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강냉이

 

길을 지나가는데 어떤 교회띠를 두른 여자가 강냉이 한봉지를 내밀면서 “예수믿으세요”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그를 물끄러미 쳐다 보면서 미소를 지으면서 “강냉이로 나를 꼬실려고 합니까?”라고 물었더니 “우리 교회좀 기억해 달라는 거예요”라고 응수를 한다. 그래서 작심을 하고 말을 했다.

“예수가 강냉이만도 못한 모양이지요? 강냉이를 먹고 예수 믿으라하기에...”

“......”

“예수를 왜 믿어야하는지를 나에게 설명을 해줄 수 없어요?”

나의 질문에 아무말도 못하고 있던 그여자는 발걸음을 돌려 황황히 도망을 가버렸다.

 

사실 이와같은 일들이 오늘날 만연하는 가운데 우리는 왜 이렇게도 최소한도의 생각조차 없는 교회가 되어 버린 것일까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수가 없다.

주님은 우리에게 전도하라고 하지 않았다.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을 하시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것임을 말씀하셨다.

 

증인이라는 말은 증거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증인은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오늘날 소위 전도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그동기가 교인들을 모으기 위한 멤버쉽전도를 하는데에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리스도가 증거되지 않는 인격과 생활을 가진 사람들이 일과 프로그램으로서 전도를 일삼고 있는 것이다. 목회자는 교인들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교인들을 동원하여 그리스도가 증거되지 않는 교회의 선전원으로 삼고 교인들은 스스로 교회나 목사나 또는 주님에게 좋은일한 번 했다는 자족감에 전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증거되는냐의 여부를 떠나 전도의 효율성이나 열매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고 나가서 교회를 선전하는 행위만으로 전도를 했다고 치부하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에서는 통할지 모른다. 그리고 길거리의 사람들이 인내로서 그냥 참아줄수도 있는 일들이지만 하나님앞에는 가증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속지 않는 분이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이전에 초대교회에 순교를 당하면서 복음을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앞에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은 증인이 되는 것도 아니요 복음전도를 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의 고귀한 사랑을 강냉이로 바꾸고 이쑤시개로 바꿔치기하고 화장지로 바꿈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인간적인 선심으로 전락을 시키는 악한 일이다. 세상은 그럴수 있어도 교회는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복음을 바꿔치기하는 천박한 일은 적그리스도나 하는 일이다. 행여 행인들이 강냉이가 예수를 믿는 동기가 되는 것으로 착각을 하면 그죄를 어찌 담당할려고 하며 이쑤시개나 휴지정도밖에 안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착각을 하면 그것을 어떻게 거두어 들이려 한다는 말인가?

 

전도를 못해도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보여지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목회를 하기보다는 먼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선교를 못해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 급한 일이다.

목사나 장로, 권사나 집사가 되기전에 믿는 이들은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가 인격과 생활에 보여지는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내안에 없는 예수를 어떻게 남에게 전하겠는가?

내안에 보여지지조차도 않는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믿으라고 권면을 한다면 그것은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늘날 교회안에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지 않은채 목사가 된사람은 사기를 칠 수밖에 없다.

설교할 때마다 그것을 하나님께 받은것처럼 해야하는 사기수법에 원하든 원치 않든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보여지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지 않고 선교사가 된사람도 결국은 사기를 치는 증인이 되는 길을 선택할수 없이 갈 수밖에 없다.

증인이 되기전에 전도에 동원된 사람들도 결국은 자기 양심을 속이고 예수를 믿으라고 하기 보다는 교인이 되라고 권하는 자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리새인들도 열심히 전도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이 보시기에는 전도가 아니라 영혼들을 망하게 하는 악한 일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전도를 해서 저들보다 배나 지옥자식을 만든다고 책망을 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

 

교인을 얻기 위해서 전도하는 것은 그영혼을 배나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그런전도의 결과를 우리는 보고 있다.

총동원전도니 무슨 전도니 하는 수없이 많은 전도방법과 프로그램등으로 교인들을 만들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애를 쓰다 못해 교회성장이라는 이름아래 이제는 다른 교인들을 탐욕적으로 빼앗아 오는 일들을 벌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전도는 영혼의 열매를 확실하게 맺는 것이다.

