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시즌이 돌아왔다.

방학은 즐거운 방학이다.

방학이 즐거운 것은 하던 공부를 그만하고 놀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요즘아이들은 좀 불쌍한 측면이 있다.

노는 방학이라기 보다는 학원에가서 더 힘들게 경쟁해야하는 방학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옛날에는 즐거운 방학이었다.


오랫만에 옛날 이야기 좀 해보려한다. 

옛날에는 방학이 즐거운 방학이었다.

그런데 해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과 같이 시작하는 방학은 즐겁지만 끝나는 방학은 즐거운 방학이 아니다.

방학이 끝나갈수록 개학일이 다가 올수록 방학숙제를 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기 때문이다.


인생도 그렇다.

인생에는 방학이 없다.

육신가지고 먹고 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휴가가 좀 있을 뿐이다.

휴가에다가 명절에 쉬는 것과 각종 연휴들이 사람들에게 숨통을 틔워준다.

그러나 그것도 지나가는 것이요 학창시절의 방학할 때보다 갈증이 더하다.

그뿐 아니라 장성한 사람들에게는 그와같은 날에 누군가를 섬겨야하고 봉사를 해야 하는 짐을 지게 된다.

오히려 일터에서 일하는 것이 몸도 마음도 더 편안할 때도 있다.

그래도 그마저 없으면 숨이 막혀서 못살것 같을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영혼의 방학이다.

영혼의 방학을 믿음의 방학이라고 해야 할것같다.


영혼은 방학이 없고 휴일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혼을 노리는 원수 마귀는 쉬지 않고 두루다니며 삼킬자를 찾기 때문이다.

마귀는 방학이나 휴가가 없다.

마귀는 낮도 없고 밤도 없다.

마귀는 방학도 없고 휴가도 없는데 믿는 이들이 휴가도 방학도 아니고 잠시잠간 게을르기만 해도 마귀의 먹잇감이 되고만다.


그래서 말씀이나 기도나 믿음으로 사는 것이나 전도나 개점휴업이 되면 안되는 것이다.

안되는 것정도가 아니라 비참해지는 것이요 상상치 못한 재앙을 부르는 결과를 가져 오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것은 돈이나 떡으로 사는 것이 어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사는 것이 믿음이다.

말씀을 받는 것을 쉬는 것은 육신으로 말하자면 굶는 것이다.

몸이 양식을 먹어야 움직일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의 영혼도 말씀을 먹어야(먹는다는 것은 읽는 것만이 아니라 읽고 깨닫는 것이며 깨닫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는 것을 말한다) 믿음으로 살수 있는 것이다.


믿음은 사는 것이 믿음이고 기도는 쉬지 않아야 기도이다.

믿음을 쉬는 것은 곧 불순종하는 죄에 빠지는 것이요, 기도를 쉬는 것은  곧 시험에 드는 것이다.


그것이 마귀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명하시는 것이다.  


말씀을 양식처럼 중히여기고 말씀을 양식처럼 받아 먹어야 믿음으로 살수 있다.

또 쉬지 않고 기도를 해야 믿음으로 살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믿음으로 살수 있는 은혜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것을 믿음없는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이 전도이다.

그래서 믿지 않는 불신자들 곧 영혼이 죽은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들려 줌으로 그들의 영혼을 살리는 것이 전도이다.


그런데 말씀이나 기도나 전도나 믿음으로 사는 것이나 중단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방학할수 없는 것인데 스스로 방학을 하는 것과같은 어리석음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그와같은 방학은 불안한 방학이 될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방학을 제맘대로 한다고 생각을 해보자.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진실한 아이들 공부잘하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불량한 아이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단지 불량하다는 아이들은 그와같은 것을 되풀이 하면서 마음이 자포자기가 되고 무디어짐으로 불안한 마음이 없게 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도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을 누그러 뜨드릴수가 없었를 것이다.


그와같이 믿음이 뒤로 물러갈 때에 처음에는 조바심이 나고 이래서는 안되는데하는 마음에 주님에게 죄송하고 부끄럽고 한마음을 가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양심이 무디어지게 된 것이지 불안한 상태가 지워진 것은 아니다.


스스로 하는 지각도 불안한 것이다.

스스로 하는 조퇴는 얼마나 불안한 일인가?

