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 있는 이단


의대를 졸업하고도 6년 동안 의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해서 고생하던 집사가 있었다. 그러던 그가 목사님과 교인들의 기도로 천신만고 끝에 의사시험에 합격하게 되었다. 어떤 분의 말에 의하면 의사시험에 두세 번 떨어지면 그다음에는 자신감의 결여로 다시는 합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을 한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요, 은혜이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가 의사생활을 하면서 그의 부모가 그로부터 기대한 만큼 금전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을 했는지 어느 날 전화로 말다툼하다가 그의 모친의 입에서 “너희 교회 이단이다.”라는 말을 하며 교회를 비방하는 말을 듣고는 “어머니 이단의 기준이 무엇입니까?”라고 반문을 했다고 한다. 세월이 지난 후에 그 의사가 죄를 짓고 자기 아내가 교회에 헌금하는 것을 싫어하여 부부싸움을 하고 집을 나가고 못 살겠다며 이혼하자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이번에는 그가 아내에게 교회가 이단이라고 다른 교회로 옮기자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아내가 그전에 그가 했던 말과 같은 말로 그의 입을 막았다고 한다. 그 말은 “이단의 기준이 무엇인가?”였다.


우리는 이단이 많다 못해 범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오래된 이단과 신종 이단들이 뒤엉켜서 말할 수 없는 혼란을 일으키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진짜 이단을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앞에 말한 그 의사나 그의 모친과 같이 이성도 없이 분별력도 없이 진리도 모른 채 자기의 감정이나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마귀가 좋아하는 일이요, 마귀를 유익하게 하는 일 외에 하나님과 교회에 해를 끼치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것이다. 교회 밖의 이단은 그 정체가 분명하지만 가장 위험하고 위협이 되는 것은 교회 안에 있는 이단들, 곧 가짜들이다. 교리상으로나 아무것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정통교단의 탈을 쓰고 이단 짓을 하는 사람들이다. 주님도 이와 같이 경고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15~23)


정통교단의 간판을 걸어 놓고 점쟁이 질과 무당 짓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통교단의 간판 아래에서 사람들의 왕 노릇을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늑탈하는 일들을 벌이는 이들도 허다하다. 그들은 조직과 감투에 열광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아니면 자기의 거짓됨을 가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짜든 가짜든 학위로 자기를 위장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에게 옳게 보여야 생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수전도협회는 어느 누구도 공식적으로 이단이라고 정죄를 한 적이 없다. 그 이유는 교리상으로나 진리에서나 트집을 잡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성결교단에서 알지도 못하고 경솔하게 협회를 사이비라고 했다가 그들과 사리분별을 따져서 공식적으로 그들의 사과를 받아 냈다. 그들은 문서의 근거를 남기는 사과를 하고도 자기들의 신문에 “이유빈장로가 사과하기 위해 총회본부를 찾아 왔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사실상 저들이 제안하기를 호텔에서 만나자고 하였으나 주님의 돈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가 그들에게 찾아가서 회의하자고 해서 그 회의 결과로 사과를 받은 것이었다. 그들이 마음에도 없는 빈말로 했다 하더라도 자기들끼리 사과문을 작성하여 와서 사인을 요구하면서 회의에 참석했던 자기 측 여덟 명의 위원들이 내려가서 사과 문안을 준비하면서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이유빈장로가 만나보니 괜찮은 분”이라고 자기들끼리 칭찬을 했다는 말도 하기도 했던 터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참석했던 총회 총무라는 C씨는 지방회 모임을 순회하면서 공공연히 협회가 이단이라고 했다가 같은 교단의 목사님에게 항의 전화를 받고는 쩔쩔매며 변명을 한 적도 있었다. 아마도 그렇게 한 것이 거짓으로라도 조직을 지켜야 하는 교권의 생리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장로교 합동 측에서는 어느 것 하나라도 예수전도협회가 이단이라는 것에 대해 꼬투리를 잡지 못하자 “신학이 다르다”는 궁색한 이유를 대어 예수전도협회에 자기들 교단의 목사들 참여를 금지시켰다. 고신 측이나 합신 측은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고 말꼬투리 잡기식으로 트집을 잡아서 계속 연구하겠다고 하면서 십여 년이 지난 아직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꼬리를 감추고 있다. 통합 측은 무슨 신앙 잡지사에 근무한다던 기자인 전도사의 거짓되고 모함하는 말을 듣고 이러한 사실이 아닌 거짓말에 의존해서 “문제가 있다”고 트집을 잡았다. 신앙잡지사라고 하는 것들은 잡지를 팔기 위한 안쓰러운 몸부림으로 이와 같은 것들을 확인도 않고 이슈화하는 악한 모습들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 모두가 공통점이 당사자인 우리에게 단 한 번도 서면으로나 대면하여서 사실관계를 확인한 적이 없었다. 단지 떠도는 거짓말에 의존해서 경솔하고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이와 같은 일들이 마귀가 일할 수 있는 영역을 제공하고 마귀의 역사를 불러온 것이다. 교단의 힘이 없는 사람들은 교권에 눌려서 참여하지 못하고 전도도 다 그만두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은 이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데서 지나서 아예 담대하게 이단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 일을 함으로 많은 연약한 영혼들을 실족시키고 주의 일이 크게 훼방을 받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곤란 가운데서도 주님은 그의 일을 계속하셨으며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은 끊어지지 않고 그 역사와 열매는 지속되었다. 이제는 이와 같은 마귀의 궤계가 곧 그 정체를 드러낼 일들만이 남은 것이다. 진리는 반드시 승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가운데 지난번 추석사경회를 통해서 주님이 계속 나에게 말씀해 주신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글의 서두에 언급한 “무엇이 이단의 정의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다시 말해서 무엇이 이단인가에 대한 주님의 기준을 알려 주시는 말씀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이단”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바울은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비방을 받은 것이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행 24:5)


