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다닐 때에 영어 아나운서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40이 다 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한 총각이었습니다.

그는 카톨릭 신자이었는데 사람이 온순하고 착했습니다.

너무나도 순진하고 착한 나머지 친구가 거의 없을 정도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신입사원이 들어 왔는데 그의 눈에 신입 여자 아나운서가 들어 왔습니다.

그는 그 여자 아나운서가 입사한지 얼마 안됐을 때부터 그녀를 쫓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요즈음 용어로 그는 스토커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무례한 사람도 아니고 과격한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 여자 아나운서에게는 여간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혀 일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열심을 내는 것이지만 그의 진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여자 아나운서의 집에까지 따라가는 열심을 보이고 그의 집에까지 들어가서 자기를 싫어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여자아나운서의 부모님을 만나서 딸을 자기에게 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은 참다못한 여자 아나운서의 부모가 회사 감사실에 고발을 하는 일이 일어나고 그는 감사실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감사실은 조사를 하면서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가 누구냐고 묻자 그는 내 이름을 대었다고 합니다.

나는 그와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으나 그에게는 그래도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감사실에 불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물어 보았는데 나는 그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며 온순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잘된 것은 그냥 본인이 절제를 하기로 하고 적당히 무마되고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아나운서는 얼마 되지 않아서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정신적으로 충격을 크게 받은 것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이겨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생각을 하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후로 영어 아나운서는 어느 외국회사에 다니는 노처녀와 결혼을 해서 서로 간에 늦게들 만나서 그런지 알콩달콩 잘 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스토커 이야기가 나오면 그런 사람들 중에는 그렇게 착한 스토커도 있었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예수님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끈질기게 주님을 따라다니고 있는 현실입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주님을 스토킹 하는 종교적인 스토커들입니다.

일방적으로 주님을 안다고 하고 일방적으로 주님을 향하여 열심이 있는 것 같으나 주님은 그 사람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날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에게 와서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주의 이름으로 자기 나름대로 일한 것을 말하며 알아주시기를 바라는 일들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런 사람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며 쫓아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VIAA)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VIAA)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VIAA)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VIFA)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VIAA)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VPPN)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VMPA) 하리라” (7:22-23)

 

이 말씀에서 선지자 노릇하며에서 노릇하며귀신을 쫓아 내며에서 쫓아 내며그리고 많은 권능을 행하지에서 행하지라는 세 동사는 다 에어리스트 시제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전에 했었다는 뜻입니다. 에어리스트 시제는 이전에 일회적으로 행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들에게 말하는 말하되라는 동사는 직설법 미래 시제로서 나중에 그때에 가서 그렇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도무지 알지 못하니에서 알지는 에어리스트시제로서 이전에 알지 못했다는 뜻이 되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서 행하는이라는 동사는 현재형을 말합니다. 즉 그 때 당시에 주님이 모른다고 하실 때를 시점으로 잡아서 불법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떠나가라는 동사는 명령법 현재형입니다. 그때 나중에 그렇게 말할 때에 주님이 그 당시의 시점으로 떠나가라고 명령하신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경상도 사투리에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말로 언제예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 밥을 먹었니?”라고 질문하면 언제예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그것은 내가 언제 먹었습니까, 절대로 안 먹었습니다라는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주님이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단어가 과거에 일어난 시제로 말씀하시는 뜻은 이 말과 같은 어조입니다. “내가 너희를 안다고 한 적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주님도 그런 사람들에게 언제예라고 대답하는 것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때 당시로 현재에만 그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도 모르셨던 것입니다. 이전부터 너희를 안적이 단 한 번도 없다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할 때에도 주님은 그들을 아신 적이 없습니다. 그들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때에도 그들을 주님이 아신 적이 없는 사람들이며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할 때에도 주님은 그들을 아신 적이 없으셨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만 모르시는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쭉 알지 못하셨다는 말입니다. 곧 단 한 번도 아신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이전에도 모르신다는 말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주님이 알지 못하는 일방적인 종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목회를 하지만 주님이 알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심히 교회를 다니지만 주님은 그들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열심히 교회 일을 하지만 주님이 그들을 알지 못한다면 일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열심히 성가대를 하는 데 주님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성가대를 한다면 그것이 그에게나 교회에나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열심히 교사를 하지만 주님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유명한 사람이 되어 말씀을 전하고 큰 교회 목사를 한다 해도 주님이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헛물켜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주님이 아시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거짓 선지자를 삼가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7:15)

 

생각해보면 제가 다녔던 교회의 목사들은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강단에서조차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으며 또 어떤 이는 예수를 말하지만 인격적인 말씀이 아니라 단지 지식으로만 말을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에 나에게 세례를 준 목사님은 그가 묻는 세례 문답에 대한 대답을 하나도 하지 못했는데 자기가 창피하다면서 외식하기 위해서 나에게 세례를 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어느 대학교 총무과장을 하다가 신학을 하여 오십이 넘어서 뒤늦게 목사가 되었는데, 지금의 생각에 그는 차라리 목사가 되지 않았으면 좋을 법했던 율법주의자요, 외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차라리 그냥 그 학교에서 정년퇴직을 해서 자기가 주님 앞에 은혜가 절박하게 필요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참선지자와 거짓선지자의 차이는 사람을 좁은 문으로 인도하는가, 넓은 문으로 인도하는가의 차이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7:13-14)

 

어느 유명한 목사가 수천 명씩 기도원에 모아 놓고 집회를 한다는 말을 하면서 어느 목사님이 그에 대하여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가 지독한 율법주의자임을 지적하면서 그에게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는 넓은 문 문지기요하고 말했더니, 나에게 질문을 한 목사님이 기가 찬 표정을 지으면서 너무나 적합한 표현이라고 동의를 했습니다.

 

또 한 가지 거짓 선지자의 증거가 있습니다. 그들은 나무도 안 좋고 열매도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7:16-20)

 

나무가 안 좋다는 것은 인격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닮은 인격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변화된 인격이 아니라 변화된 것처럼 가장하는 인격이라는 말입니다.

 

열매가 안 좋다는 것은 그와 같은 일군이 일을 하면 가짜 교인들을 많이 만들어 낸다는 말입니다.

가짜 종교인들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그가 가짜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VPPA)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VIFD)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VPPA) 자라야 들어가리라” (7:21)

 

들어갈은 미래 동사입니다. “주여 주여 하는에서 하는아버지 뜻대로 행하는에서 행하는은 현재 시제입니다.

 

현재시제로 볼 때에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사람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면서 사는 사람들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는 사람입니다.

 

주여라는 말은 쿠리오스라는 말로서 주인또는 최고의 통치자라는 말입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면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이율배반적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주를 부르는 것은 거짓이요, 위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짜요, 거짓 선지자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주님은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을 말씀하시면서 이 말씀을 끝을 맺으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7:24-27)

그자신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거짓선지자라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주님을 따라다니면서도 주님은 그 사람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주님을 괴롭힙니다.

주님의 이름을 이방인들 가운데서 욕되게 하는 일을 합니다.

그들이 예수를 스토킹 하는 어처구니없는 가짜들입니다.

 

만일 이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그와 같이 일방적인 사람들 곧 자신은 주님을 아는데 주님이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회개하고 주님이 자신을 만나 주시도록 겸손히 그의 은혜와 긍휼히 여겨주심을 기다림으로 흑암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8.12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