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이 이렇게 재미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은혜도 많이 받았습니다.”

로스엔젤레스 요한계시록 사경회에 참석한 집사님의 고백이다.


사경회를 하고 집회를 하면서도 이번만큼 이상하리만큼 특별한 집회도 없었던것 같다. 이제 로스엔젤레스에서도 몇 년동안 요한 계시록을 하면서 눈을 뜨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말씀을 알아 들을뿐만 아니라 말씀이 즐겁고 재미 있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 났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셋째 날인 토요일(5월30일)저녁에는 말씀을 다 전하고 은혜를 받고 헌금 순서까지 끝났는데 주님이 더하라는 감동을 주셔서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한 시간 더할까요?”

“예.”


사람들은 대답도 하고 고개를 끄떡이기도 하고 만장일치로 더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동안 40년동안 말씀을 전하면서도 이런 일을 처음이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고 다들 충만한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아프고 아픈 주님의 몸 된 교회의 현실앞에 꺼이 꺼이 목놓아 우는 역사가 일어났다. 어떤 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엉엉 소리내어 울기도 했다. 그 다음날인 주일날은 한시 반부터 시작을 했는데 세 시간 반 동안 말씀을 전하고 나서 어제보다도 더 큰 소리로 울부짖는 일들이 일어났다. 참 아파도 너무나 아픈 것이다.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바벨론 교회, 곧 세상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때에 한사람도 빠짐이 없이 목놓아 운것은 그것이 엄연한 교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알고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을 성경에 요한계시록에서 이천년전에 미리 말씀해 놓은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에 ‘아, 주님도 이사실을 모르시는 것이 아니라 알고 계시는 것이구나’하는 마음에 다 함께 목놓아 울었다.

 

이번에는 요한계시록 14장과 15장 그리고 16장의 셋째 대접까지 말씀을 전했다.


14장에서의 복음의 마감 시간과 교회 안에 있는 영혼들의 알곡 추수와 가짜들인 포도송이 추수를 말하면서 복음의 마감 시간에 교회안에서 무르익는 것이 두가지인데 하나는 알곡이고 또 다른 하나는 포도송이이다. 세례 요한이 말한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시는 일이 일어나는 장면이다. 말씀을 전하면서 짐승의 표를 받으면 버림받고 지옥에 간다는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받은 구원은 짐승의 표를 받고 안 받고의 행위에 근거된 것이 아니며 그것은 율법 주의이며 행위 주의로부터 온 잘못된 것임을 전하고 성경 말씀대로 생명책에 기록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짐승에게 경배하거나 짐승의 표를 절대로 받지 않는 다는 말씀에 사람들이 얼굴이 환하여 지고 은혜를 받는 역사가 있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계 13:8)


이 말씀과 같이 생명책에 기록된 구원받은 성도는 절대로 짐승에게 굴복하거나 경배하거나 짐승의 표를 받을 리가 없는 것이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구원받지 못한 가짜들이 짐승에게와 그의 우상에 경배하고 이마와 손목에 표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666이 무엇인지 그것이 왜 사람의 수요, 짐승의 수인지를 설명할 때에 사람들은 입을 떡 벌리면서 좋아했다. 짐승은 무엇이며 짐승의 우상의 정체를 알고는 고개를 끄떡이며 기뻐했다. 사람의 수와 짐승의 표, 그리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짐승을 경배하는 순서대로 타락하는데 짐승의 위에는 용인 마귀가 정체를 감추고 숨어 있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날 밤에 침상에서 잠을 자는데,  주님은 왜 적그리스도가 짐승인지를 말씀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큰 자는 작은 자가 되고 섬김을 받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게 하시면서 권력으로 다스리는 것이 짐승이고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하나님 나라임을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바벨론도 짐승이고 바사도 헬라도 로마도 짐승이며 그 계보를 이어 나온 중세의 교황권도 짐승이고 그 이후에 개신교 교권도 세상의 권력의 생리가 역사하는 큰자가 작은 자를 다스리고 힘있는 자가 힘없는 연약한자를 다스리는 조직의 생리요, 짐승의 생리임을 가르쳐 주셨다.


교회의 생리, 곧 천국의 생리는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고 크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다.


"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2:24-27)


특별히 15장의 일곱 대접의 예고에 관한 말씀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연 이틀째  목 놓아 울었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생각만하고 말하지 못했던 것을 듣는 순간에 교회를 아파하는 마음이 설움이 되어 통곡이 쏟아져 나왔다. 마지막 날은 세 시간 반을 말씀을 전하면서 첫째 대접과 둘째 대접 셋째 대접까지만을 전했다. 첫째 대접의 악하고 독한 헌데가 교회 안의 문제가 종기처럼 곪아 터지는 현실의 말씀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경악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 천년 전에 오늘날의 교회의 현실을 주님은 요한에게 너무나도 자세하게 미리 알려 주신 것이다. 전천년주의자들은 대접의 재앙이 세상에 부어진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가 등장을 하고 적그리스도의 보좌가 등장을 하는 것을 보면 그것은 틀린 견해임을 곧 알수 있다. 땅은 교회를 말하는 예언적인 용어이다. 그러므로 대접의 재앙은 교회안에 있는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부어지는 재앙이다. 세상의 회개하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재앙이 아니라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재앙은 원어에 "친다", "때린다"라는 뜻이 있다.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16:9)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16:11)


하나님이 주시는 재앙을 통해 고통하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교회 안의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 곧 짐승에게와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 곧 교회안에 있는 권력에 굴복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재앙이 일곱 대접의 재앙이다. 