바울도 사울이었을 때에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먼 나라까지 가서 잡아다가 죽이는 일을 하였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나사렛 나중에는 자기가 대적하던 그 이단의 괴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 복음으로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많은 교회를 세웠다.

 

우리는 오늘 주님이 말씀하신 진짜 이단은 누구인가를 살펴봄으로 이 일에 분별의 지혜를 얻고자 한다.


주님은 누가복음 16장에서 불의한 청지기에 관한 말씀을 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섬김의 대상이지만 재물은 쓰는 것이다. 재물은 섬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재물을 섬긴다. 돈을 사랑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나는 안 그렇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재물을 섬기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왜 우상을 섬기는가? 어떤 우상이든지 그 우상을 섬기는 이유는 육체가 잘 먹고 잘살기 위함이다. 육체로 사는 생활의 보장을 받기 위함이다. 그것은 부자나 가난한 자의 구별이 없다. 하나님을 떠난 죄인인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먹고 살기가 힘들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왜 먹고살기가 힘들어졌을까? 그 이유는 에덴동산에서 범죄함으로 하나님께 쫓겨 난 것이 죄인들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끊어지고 분리된 죄인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가 훼손됨으로 인간으로 인하여 “땅이 저주”를 받는다. 그래서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는 저주를 받은 데다가 가인과 같이 이제는 사람에게 죄를 짓는 존재들이 되어서 이제는 “땅에서 가인이 저주”를 받는다. 원죄는 땅에 저주를 받는 결과를 가져오나 사람에게 짓는 죄는 사람이 당에서 저주를 받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로 인하여 밭을 갈아도 땅에 효력을 주지 아니하고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저주를 불러온다. 하나님의 도우심이나 사랑이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저주 가운데에 들어간 죄인은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자기들만의 하나님을 만드는 것이 인간이 만든 우상이다. 그러므로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것은 한낱 죄인들이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러므로 우상을 섬기는 것은 재물을 섬기는 것이요 재물을 섬기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요 구원받지 못한 인간은 돈을 사랑하고 돈을 믿고 돈을 섬기는 데에 예외가 없는 것이며 구원을 받고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인격으로 회복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돈을 섬기는 것이다. 구원을 받고 믿음이 상당히 성장한 사람들도 온전한 헌신이 되지 않으면 돈을 사랑하고 재물을 섬기는 생활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주님의 말씀에 바리새인들이 비웃음으로 응수한 사실이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눅 16: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비웃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야말로 하나님도 섬기려 하고 재물도 섬기는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돈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재물을 더 섬기는 사람들이었다. 재물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절대로 사랑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 주님은 그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 16:15)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 정통 유대교인들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이들이었으나 주님이 보시기에는 잘못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야말로 교회 안에 있는 이단들이었다. 쉬운 말로 하면 교회 안에 있는 가짜들이라는 말이 오히려 나을듯하다. 그런데 교회밖에 이단으로 드러난 자들은 별로 위험하지 않다. 가장 위험한 존재들이 교회 안에 있는 이단들이다. 곧 교회 안에 있는 가짜들이 교회의 가장 큰 문제들이다. 말하자면 주님이 보시기에 바리새인들은 명확한 가짜들이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서 우리는 교회 안팎의 이단들에 대한 주님의 기준을 찾아낼 수 있다.


