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둥에서 제 2신입니다


지난 19일에 반둥에와서 시내교회에서 집회를 한 결과는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일이 지나고 월요일인 24일붙터 목회자 세미나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오는 이범영간사와 인경렬 목사님과 예일교회 4명은 월요일 밤 늦게 도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40명정도 온 가운데 지난번에 훈련을 받은 이들이 절반가량 되었습니다. 두시간 비행기를 타고온 슬라웨시의 조대현 목사님과 남궁욱 사모님이 먼저 도착을 해서 모든 준비를 다 해 놓고 계셨습니다. 조목사님은 지난번집회에 못 오셨기 때문에 이십년만에 해후를 하고 잠간의 교제를 했습니다. 우선 오후 네시부터 제가 세미나를 시작하였습니다. 반주자도 없이 찬송을 하고 말씀을 전했는데 성령께서 두려움의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으로 바뀌는 과정을 창세기의 사람들의 삶을 가지고 조명을 해주셨습니다. 죄인은 예외없이 하나님을 무서워 하며 모슬렘도 하나님을 무서워 하는 사실과 교회가 모슬렘을 두려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연심하는 온전치 못한 믿음 곧 연약한 믿음때문임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하고는 십자가의 도에 관한 말씀을 전하고 십자가의 눈물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에서 오는 비행기가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기도 하였지만 자카르타에서 반둥까지의 길은 밤에도 막혀서 네시간 이상이날 걸리는 길인데 오는 도중에 뒤에서 차가 추돌을 하여 사람은 안 다쳤으나 그것 때문에 늦어져서 오전 두시(한국시간으로 오전 네시)가 넘어서 숙소에 도착을 했습니다. 저는 기다리다가 잡에 들었고 인경렬목사님과 이범영간사는 제가 자는 방에서 함께 자기로 했는데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자 집회장소로 갔다고 합니다. 반둥에 들어오면서 전화를 하라고 했는데 이인의 선교사님이 깜박 잊었다고 합니다. 모든 것에 규모가 부족한 이분이 계속 일의 미스를 빚어냈지만(이범영간사도 함께 미스를 연발했습니다) 불편은 했어도 사역은 주님이 붙잡고 역사를 하셨습니다.


첫 번째 집회때보다 말씀을 듣는 태도가 여간 진실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정이 변화된 송은정 집사의 간증에 큰 충격들을 받고 자기들의 삶이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인경렬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회개하면서 살수 있느냐?”의아해 하면서 자기들은 그런 죄를 자백하면 교단에서 짤리는 것이 무서워 회개를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죄를 용서받고 사함받은 거룩함의 은혜로 사는 교회도 기독교도 아니고 이미 주변의 회교도들과 같이 죄를 감추고 사는 종교적인 의의 수준에 만족하는 종교인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석에서 자기가 간음죄에 이어 죄라는 죄는 다 지었으며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죄만 짓고 살은 것밖에 없음을 아파하면서 고백을 했습니다.


말씀을 전하면서 오늘날 교회의 인격이 없는 예배와 찬송을 꾸짖었습니다. 일방적으로 자기만족을 위한 퍼포먼스로서의 찬송과 기도와 예배 그리고 집회가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를 말했습니다. 하나님앞에 마음에 있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몇 년이고 사는 그리스도인의 비참함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다가 눈물에 젖은 얼굴로 또 웃으면서 즐겁게 말씀을 들었습니다. 지난해에 있었던 일차 훈련과는 훨씬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시간마다 남편 목사님의 품에 안겨 우는 사모님들이 많이 있었는가 하면 아내에게 머리를 파묻고 우는 목사님들도 계셨습니다.