그렇다면 스스로 오랫동안 방학을 하는 것은 어떠할까?


은혜를 받지 않았다면 모르는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오랫동안 방학을 그것도 스스로 하는 방학은 얼마나 불편하고 두려운 것일까?


한때는 협회에서 훈련을 받고 은헤를 받고 각성하고 주님앞에 잘 살아 보겠다고 다짐을 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한때는 전도를 하면서 미친듯이 거리를 헤메고 다녔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한때는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고 회개하면서 잘못살았다고 울부짖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방학을 하고 말았다.

하나님이 방학을 시키신것도 아닌데 스스로 방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마귀가 방학이라고 속여서 그렇게 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이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불안한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만날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인데 이렇게 이런 모습으로 사랑하는 주님을 만날수 없다는데에 일치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러나 단지 육신때문에 육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 때문에 하늘영광보좌까지 나를 위해서 희생하신 주님에게 무어라 변명할수도 없는 말도 안되는 이유들을 가지고 주님을 멀리하고들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육신으로 살면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잃어버리면 그것을 찾을때까지는 쉬지 않을때가 있다.

집안에서나 길에서 그리고 사무실이나 일터에서 무엇을 잃어버리면 그것을 찾으려고 애를쓴다.

찾지 못하면 그렇게 마음이 아플수가 없다.


옛날에 오백원짜리 지폐를 청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버스를 탔다가 누가 빼간적이 있었다.

그렇게 허전하고 아프고 분해서 잠도잘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주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잃어버리고도 아픔이 없이 사는 사람들이 허다히 많다.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제는 감각까지도 무디어지고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몸은 힘들어도 협회에서 전도여행이나 집회나 훈련이나 세미나 또는 사경회때에 받은 은혜가 있는데 지금 그것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는데 아픔의 감각이 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잃어버린 것은 찾아야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알고도 행하지 못한자가 되어 많은 매를 맞게 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모르고 행한 사람은 적게 맞지만 알고도 행하지 않은 사람은 많은 매를 맞는단다.

그러면 알았던 것을 모르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은 주님앞에 어떠하겠는가?


생각없이 살지 말고 생각하고 살자.


죄를 지어서 검찰청의 소환을 받고 포토라인에 선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묵묵부답이거나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광경을 보면서 우리 각사람도 주님앞에 가면 그와같은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것인데 그리고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듯이 주님에게 직접 심문을 받게 될 터인데 그때도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 할수 있을까? 만에 하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면 "저 무익한 종을 내어 쫓으라"고 하시지 않을까?


시즌이 끝날 때마다 실적이 없는 운동선수들은 퇴출이 된다.

만약 주님이 매시즌마다 우리의 생활과 열매를 계산한다면 아마도 나같아도 백번 천번 쫓겨 났을 것이다.


그래도 주님이 길이 참으심에 감사하라.

그러나 그 감사를 이용하지 말라

감사한 것을 이용해서 주님의 인내를 시험하지 말라

길이 오래 참으시지만 끝까지 참으시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받은바 은혜를 잃어버렸다면 아무리 힘들고 창피해도 다시 찾아야 한다.

어느 대학생이라도 불의의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면 공부를 포기한다면 몰라도 계속 공부를 하고 싶으면 초등학교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전의 믿음과 지금의 믿음을 대조해보고 뒤로 물러간 믿음이라면 기억상실정도가 아니라 믿음상실증에 걸려 있다면 다시 회복해야할 것이다. 물론 그것도 주님이 은혜를 주셔야 가능한 것이지만.....


이제라도 불안한 방학을 끝내려면 이전에 받았던 은혜를 다시 받고 이전에 들었던 말씀을 다시 듣고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야할 것이다.

주님이 다시 찾으라고 명령하시는 말씀을 들어보자.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 4,5)


처음사랑을 누가 버렸는가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버렸다고 말씀하신다.

마귀가 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버린 것이다.

그래서 어디서 떨어진 것인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행위를 가지라


고 하시는 것이다.


지금은 무허가방학을 할 때가 아니다. 

그래서 불안 불안한 삶을 이어 갈 때가 아니다.


지금은 생각할 때이다.  

지금은 회개할 때이다

지금은 처음행위를 다시 받아 가질 때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다행히도 1월달에는 목회자훈련도 있고 제직훈련도 있다.

주님께 여쭤 보고 참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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