먼저 바리새인들은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고 하는 자들이었다. 사람 앞에 스스로 옳다고 하는 자들을 낙스(Knox)는 "사람의 인정을 항상 사모하는 자들(You are always courting the approval of men)"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옳다고 하는 자들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 사람이 옳다고 하는 자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를 옳다고 하는 자들이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도 속이고 사람도 속이는 자들이다. 스스로 옳다고 하는 자들은 속이는 자들이요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 8:44)


그들에게는 진리가 없다. 그들에게는 거짓만이 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위선만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 합의를 도출하여 냄으로 자기들을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며 의인을 죽이는 자들이다.

 

그리고 이어서 주님은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은 아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아는 그들의 마음은 사람에게 높임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 앞에 미음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높임을 받고 칭찬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신다. "미워하신다"는 말은 “가증스럽다”, “증오한다”, “역겹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의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의 믿음은 가짜라는 말이다. 곧 그 시대에 이단이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주장하고 모든 백성에게 인정을 받던 바리새인 그들이었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요 8:37~42)


주님도 그들이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줄은 다 아셨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아브라함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기보다는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두 번씩이나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하신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 12:34)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 23:33)


그들의 믿음이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니라는 것인 요한도 미리 책망한 바가 있다.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책망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 3:7)


요한은 그들에게 행여 속으로라도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경계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8~9)


그들은 요한이 볼 때에 길거리에 돌만도 못한 종교인들이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서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마 3:10)


 

그리고 요한은 자기의 뒤에 오시는 그리스도가 그런 자들을 꺼지지 않는 불에 던지시는 심판을 행하실 것이라고 경고한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 3:11~12)


 

요한이 볼 때에나 주님이 볼 때에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믿음과는 전혀 다른 것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했으며 결국 자기들의 믿음이라는 것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도록 이방정권에게 부탁을 했던 것이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요 8:37~41전)


그들은 거짓으로 예수를 죽일 증거를 찾았던 자들이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눅 19:47)


그들은 거짓증거로 예수를 죽이려고 했던 악인들이었다.

그들은 여자의 후손의 발을 상하게 하고자 했던 마귀의 하수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거가 서로 합하지 못함이라”(막 14:55~56)


오늘날은 어떠한가? 과연 이와 같은 사람들이 없는가?

