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쯤에 어느 분이 어느 교회의 집회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 매료되어서 책을 사다보고 교회에 소개를 하고 그 교회 담임목사님도 거기에 매력을 느끼고 해서 교회에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집사 중에 한가정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줄로 믿었는데 목사님이 강단에서 행위를 강조하면서 행위가 없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을 듣고는 혼란스러워서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협회의 간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을 하고 그 간사님이 그 교회의 인터넷주소를 알아서 거기에 들어가 설교 동영상을 보면서 잘못된 것을 파악하면서 거기에 갔던 분과 그 교회 집사 그리고 간사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오고갔던 적이 있었다. 이제는 다 치료가 되고 회복도 되고 봉합이 된 문제이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적지않이 훼방을 받은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안타까운 것은 미국에 갔을 때에 이유빈장로의 제자라고 자랑하는 목사님이 박무수의 4단계 회개에 빠졌는데 정작 교인들은 박무수가 율법적인 회개 곧 회개를 행위로 가르치는 잘못된 것임을 알고 말하는데도 그 목사님은 전혀 어둠 가운데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 이와 같이 오늘날 목회자들이 오히려 성도들보다도 큰 흑암 가운데 놓여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기도 하다. 주보를 보니 새물결인지 무슨 집회를 한다하여 그 목사님에게 이렇게 권면을 했다. “목사님 나한테 들은 것도 다 행하고 살지 못하면서 무슨 지식이 더 필요하고 어느 누구가 더 필요합니까? 이제는 한 말씀 한 말씀 주님과 함께 사는데 전심으로 힘쓰세요.” 라고 했더니 이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이는 교회를 하고 목회를 하고 교회를 성장시키고자하는 욕심에 눈이 멀게 되어 단지 은혜를 사모하고 목말라하는 평신도보다도 목회자가 더 소경이 되고 마는 부분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교회성장에 눈이 멀어 진리를 분변치 못하고 뻔히 보이는 잘못된 곳에 빠지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가?
얼마 전에는 율법과 은혜를 강의하였는데 말씀을 듣고 많은 이들이 율법의 행위와 노력과 힘씀으로 하려고 했던 죄를 자복하는데 두어 사람의 자백이 끝나고는 마치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목사님이 한가운데 울고 서있었다. 그래서 기도를 시켰더니 그분이 “주님 왜 이렇게 율법의 멍에가 안 벗겨집니까?” 라고 울부짖었다. 이십 년 전에 개척을 하고 어느 기도원에서 율법의 행위를 가르치고 교인들을 책망한다는 목사의 기도원과 그의 교회의 철야집회 수요예배 주일 저녁예배까지 교인들을 태워서 일주일에 네 번씩을 열심히 다녔는데 그로 인해 율법적인 사람이 되어 아내와 아이들에게 율법의 행위를 부단히 요구함으로 상처를 주고 정죄하고 아픔을 주었던 죄를 자복하면서 “주님 이제는 이 율법의 멍에를 벗겨주세요.” 하며 통곡을 하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울면서 같이 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요즘처럼 미혹케 하는 영이 활발한 적도 없을 것이다. 바울이 말한 은사주의자들 곧 천사숭배자들이 빈야드에서부터 시작해서 멀쩡한 사람들을 쓰러트리는 야릇한 일을 하면서 자기들이 능력을 행하는 것처럼 교인들에게 과시하고 선전하는 악한 일을 하고 그것으로 헌금을 강요하고 교회를 부흥시켜 보려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을 부단히 행하더니 영성이니 내적치유니 치유사역이니 하는 이름으로 그때그때 바꾸어 가면서 최면술이라는 술수를 쓰는 이들도 나타나고 동양의 '기' 곧 귀신의 술수를 쓰는 목사들도 나타나고 그러면서 기도원에서 모세를 보여주느니 바울을 보았느니 하는 이전 같으면 모세의 율법으로 ‘신접한자는 돌로 쳐 죽일 자’들 곧 무당 같은 이들이 출몰하기도 한다. 알파인지 무엇인지 기독교 교리를 세상수준으로 천박하게 하는 것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것을 하는 어떤 목사는 교회에서 기도원에서 손수건을 일백만원에 팔면서 그것을 바람을 피우는 남편의 주머니에 넣어 놓으면 남편의 외도가 끊어지고 문제 있는 자식의 주머니에 넣어 놓으면 그자식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미혹하여 목사들이 앞장서서 그 손수건을 샀다고 하는데 그 목사 중에 한사람은 일 년도 못되어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인천의 부평 어디에는 목사들에게 들린 귀신만을 전문적으로 쫓아주는 사람들도 생겨서 수십 명의 목사들이 거기에 가서 누워서 기도를 받으며 귀신 들었다는 소리를 들으며 귀신을 좇아달라고 애원을 하는 일들도 있다고 한다. 그와 같은 비류들이 조상의 죄를 회개해야 된다고 가르친다. 이 말을 했더니 어떤 이가 말하기를 “장로님 그러면 고아들은 큰일이잖아요 조상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러기에 “아니야 그보다도 더 큰 문제가 조상이 아예 없는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할 거야?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피의 복음은 어떻게 되는 거야?” 참으로 황당하기까지 한 일들이 교회 안에서 그것도 목사라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십여 년 전에 어느 최면술 도사가 예수를 믿고 나서 부들부들 떨면서 담임목사님을 찾아와서는 자기가 가르친 이들 중에 부흥사가 많음을 떨면서 고백을 하였다고 한다. 또 무슨 D12인지 하는데서는 교육 중에 교인들의 마음 문을 열어야 한다고 ‘내발바닥 곰발바닥’을 하면서 오락으로 교인들의 마음 문을 열려고 하는 일들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한 세상에 속한 마귀의 술수요, 성령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죄인 것이다. 또 어떤 목사들은 강단에서 교인들에게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외치면서 10억을 구한 사람은 10억을 받을 것으로 믿고 종이에 10억이라고 써서 지갑에 넣고 다니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교인들마다 지갑에 그렇게 거액의 금액을 써서 다닌다고한다. 이는 가히 미신의 수준에 이른 것이라 아니 말할 수가 없는데 그 일을 고신이니 합동이니 하는 스스로 정통교단이라고 내세우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앞장서서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는 참으로 무당인지 목사인지 가히 구분이 가지 않는 대목임에 틀림이 없는 일이다.

