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교회가 성장하기를 원치 않는 이는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성장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성령의 역사로 되느냐 아니면 인간의 욕심과 정욕으로부터 나와서 인간의 열심과 방법으로 진행이 되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상황을 볼 때에 너도 나도 교회성장에 미쳐 있는 것을 보면 가히 광적(fanatic)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성장은 하나님의 뜻으로서의 교회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것이다. 남이 성장을 했기 때문에 내 교회도 성장을 시켜야 한다는 식의 교회성장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미움을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정욕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요 탐심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러기에 거꾸로된 현상이 나타날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꾸로 된 현상이 무엇인가?
목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장이 아니라 양이다. 양을 잘 기르면 목장이 잘되는 것이다. 목장을 크게하고 잘하면 양이 살찌고 번성하는 식의 원칙은 세상에서도 용인될수 없는 어리석은 짓인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죄인들도 어리석은 사람도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이원칙이 잘못된 것을 잘 알고 있다.

전도를 해서 하나님의 어린양을 잘 먹이고 자라게 해서 하나님나라의 일군으로 세움으로 온백성들에게 칭송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나타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가는가운데 교회가 성장되는 것은 언제든지 영적으로 건강한 것이다. 어찌보면 지금의 교회성장론은 어리석다 못해 해괴하기까지 한 것이다. 세상을 보라. 교회가 성장을 할수 있겠는가? 계산이 서지를 않는 일이 아닌가? 요즘말로는 답이 나오지를 않지 않는가?
세상사람들이 교회를 신뢰하는가? 교회를 흠모하고 사모하는가? 세상사람들이 교회안의 사람들을 존경하는가? 교회안의 사람들의 생활이 부러워서 자기들도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는가? 사업으로 말하자면 소비자에게 등을 돌림을 받으면 곧장 망하게 되는 것이다. 복음을 받아들여야할 영적인 소비자들인 세상죄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경멸히 여김을 당하고 있다면 교회가 어떻게 성장을 할 수가 있겠는가? 세상의 속된 물들이 들어와서 교회의 정수리까지 넘치고 어디까지가 세상인지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인지의 경계조차도 다 없어지지 아니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거룩함을 상실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도덕적이지도 못한 부도덕한 교인들이 세상죄인들앞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손상시키고 교회를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죄인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게하는 창백한 교인들이 교회안에 얼마나 많은가 셈을 해야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전도가 안되고 재생산이 안되는 가운데서의 교회성장이란 결국 남의 교회의 교인들을 빼앗아 오는 방법을 구사하는 것밖에는 없지 아니한가? 남의 교인들을 빼앗아 오기 위해 예배당을 리모델링을 하고 강단을 새롭게 꾸미고 다른 교회와의 차별을 위해 성경공부도 하고 제자훈련도 하고 속회니 구역이니라는 말자체가 싫어서 목장으로 바꾸고 셀로 바꾸고 찬송가도 바꾸고 성경도 바꾸고 예배순서도 바꾸고 사도신경도 바꾸었으나 무엇이 달라졌다는 말인가? 그냥있는 교인들이 보기 싫어서 쓰러뜨려도 보고 일으켜도 보고 사십일이니 세이레니 작정 새벽기도도 해보고 생활도 인격도 변화되지 않는 제자훈련의 지식공부도 시켜보고 여러 가지 성경공부와 벼라별 전도방법을 다 동원해서 교인들을 괴롭혀도 봤지만 총동원전도에 VIP초청이니 무슨무슨 축제니 온갖 것을 다하여 보았으나 결국 남은 것이 무엇인가?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지난 수십년동안 교인들을 세속화시켜 오고 그수준을 낮추어 온 결과 개신교의 개혁신앙은 온데 간데 없고 교인들의 종교적인 생리를 천주교의 그것과 비슷하게 하여 셀수 없는 교인들이 성당에가서 앉아있게 만들은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교회가 성장되고 있는가? 온갖 통계보고는 교회가 성장되는 것이 아니라 그 수가 줄어들고 성장은 커녕 쪼그라들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지 않는가? 세상사람들이 빛의자녀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주님이 말씀을 하지 않으셨는가? 세상사람들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지혜를 가지고 지혜의 하나님을 어떻게 따르고 받들수가 있겠는가? 세상죄인들도 알고 있는 것을 교회가 모른다면 어떻게 주의 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생각하여 보라 그정도의 지혜를 가지고 주의 일을 교회를 맡은 자로서 사명을 감당할수나 있을까를 생각하여 보라.    