두 번째 재앙은 바다에 쏟아지는데 바다는 세상의 예언적인 용어이다. 그래서 바다의 물이 피가 되는 것은 복음의 생수가 피로 변하여 영혼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시대를 말하는 것이며 오늘날 이 세상의 현실이 그와 일치한다. 그리고 셋째 대접은 강과 물의 근원에 대접을 쏟아서 피가 된다는 말씀은 교회 강단에서 생수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혼들이 먹을 수 없는 피가 흘러 나온다는 말씀이다. 교회 안에 말씀이 없어지고 생수가 없어진지가 오래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교인들이 장로들이 영적인 목사를 내어 쫓고 세상적으로 공부를 많이한, 겉만 번지르하고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 성경은 잘가르치고 살교는 잘하지만 순종하는 생활이 없는 말쟁이들을 그 자리에 세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영적인 생수가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을 말하고 세상 말을 많이 함으로 강단의 생수가 피로 변하여 교회 안의 영혼들까지도 그것을마시고 죽어가는 오늘날 교회의 영적인 현실을 말할 때에 참석한 사람들이 어제 보다도 더 크게 입을 벌리고 다물 줄도 모르고 엉엉 소리내서 우는 일이 일어났다.


어떤 전도사님은 이렇게 한 주간 동안을 행복하게 말씀을 듣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시늉까지 하였다. 어떤 목사님은 이제는 요한계시록에 눈이 완전히 열려진 모습으로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보인다. 어떤 목사님은 거듭 말씀을 들으면서 순한 양과 같이 되었다 그리고 교회의 현실 앞에 입을 크게 벌리고 부르짖으며 통곡했다.


사경회에도 확실히 참석자가 많아졌다. 전도 훈련 세미나에도 참석자가 배나 늘었다.


전도훈련 첫시간에는 낯익은 얼굴이 참석을 했는데 사경회때 은혜를 받은 목사님이 데리고온 목사님 부부였다. 그분들은 나를 보고 당황해도 하고 웃기도하면서 악수를 하면서 그 목사님이 하도 좋다고 하기에 강사가 누군지도 모르고 몰라서 실수로 참석을 했다고 했다. 그이유는 십년쯤전에 그교회에서 매번 세미나를 했었는데 우리를 나가라고 쫓아낸 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주님께 참으로 감사하는 것은 그들도 한시간 말씀을 듣고 갔다는 사실이다. 나는 주께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김헌용 간사가 오랜만에 훈련을 받았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다음 직장에서 오라고 하는데 오랫만에 정식으로 훈련을 받고 싶어서 날짜를 미루고 온전히 훈련을 받게 되었다. 첫 시간말씀부터 김헌용간사를 주님이 만지시고 강력한 회개에 통곡을 하면서 울었다.  다음시간도 그리고 그다음도 말할수 없는 은혜를 받고 회개하여 죄를 자백하고 얼굴이 환해지는 역사를 맛보기도 했다. 전도훈련마지막 시간에는 마지막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아쉬움에 훈련에 정식으로 참석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서 말씀을 듣는 기현상도 일어났다.


아무튼 이번 사경회와 훈련을 하면서 이전과는 달라도 사뭇다른 분위기와 이전과는 비교할수 없는 은혜를 부어 주셨다.

때가 임박한 징조를 보는듯한 마음을 떨칠수가 없었던 집회이었다.


참석자 수만 늘은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태도가 전혀 달라졌다. 주님이 각 사람속에 역사하시는 모습이 보인다. 그야말로 복음의 마감 시간에 교회안에서 두가지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알곡이 무르익고 있으며 포도송이도 무르 익고 있다.  진짜는 진짜고 가짜는 가짜다. 그래서 잠을 자다가 주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의를 행하는 자는 더욱 주를 따라 의롭게 된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요일 3:7)

 

그러나 악한자들은 더욱 악하여진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딤후 3:13)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의 교회의 영적인 현실이다.

오늘날 교회안에서 우리가 뻔히 보고 있는 현실이다.

악한자들은 더 악하여 지고 있다.

의로운 자들은 더 의로워 지고 있다.


당신은 어느 반렬인가?


정말 이제는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

복음의 마감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한 사람이라도 빠짐이 없이 의로운 자는 더욱 의로워지는 반열에 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139.12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