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집회요? 저 딱 한번밖에는 안 나갔어요

 

며칠 전에 어느 목사님이 목사는 정치색에 연루되면 안 된다는 나의 말에 그렇게 항변을 했다.

 

그래요? 가롯유다도요 주님을 딱 한번만 팔았어요. 두 번 판게 아니예요

 

순간 그분은 망연 자실하며 쓴웃음을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장로님을 말로 어떻게 이겨?”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 나는 나를 말만 잘하는 사람으로 몰아서 이치를 흐리게 하지 말라고 꾸짖어 주었다.

 

오늘도 사람들은 자신이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주님을 팔아치우면서도 그에 대한 깨달음이나 아픔을 전혀 느끼지를 못 하는 것같다.

여호수아서를 보면 아간은 스스로 하찮게 생각하는 것으로 자신을 죽이고 일가족이 망하는 패가망신을 불러 왔다. 사울왕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는 것으로 망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기의 정욕을 대수로 생각을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진멸하라는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고 자기에게 좋아 보이는 것을 감추어 두었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왕의 자리를 빼앗기고 자자손손이 수욕과 멸망을 당하는 자리에 들어 간 것이다.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반문하면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때에 사람들이 흔히들 쓰는 말이그게 무슨 대수입니까?”라는 말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사소한 일이고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가롯유다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주님을 배반하였다. 가롯유다는 은삼십에 삼년반동안 자기를 사랑해주시고 이제나 저제나 자신이 변화되기를 기다려 주시던 주님을 헐값에 팔아 버렸다. 은 삼십은 거액이 아니다. 그것은 그 때 당시의 화폐가치로 120 데나리온이며 노동자의 넉달치 임금에 지나지 않는 돈이다. 그것은 아무런 흥정이 없이 제사장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가격이었는데 그것을 유다가 자기선생님을 넘겨 주는 값으로 받아 들인 것은 그에게도 그것은 하찮은 금액이었으나 자기 선생님인 주님을 팔음으로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주님사이에 충돌을 야기함으로 가시적인 승리를 인위적으로 불러 오고자 했던 속셈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어쨌든 그는 제사장들이 정해준 값에 주님을 팔았는데 은삼십은 사람을 해친 소를 죽이기 위해서 지불했던 소 한 마리의 값이었다.

 

(21:32)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삼십 세겔을 그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에 맞아 죽을지니라

 

유다는 그야 말로 대수롭지 않은 가격인 노예값과 소값에 자기 선생님을 악한 제사장들에게 넘긴 것이다. 그는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배움이 많은 사람이요 세상적으로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는 제사장들 못지않게 똑똑한 사람이요 생각이 있고 모략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제사장들은 마치 예수가 너의 선생이냐 우리에게는 소 한 마리 값밖에는 안된다라는 뜻으로 모욕을 하면서 은 삼십의 값을 쳐 준 것이다.

그것은 유다가 가졌던 배움이나 예절 그리고 인간된 도리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행한 것이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요 값으로 쳐서는 안되는 것이요 세상의 도덕적인 기준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평상시의 유다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마귀가 한일이다.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자기 선생님을 팔려는 마음은 유다의 마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귀의 마음이었다. 그는 제사장들을 찾아갔다.

 

(14:10)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그리고 자기의 것이 아닌 마귀의 계획을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아주 기뻐했다.

 

(14:11) 저희가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제사장들이 기뻐하며 계약을 지체하지 않고 성사를 시켰던 이유는 그들이야 말로 마귀의 자식들이요 마귀는 그들의 아비였기 때문이다.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아비인 마귀가 유다속에 역사한 것을 보고 기뻐했던 것이다. 유다의 마음에 사단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22:3)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13: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13: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그들은 계약을 빨리 이루어야 했기 때문에 유다에게 선불을 주었다.

 

(26: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겨줄 은밀한 기회를 엿보았다. 곧 무리들이 없을 때에 예수를 넘겨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 선생님을 헐값에 팔아 넘긴 유다는 나중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스스로 자기를 죽이는 자살하는 길을 간 것이다.

 

(27:3)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27:4)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제사장들은 그돈을 거두고 그것이 피 값이기 때문에 성전에 넣어둠이 옳지 않다고 말하며 그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샀다.

 

(27: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27: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27: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27: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이와같은 일은 옛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가롯유다에게만 있었던 일도 아니다. 오늘날도 날마다 유다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헐값에 넘겨 파는 일들을 허다하게 저지르고 있다.

어떤이는 텔레비전앞에서 순간의 즐거움으로 예수를 팔고 기도하지 않고 말씀도 읽지 않는다. 어떤이는 영화로 어떤이는 노래방으로 어떤이는 세상친구로 어떠이는 오락으로 어떤이는 바둑으로 어떤이는 스포츠로 어떤이는 유투브로 자기를 죽기까지 사랑하심으로 구원해 주신 구주 예수를 날마다 하찮은 것과 바꾸어 팔아 넘기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떤이는 공부로 어떤 이는 일에 바빠서 그런 것들로 주님을 뒤로하고 배반하는 길을 간다.

그런 것들은 오늘날에 만 있는 일이 아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먹고싶은 것을 이기지 못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자손손이 온 인류를 영적으로 죽음에 들어가게 하였다. 가인은 자기의 생각과 혈기를 이기지 못하여 동생을 죽이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고기가 먹고 싶어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 삼손은 여자를 하나 못이겨서 눈이 뽑히고 머리털이 밀려서 능력을 잃어버리고 결박된 채로 죽어 갔다. 발람은 돈에 눈이 멀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다가 저주도 하지 못하고 버림을 받아서 칼날에 죽임을 당했다. 군대장관 요압은 혈육인 자기 동생들을 앞세움으로 하나님께는 물론이요 자기가 평생 목숨을 바쳐서 섬겼던 다윗왕에게도 버림을 받고 솔로몬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다. 이스라엘의 열왕들은 호흡도 없는 우상들을 하나님과 바꾸고 하찮은 것으로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멸망길을 갔다. 유다말기에 시드기야는 간신배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의 말을 물리침으로 그가 보는 눈앞에서 자식들이 죽는 것을 보고 두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다.

그들은 마치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에서 토끼와 같이 귀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잠을 잠으로 수욕을 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다.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내가 살면 예수를 파는 것이요 예수를 죽이는 것이다. 날마다 내가 살면 예수가 죽고 날마다 내가 죽으면 예수가 나의 생활속에서 사시는 것이다.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2)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고전 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고전 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바울의 말대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싸우는 검투사들과 같이 하찮은 것에 목숨을 걸고 먹고 마시는 하찮은 일에 힘을 쓰기에는 우리가 받은 사랑과 은혜 그리고 영생의 비밀이 너무나 놀라운 것이다. 그러므로 하찮은 것들과 주님을 바꾸는 사람은 바울의 말과 같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주를 아는 사람들은 하찮은 것으로 자기의 구주를 절대로 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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