그러니 옛날 어렸을 때에 가물어 물이 귀할 때에 공동우물에서 서로 먼저 물을 긷겠다고 싸우던 어른들과 같이 한정된 교인들을 가지고 교회성장을 추구하다 보니 어떤 타락한 부흥사가 “꿩잡는게 매”라며 무슨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인들을 빼앗아 와야 교회가 부흥이 된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대형교회가 된 대전의 어느 목사가 이십년전에 후배목사들 앞에서 아주 진지하게 한말이 교회가 커지려면 남의 교인들을 빼앗아 오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말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교회성장론은 결코 하나님의 지지(support)를 받지 못한다.

성령도 없고 인위적일수밖에 없다.

성령이 없다는 말에 아마도 반발을 할 것이다. 그러나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모임에서나 집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기 때문이다. 회중들이 많이 모이고 열정적이며 뜨거운 분위기도 있고 그래서 성령이 있다고 주장을 할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열매로 아는것이다. 신비주의자들이나 은사주의자들처럼 보여지는 것이나 나타나는 현상에 속으면 성령의 역사가 있다고 속을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에게 현상을 보여 주시는 분이 아니다. 그와 같은것들은 오히려 귀신에게 속한 것들이다. 성령의 역사와 능력은 회집했을 때보다도 생활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성령의 권능은 집회에서보다 개인의 삶속에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는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느 목회자들의 모임에 갔을 때에 전도를 하다가 이제는 교회성장에 빠져 있는 분인데 “장로님 일만명이상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요 모였을 때는 은혜도 있고 뜨거움도 있는데요 이상한 것은 교회로 돌아오면 힘이 싹 빠져나가는 것을 봅니다. 참 이상합니다.”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것은 성령의능력이 아니라 대중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에도 있는 것이다. 성령의 위로를 받지 못하고 사람의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가 성장할수 있다 잘될수 있다는 긍정적인 말들을 들으면서 그때는 무언가 될것같지만 교회로 돌아오면 차가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거기서 들은 말이 거짓말이요 거짓 위로라는 말이다. 보이는 현상에 속아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것일 뿐이다.
  
사실 이사람들은 거짓말을 많이 한다.
말씀을 전해달라고 해서 갔는데 한 삼십분동안을 복음성가를 불렀다. 일어나서 부르기도 하고 손을 들고 부르기도 하였다. 내입이 달싹거리지도 않은 것은 그가사의 내용이 너무나 인위적인 것이었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임재앞에서 입을 뗄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사내용을 대충 들어 보니 “채우소서 성령으로 채우소서”를 되풀이 해서 부르고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정확한 가사는 기억이 나지를 않으나 “큰환란이 파도처럼 닥쳐 와도 나는 주와함께 두날개로 날아오르리”와같은 가사들이었다. 그노래를 듣고 있을 때에 주님의 조명하심이 있었는데 주님이 나에게 음성을 들려 주셨다. “얘 저들이 부르는 노래가 다 요망사항에 지나지 않는 것이야” 자세히 살펴보고 생각을 해보니 정말로 그랬다. 주님은 우리가 채워달라고 일방적으로 떼를 써서 채워 주시는 분이 아니지 않는가? 말씀을 전하면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고 복음성가를 불렀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것을 누가 모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 것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영원히 변화시킨 한말씀 한말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다는 말이 아닙니까?” 교인들이 충격을 받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님앞에서 진실하다면 말씀으로 나를 영원히 변화시켜준 간증이 없다면 적어도 그노래를 맨정신으로 부를수가 없는 것이다. “주와함께 날아오르리”라는 노래를 부를 때에는 내속으로 저들이 주님과 함께 날아오르고 싶어도 주님이 저들을 떨어뜨리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하는 마음도 들었다. 주님이 보통 까다로우신 분인가? 우리와 함께 할수 없는 죄를 없이하시기 위해 그아들을 죽이시기까지 죄를 미워하신 하나님이 아니신가 말이다. 주와함께 날아오르고 싶다는 말을 하기전에 주님과 하나가 되기 위하여 아들을 죽이신 십자가의 믿음으로 정결함과 거룩함을 얻고 하나님과 연합한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먼저인 것이다.

