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님 저는 이 부근이 고향입니다. 이 말씀은 제가 어렸을 때 중학교에 다닐 때에 부흥회 때에 듣던 말씀입니다. 지금도 이런 말씀이 전해지는 곳이 있는 것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처음에는 말씀이 맞지를 않아서 숙소에서 군소리를 하던 현직 해외선교사로 있는 어느 목사님의 고백이다.
말씀을 들으면서 또 간증들을 들으면서 거룩함과 영적생활에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고 시간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을 들었는데 마지막시간에는 “장로님 저도 이제는 거룩하게 살아 보기로 주님 앞에 결단을 하였습니다.”라고 고백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 날 오전시간을 마친 후에 어느 사모님이 찾아왔다. 목사님과 교인들과 참석을 하였는데 오래전에 훈련을 받은 지역의 목사님들과 전도를 같이 하면서도 정작 훈련은 한번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분도 비슷한 말을 하는데 “장로님 저는 중학교 때에 거듭났습니다. 그대에 이 말씀을 듣고 제가 주님을 만났어요. 그런데 나이가 쉰세 살이 되도록 여기저기를 수없이 다녀 보았는데 이런 말씀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에 들었던 십자가의 은혜의 말씀이 듣고 싶어 그렇게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는데 여기 와서 그대 그 은혜와 사랑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라고 말을 하면서 막 울었다.
나도 그 사모님의 영혼이 그동안 고통하고 곤고했던 것이 내 마음에 체휼이 되면서 말을 듣고 있는 중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같이 울었다. ‘아 그래서 이분이 시간마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찬송하면서 목 놓아 울고 말씀을 들으면서 얼굴이 빨개서 울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요 장로님, 제가 중학교 때에 주님을 만났을 때 내 자아가 확실히 죽었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몰랐는데 목회를 하면서 내 자아가 살아 있는 것을 보았어요. 그것도 아주 악하게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 어찌할 줄을 몰라 괴로워했는데요. 어저께 장로님이 성령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씀을 전하실 때에 그때 그 믿음으로 내 자아가 죽은 것이 믿어졌습니다. 장로님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리고는 또 울었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전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교회성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예배당 건축이나 노회일이나 지방회의 일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기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해야하는 것이 시급한 것이다. 이렇게 십자가의 은혜를 향한 목마름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전에는 교인들이 이 십자가의 복음에 목말라 하더니 이제는 목회자들에게도 이 기근이 임한 것을 보지 않는가? 앞에 말한 선교사님의 친구가 마지막 날에 사모님과 함께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시간마다 찬송마다 정신없이 울었다. 눈물 콧물을 그렇게도 많이 흘리면서 말씀을 들었다. 그 분의 말이 요즈음 너무나 심령이 곤고해서 어디 가서도 해결을 못하다가 여기 와서 말씀을 듣는 중에 주님이 은혜를 주셨다며 다음번 집회에는 꼭 아내와 함께 참석을 하겠노라고 했다고 한다. 진실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영혼이 죽게 된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교회가 필요한가?
목회가 필요한가?
교회 프로그램이 필요한가?
교회성장이 필요한가?
자기 영혼의 목마름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교인들의 영혼을 방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교인들의 믿음이 어떠한가?
믿음으로 사는가?
주님하고 사는가?
말씀이 지식이 아니라 진리가 되어 사는 말씀이 되고 있는가?
저들이 믿음으로 변화된 인격이 되어 날마다 주님을 모시고 살아 이웃에게 귀감이 되고 만나는 사람들을 감화 감동시키는 세상의 빛으로 소금으로 살고 있는가?
저들의 영혼이 죽게 되었는데 교회성장의 도구로 프로그램을 위한 도구로 이용은 하면서도 저들의 목마른 영혼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저들의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문제와 비교한다면 어느 교회일이 저들에게 중요하겠는가?
사실은 예배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영혼의 목마름의 문제인 것이다. 전도보다도 새벽기도회보다도 더 우선되는 것이 목마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교회성장의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인들의 영혼을 마시우고 먹이 우는 것이다. 교회성장을 주문처럼 외치는 거짓말을 들어서는 아니 된다. 그들의 속임수에 빠져도 안 된다. 열두 해를 혈루병으로 앓은 여인과 같이 온 나라의 교회들이 교회성장의 열병에 빠져 있다. 그리고 돈만 갖다 바치고 많은 의원에게 많은 고생을 당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고 병은 더 중해진 것이 오늘날의 교회의 현실이다.
