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12:2-3)

 

아브라함의 복은 여자의 후손을 믿어 구원을 받는 복이다. 영생의 복을 말한다. 아브라함의 복은 곧 아브라함 교회의 복음이다.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는 곧 아브람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며, 그는 곧 아브람이 믿은 여자의 후손이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아브람을 축복하는 것은 아브람의 교회의 복음을 믿는 것이다.

 

여기서 너를 축복하는의 축복은 바라크로서 강의능동태 동사이다. 그러므로 강권적이고 적극적으로 축복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아브람의 후손의 복음을 적극적으로 믿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아브람의 복음을 믿는 자에게 복을 내리신다는 말씀이다. 그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구원의 복을 내리신다는 말이다.

그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니는 아브람의 구원의 복음을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 저주를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너를 저주하는의 저주는 카랄이고 내가 저주하리니의 저주는 아라르이다. 카랄은 강의능동태 동사로서 그 뜻이 저주라기보다는 멸시하다”, “가볍게 보다”, “사소하게 여기다”, “천하게 하다”, “욕을 하다라는 뜻이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복음을 가볍게 여기고 사소하게 여기며 멸시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믿지 않는 모든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저주하시는 아라르는 말 그대로 저주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을 버리시고 저주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는 아브람의 교회의 복음을 욕하고 경멸히 여기고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아 멸망하게 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교회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곧 아담의 교회의 여자의 후손을 믿는 믿음으로부터 노아의 교회와 아브라함의 교회의 믿음으로 이어지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의 후손, 곧 아브람의 후손인 예수를 믿는 자, 곧 교회의 복음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교회의 복음을 믿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 것이다.

 

옛날도 그렇지만 오늘날도 교회 안에 있으나 아브람이 믿었던 교회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볍게 여기고 사소하게 하고 천하게 하는 이들이 적지 안이 많이 있다. 저자도 스물세 살 될 때까지 이 복음을 사소하게 여겼던 사람이었다. 교회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히 여기느냐 경히 여기느냐 그 복음을 믿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라서 축복과 저주의 길이 영원히 갈라지는 것이다.

 

이 말씀이 복음에 관한 말씀인 것임을 이구절의 마지막에 잘 증거하고 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 이니라라는 말씀이다. “모든 족속이에서 족속은 미쉬하파로서 복수여성명사이다. 그러므로 모든 족속들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이 말과 같이 아브람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된 것이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4:17-18)

 

그러므로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람을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라는 말씀은 아브람의 교회의 복음인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이 땅의 많은 민족들이 다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최근에 깨달아 알지니라책을 펴내면서 많은 마귀의 공격을 받았다. 생각지도 않은 공격을 마귀로부터 받으면서 이 일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고 이 일의 열매가 얼마나 강력하게 나타날 것이면 마귀가 이렇게도 아주 민감하고 과격하게 공격하는가!’ 하는 생각을 수없이 많이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영문판으로 준비를 하면서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마귀의 공격을 받고 있다. 한편으로 생각을 하면 우리글로 책을 내는 것은 한국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면 영문판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마귀가 더 격렬하게 최후적인 공격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오면서 아무래도 진리의 깨달음이 많은 사람에게 널리 퍼져야하기 때문에 동역자들과 기도해주시는 분들에게 광고비를 헌금하도록 해서 모금을 했다. 삼천만원을 목표로 해서 모금을 했으나 아직 조금 모자란 정도지만 많은 분들이 힘에 지나도록 주를 위해서 물질을 아끼지 않고 희생을 해 주셨다. 미국에 전도자들은 가난한 가운데서도 두 번씩이나 거액의 연보를 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서 국민일보에 네 번의 광고를 하고 국민일보 인터넷신문에 한 달 동안 배너 광고를 하고 있다. 그리고 두어 기독교 신문들에 광고를 하는 가운데 교단신문사들과 접촉을 했는데 장로교단인 T교단과 H교단, 그리고 K교단 등의 신문사에서 처음에는 광고를 하겠다고 광고비를 흥정을 하고 그 중 H교단은 광고비를 입금했는데 무슨 블랙리스트가 있는지 해줄 수 없다고 연락이 왔다. 그들 교단은 오래전에 협회를 문제있다하면서도 아무런 이유도 밝히지 못하고 결론도 없이 두리뭉실하게 교단 산하 교회들에게 협회의 집회에 참여를 금지시킨 교단들이다. 때로는 세상에도 통하지 않는 몰상식한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적지 않지만 그들 교단들은 협회에 한 번도 사실을 조회하거나 문의를 하지 않고 일방적이고 상식에 어긋난 권위주의적인 진리에 빗나간 결정을 한 교단들이다. 그들은 그렇다하더라도 협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교단인 소위 B측 교단에 속했다고 하는 Y신문사도 보름이 넘는 기간에 광고비를 흥정하고 광고비 입금까지 받아 놓고는 광고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윗선에서 하지 말라하니 자기는 힘이 없어서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을 하면서 광고를 실어줄 수 없다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우리는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정죄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일들은 다 원수마귀가 일치하게 벌이는 일들이다. 그들은 단지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이성이 없는사람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이유와 형편이 어찌 되었든지 아브람을 축복할 수 없는 사람들이며 아브람의 복음, 교회의 복음, 진리의 복음을 카랄하는, 곧 복음의 진리를 경멸히 여기고 사소한 것으로 여기고 가볍게 보는 진리를 저주하는 불쌍한 사람들일 뿐이다.