아니다, 오히려 이와 같은 사람들이 범람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닌 것을 믿음이라고 하는 목사들과 장로들이 넘쳐나고 있다. 저들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른다. 저들은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권사가 집사가 성경도 모르는데 성경 말씀대로 사는 인격을 기대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전도협회를 한창 핍박할 때의 일이다. 날마다 전도를 하던 지방의 어느 노(老)목사님을 노회의 젊은 목사들이 찾아와서 전도하지 말도록 협박을 했다. 그들 중에는 그 노목사님이 중등부 교사 때에 가르쳤던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그만두라는 협박에 그 노목사님은 모든 것을 접고 남은 날들을 슬픔과 비통함으로 보내고 있다. 부산의 어느 목사님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부산의 그 나이 드신 목사님은 노방전도를 그만두고 축호전도로 바꾸었다. 그렇게 하니 영혼사랑에 당장 손상이 갔다. 하나님은 집에 있는 영혼과 거리에 있는 영혼을 구분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는 영적으로 침체 되었다. 불행하게도(읽는 자는 깨달을 지언저) 그 지역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교회는 외형적으로 커지고 땅을 사서 크게 건축을 하였지만, 그 목사님은 다시 이전과 같이 하나님이 인정할 수 없고 교인들에게 높임을 받고 존경받는 자리로 돌아가 버린 지가 오래다.


교단은 악행을 많이 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사람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조직을 싫어하신다. 교회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다.

성도들의 모임에서는 하나님이 높임을 받지만, 인간들의 조직에서는 인간이 높임을 받는다.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했을 때에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부터는 사람을 섬겨야 하는 폐단을 조목조목 가르쳐 주신다.


“사무엘이 왕을 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일러 가로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가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그 병거와 말을 어거케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 아들들로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병거와 병거의 제구를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 딸들을 취하여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를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의 제일 좋은 것을 취하여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취하여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 양 떼의 십분 일을 취하리니 너희가 그 종이 될 것이라 그 날에 너희가 너희 택한 왕을 인하여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지 아니하시리라” (삼상 8:10~18)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다.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사무엘이 백성의 모든 말을 듣고 여호와께 고하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삼상 8:19~22)


그리고 훗날에 하나님은 그들이 왕을 구한 것이 악한 것임을 깨닫고 회개하게 하신다.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뢰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로 밝히 알게 하시리라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뢰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로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삼상 12:16~19)


 

중세에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에 순수한 개혁자들이 주장한 것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 외에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두 가지를 들고 나왔다. 교황과 종교회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교황과 종교회의의 결정사항으로부터 수천만 명이 죽임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굴하지 않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종교개혁에 이르게 되었다. 사실 그들이 전에 많은 순수한 성도들이 종교회의와 인간의 권위를 부정하고 배척한 것이 교회는 조직이 아니며 교회는 인간을 높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롬 3:4전)


성경과 역사를 볼 때에 조직과 왕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시다.

조직은 인간이 타락하고 홍수 이후에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조직이었다.

그것이 바벨탑을 쌓으면서 인간에게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조직의 근원은 바벨론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타락한 교회를 “음녀 바벨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교회는 교회인데 세상과 간음한 교회이다. 그 상징은 음녀 바벨론이다.

교회는 교회인데 그 생리는 세상의 생리, 곧 바벨론의 생리인 것이다.


인간중심의 교회, 물질을 중시하는 교회, 직분이 계급이 된 교회와 제왕적인 목사들과 사람들에게 유명하고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 목사들과 장로들,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두고 인간의 생각과 경영기법으로 운영하는 교회, 하나님의 뜻은 알지도 못하고 사람의 뜻이 나타나는 교회, 모든 이방종교들과 같이 사람에게 아름다워 보이려는 음녀의 생리를 가진 교회, 전에 말한 젊은 목사들이 전도하는 노목사를 협박하게 된 이유가 전도하는 것이 이방의 불신자들에게 혐오감을 주고 좋은 감정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것이 교회를 종교적으로 아름답게 하고 세상 죄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려고 한 것이며 그것이 세상을 연애하는 바벨론 교회의 모습이여 세상 사람들에게 의로워 보이려고 스스로 애쓰는 세상과 연애하는 음녀 바벨론 교회인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눅 16:15)


낙스가 번역한 “사람의 인정함을 항상 사모하는 자들”이라는 말이 세상과 연애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그들이 모인 조직에서는 그것이 노회가 되었든지 지방회나, 시찰회나, 총회든지 이와 상관없이 말씀도 진리도 없다. 인간의 생각과 탐욕과 그로 인한 충돌만이 있는 것은 일반교인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 자리에서 스스로 옳다함을 받는 데에 성공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실패하면 사람들과 조직에서 버림을 받는 것이다.