성경도 하나님의 말씀도 모르기 때문인 것이다.

교인들을 데리고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며 교인들로 죄책감에 빠지게 하는 기도원에 데려가서는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데 목사인 자기에게 무릎을 꿇는 것으로 야릇한 쾌감을 느끼는 목사들도 많이 있으나 그 교인들이 중심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또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간 허탈함을 맛볼 수밖에 없으며 그 교인들의 영적불만의 화살이 목회자를 향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이 번한 일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율법의 행위를 강조함으로 교인들을 도탄에 빠뜨리고 교회를 갈라디아화 하고 있는가? 교인들에게 지옥 간다는 협박을 서슴없이 하고 우리가 받은 것은 두려워하는 영이 아닌데 교인들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만들고 그래서 행위를 강조하면서 또한 그들에게는 빠지지 않는 것이 헌금강요이다.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걷을 것으로 미혹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당연한 수순이요 귀결인 것이다. 심지어는 주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말해 놓고는 "그런데도 집도 못 팔아 바쳐?"라고 교인들을 자극한다고 한다.
처음에 말한 어느 교회라는 것이 큰 무슨 교회라고 하는데 그 교회도 설교에 예수도 안 나오고 십자가의 설교는 더 더욱이 들어 보기가 희박한 설교를 하는 중에 행위를 강조하면서 많은 교인들을 두려움으로 묶어 놓는다. 목사는 감히 범접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여기게 하고 헌금과 봉사를 믿음인양 가르치고 있다.
어떤 집사가 인터넷을 통해 그 교회의 설교를 들었는데 “장로님하고 같은 말을 한다.”고 말하면서 신뢰를 했다고 한다. 그 예를 들어 “교회 안에 변화되지 못한 사람이 많다.”, “변화되지 않으면 가짜다.”, “변화되지 않으면 지옥 간다.”라고 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아니 그게 어떻게 같은 말이요 장로님은 변화되지 않는 사람이 가짜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변화되지 않는 믿음이 가짜라고는 했지 사람이 지옥 간다는 말은 한 적이 없어요.”라고 반박을 했다고 한다. 그 집사와의 대화 중에 “그러면 당신의 두 살 난 아이도 지옥 가겠네?” 했더니 왜 지옥 가느냐고 반문을 해서 “그 아이도 변하지 않으면 지옥 가잖아?” 했더니 부모가 잘 믿는데 왜 지옥을 가느냐고 해서 부모의 믿음으로 구원받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했더니 입에서 “예수를 믿으면 천당 가잖아요?”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래 맞잖아 믿으면 천국이지 행위로 천국을 가는 거야?”라고 했더니 “집사님 정말 그렇네요.”하면서 자기가 잘못 생각한 것을 돌이켰다는 말을 들었다.
그 목사는 광야의 이스라엘 중 상당히 많은 이들이 지옥에 갔다고 가르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그의 입술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 저들을 종 되었던 땅 애굽에서 내가 구속하였다고 말씀하신 말씀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 7:8)

