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바로 알기

    

 

창세기하면 사람들은 천지창조부터 생각을 하고 아브라함하면 믿음의 조상부터 생각을 한다. 창세기 학자들도 거의 예외 없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창세기는 신학자들이 말하고 교회에서 들은 것들, 곧 우리에게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 보다는 더 중요하고 심오한 진리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중요하고 심오한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우리에게 더 실제적이고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진리들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

 

흔히들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세계를 지으신 기록이 창세기에 있다고 하지만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나라곧 그의 나라를 지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지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은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1:26)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신 것은 하나님이 영이신 것과 같이 사람에게도 영적인 생명을 주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2:7)

 

생령은 영적인 존재를 말하며 그것은 사람이 영적인 생명, 곧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영적인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나님과 같은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을 다스리시고 사람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이세상의 만물을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이 다스리심과 같이 다스릴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다스리고 사람이 세상의 만물을 다스리는 질서가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창조하신 것이다.

그 하나님의 나라의 창조 속에는 사람을 영적인 피조물로 지으신 것이 포함되며 자연세계를 창조하신 천지창조도 하나님 나라를 창조하신 창조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의 나라의 질서를 이 세상에 창조하신 것과 세상을 다스리기 위하여 그의 형상대로 지으신, 곧 사람에게 영생을 주신 것이다.

 

창세기신학을 가리켜 어떤 사람은 마치 지뢰밭과 같다고 했다. 내가 창세기 연구를 시작했을 때에 사람들 중에는 왜 하필이면 창세기입니까?”라고 질문을 하신 분도 있었다. 그만큼 창세기신학이 심히 혼란스럽고 끝도 없고 결론도 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세기가 이렇게 혼란스러워진 이유는 창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소홀히 하고 묻어 두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곧 원수마귀가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그들은 유명한 학자들이요, 명석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눈에는 창세기의 중요한 진리들이 하나같이 숨겨진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가 고레스에 관하여 예언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 관하여 말한 대로 그 예언이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거짓말하는 자의 징조를 폐하며 점치는 자를 미치게 하며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 그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 (44:24-25)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 그 지식을 어리석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결과로 그들은 창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에 관한 사실을 지극히 소홀히 하면서 창세기를 연구하는 어리석음에 빠진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예수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은혜를 주시는 것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무궁히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하심이다.

 

영생은 생명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생활이다.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이며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활이다.

 

지나간 20여세기 지나간 세월동안에 몇 몇 초기교부들을 포함하여 중세신학, 근현대신학에 이르기까지 많은 신학자들이 창세기를 올바르게 접근하지 못한 이유가 영생을 모르고 하나님의 나라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단 신약시대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유대신학도 안고 있던 근본적이며 고질적인 문제가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모르는 것이었다.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이스라엘의 선생이었던 니고데모는 거듭나야 들어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물과 성령으로 나야만 들어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쳐 주셨다. 요한복음 31절부터 21절이 주님이 니고데모에게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쳐 주신 말씀이다. 그 가운데 그 유명한 말씀이 요한복음 316절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6)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심으로 영생을 주신다는 말씀인데 그 영생은 세상에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주시는 것이며 세상죄인들은 영생이 없어서 멸망하게 된 현실가운데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말씀이다.

니고데모만이 아니라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영생을 몰랐으며 영생을 주시는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5:40)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도 땅에 임하는 것으로 착각을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의 눈으로 보이게 임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모르면서도 언제 임하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17:20-21)

 

이 말씀에서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땅에 임하는 것이 아니요,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게 임하는 나라가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사람의 내면세계에 임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심지어는 제자들도 성령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오해를 했었다. 그래서 승천하시는 현장에서도 주님과 맞지 않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1:6)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이 임함으로 시작되며 성령이 임하면 주의 제자들이 권능을 받아서 땅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전도를 할 것을 말씀하셨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7-8)

 

이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의 오해는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구약의 성도들은 성령을 받지 못했으나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기만 하고도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믿음에 전혀 티끌만큼도 손상이 가지 않았다.

성령이 임하는 것이 영생을 얻는 것이며 성령이 성도의 내면에 내주하시며 다스려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성령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생활을 사는 사람은 오늘도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그러므로 전도를 못하거나 안하거나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했는지 아닌지, 성령을 받았는지 아니 받았는지에 결정적인 의심이 가는 것이다.