교회밖에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를 보여 줌으로 먼저 그리스앞에 인도되고 거듭난 사람들이 교회안에 들어오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교인을 얻기 위한 전도는 진리도 복음도 없이 영생을 얻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교회에 앉히려는 노력이기 때문에 교회안에 많은 가짜들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리를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이 되지 않은채 교회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종교밖에는 배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 되고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여호와증인이 교인들의 집을 방문하여 교인들을 빼앗아 가고 성경에 무지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구원파나 신천지가 교회안에 까지 들어와 교회를 엎어 놓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교인들이 기왕에 편한 종교생활을 하기 위해 천주교로 개종하는 일들이 무수히 일어난 것을 보면 교회는 일과 프로그램과 교육으로 북적대고 무엇인가 되는 것같은 기분만 느끼고 영혼들은 예수를 만나지도 못한채 이단들에게 빼앗기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주님이 말씀하신 배나 지옥자식이 되게하는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전도를 하기 보다는 내가 말씀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가 나의 인격과 생활에 니ㅏ타나기 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필요한 일이다. 주님은 제자들도 섣불리 전도를 시키지 않으셨다. 제자들도 감히 전도를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제자들이 오순절날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까지 주님으로부터 일천이백육십일의 영적인 양육을 받아야만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오늘날 교회들은 주님도 하지 않으신 일을 교인들에게 시키고 교인들은 제자들도 감히 하지 못한 이상한 일들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인들의 문제가 이와같이 제자들이 주님께 받은 영적인 양육이 삭제된 종교생활에 빠지는 것이다.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 초신자에 이르기까지 영적으로 양육을 받는 주님에게 직접 길리움을 받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지만 그리스도가 증거되고 보여지는 생활을 살수 있고 그후에야 전도도 하고 열매도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당신은 주님에게 말씀으로 길리움을 받은 경험이 있는가? 지금이야말로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을 해야할 때인 것이다.

 

년전에 미국에서 집회를 할 때에 오래전에 훈련을 받은 장로님 권사님 내외가 참석을 했다. 말씀을 전하면서 “예수가 화장지보다도 못합니까? 예수 복음이 이쑤시개만도 못합니까 왜 복음을 직접 내밀지 못하고 그런것들로 죄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천박한 방법으로 전도합니까?”라고 전하자 그권사님은 통곡을 하고 울어버렸다. 그리고 자기가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천박한 것으로 바꿔치기한 장본인이라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오늘날 교회가 교인들이 이런 생각을 왜 하지 못하는걸까?

이와같이 상식적인 수준에도 이르지 못하는 것일까?

어지 이리도 어둡고 어리석다는 말인가?

 

그것은 그들에게조차도 복음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받지 못한 복음을 누구에게 전하겠는가?

내게 없는 은혜를 누구에게 말하겠는가?

 

나는 예수를 믿고 주님이 나를 고치시는 절대시간을 가졌다. 군대에서 석달, 제대하고 일년 삼개월 그리고 직장에 들어가서 바쁜 직장생활속에서 날마다 종일토록 주님을 모시고 사는 훈련을 받기를 십년이 넘도록 했다. 직장에 들어가던 날부터 나는 나를 변화시켜 주신 예수를 증거하고 다녔다. 직장동료들이 내안에 예수를 보았다 그리고는 찾아와서 저마다 예수를 믿게 해달라고 했다. 안수집사요 장로인 종교인들도 자기들이 가짜인 것을 깨닫고 거듭나서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어떤 여직원은 같이 밥을 먹으면서 대화중에 예수를 믿는 남자들의 대화내용이 깨끗함에 충격을 받고 예수를 믿게 해달라고 한사람이 있었다. 그는 골수분자 불교집안이었으나 그의 가족이 다 구원을 받았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보여지는 증인인 것이다.

 

그러는중에 어느날 내가 사는 아파트 앞집에 있는 분이 나를 찾아 왔다.

“내가 당신을 보니까 예수를 믿어야되겠습니다.”

“......”

“당신 가정을 보니까 내가 예수를 믿어야 되겠습니다.”

“......”

“당신 자녀들을 보니까 동네에 예수를 안믿는 집아이들하고 다릅디다. 나 예수 믿게해 주시오”

 

그리고 그날부터 그는 예수를 믿고 나와함께 금요철야까지 빠지지 않고 기쁨으로 다녔다.

 

나는 한 오년을 그와 문을 앞에 놓고 살면서 그에게 전도한 적이 없다.

가까울수록 생활이 보여지기 때문에 오히려 말이 구차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 예수가 보여진 것이다.

이것이 증인이다.

전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 중요한 것이고 우선되는 것이다.

 

전도를 하든 아니하든 말을 하든 아니하든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역사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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