왜 강단에서 지옥을 말하는가?
저들은 불신자들에게 불신지옥을 말하는 것을 꺼려하여 전도를 훼방하던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여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하여 행위를 강조하며 그 행위를 행하지 아니하면 지옥 간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가?

교회가 마땅히 가져야할 거룩성을 상실하고 세상의 도덕성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빠져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영적생활도 없고 주님을 닮은 거룩한 행실도 없는 가운데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영적 지도력을 상실하고 교인들에게 존경의 대상에서 제외됨으로 누수 되는 지도력을 만회하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단지 교회를 하기 위해서 행위와 율법을 강조하고 형벌의 두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이 그랬고 성경에 그와 같은 예들이 시대를 따라 무수히 존재했으며 교회사 내내 그와 같은 망령이 떠난 적이 없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안 변하면 지옥에 가는가? 그런 말이 성경에 있는가? 성경에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같은 말을 하고 성경에 있는 말을 해도 바울은 그 사람들의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를 좇으라고 했다.

예수를 믿으면 변하지 않아도 지옥에는 안 간다. 칼빈이 ‘변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라고 했지 ‘변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가짜요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고 말한 적이 없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잔해하고 허는 사람들이다. 변화되지 않는 생활 때문에 구원받은 사실을 의심하게 함으로 교회의 구원관을 허물어 내리는 마귀의 도구들이요 궤휼의 역군 곧 거짓말의 사자들이다. 항상 그렇듯이 교회가 타락하면 교인들의 구원문제를 흔들어 놓는 것이다. 중세의 교회는 면죄부를 팔아서 천당과 지옥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은 것을 보지 않는가?

다시 말해서 안 변해도 예수를 구주로 믿은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 간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들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무어라 말씀하셨는가?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의 목적이다. 예수를 믿음으로 거저 값없이 구원을 받지만 신앙생활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천당 가려고, 구원받으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구원 받았기 때문에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지 구원받으려고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고 구원을 받으려고 십일조를 하는 것이 아니며 구원을 받으려고 봉사나 전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이 은혜와 행위를 강조하는 율법주의자와의 차이이다.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는 예수를 믿기 전에 걱정을 한 것들이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구원 받기 전에 구원을 생각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예수를 믿고 나서는 구원받느냐 죄사함을 받느냐 천당에 가느냐의 문제가 모조리 해결이 된 것이다. 예수를 믿고 나서는 무엇을 고민하는가? 오늘도 이 세상에서 구원받은 자답게 사는 것을 걱정하고 아파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렇게 잘 살아지지 않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어찌하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보여주고 아버지 닮은 성품과 인격을 잘 보여주면서 사느냐가 그 날 그날의 가장 큰 관건이다. 그렇게 살지 못할 때에 그 아픔을 가지고 날마다 도와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인 것이다.
천국은 행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신분으로 간다. 오른편 강도와 같이 아무런 행위가 없어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가고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가는 것이다. 행위나 생활로 천국을 간다고 가르치는 것은 거짓말이요 그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은 거짓선지자요 거짓선생인 것이다.

주님이 이와 같은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가르치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15-23)

저들은 양의 탈을 쓰고 있다. 목사라는 타이틀로 정통교단의 그늘로 자기를 은폐하여 교묘하게 숨기고 있다.

깨어 있지 못하면 분별할 수가 없다.

사도요한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경계하기를 많은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여 보라고 권면하면서 거짓선지자가 세상에 나왔다고 경계하는 소리를 들어 보라.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 4:1)

사도의 사랑을 받고 주님의 사랑을 받는 이들은 미혹케 하는 영과 거짓된 자들을 분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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