 

또한 중세시대의 신학자들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땅에 실현을 해보려는 시도를 했던 것도 결국은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알지 못하였던 무지로부터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없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인 줄로 착각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이 다스려야하는 주의 몸된 교회를 사람이 다스리고 또 교회권력으로 다스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있음"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 권세를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에게 주신 것을 모르는 자들이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7:13-14)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5:12-13)

 

그래서 그들은 어리석고 용감하고 무식하게도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려는 시도를 한다. 그로 인하여 교회 안에서 많은 불의를 행하고 악한 죄를 짓고 많은 성도들과 선지자들을 죽음에 이르게도 한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대안(代案-Alternative)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범한 오류가 교회지상주의이다. 그들은 하나님만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교회가 다스릴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성도들을 착취하고 늑탈할 뿐만 아니라 거역하는 자들은 핍박하고 살상까지 일삼은 것은 교회사가 말하여 주고 오늘날도 있는 일들이다. 오늘날도 중세시대와 같이 교인들의 재물을 늑탈하고 교인들에게 악을 행하는 일들을 행하는 자들의 광포가 일반 불신자들의 입만이 아니라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온 세상에 수치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교회를 모르는 무지로부터 나오는 일들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대안이다. 교회는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미리 말씀하셨던 대로 하나님의 형상의 생명인 영생을 잃어버리고 하나님과 분리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상실하자마자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은혜로 주신 것이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린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은 교회를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주시면서 여자의 후손의 언약을 하신다. 그것은 예수를 믿어 잃어 버렸던 생명을 다시 찾는 생명의 언약이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으로 옷을 해 입히심으로 생활속에서 짓는 죄를 사해주시는 속죄의 생활을 가르쳐 주신다. 그러므로 여자의 후손의 언약은 교회에 주신 생명의 언약이요 가죽옷의 언약은 교회생활의 언약이다. 곧 날마다 죄를 용서받고 씻음으로 여전한 거룩함으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교회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죄인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을 다시 찾게 해주며 그 생명으로 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켜 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다시 사는 복음을 전파하여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며 영생을 얻은 성도들이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르쳐 줌으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활을 사는 곳이다.

구약교회는 언약을 믿음으로 장차 메시야이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선물로 주실 영생과 하나님나라를 믿은 것이라면 신약의 교회는 이미 오셔서 구속사역을 다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어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성도들이 모여서 교회생활을 같이 하는 것이다.

 

성경말씀에 소경이 되는 이유

 

그러므로 창세기의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모르는 사람은 성경전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성경을 오해하고 비뚤어진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창세기의 세 가지 핵심적인 진리인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지식이 아니라 진리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냥 무지하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그것은 영생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모르고 교회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를 잘 모르기 때문에 성경전반에 걸쳐서 부분적으로 알고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아는 것, 곧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무식의 증상들이 나타난다. 성경 전반에 걸쳐서 이책 저책을 희미하게 보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가리켜 주님은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보지 못하는 소경들이라 말씀하셨다.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 (15:14)


그것은 이사야의 예언이 그대로 응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6:9-10)

 

그와 같은 사실은 예수님 시대에 이렇게 나타났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9:39-41)

 

그래서 주님은 자신으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11:6)

 

그래서 많은 성경해석의 오류가 나타난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사두개인들이 받았던 책망과 같은 책망을 받아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12:24)

 

그와 같은 일들은 급기야 예언서의 오해에서 시작되어 요한계시록의 오해로 인한 종말론의 오해에 이르게까지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상상과 추정으로 아무런 성경적인 근거나 예언의 말씀의 성취함도 따져보지 않고 함부로 말하여 교회를 어두움에 몰아넣는 현실이 되었다. 그들의 허황된 주장들을 잘 살펴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미래적으로만 소유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여러 가지 천년주의자들의 공통점은 지금 현재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에게 없으며 그들의 개인적인 사생활 속에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사는 하나님의 나라의 생활이 없는 사람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은 주님이 가져 오신 하나님의 나라를 살지 못하기 때문에 소경이 되어 잘못된 이론으로 많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의 생활을 날마다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그것은 그에게 교회의 믿음의 결핍이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의 생활이 잘 안되고 비정상적인 사람은 영생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왜냐하면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오류를 가지고 나오는 것이 사단에 의하여 조정을 받는 창세기부터의 율법주의의 출현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자세히 함께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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