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잃어버린 교회는 구속과 속죄 칭의와 구원이라는 단어를 섞어서 쓰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와같은 말들이 무슨뜻인지도 모르고 말하고 듣기가 일쑤입니다.

그것은 무지로부터 온 결과이며 구속과 속죄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무지로부터 온 믿음은 의심의 여지가 있는 믿음입니다.


칭의가 무엇인지?

거듭남은 무엇인지?

대속은 무엇인지?

영생을 얻는다는 것과 성령을 받는다는 말의 뜻

하나님의 나라와 하늘나라

사람들은 이모든 것들을 통틀어 구원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칭의와 구원을 구별해서 쓰고 있습니다.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는 것은 "칭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은 물론 구원받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어떤 험한 상황속에서 건짐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일례를 들자면 복음서에서 주님앞에 나온 자들이 "주여"라고 부르는 것이 칭의의 결과요 "주여"라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그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른 사람들이 주여라는 고백을 통해서 문둥병이 깨끗해지고 중풍 병이 낫고 죽으딸이 살아나고 자녀에게 들었던 귀신이 쫓겨나가게 된 것을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칭의의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는 저주의 생활에서 놓여 나는 구원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의롭다함을 받은 칭의와 거듭남으로 영생을 받은 것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주심으로 죄인이 구속함을 받고 속죄생활을 하는 것이며 그결과로 생활의 어려운 저주로부터 건짐을 받는 구원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구원이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벙어리되었던 입이 열리고 하나님을 찬송한 찬송속에 나오는 구원입니다.  


(눅 1: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눅 1: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눅 1: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눅 1: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
(눅 1: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눅 1: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눅 1:74)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눅 1: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고 구원의 뿔을 다윗의 집에 일으키신 것은 구속과 칭의를 말하는 것이며

우리의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것이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복수이며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도 복수입니다.

그것은 원수 마귀와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모든 저주 곧 질병과 가난과 악한 영에 사로잡힌 귀신들린 것들로부터 우리의 육체를 해방하시는 그리스도의 권능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의 권능입니다.


모든 땅의 저주는 하늘나라의 권능으로만 해결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의  영혼만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영혼구원을 받으면 영적으로 죽었을 때에 가지고 살았던 모든 저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문제 가정의 문제 육체의 질병과 가난과 귀신들린 것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는 것은 참된 복음이 아니며 참된 믿음이 아니고 만에 하나 누가 그런 믿음을 가졌다면 그것은 믿음을 잘 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예수를 믿으면 모든질병에서부터 해방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리고 에스겔을 통해서 성령을 받으면 모든 가난으로부터 해방되며 가난으로 인한 욕을 다시는 당하지 않게 된다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겔 36: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겔 36:28)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겔 36:29)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서 구원하고 곡식으로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겔 36:30) 또 나무의 실과와 밭의 소산을 풍성케 하여 너희로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열국에게 받지 않게 하리니
(겔 36:31)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불선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을 인하여 스스로 밉게 보리라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가난한 것은 믿음이 참인지 아닌지 의심을 해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가난한 것도 주님의 말씀과는 다른 모습이며

주의 일군인 목사나 전도사가 가난하여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는 생존이 문제가 되는 생활을 사는 것은 주님의 뜻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돈에 집착하는 부자교회 돈많은 목사도 마찬가지 원리안에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6,7장에서 하늘나라의 생활을 말씀하신 주님은 8장부터 하늘나라의 권능을 직접 실행하시면서 모든 사람들을 육체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의 능력이요 권능입니다.


산에서 내려오실 때에 주여라고 부르짖는 이의 문둥병을 고쳐 주십니다.

가버나움에 들어가셔서 로마의 백부장의 하인의 중풍병을 고치십니다. 여기서도 백부장은 예수님을 "주여"라고 입으로 시인합니다.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셔서 그의 장모의 손을 잡아 열병이 떠나가게 합니다.

누가 아프면 그것은 온집안의 문제가 됩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집안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신 것은 오직 거라사지방의 군대마귀 들린 단 한 사람을 귀신들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가버나움으로 돌아와 중풍병자를 고치십니다. 그의 병을 고치시기 전에 먼저 주님은 그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에게 주를 믿는 믿음이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죄를 사함받은 그가 받은 구속의 은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주여라고 부르짖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기 위하여 가시다가 열두해를 혈루병으로 앓던 여인의 병을 고쳐 주시면서 "딸아 네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을 때에 "그시로 그의 병이 나으니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이로의 딸이 죽어서 사람들이 슬퍼했는데 그딸을 살리심으로 온집안에 기쁨을 돌려 주십니다. 그리고 가버나움의 소경둘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그리고 나가실 때에 귀신들려 벙어리된자를 주님에게 데려왔을 때에 귀신을 쫓아 내 주시니 귀신이 나가고 벙어리의 혀가 풀려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성과 촌에 두루다니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 주십니다. 그이유는 주님이 육체에 고통을 당한자들이 문제 해결을 받지 못하고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고 유리하는 것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마 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 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주님은 지금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보시고 민망히 여기십니다.

주님은 나인성 과부의 죽은 외아들도 살려 주셨습니다.


(눅 7: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
(눅 7:12)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눅 7: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눅 7:14)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눅 7:15) 죽었던 자가 일어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눅 7: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눅 7: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이 모든 일들이 주예수께서 가지고 오신 하늘나라의 권능으로 되어진 일들입니다.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도 동일한 권능을 주셔서 복음을 전하러 보내셨으며 오순절날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과 같이 사람들을 저주에서 건져주는 구원의 능력을 베풀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만을 다니고 창백한 모습으로 모든 저주와 아픔을 그대로 가지고 사는 것은 주님에게 있어서 말이 안되는 아프고 민망한 일입니다. 또 사람이 하늘나라의 권능을 알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고 일평생 사는 것은 참으로 억울한 것이요 주의 권능을 모르고 사는 슬픈 일입니다.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고 목사면 무얼 합니까? 문제도 해결받지 못하면서 장로는 무슨 장로이며 권사나 집사가 무슨 자기에게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가족에게 무슨 유익을 주겠습니까?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자기도 가족들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하는 믿음은 분명 잘못된 믿음입니다.  


인생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합니다.

내가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면 세상사람들도 불쌍하지만 무엇보다도 같이 사는 가족들이 너무나 불쌍해집니다.


이번 설날사경회는 구속과 대속 칭의와 속죄의 은혜로부터 오는 구원의 열매가 풍성한 집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한 사람들의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참된 구원이 무엇인지 주께 직접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어 의롭다함을 받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하는 권세를 이미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무지에서 벗어나고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서 각성함으로 깨어서 각사람이 생활속에서 모든 문제를 가져다 준 원수마귀를 참패시키고 승리하는 믿음으로 돌아가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일을 인하여 무엇보다도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저를 위해 간절한 기도를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154.7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