전도가 안 되는데 교회성장을 말하는 것은 남의 교인 빼어 오라는 말밖에는 안 되는 사기술이다. 세상을 보면 교회를 보는 눈이 삐뚤어져 있다. 전도를 하려 해도 백약이 무효하다. 교인들이 변화되지 않으면 잃어버린 영혼들을 건질 수가 없다. 교회성장이 되어도 교인들의 인격이 생활이 거룩해지지 않으면 예수를 믿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교인들이 많이 모이고 예배당을 크게 지어도 그것을 보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교회성장이라는 것을 이룬 교회들을 보라 다 남의 교인들을 데려가지 않았는가? 개척교회 교인들에게 큰 교회로서의 여러 가지 매력, 곧 프로그램의 매력, 시설의 매력, 복음이 없는 설교를 사람듣기 좋게 함으로 사람을 끄는 매력, 여러 가지 행사의 매력 등으로 유혹하여 데리고 감으로 주변의 개척교회의 문을 닫게 만드는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를 망하게 하는 어두운 일을 애써 외면해서는 안 된다. 다른 교회에서 장로를 하던 사람들이 그런 교회에 가서 앉아 있다. 집사를 하고 권사를 하던 사람이 그런 교회에 가서 앉아 있다. 나도 그런 장로 부부를 알고 있는데 만나면 예수를 자랑하거나 예수로 말미암아 변화된 자신의 간증은 하나도 들을 수가 없고 교회자랑만 늘어놓는다. 구역예배는 어떻게 하고, 헌금관리는 어떻게 하고, 목사님은 어떻고 하는 교회자랑과 사람자랑만 있지 주님을 자랑함이 없는 것을 본다. 정신없는 일이고 부질없는 짓이다. 교회가 왜 있으며 교회생활은 왜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자기의 영혼은 자기도 모르게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 일을 모르는 소경들이요 감각이 없는 문둥병자들이다. 그러기에 개척교회가 교회성장의 프로그램에 빠지면 교인들에게 바람이 들어가 큰 교회로 옮겨가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전도훈련을 받고 전도를 하던 어느 목사님이 말씀을 전해 달라고 해서 간적이 있었다. 그 목사님의 눈에는 영혼사랑이나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이 오직 교회성장의 야망에만 불타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몇 년만 있으면 큰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프로젝트를 설명을 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무실에는 교인들의 훈련프로그램의 괘도가 걸려 있었는데 무슨 새신자훈련부터 시작을 해서 제자훈련에다 심지어는 군사훈련이라는 용어까지 눈에 띄었다. 그래서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그분에게 말을 건넸다.
“목사님 거짓말하면 안 돼요. 그것도 주님의 피로 산 성도들에게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저렇게 해가지고 정말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들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주님도 프로그램으로 제자들을 만드신 적이 없는데 주님도 안한 것으로 제자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군사훈련은 무슨 군사훈련입니까? 교인들이 그저 주일날 교회 나오기도 가까스로 하는 사람들을 가지고 무슨 군사훈련이에요. 괜스레 교회성장의 바람을 교인들에게 불어 넣어 붕 뜨게 하지만 그것이 저들의 영혼을 오히려 죽이는 거에요.”
듣는지 아니 듣는지는 모르지만 주님이 주시는 대로 할말을 했다. 참으로 놀라고 놀랄 일들이 지금 이 시대에 이 땅에 일어나고 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암 8:11-13).

교회성장주의 빠진 목회자들은 잘 들어야 한다. 주님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교회성장을 부탁했는가? 아니지 않는가? 영혼을 먹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내양을 먹이라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양을 치라는 말씀이 어디 교회성장이라는 말로 들리는가? 그렇다면 정신이상자일 수밖에는 없는 것이 아닌가? 주님이 아무에게나 목회를 명하셨는가? 아니지 않는가? 베드로에게 하신 것과 같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왜 많은 사람들이 목회는 못하고 교회만 하려고들 하는가?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임이 너무나 자명하지 않은가?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섰던 이전의 일을 의심하지 않더라도 지금 양을 치는 목회가 아니라 교회 일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주님을 사랑함이 이미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처음사랑을 상실하고 처음행위를 잃어버린 것을 목회라고 할 수 있는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목회의 결국이 어찌 되겠는가 생각해보지는 않았는가? 교인들의 영혼을 사랑해주지 못하고 교회성장의 가치를 영혼보다 더 귀히 여기는 일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이들은 항변을 할 것이다. 교회성장하면 당연히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영혼을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목회를 하겠냐고 말을 할 것이다. 군복을 입었다고 다 군인인가? 진짜 군인이라도 전투능력을 상실한 사람을 군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주님도 당신을 안다는 거짓선지자들에게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자기를 기다리는 신부들 다섯 명에게도 신부임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종들 중에도 한달란트 받아서 땅속에 숨겨놓은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하지 않았는가? 주님이 받지 않으면 교회일도 악한 일이 되는 것이요 목회도 악한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가?

훈련 중에 어느 사모님이 울면서 고백을 했다. “제가 우리교회 전도사님이 그렇게 용납이 되지 못해서 괴로워했는데 그것이 죄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모님 왜 그런 줄 아세요? 목회하려고 하기보다는 교회를 하려기 때문에 그랬던 거예요. 사모님이 교회 매니저고요 목사님은 종업원이고요 전도사는 심부름꾼인데 저렇게 해서 교회가 되겠는가라는 생각에 정죄하고 용서가 안 되고 그랬던 거예요.”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임한 영적인 기근을 해결하고 영혼의 목마름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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