왜 사람은 조직을 만들었는가?


언제 만들었는가?

홍수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인간의 조직이다.

왜 만들었는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만든 것이다.

누가 만들었나?

함의 아들들이 만들었다.

모든 우상과 이방 종교와 조직의 창시자는 구스이다.

구스의 이름으로부터 유래된 말이 혼돈(Chaos)이다.

모든 이방종교가 혼돈이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복음을 상실한 교회가 혼돈이다.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 혼돈이다.

불신자들이 볼 때에도 교회가 어지럽다.

그래서 그들이 교회를 욕하고 교인들과 목사들을 저주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혼돈에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의 약속을 하시고, 홍수 후에도 무지개의 약속을 하셨다. 무지개는 다시는 물로서 인간을 심판하지 않고 그 심판을 그 아들에게 옮기시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시겠다는 언약이었다. 그러나 노아의 아들인 함이 그 약속을 믿지 못하므로 어리석은 인간들을 조직하여 바벨탑과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하고 그것이 안되자, 사람이 신 행세를 하고 목석을 신으로 만들어 섬기는 혼란을 가져온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버린 자들이었다. 하나님이 버린 자들이 만드는 것이 조직이요, 혼돈이다. 하나님이 없는 자들이 사람을 섬기고 사람의 다스림을 받고 사람의 종노릇을 하는 것이다.


“이게 교회가 아닌데......”

“교회가 이러면 안 되는데......”


진실한 성도들이 이렇게 되뇐 적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아주 오래되었다.


이제는 불신자들까지도 이것이 교회가 아니라고 소리를 치고 있다.

혹시 길가에 돌멩이가 소리를 지르는 소리가 귓전을 때리지는 않는가?


우리의 왕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은 하나님만을 높이고 그의 다스리심을 받으며 그에게 순종하며 그를 사랑하는 자들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시편 기자와 함께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하고 믿는 자들이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시 100:1~5)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다. 이는 우리의 근본이 하나님께로부터 인 것을 증거하는 말이다.

우리는 그의 것 - 우리는 그의 소유물이다.

그의 백성 -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대상이다.

그의 기르시는 양 ? 우리는 하나님의 양육 대상, 곧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처럼 사는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이요,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성도들의 모임이다.

그 모임의 목자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시다.

그 성령님 외에 다른 주권자가 필요 없다.


어느 교회 부목사라는 이를 만나서 이런 말을 했다.

“주님도 섬기고 담임목사도 섬기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시오?”

그는 얼굴이 빨개져서 대답도 못 하고 부끄러워했다.


일전에 장로교단 부총회장을 지내신 장로님을 찾아가서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그 교단에서 어느 사람도 할 수 없는 좋은 영향력을 끼쳤던 믿음의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는 기력이 다하여서 거동도 불편하셨지만 총명함은 여전하셨다.

“장로님 교회가 하나님 섬기는 것 가르치지 않는 것 다 아시지요? 사람을 섬기는 것을 가르치잖아요?”

“......” 

노장로님은 말로 대답하기보다는 고개를 끄떡이셨다.

“장로님,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모임입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듣고 나서 일순간에 충격을 받으시고 눈을 동그랗게 크게 뜨시고 맞다고 대답을 하셨다. 그리고 곧 상념에 잠기시는 모습이셨다. 아마도 그동안 당신이 체험한 교단조직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이 바벨론 교회로부터의 탈피가 없이는 주님의 긍휼 하심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이 하늘에서 큰 음성으로 외치시는 음성을 들어 보자.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너무나 멀리 갔다. 너무나 오래되었다. 은혜의 항구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나가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시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주의 백성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그리고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안다. 그리고 돌아가야 한다. 여기에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힘과 결심으로는 안 된다. 주님이 돌아갈 수 있는 은혜를 주셔야 한다. 바벨론에서 도망하여 나올 수 있는 은혜를 주셔야 한다. 그들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들이 받을 재앙에 참여하지 않도록 한시바삐 도망 나와야 한다.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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