이것이 다름아닌 복음성가로 교인들을 속이는 것이다.
언젠가 어느집사가 전화를 해서 고통을 호소하는데 담임목사님이 강단에서 설교를 하면서 ‘무엇이든지 믿고 구한 것은 받은줄로 믿으라’는 말씀을 의지하여 십억을 주님께로부터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종이에 십억이라고 써서 지갑에 넣고다니면 주님이 십억을 주신다고 하여 교인들마다 지갑에 거액의 액수를 써서 넣고 다닌다면서 “장로님 그것은 미신아닙니까 부적같기도 하고요”라고 말을 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어느 미국목사가 그렇게 한다고 교회성장주의에 빠진 교회 목사님들이 그렇게 설교를 해서 많은 교회 교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을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것은 그후의 일이었다. 저들은 말씀으로 교인들을 속인다. 왜냐하면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거리로 가르칠 거리로 이용만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치 정욕이 믿음인양 가르쳐서 교인들에게 거짓 위로를 주는 거짓선지자들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그사랑을 받을수도 없고 맛볼수도 없는 것이다.

최근에 어느날 기도를 하는데 주님이 피를 토하듯이 절규하시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교인들을 그만 좀 속이라고 해라”

말씀으로 속이고 기도로 속이는 일들이 있다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복음성가중에 얼마나 사실이 아니고 많은 거짓된 부분이 있는가? 그것이 교인들에게 위로가 되는줄로 알것이면 그것은 거짓 위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핍박을 받기 싫어서 진리를 저버리고 핍박이 싫어서 마귀가 싫어하고 제일 무서워 하는 전도를 그만 둔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편인가 아니면 마귀를 좋게 하는 자인가? 진자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미워한다 그뿐 아니다 세상이 미워하는 이가 진짜 그리스도인이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 너희가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언제부터 교회가 죄인들을 VIP로 대접하였는가? 초대받아 온 사람들도 자기들이 교회의 VIP가 아니라는 것쯤은 눈치를 챌만한 나이임을 모르는가? 오히려 목사님이 장로가 교회의 VIP로 여겨지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단지 자기들을 교회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아양을 떠는것 정도로 밖에는 여기지 않는다. 천하보다 더 귀한 주님이 죽기가지 사랑하신 영혼을 귀히여기는 것은 가하지만 세상을 향해 죄인들에게 아양떠는 것은 가증스러운 것이요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이다.

셀을 하는 어느교회에서 어느 권사님이 예배시간에 신앙고백을 하면서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를 하다가 충격을 받았다. “오 주님 교회에 성도의 교제가 없어졌습니다.” 교인들이 모이면 세상이야기를 일삼고 육십이상된 교인들은 따로 모아 놓는데 그 자리에서 자식자랑에 손자자랑 돈을 번 이야기들만을 하는 것을 보면서 이유없는 아픔을 가지고 있던 그권사님에게 주님이 긍휼을 베풀어 영적인 현실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말씀을 전하면서 그말을 전했는데 집회후에 식사를 하면서 어느 목사님이 “장로님 장로님이 강조하시는 성도의 교제가 셀에 있습니다. 4W 라고 해서요.....” 말이 끝난후에 이렇게 대답을 했다. “목사님 인위적으로 우리 교제를 하자 해서 프로그램으로 하는 것을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로 언제 어디서든지 성도를 만나면 항상 새로운 간증거리가 있어서 서로 교통하는 것을 말하는것이지요. 요한 웨슬레의 속회는 기록을 보면 일주일에 한번씩 모일 때마다 각기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런 체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요한 웨슬레의 속회를 구역이라고 부르고 목장이라 부르고 셀이라 부른들 사람이 하는 것이 소용이 없는 것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성도의 교제를 말했을 때 그분이 말문을 닫았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그사랑하는 목사님에게 한마디의 말만 했다. “목사님 사람이 할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가 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성령이 역사를 해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라면 하나님이 필요없는 것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할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교회성장은 성령의 전권적인 역사이다. 사람이 할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가르치는 것은 교만하고 방자한 것이다. 하나님의 전권적인 영역과 성령의 자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성장시키려고하는 모든 인위적인 노력은 악한 것이다.

단지 미디안의 모세와 같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고도 겸손히 엎드려 나같은 것이 감히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수 있는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앞에 묻고 믿음의 선배들과 같이 그앞에서 철저하게 자기를 부정하고 ‘나는 못합니다’ 라는 고백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내가한다”라는 말씀을 하실 때에 하나님의 때에 온전한 하나님이 역사로서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교회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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