의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며 의인의 생활의 내용은 거룩함임을 간증과 함께 소상히 설명을 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말씀을 들으면서 우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기름부음이 사건이나 현상이 아니라 우리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인격이신 성령이라는 말에 큰 충격들을 받았습니다. 내안에 계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못했던 죄를 아파했습니다. 내안에 계신 주님을 모시고 살지 못한 것을 아파하고 그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볼찌어다의 생활이 되지 못했던 자기들속에 있는 세상의 악함을 회개했습니다. 모슬렘의 종교적인 허구를 들을 때에는 웃다가도 그와 비슷한 자기들의 믿음의 허구를 들을 때는 울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자기 아내와 자녀들을 불러 올리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참석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졌습니다. 죄를 자백하는 시간에 대충의 죄를 자백하는 사람들을 책망을 했더니 마지막으로 나이가 육십이 넘어 보이는 이는 죄를 아파하면서 자백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와같은 세미나가 없고 말씀이 없다면서 다른세미나를 가면 방법을 가르쳐 주고 이래라 저래라하여 행위만을 요구하는 설교를 하는데 여기는 자기의 연약함을 내어 놓고 그연약함을 하나님이 고쳐주심의 은혜를 나누는 것을 보면서 자기들의 연약함을 아파하고 그연약함도 하나님앞에 겸비하면 고침을 받을 수 있겠다는 믿음을 주님이 주셨다며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지난주간에 집회를 했던 교회는 지난번에 목사님 부부가 참석을 했었는데 육십대후반의 분들이었습니다. 지난번에 훈련을 받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자녀들에게 비행기를 타고 오라고 해서 다 모인 자리에서 자녀들에게 잘못한 죄부터 시작을 해서 죄를 자백을 했는데 가정이 한순간에 회복이 된 가정이었습니다. 그목사님의 아들은 발리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이었는데 교회집회에 이어 세마나도 참석을 하고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자기 어머니와 헉을 하고 울었습니다. 그가 통역을 할 때에 그의 영어를 들으면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임을 알수 있었는데 집회중간중간 영어로 된 것을 인도네시아어로 번역을 해서 많은 도움을 주고 천국에서 만나보자를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하여 당장에 부르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전도는 쉽다라는 책을 자기가 번역을 할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고 허락을 해주자 그렇게 기뻐했습니다. 그교회에서 집회를 하고 백만루피를 강사비로 받았는데 그것은 그들에게는 한달치 월급에 해당되는 큰돈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인 반둥교회의 사모님이 세미나 마지막 시간이 끝나고 저에게 다가와서 악수를 하면서 제손에 또 봉투를 쥐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한국에 있는 저의 부인에게 무엇을 좀 사다 주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육십만 루피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들에게는 일반적으로 만지기 힘들은 거금이었습니다. 그와같이 말로 다할수 없고 값으로도 칠수 없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 아들 목사님은 당장에 발리에 동역자들 40여명을 모을수 있으니 우리에게도 이말씀이 간절히 필요하다고 말을 하면서 발리에도 와 줄 것을 간곡히 부탁을 했습니다. 모든 순서를 마치고 집회장소를 출발하려고 자동차 앞자리에 앉아 있는데 뒤쪽에서 어떤 노인 목사님이 숨에 차서 달려와서 나를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한국으로 언제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금요일 밤에 간다고 대답을 했더니 아주 큰 실망을 표하면서 방금 자기가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아서 반둥의 평소에 알고 지내던 규모가 아주 큰 교회의 목사님에게 울면서 전화를 했더니 당장에 이번주일 낮에 설교를 부탁을 받았다며 아쉬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다 웃으면서 다음기회에 그렇게 하자고 위로해주고 작별을 했습니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대를 내려와서 반둥 시내로 오면서 통역을 했던 목사님 부부가 자기들이 큰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천국에서 만나보자'를 할 때에 강단 쪽을 향하여 돌아서서 울었습니다. 울면서 연신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 사모님은 지난번에도 모든 시간을 하루 종일 통역을 하면서도 자기가 살기 위해서 또 와서 통역하였는데 그분은 술라웨시에서 보육원 사역을 하시는데 오래전에 심장 수술을 한 연약함 때문에 한번은 화장실에서 어지러워서 넘어진 적도 있기 때문에 어디를 가는 것이 쉬운 분이 아닌데 자기의 영혼이 살아야 하므로 또 왔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이번에 거의 회복을 보았다며 이제 돌아가서 주님과 함께 살면 온전히 회복하는 은혜를 주님이 주시리라고 확신한다며 기뻐했습니다. 다음에 발리에 가게 되면 거기서 국내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 술라웨시도 가서 복음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조 목사님은 무슨 은사 집회에 자기도 가고 많은 사람을 데려갔었는데 거기에 회의를 느낀다며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고 묻기에 사람을 쓰러뜨리고, 요즈음 은사 집회라고 하는 사람들이 다 이전의 정령술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과거로 말하자면 신접한 사람들이며 또 그들 중의 대부분은 신접한 사람들도 아니고 자신이 신접한 것처럼 위장하는 거짓 선지자들임을 말해주며 무엇보다도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 급선무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이 나라의 이억 오천의 영혼들이 지옥을 향해가고 있는 이 나라의 교회들도 다 잠을 자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었습니다. 다음에 만나자고 간절히 요청하는 그들의 눈망울만 생각하면 시도 때도 없이 울음이 복받치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이제 살았다고 안도하는 그 눈길들, 이제 시작이라는 거룩함의 소원을 가진 그 얼굴들을 잊을수가 없어 지금도 기도합니다. 성경도 모르고 신앙생활도 모르던 자기들의 연약함을 고침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전 세계가 이 복음이 필요한데 일군이 너무나 적은 것이 우리 주님의 말할 수 없는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 집회를 했던 반둥 반석교회 사모님이 사랑으로 대접해주신 점심에 감사합니다. 어저께 저녁에는 같은 교회 이만성 장로님 부부가 저녁를 대접해주고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이 나라를 떠나는 날 아침입니다. 이만성 장로님이 “이제 일 년에 두 번은 고정이 된 건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니요, 인도하심은 있어도 계획은 없습니다.”

“......”

“일 년에 몇 번을 올지 아니면 한 번도 안 올 수도 있고 그것은 주님의 전적인 주권입니다. 우리는 종으로서 할 말이 없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지속해서 기도해주십시요.”라고 부탁을 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이 일을 위하여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연약한 교회와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를 쉬는 죄를 하나님 앞에서 범하시지 않기를 저와 함께 결단하시기를 간절히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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