목사님의 사모님은 그 집사님의 부인인 권사님과 끌어안고 통곡을 했다. 어떤 장로님은 몸을 떨면서 울었다. 다른 교회에서도 많이 왔는데 회개의 도가니 속에서 울지 않는 사람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도 없이 다 울었다.

기도하면서 자유롭게 마치기로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용변을 보고 다시 집회장소로 올라가려 했는데 계단에서 어떤 목사님 부부가 내려오면서 장로님 만나러 가는데요.”해서 다시 내려가서 목양실에 들어갔다. 소파에 각자 앉았는데 그 목사님이 갑자기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사모님도 내려앉았다. 내려앉으면서 목사님이 통곡을 하면서 장로님 제가 죄인입니다.”라고 고백을 했다 우리는 같이 손을 잡고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그분은 멀리서 오신 목사님이었다. 주일 낮 집회를 마치고 담임목사님이 연락을 했는데 비행기표가 동이 나고 자동차로 오려고 네비게이션을 찍었더니 열세시간이 넘게 걸려서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밤에 기차역으로 달려가서 에어콘이 있는 칸은 다 매진이 되어 버렸고 에어콘도 나오지 않는 일반 칸에 그것도 사모님과 각기 다른 칸에 각각 한 장씩 딱 두 장만 표가 있어서 밤새 열 시간이 넘도록 기차를 타고 오신 분이다. 시간마다 은혜를 받고 밥 먹을 때나 집회가 끝날 때마다 당신교회 영혼들이 너무나 불쌍하다고 영혼을 살려달라고 집회를 부탁했다. 금년 안에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없다고 하자 당장에 가면 안 되느냐고도 했다. 교단에서 이유빈장로 집회에 참여금지를 하고 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살아야겠고 교회 안에 있는 영혼들이 너무나 불쌍하다고 거의 애걸하다시피 했던 목사님이었다. 한참을 같이 울고 제가 꼭 가도록 기도하겠다고 하고는 사랑을 나누고 헤어졌다.

집회를 다 마치고 목사님이 너무나 고맙다고 했다.

형편이 어려워 줄 수 없다고 했던 여비도 주었다. 집회 후에 들려오는 말에 장로님들이 말하기를 집회 때마다 헌금강조를 해도 안하던 교인들이 이번에는 헌금이야기를 한 번도 안했는데 더 드리고 싶어서 다들 안달을 했다고 한다. 어떤 집사님은 이십 년 동안 이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고 한국에 웬만한 큰 교회목사님들이 다 다녀갔지만 이런 말씀은 처음 듣는다고도 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인의목사님에게 어디서 이렇게 귀한 강사님을 모셔왔냐고 고맙다고 했다고 한다. 나를 호텔로 태워 오고가던 집사님은 자신이 만든 좋은 바지를 여러 벌 선물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특산 커피를 새벽같이 커피볶는 집에 가서 한 상자, 육십 봉지나 사서 선물했다. 어떤 장로님은 집회 중에 커피를 좋아하냐고 묻더니 집회를 마치고 나를 따로 부르더니 나는 말도 듣지 못했던 고양이 커피(kopi lewark)와 함께 여비를 따로 챙겨서 선물하기도 했다.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나 같은 것을 써주시는 은혜가 통쾌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마귀의 그늘이 한방에 걷힘이 너무나 통쾌하고 시간이 갈수록 찬송소리가 높아지고 성도들의 얼굴에 광채가 나던 모습이 너무나 통쾌해서 시도 때도 없이 자꾸만 떠오른다.

담임목사님과 자카르타로 오면서 또 공항에서 여러 시간을 같이 있어주면서 여기 많은 선교사가 와서 있고 선교비도 많이 들지만, 현지목사들을 훈련시켜서 이 복음으로 무장을 시키는 일이 시급함을 말했다. 며칠 동안 주님이 주신 영적인 부담이요 기도제목이었다. 그리고 영적으로 바닥난 한국선교사들도 소생하고 살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을 말했다. 그러자 그 목사님도 자신이 인도네시아에 와서 오랫동안 기도해 온 것이 그것이라며 언젠가 주님이 허락하시면 인도네시아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를 할 것을 약속하고 그것을 위해 함께 기도하기로 했다. 이 모든 일을 생각지도 않은 때에 준비하시고 이루시고 역사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아멘.

(*.8.21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