 

이는 우리가 충분히 예상을 하고 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모든 일들은 하나같이 마귀가 벌이는 악한 일들이다. 원수마귀는 이렇게 연약하고 굳세지 못한 자들을 동원하여 이와 같이 때가 급한 시대에 눈을 떠야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을 여전히 어둠속에 가두어 두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음부의 권세인 마귀는 주님의 교회를 이길 수가 없다. 이와 같은 마귀의 수작들은 마치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과 같이 무모하고도 어리석은 짓이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오래전부터 기도만하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주요일간지에 광고를 섭외하게 되었다. 그 결과 동아일보는 다음주에 2회에 걸쳐서 내기로 했고 중앙일보도 다음 주에 두 번 광고가 나가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조선일보도 섭외를 하고 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흥정을 하고 있다. 광고비는 많이 비싸지만 신문의 발행부수가 엄청나기 때문에 광고효과가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많은 평신도들과 또 예수를 믿지 않지만 진리를 찾는 구도자(求道者)들이 중앙 일간지들의 광고를 보고 이 책을 읽음으로 복음에 눈을 떠서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나고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에 빠졌던 자들이 깨닫고 회개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깨달아 아는 은혜를 받음으로 목사나 평신도나 개혁자의 믿음을 회복하기를 기도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많은 비용이 들지만 모든 일에 모든 것을 풍족히 채우시는 주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기도한다.

 

이와 같은 일들을 겪으면서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쫓을 때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고 그 성에서 쫓아 낼 때에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에게 담대히 말한 것이 생각났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13:46)

 

이렇게 된 것이 마귀의 뜻이 아니다. 이렇게 된 것이 다 주님의 뜻임을 알고 주께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은 구도(求道)하는 불신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믿음이 있어도 이성이 있는 자들은 읽고 깨달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본문해석의 장의 첫 번째 글인 메시야의 여섯 가지 사역은 복음의 진수가 담겨져 있다. 이 부분은 곧 전도용 소책자로 발간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깨달아 알찌니라를 읽고 잃어버렸던 은혜를 회복했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어떤 목사님은 책을 읽을 수로 어떻게 이런 책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줄기로 통일된 이론이 놀랍기만 하다는 말을 하신 분도 있고 읽기가 너무 쉽다고 말한 분도 있다. 어떤 목사님은 매 장을 가슴 벅찬 감격을 가지고 책을 읽고 또 다시 읽고 있다고도 했다.

 

사실 오늘날처럼 교회의 개혁이 강력하게 필요시 되고 있는 때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이 중세시대의 캐톨릭 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낳은 것이 없는 교회의 형편을 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중세시대에도 성경도 모르는 사제들보다도 평신도들이 먼저 진리에 눈을 뜸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난 사실이다. 오늘날도 한국교회와 세계에 흩어진 교회들이 사는 길은 목사나 평신도나 개혁자들에 의해서 가능한 일이다. 역사를 보면 언제나 그랬듯이 평신도들이 먼저 눈이 떠야 삯군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고 떠나가고 교회가 정결해지고 거룩해지는 일이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교회 안에 생명이 없는 자들이 아브라함이 믿었던 여자의 후손의 복음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일이 일어나야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임박한 이때에 이 책이 교회안의 깊은 어두움을 몰아내고 진리가 아닌 것들이 쫓겨나며 복음을 경히 여기던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깨달아 아는 은혜를 주께 받아서 그들의 생애에 단 한번이라도 마지막으로라도 불쌍히 여김을 받는 일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복음을 축복함으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기를 기도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이 일을 위해서 많은 기도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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